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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48화 (445/712)

448화. 도망 계획

허칠안은 단서들이 뒤죽박죽이라 갈피를 잡지 못했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귓가에 저상룡과 문관 셋의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허칠안은 미간을 문지르곤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한테는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제 도끼에 제 발등이 찍히는 것이다. 오랑캐와 요족의 고수를 주도적으로 끌어들여 그들한테서 정보를 얻는 셈이지.’

허칠안은 생각할수록 이 계획이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는 4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심지어는 4품을 초월하는 금강불패가 있다. 4품과 일대일로 붙으면 싸워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상대 역시 그를 죽이기는 어려우리라.

어쨌거나 무사는 원신을 겨냥하여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도문 4품이라면 허칠안은 두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가 버릴 것이다. 그의 원신 단계는 아직 6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의 원신이 대부분의 6품보다 강하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해도 도문 4품 강자의 적수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둘째, 그에게는 유가가 준 마법서가 있다. 게임으로 치자면 희귀 기술 족자나 다름없다.

‘내가 비록 등급이 낮지만, 나는 현질할 거거든.’

그는 천인 간의 전쟁에서 바로 유가 마법서의 효과 덕에 원신의 약점을 보완하였고, 이로써 이묘진과 초원진을 격파했더랬다.

마지막으로 그의 몸속에는 신수 승려도 있다. 이건 그의 가장 큰 저력이다.

‘하지만 신수 승려의 존재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설령 그를 부른다고 해도 팀원이 없는 상황이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 멸구할 수밖에 없다……. 만약 단지 왕비를 구하기 위함이라면, 이렇게 필사적일 필요까지는 없는데…….’

허칠안은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아래턱을 어루만졌다.

왕비 구출은 그저 겸사겸사일 뿐, 그의 목적은 정보 획득이다.

“북방은 진북왕의 근거지니 바로 간다면 뜻하지 않게 그들의 감시 범위에 비집고 들어가는 꼴이다. 모든 행동이 상대방의 코앞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나는 사건을 조사하지 않거나 진북왕에게 죽기 살기로 덤벼야 한다.”

논리적이고 주도면밀한 추리 고수는 이렇게 수동적인 형세에 접어들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북방에 도착하기 전에 더 많은 단서와 정보를 얻어야 한다. 이래야만 계획을 재정비하고 조사를 펼칠 수 있다.

이때 말다툼 소리가 끊겼다.

저상룡은 바닥에 지도를 펼치고 나지막이 말했다.

“양 금라, 오는 길에 미행한 자가 있었는가?”

양연은 고개를 저었다.

명색이 전봉급의 4품으로서 그를 미행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무사의 직감은 장식이 아니다.

저상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그럼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어.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온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없네. 우리는 서둘러 강주성에 도착하여 강주 포정사와 강주 도지휘사에게 도움을 청하야 하네. 그들에게 위소의 병력을 소집해 방어해 달라고 청해야 하네.”

사람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주성은 주성(主城)이었다. 병력, 고수 모두 부족함이 없기에 강주성에 진입하면 안전해진다. 만약 오랑캐와 요족의 4품이 감히 성안으로 쳐들어오면, 필히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성공적으로 강주 주성에 도착하기만 하면 우리는 조정에 원조를 청하거나 직접 강주 대군을 배치하여 왕비를 북쪽으로 호송할 수 있네.”

저상룡이 말했다.

“일리 있군.”

대리사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행군 경로를 정해야 하네.”

저상룡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주에 도달하는 가장 가까운 길은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관도일세.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네. 하지만 이 길 역시 가장 위험하지. 따라서 우리는 길을 돌아가야 하네.”

진 포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반박하며 말했다.

“우회해도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궤짝과 부녀자도 있으니 근본적으로 빨리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움직임이 빠른 고수이니 조만간 바짝 뒤를 따라붙을 겁니다.”

저상룡은 웃더니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차, 말 그리고 궤짝 일부를 버려야 하네. 기동성이 좋아져도 관도로 갈 수는 없으니 그들과 유격전을 벌여야 하지.”

이는 아주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고수지만, 적군의 중심에 침입하여 매복하려면 군대를 거느릴 수가 없다. 이는 일손 부족으로 이어지므로 대규모의 수색과 체포를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이제야 저상룡은 경험이 풍부한 장수의 소양을 제대로 드러냈다.

군대를 출동시켜 전쟁을 치르는 중에 이렇게 도망치는 상황은 결코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허칠안을 쳐다봤다.

‘그래도 능력이 있네. 진북왕의 부장군 위치에 오를 수 있었으니 평범한 자식일 리는 없지…….’

허칠안 역시 이 안배가 현재로서는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없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상룡은 득의양양하게 웃더니 허 수석 수사관을 바라보는 눈빛에 도발과 경멸을 내비쳤다. 마치 그에게 이렇게 알려 주는 듯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역시 너무 물렀어. 좀 배워라.>

즉시 모든 관원들이 천막을 걸어 나가 병마를 한데 모으더니 밤샘 행군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다.

저상룡은 여종들을 불러 깨우고는 왕비가 있는 마차 옆에 멈춰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왕비마마, 일이 생겼습니다.”

몇 초 후, 마차 안에서 여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저상룡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수로에서 선박이 매복 공격을 받아 이미 침몰했습니다. 저희는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적이 추격해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여종들은 눈을 비비며 마차를 나서던 중 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종들 틈에 섞여 있던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머리를 움츠렸다. 그녀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상룡은 천천히 말했다.

“추격을 피하기 위해 산길로 가기로 했으니 왕비마마께서는 속히 준비하십시오. 밤새 벗어날 겁니다.”

