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허칠안의 계획 (2)
형세가 통제에서 벗어났고, 진짜 왕비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그러면 그 역시 도망칠 수 없다. 적은 더 이상 병력을 나눠 뿔뿔이 도망치는 여종들을 추격하여 체포하지 않고 돌아서서 전력으로 그를 포위하여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저상룡은 전방의 밀림 사이로 흰 서리가 한 층 물든 광경을 보았다. 마치 눈이 쌓여 뒤덮인 듯했다.
시선을 집중하여 면밀하게 살펴보니 사실 이는 빈틈없는 거미줄이었다. 이 거미줄은 독성이 없지만, 대신 강력한 점성을 지녔다.
만약 그가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든다면, 몸에 거미줄이 가득 붙을 것이고 행동도 둔해질 것이다.
‘천랑은 고의로 나를 이쪽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진작에 함정을 파 놓았어…….’
문득 저상룡은 왼쪽이 평원이고, 오른쪽이 산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곤 즉시 산맥을 택했다.
그는 관성을 무시한 채 오른쪽으로 꺾어 산속으로 도망치려 했다.
준마에 대응하려면 바로 밀림 속에 숨어 눈을 피하는 방법이 가장 좋았다.
이때 그는 무사의 위험한 직감으로 천랑이 예측한 화살을 포착했고, 생각지도 않은 채 가로로 뛰어 피했다.
띵……. 푹……. 두 가지의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고, 화살 하나가 저상룡의 등에 꽂히면서 부러졌다. 두 번째 화살도 바로 뒤따라 같은 위치에 꽂혔다.
두 번째 화살은 등을 관통했다.
“헉헉…….”
저상룡은 죽지 않았다. 아직 생기가 남았다.
천랑은 우주를 부려 낙하한 뒤, 저상룡의 앞으로 걸어와 그와 눈을 맞추며 담담하게 말했다.
“운이 좋군. 방금 그 화살 두 개는 너를 겨냥하지 않았다. 네가 직접 부딪혔지. 무사의 직감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그건 악의적인 공격만 포착할 수 있고 찰나일 뿐이다. 이 순간에 만약 다른 공격을 받으면 미리 경고할 수가 없지.”
“이 모든 건 네가 설계한 일이냐…….”
저상룡은 달갑지 않은 얼굴로 그를 한사코 노려보고 있었다.
“사냥꾼이 함정을 파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천랑은 조금도 의기양양하지 않고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놀라서 온몸을 떨고 있는 ‘왕비’를 들쳐 매더니 우주 곁으로 돌아가 그녀를 다른 여종들과 함께 두었다.
그러고 나서 우주 옆에 서서 그것의 등을 어루만지며 묵묵히 기다렸다.
일각이 지나자 붉은 치마의 여인, 거인 찰이목하 그리고 인간의 형태로 변한 탕산군이 손을 잡고 왔다. 세 사람 발밑의 기기가 폭발하면서 그들이 허공을 스치고 비행하도록 조정했다.
세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낙하했다.
“보아하니 아주 참담하구먼. 세 사람이 손을 잡고도 양연을 죽이지 못했어?”
천랑이 무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의 시선이 붉은 치마의 여인에게 잠시 머물더니 이어 세 사람의 허리춤을 훑었다. 양연의 머리는 없었다.
“실패했어. 사절단에 골칫덩어리가 있더군.”
홍릉이 침울한 얼굴로 한 마디 설명했다.
“골칫덩어리?”
천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상처는 양연이 찔러서 생겼어. 그리고 저들 둘은 그자한테 얽매였고.”
홍릉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천랑은 탕산군과 찰이목하를 향해 질문의 시선을 던졌다.
“은라가 있었어. 실력 그 자체는 별거 없는데 신체를 보호하는 불문의 금강신공이 있더군. 아마 무승이겠지.”
찰이목하가 말했다.
“그에게 각 체계의 법술이 기록된 유가 서적이 있더군. 아주 성가셔. 우리 둘이 손을 잡고도 제압할 수 없었어.”
검은 장포를 입은 탕산군은 속이 검고, 세로 눈동자는 정 없이 차디찼다.
