소설리스트

절대타경-462화 (459/712)

462화. 첩자

알록달록한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 문 앞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그 야경꾼의 첩자는 아음루의 해산물 상인으로 예명이 채아(采兒)였다.

야경꾼의 첩자는 대봉에 널리 퍼져 있었다. 온갖 분야에 별 직업이 다 있기에 전방위적으로 정부 수집이 가능했다.

경성을 떠나기 전에 위연이 허칠안에게 명단을 하나 주었다. 명단에는 초주 각지 첩자의 연락처, 이름, 자료가 적혀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안쪽으로 모실게요, 안쪽으로 모실게요.”

그가 대청 안으로 들어서자 기생 어미가 맞이하면서 매서운 눈초리로 허칠안의 온몸을 한 차례 털었다. 허칠안은 평범한 차림이었으나 외모가 더할 나위 없이 준수했다.

그래도 외모는 차순위였다. 가장 주요한 건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허리춤의 쌈지였다. 우수 고객이다!

기생 어미는 겉으로는 친절했지만 사실 좀 어색했다. 상대방의 급을 잘 모르니 어느 정도로 친절해야 할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고, 자칫 손님의 노여움을 살까 겁났다.

이때 그녀는 허칠안이 팔꿈치를 펴는 모습을 보았다.

기루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건, 기생 어미에게 자신의 팔을 감싸 안아 친근감을 표시하라는 의사를 나타내는 의미였다.

‘딱 보니 색마군…….’

기생 어미는 짙게 화장한 얼굴에 웃음을 지었고, 마치 가족을 본 듯 열렬하게 허칠안의 팔을 잡아끌며 상냥하게 말했다.

“나리, 우선 이쪽에 앉아서 차를 드셔요. 제가 어여쁜 애들로 골라서…….”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허칠안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나는 채아를 찾으러 왔네.”

“아이고, 나리 공교롭네요. 채아는 손님이 있어서 다른 낭자를 보시겠어요?”

기생 어미는 변치 않는 미소로 대했다.

“나는 채아만을 원하네.”

허칠안은 쌈지를 떼서 기생 어미에게 내던졌다.

“이건…….”

기생 어미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 허칠안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으나 속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눈부신 은자와 비교하면 규칙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기루에서는 한 낭자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사례가 너무 많다. 싸우는 건 일도 아니다. 기껏해야 소란 피운 자들을 쫓아내면 된다. 물론 쫓아내는 자는 돈을 적게 주거나 배경이 없는 쪽이다.

* * *

두 사람은 방문 앞에 이르렀다. 안에서 남녀가 바삐 일하는 소리가 들렸고, 침상이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칠안은 한 발로 방문을 박찼고, 방 안의 남녀를 놀라게 했다. 침상 위에 뚱뚱한 중년 남자가 여리고 아리따운 여인의 몸을 짓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질겁한 표정의 남자는 입구를 쳐다봤고, 사람을 죽일 듯이 격분한 모습으로 크게 소리쳤다.

“꺼져!”

그 아리따운 여인은 준수하기 그지없는 젊은이를 보자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화내지 말라고……. 알겠어, 이런 일이라면 어떤 남자든 크게 화를 내겠지.’

허칠안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부잣집 공자가 질투하는 포즈를 취한 뒤 남자를 침상에서 들어내 한 대 때렸다.

“동생, 동생, 할 말 있으면 잘 얘기하자고…….”

남자는 주먹 두 대, 발길질 한 대를 맞더니 상대방의 힘이 놀라울 정도로 세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적수가 아님을 깨닫고 과감하게 용서를 빌었다.

“옷 갖춰 입고 꺼지쇼!”

허칠안이 욕을 퍼부으며 말했다.

남자는 얼른 내의를 입은 뒤 외투와 바지를 쥐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문 앞에 서 있던 기생 어미는 침상 위의 채아를 향해 질문의 눈빛을 던졌고 채아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녀는 이 준수한 남자를 전혀 알지 못했다.

기생 어미 역시 더 관여하기 귀찮아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분이 함께 보내는 춘야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채아, 손님 잘 모시거라.”

