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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49화 (446/712)

449화. 위풍당당한 허 은라 (1)

철컥, 철컥…….

남쪽 숲에서 기척이 전해졌다. 마치 어느 생물에게 배척당한 듯 나무가 통째로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교가 밀림 사이를 뚫고 나왔다. 몸집이 아주 거대했다. 머리 전체가 2층짜리 각루만 했다. 흑 갈기, 흑 비늘, 여러 갈래로 갈라진 뿔.

사람들 눈에 드러난 몸뚱어리만 해도 20여 장(丈) 되었고, 눈짐작으로 봐도 총 몸길이가 백 장(丈)을 넘었다.

흑교가 세로 눈동자로 사람들을 주시했다.

‘이 교룡 너무 큰 거 아니야. 이런 몸뚱어리는 전투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데……. 금련 도사가 고분에 있을 때 얘기한 적 있다. 요족은 부피 노선을 걷지 않는다고……. 교룡이 신마 혈통을 물려받았나? 아, 아마도 북방 요족은 모두 신마 혈통을 지녔기에 같은 신마 혈통을 지닌 북방 오랑캐와 형제자매 사이가 되었는지도 몰라…….’

허칠안은 속으로 추측했다.

꿀꺽…….

그는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듣고는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재빠르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절단의 병사, 호위병 전부 굳은 표정으로 눈에 두려움을 숨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공포보다 더 강한 생물은 생물체의 본능이다.

일반 사람이 이렇게 무서운 교룡을 마주치면,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대소변을 가누지 못하거나 간담이 서늘해져 허겁지겁 도주할 것이다.

‘이 병사들은 그해 산해관전역에 참전하지 않았나……. 음, 진효는 틀림없이 참전했을 거야. 그의 눈에는 공포가 없다…….’

허칠안은 산 위의 ‘흑곰’과 남쪽에 있는 교룡을 살폈다.

만약 4품 두 명뿐이라면, 문제가 크지 않다. 조금 이따가 그들에게 사람 됨됨이, 아니 요괴 됨됨이를 가르치면 된다.

하지만 바로 이때, 교룡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이 생긴 때에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강자가 또 한 명 왔다. 그녀는 붉은 치마를 입고 검은 머리를 붉은 끈으로 높이 묶은 채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를 밟으며 왔다. 그녀가 걸어오는 동안 수를 놓은 붉은색 신발이 보였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발밑의 잡초가 시들었다. 그녀가 지나가는 곳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불모지가 되어 생명이 끊겼다.

이 여인이 등장하자, 본래도 긴장하고 두려워하던 사절단 사람들은 더욱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들이다. 정말 그들이야…….”

저상룡은 마치 눈앞에 닥친 일에 충격보다는 막연함이 더 지배적인 듯 중얼거렸다.

일이 이미 이렇게까지 됐다는 말은 한 가지는 사실이라는 뜻이다. 오랑캐는 왕비가 북경으로 가려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과 장소까지 이미 예측해 냈다는 점이다.

오랑캐는 전혀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굼뜨지 않았다.

그가 망연자실한 부분은, 북방의 오랑캐와 요족이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알고 미리 매복했는지였다.

“4품이 셋……이야?”

대리사승은 침을 삼키고 양쪽 다리를 떨었다.

어사 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심지어 정신이 좀 나갔다. 4품 둘도 막아 내지 못하니 4품 셋이면 사절단의 현재 병력으로는 그들에게 맞서기 어려웠다.

양연조차도 아마 절망적일 것이다.

문관들은 어쨌거나 문관이다. 만약 유가 학원의 대유라면, 지금 사절단은 어떻게 반격하거나 혹은 어떻게 생포할지 고민할 것이다.

“저 장군, 그들은 누구입니까?”

허칠안이 목소리를 낮추고 소리쳤다.

그는 저상룡에게 정보를 공유하라고 일깨웠다. 북방 오랑캐나 요족 사람이라면, 저상룡은 틀림없이 이 4품 고수들의 정보를 알 것이다.

저상룡은 낯빛이 안 좋아졌고, 목구멍이 건조해졌다. 그는 설령 전쟁을 수없이 치른 장수일지라도 눈앞의 상황을 마주하면 아무런 승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셔 감정을 가라앉힌 뒤 씁쓸하게 말했다.