아주머니는 황급히 마차로 돌아가 짐과 건량을 정리했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무섭게도 강했다.

모든 여종들은 뒤이어 반응이 왔고, 각자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사절단 대오는 궤짝 일부를 버리고 건량과 맑은 물을 챙긴 뒤, 관도를 떠나 논두렁과 평원을 지나 산마루를 넘어 고달픈 여행길을 시작했다.

양연은 대오를 거느리고 앞에서 걸었고, 허칠안은 금군을 데리고 맨 뒤에서 행군했다.

아침 햇살이 내리쬘 때, 대오는 산기슭 밑에서 잠시 쉬면서 음식을 보충하고 체력을 회복했다.

허칠안은 맛이 없는 화덕 만두를 먹으면서 물을 마셨다. 암말을 데리고 함께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으면 그는 애지중지하는 암말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부드러운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와서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완전히 지친 얼굴의 아주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좀 머뭇거리더니, 허칠안이 자신을 쳐다보자 바로 이를 악물고 성큼성큼 걸어가 그 옆에 앉아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 순조롭게 북경에 도착할 수 있나?”

허칠안이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왕부의 여종이니 이 문제는 저상룡한테 가서 물어보셔야죠.”

‘나는 그를 믿지 못하거든…….’

그녀는 물 주전자를 끌어안고 다소 걱정스러운 눈길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좀 무섭네.”

그녀는 아주 무서웠기에 무의식적으로 허칠안을 찾아왔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 이 사절단에서 진정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금라 양연도 아니고 진북왕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는 저상룡도 아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오는 내내 끊임없이 그녀를 농락한 소년 야경꾼이자, 두법에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둔 그 은라이자, 위수에서 두 손으로 하늘과 사람을 굴복시킨 그 사내였다.

“죽기 두려워요?”

허칠안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저상룡의 계획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저희는 무사히 강주에 도착할 수 있어요. 강주에 도착하면 안전해집니다. 게다가 아주머니는 일개 여종인데 무서울 이유가 어디 있나요? 기회를 보다가 심상치 않으면 도망가면 그만입니다. 그자는 버젓한 4품 고수인데 아주머니를 신경이나 쓰겠어요?”

허칠안은 그녀의 소심함을 비웃었다.

“나는 내가 강주까지 걸어가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그녀는 탄식했다.

밤을 새워 길을 재촉한 지 고작 두 시진 남짓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두 다리에 힘이 빠지고 길을 갈 수 없었다.

“제가 업어 드려요?”

허칠안이 제안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만약 추격병이 우리를 가로막으면, 자네는…….”

그녀는 말을 바로잡았다.

“야경꾼들이 왕비마마를 보호할 건가?”

이 문제를 질문할 때, 그녀의 눈동자에 마치 별을 머금은 듯 희망의 빛이 스쳤다.

허칠안이 긍정적인 답을 주기만 하면, 그녀의 마음이 평온해질 것만 같았다.

“당연히 아니지요.”

허칠안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희의 임무는 사건 조사지, 왕비마마 보호가 아닙니다. 왕비마마의 사활은 저희와 무관하지요. 만약 적이 너무 강하면 저희는 스스로 도망치면 됩니다. 어쨌든 그들의 목표는 왕비마마니까요.”

‘그렇군…….’

그녀 눈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묵묵히 일어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무릎을 감싸 안았다.

그녀는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고독하고 가련해 보였다.

* * *

일각 후, 저상룡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계속해서 나아간다!”

훈련이 잘된 금군과 시위는 말없이 일어서서 행낭을 메고 무기를 잘 갖춘 채 출발하길 기다렸다.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허칠안은 솜털이 갑자기 곤두섰다. 다음 순간, 머릿속에 자연스레 화면이 떠올랐다. 머리 꼭대기의 산림 속에서 거대한 바위가 쿵 하고 떨어졌다.

거의 동시에 전방에 있던 양연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뒤쪽의 산을 주시했다.

후…….

두 장(丈) 높이가 족히 되는 거대한 돌이 산에서 대오 핵심으로 떨어졌다.

사절단의 다른 무사들은 한 박자 느렸다. 그들은 거대한 돌이 떨어지자 그제야 감지했다. 그리고 일반 병사와 여종들은 이 순간에도 아직 반응이 오지 않았다.

“모두 땅에 엎드려!”

저상룡이 고함쳤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여종에게 달려들려다가 억지로 참아 내더니 돌아서서 ‘정품’ 왕비를 보호하러 갔다.

곧 거대한 바위가 쿵 하고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 소리를 동반했다.

양연은 손을 뒤로 뻗어 등에 메고 있던 은색 창을 잡았다. 창끝이 가볍게 떨리더니 붉은 술이 피었다.

‘철컥’하는 소리 사이로, 사절단 대오의 절반을 잘게 다진 고기로 으깨기에 충분한 그 거대한 바위가 자잘한 작은 돌멩이로 산산조각 나더니 후두두 떨어졌다.

부서진 돌이 병사들의 갑옷, 투구 위로 떨어졌으나 급소를 찌르지는 못했다. 여종들은 방어할 장비가 없었으므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고, 시위들이 부서진 돌을 대신 막아 주었다.

탐색 공격이 한 차례 지나간 후, 잠시 고요해졌다. 상대는 서둘러 나서지 않았다.

허칠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높은 곳의 밀림 사이로 한 장(丈) 높이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나무보다도 크고, 온몸에는 검은 털이 빽빽하게 자라난 채였다.

몸은 근육이 얽힌 게 아니라 두꺼운 지방으로 층층이 덮여 있었다. 이목구비는 거칠고 얼굴은 검은 털로 가득했다. 입술을 핥은 뒤 사절단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피에 굶주린 살기가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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