그녀는 말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허칠안은 원형 탁자에 앉아 청력을 확대하고 기생 어미가 점차 멀어지다가 나무 계단을 밟는 소리를 들었다…….

채아는 일어나 앉았고, 벌거벗은 하얀 상반신이 드러났다. 그녀가 아직 홍조를 띤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뭘 기다리시나요. 제가 침상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어요.”

그녀는 말을 하는 동시에 준수하면서도 낯선 이 남자를 가늠했다.

위에 있는 남자가 배불뚝이 늙은 남자에서 최상급 외모의 잘생긴 오빠로 바뀐다면 이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처럼 좋은 일이었다.

허칠안은 주변에 이상이 없음을 이미 확인했기에 채아를 주시하면서 여유롭게 말했다.

“청의시종(靑衣侍從).”

간단한 네 글자였지만 침상 위의 여인은 낯빛이 확 바뀌었고, 허겁지겁 이불을 젖히고 침상을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은 뒤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백사무해(百死無悔).”

‘암호는 틀림없어……. 초상화도 맞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이 말했다.

“옷을 입으시게. 본관이 물을 말이 있소.”

채아는 교태를 거두고, 바닥에 있는 비단 치마를 주워 걸치고 속바지를 입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옷차림이 단정해졌다.

채아는 표면적으로는 윤락녀였지만 실제로는 야경꾼 첩자였다. 그녀는 사뿐하게 예를 갖추고 허칠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대인, 제가 대인의 요패를 좀 볼 수 있을까요?”

“가능하오.”

허칠안은 자신에게만 속하는 요패를 꺼내더니 탁자 위에 올렸다. 은으로 도금된 요패 뒷면에는 야경꾼의 위조 방지 무늬가 있었고, 정면에는 ‘허(許)’자가 새겨져 있었다.

채아는 입을 오므리더니 시선을 요패에서 허칠안에게로 옮겼고, 숭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대, 대인께서 바로 허칠안 허 은라십니까?”

허칠안은 웃었다.

“나를 아시오?”

“당연히 알지요. 관아에서 배출한 대인 같은 소년 천재조차 모른다면, 정보를 수집하는 제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채아는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대인의 모든 것을 압니다. 대인께서는 대봉의 시괴이자 사건 해결의 신이지요. 경찰이 있던 해에 경성 시국이 매우 불안정했으나 대인께서 온 힘을 다해 국면을 돌리셨고 그러고 나서야 풍파가 가라앉았지요. 저는 또 경성에서 불문 나한을 격파하신 것도 압니다. 그리고 운주에 계실 때 홀로 반란군 수만을 막아내셨기에 그 명성이 자자하지요…….”

허칠안의 미소가 굳었다.

‘정말이지, 도대체 누가 내 허풍을 떠는 거야? 이미 북경까지 퍼진 거야? 진정으로 정통한 고수의 눈에 나는 이미 완전한 웃음거리가 된 거야?’

“콜록콜록!”

그는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한담은 그만두지. 내가 그대에게 물을 건 따로 있소. 북경은 최근에 어떠하오?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소?”

채아는 고개를 저었다.

“오랑캐가 국경을 침범하긴 했으나 전부 소규모 기마병의 약탈이었습니다. 동쪽에서 잠시 약탈하고 서쪽에서 잠시 약탈했을 뿐이지요. 만약 대규모 전쟁이 있었다면 백성들이 남쪽으로 도망쳤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삼황현을 지나갈 테니 제가 모를 리가 없지요.”

채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는 상응하는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대인께서 일깨워주시니 한 가지 일이 떠오르기는 합니다. 아주 이상한 일이었지요.”

허칠안은 미간을 치켜올리고 다급하게 캐물었다.

“무슨 일이오?”

“얼마 전에 제가 한 손님을 접대했습니다. 자신의 상대를 거느린 나리였는데 그는 일 년 내내 초주 각지에서 물건을 팝니다. 그때 술을 많이 마시고 푸념하길 서구군(西口郡) 및 관할하는 3현(縣)에서 왜인지 모르겠으나 관병이 봉쇄했다고 하더군요. 관도가 전부 막혔답니다. 그는 헛걸음쳐야 했고, 사람을 먹이고 말에게 사료를 먹이느라 은자 몇백 냥을 손해 봤답니다.”