“흑교는 탕산군이라고 하네. 교부의 세 우두머리 중 하나로 물에서 움직이는데 능하지. 산 위의 그자는 오랑캐 흑수부(黑水部)의 우두머리 찰이목하(扎爾木哈)네. 흑수부는 고족의 역고부에 버금갈 정도로 힘이 세기로 유명하지. 이 여인은 한 마리 사요(蛇妖)로 홍릉(紅菱)이라고 하네. 그녀와 부족 사람들은 오랑캐 청안부(靑顔部)에 의존하는데 홍릉 그 자신은 청안부 우두머리의 애첩이야.”

저상룡은 잠시 멈칫하더니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들 모두 4품일세.”

‘정말 4품이라니…….’

대리사승은 몸이 휘청거려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할 뻔했다.

군중 속, 평범하기 그지없는 왕비는 고개를 들고 재빨리 4품 고수 세 명을 훑어본 뒤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두려움에 연약한 몸을 떨었다.

그녀는 안정감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담도 작아서 평소에 귀신만 생각하면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껏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 처하는 날이 있으리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북방 오랑캐는 전부 야만적인 야인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바로 대봉 변방 약탈이랬다. 그들은 남자들은 잔인하게 먹어 치우고, 여인들은 한 차례 모욕한 뒤 역시 먹어 버린다고 했다.

오랑캐 손아귀에 들어가면 그 끝이 어떨지는 아주 뻔했다.

* * *

오랑캐와 요족의 강자 셋은 저상룡이 하는 말을 조용히 다 들었다. 그런 뒤 홍릉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깔깔깔 애교 섞인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잉? 회왕 수하의 저 부장군 아닌가? 3년 전에 곡양하(曲瀁河)에서 싸웠었잖아. 내가 장군을 불철주야 그리워했다고.”

저상룡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패군의 장수는 말할 자격이 없지.”

“그래서 오늘 제가 장군을 또 찾아와 전세의 인연을 잇는 거지요.”

그녀는 목소리에는 교태가 가득하고, 요염한 얼굴은 시종일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녀는 수줍은 매력을 지녔다.

저상룡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강한 적과 맞닥뜨린 듯 칼자루를 꽉 움켜쥔 채 몸을 팽팽히 조였다.

요염한 여인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사절단을 훑어보다가 머리에 유모를 쓴 왕비를 보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사람들을 다 관찰한 뒤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실속 있는 무리군. 양연 외에도 저 장군께서도 함께 있다니요. 얌전히 왕비를 내놓으시면 죽기 전에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허칠안의 금강신공은 시전하기 전이라 몸 표면에서 신광이 빛나지 않았다.

“나는 양연을 원하니 누구도 뺏어 가지 말게. 다른 사람은 자네들에게 넘겨주겠어. 죽이든 먹든 포로로 잡든 알아서 하게.”

머리 꼭대기 산림에서 한 장(丈) 높이의 거인이 입을 떼고 말했다.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너희는 어떻게 사절단의 꼬리를 잡았느냐?”

이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탕산군은 상대방을 곁눈질하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찰이목하는 산림의 높은 곳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터라, 그의 눈에는 양연밖에 보이지 않았다.

붉은 치마를 입고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홍릉만이 질문한 자가 준수한 외모의 은라임을 보고 살짝 흥미가 생겼다.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맞혀 봐.”

‘참 경솔하군…….’

허칠안은 흑금장도를 꽉 쥐었다. 그는 상대의 경멸과 조롱에 분노한 게 아니었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는 슬며시 종이에 불을 붙였다.

‘옛말에 여인의 옷이 붉으면 음탕하거나 방탕한 것이고, 남자의 옷이 희면 여성스럽거나 게이라고 했는데……. 저상룡이 밝힌 정보에 따르면 이 4품 셋은 추적에 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뿐이다. 우리 중에 반역자가 나왔거나 상대방 중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동료가 있다. 잉? 근처에 다른 강자의 기운이 없는데. 이상하다…….’

허칠안은 마음이 동요하였고,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희 중에 도움을 주는 술사가 있다고 짐작했다.”

붉은 치마의 여인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눈빛이 홱 날카로워지더니 다시 그를 살피면서 물었다.

“네가 어떻게 알았지?”

탕산군과 찰이목하는 좀 의외라는 듯 곁눈질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역시 술사였군……. 이 여인도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모양이야.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었는데…….’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으나 가슴은 철렁했다.

그는 ‘술사’라는 두 글자에 거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겼다.

