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왕비의 비밀 (2)
찰이목하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왕비가 몸속에 세상에서 보기 드문 영온(靈蘊)을 담고 있다지. 그녀의 영온을 취하면 3품으로 쉽게 들어설 수 있다고 하더군.”
‘그건…….’
허칠안의 눈동자가 수축되었다. 그는 찰이목하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4품 무사를 여전히 사람이라고 칭한다면, 3품은 범속을 벗어났기에 평범한 사람이라고 헤아리면 안 된다. 이건 생명 차원의 차이다.
그렇기에 4품에서 3품에 이르는 무사의 수는 거의 폭락 수준으로 떨어진다. 허칠안이 대봉에 4품 무사가 얼마나 있는지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절대로 적은 숫자는 아니리라.
하지만 3품은 진북왕 한 명뿐이다. 그는 그 속의 어려움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개 왕비가 4품이 3품으로 승직할 수 있게 한다고?’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관선이 매복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안 후, 그녀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여정 내내 전전긍긍하며 안정감을 갖지 못했다. 그동안 보여준 도도함과 확연히 달랐다……. 그녀도 자신의 특별함을 아는 게 분명하다. 오랑캐 손에 들어가면 어떤 운명을 맞을지도 알았겠지.’
곧바로 그는 또 불합리한 점을 떠올렸다.
‘아니야. 만약 왕비가 정말 그렇게 인기가 많다면, 요 몇 년간, 어떻게 무탈하게 지냈지? 4품에서 3품으로 승직하는 유혹은 북방 오랑캐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대봉 경성의 4품 고수라고 해도 아마 이런 유혹을 막아내지 못할 텐데, 양연처럼. 양연 이 미친놈. 분명히 미친 듯이 날뛰겠지……. 하지만 내가 관선에 있을 때 양연에게 물었는데 그는 분명히 왕비의 기묘한 점을 몰랐어……. 음, 만약 내가 진북왕이나 원경제라면 반드시 왕비의비밀을 폭로하지 않을 텐데 북방 오랑캐가 어떻게 알았을까?’
허칠안은 이 의혹을 물었다.
찰이목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서성조가 말했다.”
‘또 술사네…….’
그는 다시 같은 질문을 탕산군과 천랑에게 했고, 얻어낸 결과는 찰이목하와 같았다.
그들은 왕비 몸속에 있는 소위 영온이 그들이 3품을 돌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홍릉에게 이르렀을 때 허칠안의 질문이 보완됐다.
요염한 여인은 멍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주상께서 왕비를 탐내셨기에 내게 가서 죽음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속으로 질투하면서 왕비에게 무슨 특별함이 있는지 물었는데 그가 말하길 왕비 몸속에 영온이 있다고 하면서 내게 시 한 수도 알려 주셨다.”
‘……주상? 저상룡이 그녀는 청안부 우두머리의 애첩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주상이 청안부의 우두머리?’
허칠안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기에 생각을 스쳐 보낸 뒤 물었다.
“무슨 시지?”
요염한 여인은 본능적으로 질투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세상에 나와 놀란 가슴으로 뭇사람을 압도하고, 온화한 용모는 희양(曦陽)을 흠뻑 적셨네. 만인이 국색으로 추앙하니 혼계(魂系) 속세에서 제왕을 건드리네.”
‘이건 부향이 내게 알려줬던 시 아니야? 듣자 하니 왕비가 아직 어렸을 때 어느 사찰의 주지 스님이 매우 놀라 그녀에게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고 했는데……. 이 시는 널리 불리니 확실히 문제없어. 아니면 이 시의 배후에 더 깊은 함의가 있을지도. 다만 대부분 사람이 모를 뿐이지. 경성에 돌아가면 조위 원장한테 물어보러 가야겠다.’
이제 대부분의 수수께끼는 풀렸다.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려면 왕비의 영온이 필요했다. 이는 그가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기 위함이었다. 원경제와 저상룡이 대비한 상대는 대봉 조정 내부의 ‘적’이었다. 누군가가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서성조와 그의 배후의 신비로운 술사 때문에 오랑캐가 이 일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 사전에 매복을 깔아 왕비를 빼앗아 가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매복 공격 고수와 호송 역량의 차이가 현격한 국면에 봉착했다.
‘그럼 다시 말해서 조정 쪽의 적이 지금까지도 나서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 그들은 이미 나섰어…….’
허칠안은 눈이 갑자기 빛나더니 사소한 부분들을 또 떠올렸다.
전 호부시랑 주현평이 세은 사건을 주도했고, 세은 사건에는 신비로운 술사가 개입했다. 이 사건은 허칠안에게 그 신비로운 술사가 암암리에 조당의 일부 사람을 장악했다고 알렸다.
주현평이 바로 그 증거다.
오랑캐가 왕비의 기이함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서성조라는 백의 술사가 그들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조정 내부의 첩자는 분명 북방 오랑캐와 결탁했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 신비로운 술사라는 연결체가 있기 때문이다.
“재수없군. 술사는 전부 존나 약삭빠른 놈들이야. 감정은 암암리에 대책을 세우지 않나, 그 신비로운 술사 역시 남몰래 모의하질 않나. 하나 같이 음험하잖아. 잠깐, 감정은 십중팔구 이 술사의 존재를 알 텐데…….”
허칠안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감정이 이 신비로운 술사와 게임을 하나?!>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 둘의 바둑돌이다. 신수도 포함해서…….’
허칠안은 천천히 숨을 내뱉고, 우선은 감정과 신비로운 술사의 일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일은 장차 대응해야 할 문제지, 지금의 그가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둑돌은 바둑돌만의 장점이 있다. 기사의 증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장차 그에게 충분한 실력이 생기면 이 바둑판을 뒤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는 때를 기다리면서 다른 경로로 양분을 얻어야 한다. 어쨌거나 기사의 증정만을 흡수하니 바둑판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발전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그는 방향을 바꾸어 이번 작전의 주요 목적을 물었다.
