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58화 (455/712)

458화. 사절단에게 소식을 묻다 (2)

쿵!

허칠안은 산길에서 앞서가던 중 돌에 뒤통수를 맞았다. 허 은라는 육신 방어력이 기가 막혔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쿵!

또 돌 하나가 뒤통수를 내리쳤다.

‘손이 안 쑤시나?’

왕비는 손에 있는 돌을 뒤로 숨긴 채 뒷짐 지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방의 경치를 보는 척했다.

허칠안은 그녀를 몇 번 노려보았고, 왕비 역시 약삭빠르게 굴었다. 그녀는 자신이 대오에서 세력이 약하다는 걸 알았기에 지금껏 공개적으로 그와 부딪히지 않았다. 하지만 허칠안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쿵!

돌이 또 날아왔다.

‘……나는 정말 이렇게 소심한 여인을 본 적이 없어. 언제까지 내리칠 수 있는지 보겠어. 어쨌거나 지치는 건 너라고!’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왕비는 힘에 한계가 있었고, 그녀가 애써 돌로 내리친다 해도 큰 힘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허칠안의 방어력은 경이로운 수준이었기에 그는 이도 저도 아닌 공격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공격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 * *

원주에서 3일을 머물자 역참에 군대가 왔다. 고작 이백 명으로 인원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오를 이끄는 장군의 신분이 낮지 않았다. 진북왕 휘하의 돌격영참장(突擊營參將)으로 정4품이었다.

참장의 성은 이(李)로 초주 사람이었다. 그는 북방인의 특색을 띤 외모를 지녔으며 용감하고 힘이 셌다. 투박한 이목구비에 어두운 빛깔의 갑옷과 투구를 입고 있었는데 온통 칼자국이 나 있었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볐다는 증거였다.

그는 병마를 데리고 역참으로 쳐들어왔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래층의 양연과 삼사 관원을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질문했다.

“왕비는? 저 부장군은?”

뒤에 있는 병사들은 진지한 얼굴로 사절단의 관원들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대리사승은 순간 스트레스를 확 받는 느낌이 들었다. 우악스러운 군인들의 살기등등한 눈빛을 무릅쓰고 그는 눈 딱 감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누구요?”

“초주, 돌격영참장, 이원화(李元化)요.”

이 참장이 대리사승을 살피며 말했다.

“그러는 그쪽은 누구요?”

“본관은 대리사승이오.”

이 참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왕비마마는 어디 계시오?”

오늘, 그는 갑자기 회왕 밀정의 명령을 받았다. 원주에 가서 사절단에게 왕비의 상황을 물으라는 것이었다. 이원화는 그때서야 왕비가 경성을 떠나 북상한다는 걸 알았고, 회왕의 밀정이 그더러 왕비를 데리러 가라고 한 줄 알았다.

그가 즉시 기마병 이백 명을 끌고, 회왕의 밀정을 데리고 근처 장문군(長門郡)에서 달려온 것이었다.

대리사승은 얼굴에 미소가 점점 사라지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사절단이 도중에 공격을 받아 우리와 왕비는 흩어졌소.”

‘공격?!’

이 참장은 깜짝 놀라 소름이 끼쳤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봉 관내에서 감히 누군가 사절단을 공격했다니? 어떤 놈들이 이렇게 대답한 것인가? 목적은 무엇이지?’

그는 갖가지 의혹이 스치자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검은 장포를 두른 밀정을 쳐다보았다.

이 밀정은 검은 장포를 두르고 얼굴 절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어 하얀 아래턱만 드러낸 상태였다. 여인이었다.

하지만 이 참장은 그렇다고 그녀를 얕잡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지(地)’급 밀정으로 이 등급의 밀정은 수련 경지가 6품이거나 5품이었다.

“여러분께 물을 말이 있는데, 반드시 한 명씩 와야 합니다.”