홍릉이 가짜 왕비의 유모를 젖혀서 날려 버리니 빼어난 얼굴이 드러났다. 이 가짜 왕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눈에는 극도의 공포가 스쳤다. 양 어깨는 덜덜덜 떨렸다.
홍릉은 작은 입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긴 혀를 내밀더니 가짜 왕비의 뺨을 핥고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왕비가 누구인지 알려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매력적이었다. 다만 대봉 표준어가 그다지 표준적이지는 않았다.
“저, 저는 몰라요…….”
가짜 왕비는 덜덜 떨었다. 그녀는 혈색이 다 바랜 아름다운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저는 왕비마마를 섬기는 여종이에요. 진짜, 진짜 왕비마마는 이곳에 계시지 않아요.”
붉은 치마의 여인은 탄식했다.
“이 대답이 나는 아주 불만족스러우니 네게 상으로 뽀뽀해 줄게.”
그녀는 고개를 숙여 가짜 왕비의 입술을 머금고, 수컷 셋 앞에서 그녀와 격렬하게 입 맞추었다.
가짜 왕비는 눈이 갑자기 동그래지고 사지에 극심한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마치 아주 고통스러운 일을 맞닥뜨린 듯했다. 그녀의 뺨이 빠르게 말라붙고, 피와 살이 녹아 피골이 상접한 미라로 변했다.
붉은 치마의 여인은 만족스럽게 긴 한숨을 내쉬었고, 혈색이 좋아졌다.
거미줄에 속박된 여종들은 이 광경을 보더니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어떤 여종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난 듯 떨었고, 어떤 여종은 무너져 펑펑 울었다. 그녀들은 다음 차례가 자신일까 봐 두려웠다.
왕비 역시 그 속에 있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채로 수행 여종의 참담한 죽음을 지켜보았는데, 비통하고 상심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워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결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오랑캐의 손에 들어가면 죽는 것도 어쩌면 사치일지도 몰랐다.
‘나를 구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구나. 북방 강자 네 명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구나. 회왕이 친히 나서지 않는 이상…….’
왕비는 전전긍긍했다.
그녀는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경성을 떠날 때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녀는 진북왕을 곧 만나리라는 생각에 두려웠고, 불안한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날 그녀는 갑판 위에서 은라를 만나면서 별안간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좌우간 여정이 순조로우리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런 감각은 이상했다. 결국에 그녀는 그 자식의 전적이 확실하고 용맹스러워서 안정감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관선이 류석탄에서 매복을 만나면서 걱정이 현실로 바뀌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허칠안을 떠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왕비를 버릴 셈이냐고 물었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연약한 여인이 남자에게 빌붙는 게 어떤 심정인지 깨달았다.
그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이제 왕비는 어떠한 희망도 없었다. 대봉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그녀를 4품 무사 넷의 손아귀에서 구출할 수 있는 자는 손꼽을 정도다. 아니, 아마 진북왕 하나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북방에 있었다.
‘듣자 하니 사절단 쪽은 무탈한 것 같네. 그들이 허칠안을 어찌할 수 없었나 봐. 그, 그가 뜻밖에도 4품 둘을 핍박하여 후퇴하게 하다니…….’
왕비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약간 위로를 얻었다.
“저 부장군, 차라리 장군이 제게 알려주는 편이 낫겠어요. 누가 왕비예요?”
홍릉은 숨이 간들간들한 저상룡을 들고 그를 여종들 앞으로 내던졌다.
저상룡의 시선이 모든 여종을 스쳤고, 그가 입을 벌리고 말했다.
“너희에게 왕비가 여기 있다고 누가 알려주었지? 왕비는 본래부터 경성을 떠나지 않았다고. 너희들은 계략에 빠졌어.”
왕비는 자신의 처지를 보는 듯해 가슴속에서 처량함이 끓어올랐다. 이 부장군이 얄밉긴 하지만, 그는 확실히 회왕에게는 충성스러웠다.
탕산군이 을씨년스럽게 말했다.
“그럼 내가 이 여인들을 전부 먹어 버리겠어.”
“먹어. 빨리 먹어!”