허칠안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더니 물었다.

“서구군이 어디 있소?”

채아가 예를 갖추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침상 밑에서 상자를 끌어냈고, 가장 아래층에 있는 감여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그녀는 특정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바로 서구군입니다.”

서구군은 초주의 가장 서쪽에 있었고, 서역 불국 근거지와 인접해 있었다. 서구군을 지나면 바로 서역 관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지었더랬다.

서구군과 북방은 결코 인접해 있지 않았다.

“북방 오랑캐가 길을 우회하지 않는 이상, 그쪽까지 가서 전쟁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서역 불국이 길을 빌리지는 않을 텐데……. 어차피 이러한데 왜 서구군을 봉쇄해야 할까요?”

대담한 추측이 허칠안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덧붙일 말이 더 있소?”

채아가 말했다.

“밖은 몰라도 삼황현의 방어력은 오히려 적잖이 증강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출입 시 통행증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엄격하게 조사하지요.”

허칠안이 웃었다.

“요 며칠 사이의 일 아니오?”

채아가 고개를 저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녀가 말했다.

“한 달 전부터 그랬습니다.”

허칠안은 이 말을 듣더니 별안간 미간을 찌푸렸다.

‘한 달 전이라……. 삼황현은 초주 가장자리에 있는데 이렇게 엄밀하게 심문한다는 건 누군가를 찾고 있거나 누군가를 포위하고 있다는 말인데? 요 며칠 깊은 산 원시림에 뚫고 들어가 머물다 보니 관도에 검문소를 배치했는지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군. 어떤 사람을 찾고 있든 간에 나를 찾는 게 아닌 건 틀림없어…….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건가? 최근에 나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했을 가능성은 배제해야지. 어쨌든 한 사람을 찾아도 찾고,두 사람을 찾아도 찾는다.’

허칠안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두드리다 사태를 분석하면서 단기 목표를 세웠다.

‘내일 서구군으로 출발해야겠다. 만약 그곳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그곳이 혈도 삼천리 사건의 발생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보니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왕비를 데려가야 하나? 음, 서구군과 가까워졌을 때 그녀를 근처의 안전한 객잔에 두면 되지. 왕비라는 바둑알을 잘 써야겠어. 어쩌면 왕비를 이용해서 내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니 버려서는 안 돼.’

채아는 말없이 침음하는 허칠안을 보자 얌전히 옆에 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갔고, 사색에 잠겼던 허칠안이 마침내 회복하더니 분부했다.

“차를 타 주시오.”

채아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신나게 대답했다. 이는 허 은라가 오늘 밤에 이곳에 머물 거라는 걸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차를 우린 뒤 허 은라가 다시 한번 분부했다.

“침상 이불과 요를 바꿔 주시오.”

채아는 흥분으로 온몸이 나른해졌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요와 이불을 바꿨다.

차를 한 주전자 다 마시니 밤이 깊어갔다. 허칠안은 채아의 시중을 받으며 족욕을 마친 뒤 침상에 누워서 편안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는 최근에 연일 황량한 들판에서 투숙한 탓에 수면 상태가 극히 열악했다. 오랫동안 부드러운 침상을 누리지 못했다.

“허 대인, 제가 시중들겠습니다.”

채아는 매우 기뻐하며 가장자리에 앉아 말하면서 옷을 벗었다.

“채아.”

허칠안은 침상에 누워 그녀를 보면서 갑자기 말했다.

“자네 침상이 너무 부드러워 잠들기에 그다지 편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허 대인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듣자 하니 딱딱한 침상이 몸에 더 좋다고 하더군요. 침상이 너무 부드러우면 쉽게 피로해진대요.”

채아는 웃으며 말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바로 침상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하다니, 허 대인은 역시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 자네의 몸을 염두하여 오늘 밤에는 자네가 바닥에서 자고 내가 침상에서 자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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