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왕비가 뒤따르는 이유를 분석하다
‘이 말을 기다렸지…….’
허칠안이 탁자에 앉아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왕비마마도 오셨지요?”
그녀는 ‘왕비’ 두 글자를 듣자 눈썹이 살짝 떨렸으나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왕비마마께서는 왜 대오에 계십니까? 그리고 왜 수석 수사관인 저는 사전에 몰랐고요?”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자네는 내가 알 거라 생각하는가?”
아주머니는 언짢아하며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재촉했다.
“별일 없으면 어서 꺼지게. 나는 잘 거니까.”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섰다.
그녀는 밉살스러운 사내놈이 떠나자 다시 문을 닫았다. 본래 그녀는 음식물을 찬합에 도로 담을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마치 무형의 손처럼 그녀의 위를 움켜쥐었다.
이 냄새는 바로 그 생김새가 못난 탕에서 풍겼다.
‘냄새는 괜찮은 것 같네…….’
그녀는 탁자에 앉아서 자기 국자로 한 숟가락 떠서 가볍게 홀짝거렸다.
시큼함에 매운맛이 곁들여져 순식간에 맛 봉오리를 열었고, 그녀의 식욕을 건드렸다. 꼬르륵, 목구멍이 탕을 저절로 삼키더니 잇따라 여러 모금을 마셨다.
그녀는 탕을 다 마신 후 드디어 배가 고파졌다. 그녀가 다시 탁자 위의 음식을 보니 먹음직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 *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저상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문 잠그지 않았으니 알아서 들어오게.”
아주머니는 차가우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상룡이 문을 밀고 들어오니, 왕비는 탁자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밥을 먹는 중이었다.
저 부장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마마가 그와 무슨 상관입니까. 고개 끄덕이고 고개 젓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는 이 음식들을 허칠안이 막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왕비는 고개를 저었다.
저상룡의 눈빛이 좀 예리해졌다.
“관계가 없는데 그가 마마께 점심밥을 가져다주겠습니까?”
왕비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저상룡은 그녀를 잠시 주시하더니 마지못해 이 대답을 받아들였다. 그는 왕비의 매력이 실로 너무 대단하여 사내들이 참다못해 접근하여 알려고 함에 감개무량했다.
“왕비마마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관계없는 사람이랑 지나치게 왕래하시면 안 됩니다.”
그는 전음으로 한 마디로 경고했고, 방에서 물러났다.
그는 모든 과정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배 위에는 금라 양연뿐만 아니라 다른 무사도 있었다. 무사는 눈과 귀가 예민해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 * *
“아무것도 모르는 것 역시 일종의 정보지. 내 짐작이 맞았어. 진북왕비가 북경으로 가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듯하군……. 은밀히 출행하는데 사전에 수석 수사관인 나조차도 몰랐다. 게다가 거느리는 시위 수가 정상적이지 않게 너무 적어. 이건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음, 사절단을 따라 출행하는 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호위 역량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허칠안은 방으로 돌아와 탁자에 앉아 눈썹을 찌푸렸다.
“왜 왕비가 북쪽으로 가는데 이렇게 신비스러워야 하지? 천하제일 미인이라는 칭호가 지나치게 이목을 끌어서? 그건 확실히 아니다. 대봉에서 누가 감히 진북왕의 정부인을 노리겠는가? 설령 방탕하고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나라도 이 방면으로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행위 분석 의도에 따르면, 원경제는 왕비가 경성을 떠난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해. 하지만 이건 과학적이지 않다. 일개 왕비가 부군을 만나러 가는데 뭐 숨길 게 있단 말인가? 이 왕비가 단순하지 않아 어떠한 기밀에 연관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이렇게 보아하니 비밀리에 사절단을 따라 출행하는 이유는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어떠한 기밀 계획에 연관되어 비밀을 지켜야 한다. 둘째, 위험이 따를 수 있으니 사절단의 역량으로 호위해야 한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동자가 약간 수축했고, 이에 따라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허칠안은 이 추측이 의외이면서도 뜻밖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진북왕비가 대봉의 제일 미인인 줄 알았으나, 본질적으로 그녀는 일개 부녀자이기에 무슨 비밀 사건에 연루돼서는 안 됐다는 점이 의외였다.
