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화. 북경에 도착한 사절단
허칠안의 경우, 왕비는 그를 ‘소년 영웅이자 호색가’라고 생각했다.
소문을 듣자 하니 이 자는 온종일 교방사에 머물며 여러 기녀와 깊이 얽혀 있다고 했다. 소년 영웅이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건 꽤 그럴듯한 특성이라, 종종 사람들의 입에 이런 이야기가 오르내리고는 했다.
하지만 왕비가 가장 두려워하는 자가 바로 호색가였다.
‘너무 예쁜 거 아니야? 아니다. 그녀는 예쁘고 예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고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허칠안의 머릿속에 전생의 그 드립이 떠올랐다.
그는 그 말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왕비는 아름답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허칠안이 벼락 맞은 듯 깜짝 놀란 건 바로 그녀가 풍기는 기이한 매력 때문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남자 내면의 부드러운 곳을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이게 바로 대봉 제일의 미인인가? 허, 재미있는 여인이군.’
허칠안은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모닥불에 던졌고, 경계심이 충만한 왕비에게서도 눈을 뗐다. 그는 불더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팔가락지 덕에 바로 그때 아주머니가 투호를 이긴 거지요? 기운을 차단하고 외모를 바꾸는 효과가 있고요.”
왕비는 다소 경악했고, 자신이 팔가락지를 벗었을 때의 전후 변화를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이 사실을 근거로 그 정보를 추론해 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진북왕비가 대봉 제일의 미인이라는 말을 진작에 들었지만 원래 인정하지는 않았거든요. 지금 아주머니의 본 모습을 보니…… 개탄할 수밖에 없군요.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왕비는 버들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만약 다른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면, 왕비는 그녀가 질투한다고 여기면서도 이치에 맞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니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 제 어장은…… 제가 아는 그 여인들은 하나같이 빼어난 미인입니다. 아름다운 자태가 제각각으로,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는 것 같지요. 왕비마마 역시 똑같이 아리따운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금 잠깐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진 아름다운 용모에서 이 왕비가 극강의 여성적인 매력을 드러냈다는 점은 인정해야 했다.
아주 오래전에 이미 포화한 그일지라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방금 한순간의 충동을 느꼈다. 수컷의 본능적인 충동 말이다.
왕비는 이 말을 듣더니 냉소를 지었다.
이 호색가가 꼬신 여인과 그녀를 어찌 한데 섞어 논할 수 있단 말인가. 교방사의 기녀들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런 윤락 여성과 그녀를 비교하자면 다소 모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왕비는 경성에서 원경제의 장녀와 차녀가 그나마 그녀의 들러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사 낙옥형이 가장 요염할 때는 그녀와 미(美)를 다툴 수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여인이라면, 그녀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거나 외모는 아름다운데 신분이 낮은 경우밖에 없었다.
경성이 산이라면 왕비는 산꼭대기의 독고다이다. 그녀가 슬쩍 보면 기껏해야 회경과 임안의 머리가 보인다. 가끔씩 낙옥형의 얼굴 반쪽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또 한 사람이 있다. 만약 새파랗게 젊은 나이라면, 왕비는 어쩌면 그녀가 자신과 맞붙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로 대봉의 황후다.
허칠안이 꼬신 이 여인들 중에 당연히 회경과 임안 그리고 국사가 포함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니 왕비는 그의 의견에 코웃음을 쳤고, 거만하게 아래턱을 치켜들었다.
“경성을 떠난 지 열흘이 되었습니다. 여종으로 위장하느라 고생스러우셨겠어요. 왕비마마께서 참는 걸 제가 두고 보면서 같이 참느라 힘들었어요.”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뜻이지?”
왕비는 어리둥절했다.
“그날 저녁에 저희가 갑판 위에 있었을 때, 저는 팔가락지를 벗기고 싶었지만, 또 의외의 사태가 발생하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수석 수사관이니 대세를 위해 고려해야 하니까요.”
왕비는 멍한 표정으로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자네 그때부터 내가 왕비임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거짓말이겠지. 그녀는 분명히 아주 잘 위장했고, 저녁에는 종종 자신의 연기에 갈채를 보내며 본인의 여종 역할 연기가 최고조에 달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비께서 왕부에서 금으로 저를 눌러 찍었을 때부터 저는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짜로 왕비마마의 신분을 확신한 건 저희가 관선에서 마주쳤을 때고요. 그때 저는 아주머니가 왕비임을 알았습니다. 배에 타 있던 그 사람은 꼭두각시였을 뿐이고요.”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허칠안은 배를 버리고 육로로 가다가 가짜 왕비를 보고도 마음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녀가 모조품임을 더욱 확신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전에 일기를 쓴 적 있는데 일기에 왕비의 특징 하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내, 내가 이렇게 일찍 까발려졌다니…….’
왕비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녀는 요 며칠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자 땅굴을 파고 자신을 묻어버리고 싶은 수치심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제가 왕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비록 여색을 좋아하지만…… 남자들에게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물어 보세요. 하지만 저는 여태껏 여인에게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가 북행하려면 아직 갈 길이 남았으니 왕비마마께서 잘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허칠안은 그녀를 위로했다.
대봉의 허 은라는 지금껏 여인에게 무엇이든 강요한 적이 없었다. 그녀들이 생각이 트여야만 했다.
‘북상할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겠군…….’
