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57화 (454/712)

457화. 사절단에게 소식을 묻다 (1)

“소직이 여러 대인께서 방문하시는데 몰랐습니다. 영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 지주의 태도는 매우 겸손했다. 그가 대리사승과 어사 둘 그리고 양연에게 인사한 뒤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여러 대인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양연은 관리 사회 교제에 서툴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대리사승은 미리 준비한 공문서를 꺼내 미소 가득한 얼굴로 건넸고, 몇 마디 나누더니 지주와 호형호제하기 시작했다.

우 지주는 대리사승과 인사를 마친 뒤 그때서야 손에 든 공문서를 펼치고 자세히 읽었다.

우 지주는 공문서를 다 본 후의 표정이 매우 이상했다. 심지어 그는 황당무계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을 훑어본 뒤 상대를 떠보며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어느 분이 허 은라이신지요?”

대리사승은 탄식하더니 슬퍼하며 말했다.

“사절단이 도중에 적의 매복 공격을 당했소. 허 은라는 모두를 보호하다가 중상을 입었고 우리는 이미 허 은라를 경성으로 돌려보냈소.”

우 지부는 아연실색하며 말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나쁜 놈들이 감히 조정의 사절단을 매복 공격한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극악무도하군요.”

류(劉)씨 성의 어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 일은 언급하지 마시오. 우 대인, 우리는 사건을 조사하러 왔고, 마침 물을 일이 있소.”

우 지주는 서둘러 읍을 올렸다.

“어사 대인, 말씀하시지요.”

류 어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초주의 전황(戰況)이 어떠하오?”

이 말을 들은 우 지주는 탄식하더니 말했다.

“작년에 북방에 연일 폭설이 내렸고, 동사한 가축만 무수합니다. 올해 봄이 온 후에는 시시때때로 변방을 침입하고, 도중에 태우고 죽이고 약탈을 일삼습니다. 다행히 진북왕의 군사력이 강하여 성을 한 군데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오랑캐 역시 초주까지 깊숙이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요. 다만 변방 부근의 백성들이 가여울 뿐이지요.”

모든 백성이 성안에 사는 건 아니었다. 오랑캐에게 약탈당하는 그자들은 촌락과 소도시의 백성이었다.

사절단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았고, 형부의 진 포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혈도 삼천리는 어느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오?”

우 지주는 쓴웃음을 짓고 손을 떼더니 말했다.

“이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대인께서 아셔야 하는 점은, 초주의 가로 세로를 합해도 고작 팔 천 리라는 부분입니다. 만약 혈도 삼천리 같은 일이 있었다면 소직이 여기에 서서 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류 어사는 비웃었다.

“모두가 지식인이네. 우 지주, 그런 잔꾀 부리지 말게.”

‘혈도 삼천리’는 고사로, 옛날 전국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살육을 일삼는 장군이 있었는데 적국이 멸망할 때 군대를 이끌고 삼천리를 도살하였다던 일화였다.

후대에 고사로 인용되어 대형 살육과 냉혹하고 잔인함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오랑캐가 변방의 백성을 괴롭히고 태우고 죽이고 약탈하지만, 진북왕이 북방에서 돌려보낸 당보에는 오랑캐가 국경을 어지럽혔으나 이미 그가 군사를 이끌고 전부 물리쳤다고만 하며 승전보가 끊이지 않았다.

오랑캐가 만약 정말 ‘혈도 삼천리’라는 폭행을 저질렀다면 그건 바로 진북왕이 군정을 거짓으로 보고했다는 말이 되니, 이는 심각한 독직(瀆職)이었다.

“소직은 정말 모릅니다. 원주에서 북쪽을 가려면 수일은 걸리는 여정이 되지요. 여러 대인께서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북쪽으로 좀 가셔도 무방합니다. 눈으로 직접 봐야 믿으시겠지만요.”

우 지주는 연거푸 변명했다. 오직 하늘에 대고 맹세하는 것만 하지 않았다.

우 지주는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내막을 모를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이 사람을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류 어사가 다시 북경에 관한 문제를 몇 가지 묻자, 대리사승은 빙그레 웃으며 일어서서 그를 배웅했다.

대리사승은 우 지주가 마차를 타고 아관을 데리고 떠나는 걸 지켜본 뒤 역참으로 돌아와 역졸을 물리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 * *

“우리 지금 북상하는 것인가 아니면 역참에 며칠 더 머무르는 겐가?”