다만 그는 저상룡이 부녀자를 데리고 있음을 눈치챘고, 양연으로부터 왕비의 수행도 알아냈다. 그 뒤 그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더랬다.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대응 조치를 취해야 해. 신중함이 우선이니까……. 음, 지금은 급하지 않아. 내 일로도 바빠죽겠다고…….”
허칠안은 포대를 들고 황유옥 여덟 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뒤 미리 준비한 조각칼을 꺼내 조각하기 시작했다.
* * *
아주머니는 배불리 먹은 뒤, 침상에 누워 잠시 쉬면서 선잠을 자다가 이내 부두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외침에 놀라서 깼다.
그녀는 좀 화가 나 베개를 몇 번 쳤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탁자로 걸어가 식기를 정리하고 찬합에 도로 담아 방을 나섰다.
그녀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3층에 도착했다. 그런 뒤 그녀는 복도를 따라가다가 양쪽 방을 마주하고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야경꾼과 삼사 관원이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어느 방에 묵는지 잘 알지 못했으나 다행히 이내 바라는 대로 호색가 허칠안의 방을 찾았다.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사내는 운주에서 돌아온 후에 외모가 유달리 정교해졌다. 그는 탁자에 앉아 황유옥을 조각하는 중이었다.
똑똑.
그녀가 방문을 두드리자 그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뚱하게 말했다.
“찬합을 돌려주려고. 고, 고맙네…….”
그녀는 감사를 표현하는 일에 능숙하지 않은 듯 말을 할 때 우물쭈물했다.
“문 뒤에 두세요.”
허칠안은 담담하게 대꾸하고 고개를 숙여 작업을 계속했다.
아주머니는 방에 들어가 찬합을 가볍게 내려놓고 탁자 위를 보았다. 거기에는 잘 다듬어진 조각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각각 소검, 옥 만두 두 개, 팔각형의 부적, 도장, 옥패였다.
그녀는 흥미가 생겨 물었다.
“자네 이 물건을 조각하여 뭐 하려고? 칼솜씨가 아주 형편없구먼.”
그녀는 말을 마치고 혼자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여인에게 선물하려고요.”
허칠안이 말했다.
‘여인에게 선물한다라……. 호색한.’
아주머니는 탁자 위의 물건들을 쳐다보면서 웃음이 점점 사라졌다.
“저는 경성을 떠날 때마다 저를 좋아하는 여인에게 현지 특산품과 서신 한 통을 부치곤 합니다. 이러면 은자를 많이 쓰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의 환심을 사 저를 더 좋아하게 할 수 있거든요.”
허칠안은 자신의 어장 관리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주머니는 화가 났다. 그녀가 허칠안을 보는 눈빛이 마치 인간쓰레기를 보는 듯했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거지 같은 놈이군.”
허칠안이 공격하며 말했다.
“애석하게도 아주머니 몫은 없어요.”
아주머니는 비웃으며 말했다.
“누가 아쉬워한다고.”
그녀는 씩씩거리며 나갔다.
허칠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옥을 다 조각한 뒤 그것들에게 영혼을 부여했다.
그는 먼저 ‘소검’을 지서 파편에 넣었다. 이건 이묘진에게 선물할 물건이기에 부칠 필요가 없었다. 허칠안이 그녀를 북방에서 만나면 줄 예정이었다.
허칠안은 미리 준비한 편지지를 넓게 펼치고 붓과 먹을 챙겨 온 뒤 붓을 들고 글을 썼다.
<경성을 떠난 지 닷새가 지나 이미 황유군에 도착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황유옥이라는 특산품이 있는데 이 옥은 재질이 반질반질하여 손에 닿으면 곱더군요. 제가 아주 좋아해서 반제품을 산 뒤 마마를 위해 도장 하나를 조각했습니다. 도장에는 ‘꽃을 따고 웃으니 저녁노을이 온 하늘에 가득하네’라고 새겼습니다.>
이건 회경에게 쓴 것으로 그는 도장을 같이 서신 봉투에 집어넣었다.
두 번째 서신은 임안에게 썼다.