그를 계획적으로 안배한 감정과 그의 몸속에 기운을 주입했다고 의심되는 신비로운 술사, 이 모든 것들이 허칠안의 마음의 병이 되었다.

‘이번 매복을 암암리에 조종하는 술사가 있다? 내 몸속에 기운을 주입한 그 술사는 아니겠지……. 음, 만약 그라면 목표는 아마 왕비가 아니라 나일 것이다. 아니다. 그는 내 몸속의 신수 승려를 꺼리니 당분간 나한테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운주 사건 때 스쳐 지나가면서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왕비고, 신비로운 술사가 왕비를 꾀한다. 나는 그저 그 속에 잘못 끼었을 뿐이다.’

허칠안이 대답하지 않자 여인은 좀 화가 난 듯했다. 그녀는 입가의 미소에 잔인함을 담아 말했다.

“됐어, 그래봤자 은라인데. 이따가 너를 죽일 때 네게는 숨을 남겨 주지.”

그녀는 말을 마친 뒤 허칠안을 보지 않고, 사절단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탕산군와 찰이목하를 바라보면서 우아하게 말했다.

“양연은 너희들에게 넘겨줄 테니 다른 사람과 저상룡은 내게 넘겨줘.”

찰이목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양연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

탕산군은 머리를 쳐들더니 허공을 향해 귀청이 떨어질 만큼 울부짖었다.

여러 사람의 앞쪽 지면이 갑자기 무너지고, 갈라졌다. 혼탁한 지하 암류가 땅을 뚫고 나오더니 탁류가 회전하면서 하늘로 솟구쳐 거대한 용오름을 형성했다.

용오름은 모래흙과 돌덩어리를 휩쓸면서 사절단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개막하자마자 광역 스킬이라니…….’

허칠안은 당황하지 않고 유가의 마법서를 입에 물었다.

탕탕탕!

양연은 은색 창을 질질 끌면서 미친 듯이 내달려 용오름을 맞이하더니 별안간 찔렀다. 창끝이 회전하는 탁류를 쑤셨고 그는 나지막하게 소리치더니 힘껏 뽑아냈다.

용오름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하늘에서 탁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양연이 용오름을 타파하는 찰나, 탕산군이 몸을 뒤틀며 백 장(丈) 길이에 달하는 방대한 교룡 몸뚱어리로 적진으로 돌격했다. 전쟁터에서 이런 돌격은 기마병 천 명을 손쉽게 전멸시킬 수 있었다.

다른 한 편, 수풀이 요란하게 뒤흔들리더니 한 장(丈) 높이의 거인이 몸을 날려 뛰어내렸고 양연에게로 달려들었다.

“깔깔깔…….”

교태 어린 웃음소리 사이로 붉은 치마 여인의 손에서 단도 두 자루가 나타났는데, 귀신같은 형태였다. 목표는 역시 양연이었다.

‘방금 한 말은 구실이고 고의적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양연이다. 그들은 가장 빠른 속도로 양연을 때려죽일 계획이다…….’

사람들은 분명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이유로 강렬한 공포와 전율을 느꼈다.

“활을 쏘아라!”

진효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금군 백 명이 군노를 벗었다. 일부는 탕산군을 향해 사격하고, 일부는 뛰어든 ‘대형 흑곰’을 조준했다.

팅팅팅……. 두 명의 4품 강자 몸에 부딪힌 화살은 잇따라 부러졌다. 그들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때, 군중 속에서 저상룡이 갑자기 유모를 쓴 왕비를 어깨에 메고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저상룡이 인솔하는 시위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른 여종들을 짊어지고 사절단 사람들을 내팽개친 채 줄행랑을 쳤다.

그들의 도주 경로는 각기 달랐기에 소리를 지르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는 저상룡이 진작에 세운 후수였다. 그는 일단 막을 수 없는 위기에 맞닥뜨리면 시위들과 여종들을 데리고 도망가기로 했다. 그러면 자신을 쫓아올 테니, 상대방이 손에 넣는 건 가짜 왕비가 된다.

진짜 왕비는 여종 십여 명 사이에 숨어 있다. 도주 경로가 다르기에 그들은 하나하나 가려낼 수밖에 없다. 진짜 왕비의 운이 너무 나쁘지만 않다면, 이 틈을 타 아주 멀리 도망칠 수 있으리라.

그때 가서 변장하고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의 도움을 빌리면 성공적으로 탈출할 확률이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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