형부의 진 포두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계속 역참에 머무르시죠. 회왕의 사람이 반드시 찾으러 올 겁니다. 그때 가면 저희는 그들과 함께 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된 일 아닙니까?”

다른 주씨 어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밝은 곳에 있고 허 은라는 어두운 곳에 있으니 회왕의 주의를 끄는 일은 바로 저희 임무지요.”

대리사승이 개탄하며 말했다.

“왕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상황이 어떠한지 모르잖소.”

진 포두와 어사 둘은 이 말을 듣고는 코웃음을 쳤다. 왕비와 저상룡의 생존 여부가 그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음흉하고 교활한, 그렇게 졸렬한 소인배는 죽어야 마땅했다.

양연이 그들한테 말했다. 허칠안이 북방 고수를 물리친 후 홀로 여정에 올라 비밀리에 북경에 가서 사건을 조사할 거라고.

이 계획은 모두의 만장일치를 얻었고, 다들 비밀을 지키기로 약조했다. 삼사 관원들이 이렇게 협조적인 이유는 첫째, 허칠안에게 생명의 은혜를 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 대한 태도가 적대에서 친근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허칠안이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한다는 건 사절단이 소극적으로 임무에 임해도 된다는 걸 의미했고, 어떠한 증거가 나왔다고 해서 진북왕이 거꾸로 죄를 뒤집어씌울 리가 없었다.

일거양득이었다.

한편 양연이 그들에게 알리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왕비의 행방이었다. 양연이 추측한 바에 따르면 왕비는 허칠안이 구출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는 일이 생긴 후, 그가 허칠안이 떠난 방향을 따라 탐색하다가 전투 현장까지 이르렀을 때 의식불명의 여종들을 발견함으로써 얻은 결론이었다.

현장에는 빽빽하게 깔린 거미줄과 여종들 외에 다른 건 남아 있지 않았다.

양연은 여종들을 깨워 상황을 물었고, 그녀들은 허칠안이 쫓아왔고 그런 뒤에 큰 싸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냐면 여종들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때 의식을 잃었었다.

양연은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허칠안이 도중에 왕비를 납치하여 북방 고수와 추격전을 벌였든가 허칠안이 북방 고수를 꺾고 왕비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리라.

현장에 다툰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전자의 추측으로 더 기울었다. 허칠안이 유가 서적에 기록된 법술을 이용하여 왕비를 구하는 데 성공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북방의 고수 넷이 대봉 경지에 깊이 파고들었는데 감히 대담하게 나쁜 짓을 하지 못하다니. 허칠안에게 아주 많은 기회를 주었어……. 그에게는 몸을 보호하는 유가 서적이 있고, 또 소성의 금강신공도 있으니 자기 보호 능력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게다가 마침 이 기회에 자신을 연마하여 좀 일찍 화경의 문턱에 닿아 5품으로 승직할 수도 있다.’

양연은 그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더랬다.

이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무사 체계에서 자아를 뛰어넘고, 자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해 양연 자신도 산해관전역에 참가했는데, 그때의 그는 아직 여렸다.

그는 변함없이 칼을 들고 전쟁터에서 싸우고 죽이면서 구사일생으로 무도를 갈고 닦았다.

물론 허칠안도 가능했다. 만약 그가 안 된다면 죽어도 누구를 탓할 수 없을 터였다.

이밖에도 그는 몰래 금군 열 명을 안배하여 여종을 호송해 남하하여 경성으로 돌아가게 했다.

사절단에는 현재 금군이 90명뿐이었다. 대리사승 등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이 세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금껏 하층 병사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허칠안은 행인이 밟고 지나간 산의 오솔길을 따라 헝겊으로 싼 패도를 등에 메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왕비는 머리가 흐트러져서는 나뭇가지 하나로 몸을 지탱한 채 느릿느릿 뒤에서 걸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녀가 입은 여종 의복이 주름지고 더러워졌으며,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주 단정하게 빗질하는 등 자신의 머리를 아주 신경 썼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목잠으로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으니 머리카락이 어수선하게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여인에게 왕비의 존귀한 자태가 어디 남아 있겠는가. 그녀는 이제 누가 봐도 확실히 피난 가느라 혼이 다 빠진 부인이었다.