<경성을 떠난 지 닷새가 지나 이미 황유군에 도착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황유옥이라는 특산품이 있는데 이 옥은 재질이 반질반질하여 손에 닿으면 곱더군요. 제가 아주 좋아해서 반제품을 산 뒤 마마를 위해 도장 하나를 조각했습니다. 저는 속물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산은 산이요, 바다는 바다요, 꽃은 꽃이지요. 유독 마마를 만나면 머릿속에는 삼생삼세(三生三世) 네 글자뿐입니다.>
그는 옥패를 서신 봉투에 넣었다.
그는 세 번째 서신과 네 번째 서신은 판에 박은 듯한 내용으로 채미와 리나에게 썼다.
<경성을 떠난 지 닷새가 지나 이미 황유군에 도착했소…….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수천만 가지요. 듣자 하니 도달할 수 없는 어느 먼 나라에는 ‘호건인(鬍建人)’이라고 하는 세상 별미가 있다고 하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그대를 데리고 아득히 먼 곳을 샅샅이 찾아다니고 싶소.>
그는 옥으로 다듬은 만두를 서신 봉투에 쑤셔 넣었다.
다섯 번째 서신은 종리에게 썼다.
<경성을 떠난 지 닷새가 지나 이미 황유군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경성에 없는 나날 동안 사천감 지하에 잘 계셔야 합니다. 고된 날은 결국에 지나가리라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고생스럽다고 해도 모든 고난 속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앞으로 저의 공주가 되면 행복만 가득할 거예요.>
그는 팔각형의 부적을 넣었다.
그러고선 영월과 부향의 서신 및 그들의 물건을 준비했다.
여섯 번째 서신은 영월에게 썼다.
<경성을 떠난 지 닷새가 지나 이미 황유군에 도착했구나……. 오라버니는 평안한 여정 중이란다. 다만 집이 그리울 뿐이구나. 집안의 부드럽고 정다운 여동생들이 보고 싶어. 큰 오라버니가 이번에 돌아올 때 네게 장신구를 해 주마. 오라버니 마음속에 영월 동생이 가장 특별해. 아무도 대체할 수 없단다.>
일곱 번째 서신은 부향에게 썼다.
<인생에서 지기 한 명만 얻으면 여한이 없다는 어느 대유가 한 말을 잊지 말게. 부향 낭자는 내 홍안지기(紅顔知己)일세. 우리의 우정이 황금보다도 더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라오…….>
‘지금 우리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주시오!’
모든 물고기에게는 다 다른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는 관심을 충분히 드러내서 그녀들이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절대로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어장남의 자아 수양이다.
허칠안은 이 모든 걸 마친 뒤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 피로한 허리를 펴고 탁자 위의 서신 일곱 통을 쳐다보며 진심으로 만족했다.
그는 지난번에 청주 국경에서도 편지 일곱 통을 쓴 적이 있다. 그중 두 통은 숙부와 숙모로 머릿수를 채웠더랬다. 하지만 지금 여자들만 해도 서신 일곱 통에 이묘진을 더하면 여덟 통이다.
허칠안은 자신의 어장관리 사업이 발전함에 흐뭇했다.
* * *
허칠안은 적절하게 물품을 잘 보관하고 방을 나섰다. 그는 먼저 양연의 방에 가서 나지막이 말했다.
“대장, 사람들과 상의할 일이 있는데 대장 있는 곳에서 의논하면 어떤지요?”
양연은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 토납하던 중이었는데 이 말을 듣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수련을 방해받아 본능적으로 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가능하네.”
허칠안은 즉시 명령하여 한 은라에게 저상룡과 삼사 관원을 방으로 모셔 오라고 분부했다.
그가 몇 분간 탁자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삼사 관원과 저상룡이 연이어 들어왔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허칠안을 그다지 곱게 보지 않았고, 차가운 얼굴로 말을 하지 않았다.
대강대강이 습관인 두 어사 중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허 대인이 우리를 무슨 일로 불렀는가?”
“노선을 조정하겠습니다. 육로로 바꾸겠습니다.”
그들은 허칠안의 말에 놀랐다. 그는 초반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