밀정은 나지막이 말하고는 가면 아래 심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폈다.

“그대는 누구요?”

형부 진 포두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여인 밀정의 소매 속에서 현철영패(玄鐵令牌)가 미끄러져 나왔고, 그녀가 손을 털며 던지자 영패가 진 포두 발 옆의 땅에 꽂혔다.

영패에는 ‘지(地)’자가 새겨져 있었다.

“회왕께서 키운 첩자군.”

양연이 마침내 입을 떼고 말했다.

‘진북왕의 밀정이라…….’

삼사 관원은 가슴이 철렁했고, 불만스러운 태도를 거두었다.

대리사승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뭘 묻고 싶소?”

검은 장포를 두른 밀정은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가 아무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오른 뒤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대리사승과 어사 둘은 움직이지 않았고, 양연은 무표정이었다. 진 포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속으로 찌질하고 겁많은 문관들을 남몰래 욕하면서 눈 딱 감고 따라갔다.

* * *

검은 장포의 여인은 아무 방이나 고른 다음 장포에서 삼각형의 관인(官印)을 꺼내 가볍게 탁자에 엎어 놓았다.

그런 뒤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밖에서 듣지 못합니다. 저는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진 포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십니까?”

여인이 물었다.

“형부 총포두, 진량(陣亮)이오.”

진 포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인은 가면 아래 얼굴을 숨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더니 말했다.

“왕비의 진짜 신분을 아십니까?”

진 포두는 어리둥절하였고,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왕비의 진짜 신분?”

밀정은 대답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했다.

“습격당한 과정을 얘기해 주십시오.”

진 포두는 사절단이 경성을 떠난 뒤의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뒤 피습 경위를 중점적으로 묘사했다.

맞은편의 밀정은 그 묘사를 다 듣고 한참을 침음하더니 말했다.

“그가 사절단이 류석탄에서 매복 공격을 당할 거라고 예측했다고요?”

진 포두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인이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말투를 통해 알아채곤 말했다.

“아마 그를 잘 알지 못할 텐데, 이 자는 생각이 섬세하고 감각이 날카로워 정세를 훤히 꿰뚫소…….”

밀정을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를 압니다. 사건 해결의 신이자 혼자서 반란군 수만을 막아선 허 은라조차 모른다면 저희는 불합격 밀정임이 명백하지요.”

진 포두는 그녀가 ‘혼자서 반란군 수만을 막아섰다는’ 말을 할 때의 어조에 감출 수 없는 야유와 조롱이 섞였음을 알아차렸다.

“저는 그의 근황을 원합니다. 불문과 두법한 이후의 근황이요.”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불문과 두법한 이후라…….’

진 포두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야 당연히 과거 부정행위 사건과 천인 간의 전쟁이지. 이게 가장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큰 영향을 미친 사적이오. 다른 사소한 일이라면 나는 그렇게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소.”

밀정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얘기를 시작해도 된다는 뜻을 그에게 내보였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유가 법술과 불패금신으로 천인 양종의 걸출한 제자를 굴복시켰지…….’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과거 부정행위 사건과 천인 간의 전쟁이 발생한 건 최근이라 아직 소식이 북경에 전해질 겨를이 없었다.

“나가셔도 됩니다. 대리사승께 들어오라고 해주십시오.”

그녀는 말했다.

진 포두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몇 분 뒤, 대리사승이 문을 두드리더니 들어왔다.

밀정은 방금 했던 질문을 한 차례 다시 물었지만, 대리사승에게는 덧붙여 질문했다.

“왜 사후에도 계속해서 북상하는 겁니까? 저상룡과 왕비의 행적을 수색하지 않고?”

이에 대해 대리사승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버리고 간 자들에게 미련을 가질 필요가 있소? 사절단의 임무는 ‘혈도 삼천리’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지, 왕비 호송이 아니오.”