“나쁘지 않군요. 이렇게 오래 따라올 수 있다니. 요 며칠 체력이 많이 향상되셨습니다.”

앞에서 허칠안이 발걸음을 멈추고 빙그레 웃으며 칭찬했다.

“앞에 물소리가 들리더군요. 힘내세요. 그곳에 도착하면 잠시 쉬겠습니다.”

왕비는 이 말을 듣더니 눈이 반짝였다가 다시 암담해졌다. 그녀는 목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매일 자신의 땀 냄새를 싫어하면서 이리저리 긁는 게 나았다.

왕비가 목욕을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허칠안이 몰래 훔쳐보거나 이 틈에 색기가 폭발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걸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그녀가 계속 이렇게 더러워지면 이 자식이 그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 네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점점 더 못 참겠다고…….’

이건 허칠안이 요 며칠 입에 달고 살았던 말버릇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왼쪽 절벽에 아주 가는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가 있으면 반드시 깊은 못이 있는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폭포 아래에 작은 못이 있었고, 못 안에 물이 있었는데 밖으로 흘러나와 작은 시내를 형성했다.

“저 왕비마마 몸의 시큼한 냄새를 갈수록 못 견디겠어요. 목욕하시면 안 될까요? 제발?”

허칠안이 제안했다.

“안 해.”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더러운 여인 같으니라고.”

허칠안이 욕설을 내뱉었다.

‘너야말로 더럽거든, 퉤…….’

왕비는 입꼬리를 치켜올렸고, 속으로 우쭐댔다.

“왕비께서 씻지 않으셔도 전 씻을 거예요.”

허칠안은 외투를 벗어 건장한 상반신을 드러냈다. 근육이 균형 잡혀있고 비율이 아주 좋았다. 남성의 야성미를 남김없이 다 드러냈다.

왕비는 흰자위를 번득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그녀는 귓가에 ‘풍덩’하는 소리가 들려 시선을 옮겨 보았고 허칠안이 못에 뛰어 들어간 걸 확인했다. 그녀는 시냇가의 돌에 앉아 천천히 꾀죄죄한 신발을 벗었다.

정교하면서도 깜찍한 발이 드러났다. 그녀가 발을 받치고 보니 발바닥이 온통 새빨갛고 물집이 몇 개 잡혀 있었다.

왕비는 입을 삐죽거렸고, 하마터면 울 뻔했다.

허칠안 그 호색가는 그녀의 미색에 유혹된 상태였으며, 또 그는 여자를 끔찍하게 위했기 때문에 서둘러 길을 재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산 넘고 물을 건너 닷새를 맨발로 걸었다. 부유한 생활을 누렸던 왕비에게는 얼마나 고된 여정이겠는가.

통속적이고 알기 쉬운 말로 하자면 이렇다.

<나는 이 미모와 신분상 있을 수 없는 대우를 감수하고 있다.>

왕비는 작고 흰 발을 시냇물에 담그고, 꾀죄죄한 신발을 깨끗하게 씻어서 돌 위에 말렸다. 중춘의 햇빛은 딱 좋게 내리쬐었지만, 그 빛으로 그녀의 신발을 바짝 말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여기서 왕비는 또 꾀를 냈다. 신발이 젖었으니 그녀는 이걸 핑계로 삼아 좀 더 쉴 수 있었다.

만약 그 자식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는 때마침 그에게 신발을 말리라고 심부름시킬 수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았다.

차디찬 시냇물에 복사뼈를 담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즐긴 뒤, 엉덩이를 돌에서 뗐다. 그녀는 시냇물에 서서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무릎 쪽에 꽉 묶었다.

이 시대의 여성은 치마 아래의 방어에 결단코 소홀하지 않았다. 총 세 겹으로 각각 내복 바지, 일반 비단 바지, 치마였다.

왕비는 허리를 굽히고 물을 한 움큼 떠서 얼굴을 씻었다.

‘상쾌하다…….’

그녀는 초승달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만끽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그녀는 전방에 있는 먼 곳의 연못가를 보았다. 허칠안은 어느새 이미 뭍으로 올라간 뒤였다. 이 자식은 그녀를 등지고 연못을 향하고 있었다.

밝고 투명한 물줄기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연못으로 합류했다.

“허칠안!!”

왕비는 멘붕이 와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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