저상룡은 거친 숨을 헐떡이다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비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상룡은 그녀가 죽길 바랐다. 회왕이 그녀를 갖지 못한다면, 그녀는 설령 파괴되더라도 북방 오랑캐의 손에 들어가면 안 됐다.
“그는 거짓말하고 있네.”
목소리는 밀림 속에서 들려왔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백의를 입은 젊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잘 왔어.”
‘거인’ 찰이목하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망기술로 봐 봐. 누가 왕비지?”
“보이지 않네.”
백의 술사가 고개를 저었다.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인가?”
천랑은 어떤 생각에 잠긴 듯했다.
“자네들 머리로 생각해 보게. 왕비는 경국지색인데 어찌 이런 평범한 여인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반드시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를 지녔을 걸세.”
백의 술사가 아래턱을 높이 치켜올렸다. 그는 현장에 있는 오랑캐와 요족 고수들의 IQ가 하찮다는 듯이 그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의 똑똑치 못한 머리로 좀 더 생각해 보게. 그녀들의 의복과 장신구를 발가벗겨 보면 누가 왕비인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좋은 생각이야!”
홍릉이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희 술사들은 하나같이 건방져서 참 얄미워. 하지만 네 생각은 아주 좋네. 쯧쯧, 소문에 듣자 하니 대봉 제일의 미인 왕비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귀한 티가 난다던데. 나도 좀 보고 싶구먼. 그녀의 옷을 다 벗기면 그녀가 어떻게 고귀할 수 있는지, 그녀가 우리 평범한 여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말이야.”
왕비는 절망적인 눈빛을 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때, 먼 곳에서 또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치마의 여인에게 대답했다.
“아마 큐빅과 판유리의 차이겠지?”
‘뭐 하는 놈이야…….’
홍릉, 천랑 등은 고개를 홱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수십 장(丈) 밖, 풀숲 사이에 담비 모피 모자를 쓰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찬 젊은이가 서 있었다.
‘그가 언제 나타났지?’
왕비는 허칠안을 본 순간, 새까맣고 촉촉한 눈동자 속에 갑자기 전대미문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마치 별을 머금은 듯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초조해하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가 뭐 하러 왔지? 죽으려고?’
“알고 보니 너구나.”
놀란 홍릉은 의아해하며 그를 살피다가 사방을 곁눈질하더니 아름답게 말했다.
“양연은? 양연은 어디에 숨었지? 너희 둘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감히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오다니.”
“그는 누구인가.”
천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방금 말한 그 은라야. 수련 경지 자체는 높지 않은데 유가 서적을 등에 업고 있어 아주 성가시더라고.”
탕산군의 세로 눈은 냉담했고, 어조는 음침했다.
미간에 세로 눈이 자라난 천랑이 비웃으며 말했다.
“유가 서적은 좋은 물건이지. 그게 있으면 대적할 때 예상 밖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니.”
거인 찰이목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탕산군이 이 점을 제일 깊게 체득했기에 욕심도 더 생겼다.
홍릉이 손을 들고, 뽀얀 손가락 세 개를 치켜세워 입술로 핥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숨을 세 번 쉬는 사이 그를 해결한다. 그에게 법술을 시전할 기회를 주지 않겠어.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유가 서적을 빼앗아도 나누기에 부족하다고.”
탕산군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목을 베는 사람이 한 쪽을 얻는 거야.”
거인 찰이목하, 천랑, 홍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지.”
탕산군은 음침하게 덧붙였다.
“서적 안에 도문이나 주술사의 귀신 양성 법술이 있는지 모르겠군. 나는 그를 악귀로 길러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괴롭혀야겠어. 그가 영원히 환생할 수 없도록 말이야.”
그 자식이 방금 그를 아주 창피하게 했다.
고수 넷은 마치 사냥감을 보는 듯했다. 아주 진귀하고 마음에 쏙 드는 사냥감이었다.
“자네들 조급해하지 말게. 우선 그의 몸에 무슨 기이함이 있는지 좀 보겠네.”
백의 술사가 웃으며 말했다.
“홀로 여기까지 돌진할 엄두를 냈다는 건 틀림없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일세. 어쩌면 그저 분신일지도 모르고.”
그는 말을 마치고 망기술을 시전하여 허칠안을 자세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