그의 말뜻은 우리는 이미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었고, 저상룡이 어질지 않으니 우리가 의롭지 못함을 탓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밀정은 그의 말을 평가하는 대신, 모자를 뒤집어쓴 머리를 움직여 그에게 나가도 된다는 의사를 표했다.

대리사승은 일어나 문 옆으로 걸어갔다. 그가 막 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칠안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가면 아래, 그윽하고 고요한 눈동자로 대리사승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리사승은 눈을 가늘게 떴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일 뿐이오.”

밀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거두었다.

* * *

대리사승은 방을 나서 계단을 따라 대당에 갔다. 진 포두, 어사 둘 그리고 양연은 탁자에 앉아 묵묵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문방사우가 놓여 있었다.

40대 초반의 대리사승은 관리 사회에서는 젊고 혈기왕성한 편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탁자에 앉아 붓을 들고 선지에 글을 썼다.

“술사가 아니다!”

선지 위에는 진 포두가 쓴 글자가 한 줄 더 있었다.

<오른손에 물건을 숨기고 있다.>

뒤이어 어사 둘이 방으로 들어가 밀정과 대화를 나눴다. 나온 뒤에 한 사람은 ‘사건에 관한 일을 묻지 않았다’라고 썼고, 다른 한 사람은 ‘허 은라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라고 썼다.

양연이 선지를 돌돌 말아 가볍게 힘을 주니 돌돌 말린 종이는 가루가 되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종이 가루를 뿌리고, 무표정으로 계단을 올랐다. 방문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채 바로 밀고 들어갔다.

“왕비가 실종되었으니 야경꾼들이 주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밀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양연은 탁자에 앉았다. 석조 같은 이목구비에는 생동감 있는 변화가 부족했다. 그는 밀정이 열거한 죄상에 대해 무관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할 말 있으면 하시오.”

“좋습니다!”

밀정이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요. 왕비마마는 어디 계십니까?”

“오른손에 무엇을 움켜쥐고 있소?”

양연은 대답하는 대신 반문하면서 시선을 밀정의 오른 어깨에 두었다.

“역시 금라답군요. 한눈에 제 아이를 꿰뚫어 보다니요.”

밀정은 탁자 아래 숨긴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작고 정교한 팔각 놋쇠 쟁반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저는 사천감의 법기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팔각 놋쇠 쟁반을 한편으로 밀어두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허나 4품 전봉인 무사한테는 효과가 없지요. 대인께서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분간하는 건 6품 술사여야만 가능합니다.”

양연은 팔각 놋쇠 쟁반을 보지 않은 채 그녀가 방금 한 질문에 답했다.

“나는 왕비마마가 어디 계시는지 모르오.”

밀정은 바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허칠안은 어디에 있지요? 그는 정말 부상을 입고 경성으로 돌아갔나요?”

양연은 손을 들더니 말했다.

“그대가 한 가지를 물어보면 나도 한 가지를 묻겠소.”

그녀는 망토 안 가면 아래, 그윽한 두 눈동자로 그를 잠시 응시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물으시지요.”

“왜 오랑캐가 왕비마마를 겨냥하는 것이오?”

양연의 질문은 바로 핵심을 찔렀다.

밀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양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바꾸겠소. 저상룡이 그날 수로로 가자고 고집했던 이유가 그대들과의 만남을 기다려서요?”

“그렇습니다.”

밀정은 긍정적인 답변을 주고, 물었다.

“허칠안은 어디 있습니까?”

양연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밀정은 왜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암암리에 호송하다가 하필 초주 국경에서 지원하려는 거요?”

‘모른다라……. 다시 말해서 허칠안이 중상을 입고 경성에 돌아간 게 아니란 소리군.’

밀정은 나지막이 말했다.

“저희에게는 저희의 적이 있습니다. 위 공께서는 왕비마마께서 북행하는 일을 아시는지요?”

‘사람 손을 뗄 수는 없겠군…….’

양연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알고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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