“혈도 삼천리는 너희 오랑캐가 벌인 짓인가?”
“혈도 삼천리…….”
찰이목하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별다른 감정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무슨 혈도 삼천리지…….”
‘내가 말을 묻는 방식이 옳지 않나?’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대봉 변방 삼천리를 도살한 게 너희 오랑캐들인가.”
찰이목하는 공허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모른다.”
허칠안은 거칠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천랑에게 같은 문제를 다시 물었고, 같은 답이 나왔다. 이 금목부 우두머리는 이 일에 대해 몰랐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탕산군에게도 물었다.
“대봉 변방 삼천리를 도살한 게 너희 오랑캐 짓인가.”
탕산군은 망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른다.”
‘모른다고? 모른다니!’
허칠안은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고, 눈동자가 다소 흐트러졌다. 그는 몇 초간 멍하니 앉아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상룡, 혈도 삼천리에 대해 아는가?”
멍한 표정의 저상룡은 이 말을 듣더니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위연이 회왕을 모함하려고 한다. 시체 한 구와 영혼으로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더니 은라 허칠안을 변방으로 파견해 죄명을 날조하고 회왕을 모함하려고 한다.”
‘나는 아니야. 나는 그런 적 없어. 헛소리하지 마…….’
허칠안은 속으로 세 차례 부인했다.
‘……이건 저상룡의 생각인가?’
그는 소위 혈도 삼천리가 위 공과 조당 제공의 계략으로, 진북왕을 겨냥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계략을 역이용하여 사절단을 활용해 왕비를 호송했다.
이렇게 보니 원경제 역시 이렇게 생각하여 추세에 맞춰 행동한 것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원경제와 진북왕은 한통속이다.
어쨌거나 같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온 형제 아닌가.
북방 오랑캐와 요족은 혈도 삼천리를 모른다. 그리고 진북왕의 부장군 저상룡은 이것이 위 공과 조당 제공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그 역시 혈도 삼천리와 관련된 일을 모른다.
그럼 도대체 누가 늑대인간인가?
‘씁……. 사건이 갑자기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변해 버렸군.’
허칠안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서 물었다.
“너는 북방으로 돌아가서 나를 어떻게 대처할 작정이었나.”
저상룡은 이 질문에 관해 솔직하게 대답했다.
“감시하거나 연금했겠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너희를 경성으로 내쫓을 계획이었다.”
‘정말이지 간단하고 난폭한 방식이군.’
허칠안은 다시 물었다.
“너는 진북왕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저상룡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포악하고 강하지만 형제들에게 아주 잘하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허칠안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역무도한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진북왕이 반란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리가!”
저상룡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왜지?”
허칠안은 이 부장군의 생각을 좀 듣고 싶었다.
“회왕은 타고난 통솔자이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일을 좋아하지, 조당은 좋아하지 않는다. 회왕은 미치광이 무사다. 전쟁터 외에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수련뿐이지.”
저상룡이 말했다.
‘아, 하긴. 황위(皇位)는 매력적이지만 모두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하진 않지. 만약 회왕이 정말 미치광이 무사라면 황위는 그에게 속박일 뿐이야.’
허칠안은 마지못해 이 의견을 받아들였으나 다 믿지는 않았다. 그는 직접 진북왕과 부딪혀보고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새로운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나는 두 가지 일을 아직 납득하지 못했다. 첫째, 왕비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당시에 원경제는 왜 곁에 남기지 않고 진북왕에게 하사했을까? 둘째, 원경제와 회왕은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난 형제지만, 이 늙은 황제의 의심스러운 성격으로는 진북왕을 아낌없이 신임하기란 불가능하다. 황권이 걸려 있으니 형제는 둘째 치고, 아버지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늙은 황제는 진북왕이 2품으로 승직하는 일을 전력을 다해 지지하는 듯하다. 심지어는 애당초 진북왕에게 왕비를 선물한 게 바로 오늘을 위한 듯하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 허칠안이 추측한 부분은, 왕비의 영온이 무사에게만 효과가 있는데 원경제가 수련하는 건 도문 체계란 점과 관련되어 있었다.
체계가 분명한 이 세계에서 다른 체계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물건은 어느 체계에서는 큰 보약이지만, 다른 체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추측은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 허칠안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저상룡에게 질문을 마치고 시선을 남은 두 영혼으로 옮겼다. 한 명은 비명횡사한 가짜 왕비였고 한 명은 백의 술사였다.
그 백의 술사는 겉보기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멍하고 어눌해 보였으며, 입으로는 줄곧 무언가를 중얼중얼 읊조리고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허칠안이 상대방을 떠보았다.
“서성조…….”
백의 술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그의 질문에 틈을 내어 대답했다.
‘알고 보니 네가 바로 서성조구나. 나는 무슨 배후 BOSS의 이름인 줄 알았잖아…….’
허칠안의 마음속에서 실망감이 솟구쳤다.
이 자식이 망기술을 이용해 신수 승려를 염탐했다가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이는 그의 품계가 높지 않다는 의미였고, 허칠안은 그의 배후에 또 다른 조직이나 고수가 있다는 점을 쉽사리 추정할 수 있었다.
“너는 어떤 조직을 등에 업고 있지?”
“…….”
“너는 누구를 위해 애쓰는 거지?”
“…….”
“네 이름이 뭐냐.”
“서성조…….”
‘이, 이거 완전히 소통할 수가 없잖아.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 말고 다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다니. 이건 뭐 세 살배기 아기야?’
허칠안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