왕비는 약간 망연자실하여 입을 오므린 채 한참을 침울하게 침묵하더니 물었다.
“우리는 언제 사절단과 합류하지?”
소년 은라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에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사절단과 합류할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 * *
이날 밤 용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녘, 첫 번째 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귓가에는 낭랑하고 듣기 좋은 새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모닥불은 이미 꺼지고 그 위에는 큰 솥이 얹혀 있었는데 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왕비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두 번이나 울렸다. 그녀는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모닥불 곁으로 가 솥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4~5인분의 진한 죽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깨끗한 밥그릇과 수저가 있었다.
‘그는 어디서 난 솥으로 죽을 끓인 거지? 아니, 쌀은 어디서 난 거지? 깨끗한 밥그릇과 수저는 어디서 났고?’
왕비는 자신에게 죽 한 그릇을 떠 준 다음 기뻐하며 먹기 시작했다.
걸쭉하면서 맛있고 온도가 딱 좋은 죽이 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왕비는 음미하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어제 토끼 다리 두 개를 먹었더니 위가 조금 편치 않았다. 물을 마시려 한밤중에 일어났더니 그 자식이 물을 다 마셔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 그녀는 갈증이 심하고 배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이 맛 좋은 죽 한 그릇이 산해진미보다 나았다.
이때 발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허칠안이 습지대를 밟으며 돌아왔다. 그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담비 모피 모자를 쓴 상태였다. 방금 목욕한 듯했다.
“저쪽에 작은 강이 있는데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목욕하기 딱 좋아요.”
허칠안은 그녀의 옆에 앉아 쥐엄나무와 돼지털 칫솔을 내던지며 말했다.
“목욕하실 거예요?”
왕비는 작은 두 손으로 밥그릇을 받친 채 허칠안을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더럽지 않아요?”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좌우간 귀중한 몸인 왕비인데 이렇게 위생을 중시하지 않다니.
“자네야말로 더러워.”
왕비는 허칠안의 마음을 몰라주고 비난했다.
그녀는 목욕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이 호색가에게 발붙일 틈을 준단 말인가? 만일 그가 옆에서 몰래 훔쳐보거나 기회를 틈타 함께 목욕하자고 한다면…….
‘그래. 여신은 화장실에 가지 않지. 내 자각이 낮았어…….’
허칠안은 돼지털 칫솔과 쥐엄나무를 도로 가져갔다.
왕비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도 세수와 양치는 해야 해.”
그녀는 입이 짧아서 진한 죽을 한 그릇 먹더니 좀 배부른 듯하여 돼지털 칫솔을 관찰하면서 강가로 걸어갔다.
그녀는 이 칫솔을 허칠안이 사용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그녀가 이를 다 닦고 돌아오자 솥과 그릇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허칠안은 잿더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도를 유심히 보는 중이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가?”
그녀가 물었다.
“삼황현(三黃縣)이요.”
허칠안은 일부러 뜸 들이지 않고 설명했다.
“여긴 초주와 강주와 인접한 현으로 야경꾼이 양성하는 첩자가 있지요. 저는 먼저 그를 찾아가서 정보를 알아본 뒤에 점진적으로 초주로 파고들려 합니다.”
혈도 삼천리 사건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다른 속사정이 있는 듯했다. 허칠안은 이런 배경하에 암암리에 사건을 조사하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지나치게 끌었다가는 자신이나 동료들이 위험에 처하고 만다.
양연이 인솔하는 사절단은 표면적인 허울이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겠다는 거군…….’
왕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저 물건들은 어디로 간 게냐.”
“신경 쓰지 마십시오.”
허칠안은 가차 없이 그녀를 갈궜다.
* * *
두 사람은 계속 길을 갔다. 관도를 피하고 산속의 오솔길이나 밭두렁으로 가거나 직접 산을 넘고 고개를 넘었다.
소심한 여인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산길로 가는 것 역시 장점이 있었다. 가는 길의 풍경이 나쁘지 않았다. 푸른 산과 맑은 물, 흰 구름이 유유했다.
이따금 벼랑 위에 우뚝 서 있는 청송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만발한 들꽃도 볼 수 있었다. 소박하면서도 강인했다.
허칠안은 여자를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으로, 빨리 가지 않고 이따금 멈추어 서곤 했다. 그는 풍경이 수려한 곳을 골라 30분 정도 한가로이 휴식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어장 관리 경험을 얘기했다. 이따금 왕비는 그를 하찮아하며 냉소를 지었다.
* * *
닷새 뒤, 사절단은 북경에 진입했고 원주(宛州)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원주는 작은 주로, 현보다는 크고 군보다는 작았다. 원주는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짓는 데 적합하여 초주의 곡물 창고 중 하나였다.
이곳의 건축 양식은 중원의 경성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규모는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또 근처에는 부두가 없어서 번화한 정도에도 한계가 있었다.
양연이 조정의 공문서를 제시했고, 성문에서 가장 높은 장수인 백부장이 직접 그들을 이끌고 역참으로 데려갔다.
사절단은 막 역참에서 휴식하며 정비하기 시작했다. 양연이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막 앉아 차를 마시려는데 완주 자사(刺史)가 왔다.
지주(知州) 대인은 성이 우(牛)씨인데 체격은 ‘우(牛)’자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염소수염을 길렀으며, 백로가 수 놓인 청포를 입고 있었다. 뒤에는 아관(衙官) 둘을 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