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칼을 뽑다
저상룡은 두 팔이 욱신욱신하고, 경맥의 묵은 상처가 건드려지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허칠안을 노려보았다.
‘그가 감히 손을 대? 그는 정말 일개 은라가 손에 실권을 쥔 장수이자 진북왕 부장군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장군!”
저상룡의 호위대가 벌컥 화를 내더니 질서정연하게 몰려와서는 손에 군장을 쥐고 허칠안을 겨냥했다.
저상룡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그들은 시건방진 이 자식을 제압하러 갈 셈이었다.
“허 대인!”
금군 백 명이 동시에 몰려와서 허칠안을 빼곡하게 둘러쌌고, 스산한 표정으로 저상룡 호위대와 대치했다.
그들의 입장은 아주 분명했다. 비록 금군과 은라는 다른 관아로 서로 간섭하지 않지만, 허칠안은 지금 수석 수사관이자 사절단의 최고 우두머리였다.
게다가 그가 방금 한 말만으로도 그를 위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
“모두 멈추게!”
고함 소리가 선실에서 들려왔다. 소식을 듣고 온 몇몇 관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도찰원 어사 둘, 형부의 총포두, 대리사 시승. 그들 뒤에는 각자의 시위와 포졸이 있었다.
어사 둘은 오자마자 두리뭉실하게 수습하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제대로 얘기하십시오. 두 대인께서는 어찌 손을 대십니까?”
대리시승은 갈라진 벽과 금신을 드러낸 허칠안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허 대인께서는 고수이십니다. 이 신공으로는 아마 배에 있는 사람을 한데 합해도 대인의 적수가 아닐 듯합니다.”
“자네들 마침 잘 왔네.”
저상룡은 표독스럽게 허칠안을 노려보면서 방금 있었던 일에 관해 얘기하고 허칠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병사들의 일은 그저 그가 시비를 건 이유네. 진정한 목적은 본 장군에게 보복하기 위함이지. 여러 대인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리시승은 바로 말했다.
“배에 부녀자가 있으니 사병들이 갑판을 오르면 좋지 않습니다. 본관이 생각하기에 저 장군의 명령은 합리적입니다.”
형부의 포두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허 대인께서 사죄하셔도 무방합니다. 금군은 선실 바닥으로 돌아가 외출하면 안 됩니다.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시죠. 저희 이번 북행은 반드시 단결해야 합니다.”
도찰원의 어사 둘도 찬성했다.
삼사 관원의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우선 그들은 본래부터 허칠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 자는 형부, 대리사, 도찰원과 모두 껄끄러웠다.
그리고 이번 북행에 진북왕의 부장군과 관계를 잘 쌓을 필요가 있었다.
방 안에서 차를 마시던 왕비는 갑판 위의 소란에 놀랐다. 그녀가 소리를 듣고 나오니 갑판으로 통하는 복도 위에 모인 왕부 여종들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습관적으로 말을 물었다.
여종들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여종은 낯설고 나이 든 여종의 마구 부려 먹는 어조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재잘재잘 말했다.
“저 장군과 허 은라 사이에 충돌이 생겨 하마터면 싸울 뻔했어요.”
“저 장군이 선실 바닥의 시위들을 갑판 위에 올라오지 못하게 한 일을, 허 은라가 찬성하지 않아 갈등이 생긴 듯해요.”
“흥, 허 은라가 은혜를 모르고 감히 저 장군에게 손찌검하다니. 그는 우리 회왕부의 부장군이잖아요. 지금 몇몇 대인께서 저 부장군 편에 서서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요.”
“저는 비록 허 은라를 아주 우러러보지만, 이번에는 그가 틀렸어요. 저 병사들한테 악취가 풍기는데 얼마나 거슬려요. 저희 앞으로 갑판에 바람을 쐬러 가기 힘들겠어요.”
왕비는 여종들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여종들은 평소에 그녀에게 아주 예의 바르게 굴었지만, 지금은 뜻밖에도 길을 비켜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합리적으로 막아서기까지 했다.
왕비는 갑판 위의 상황을 볼 수 없다는 점에 부아가 치밀었다. 다행히 여종들이 조용해지자 그녀는 허칠안의 냉소 섞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과요? 저는 폐하께서 칙명으로 지정한 수석 수사관입니다. 이 배에서는 제 말대로 합니다.”
대리시승이 반박했다.
“자네가 수석 수사관인 건 사실이나 사절단은 자네 말대로 결정할 수 없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형부 포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취지는 삼사와 야경꾼이 협동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네. 허 대인이 제 의견만 고집하고 싶다면 본관이 동의하지 못하는 점에 양해 바라네.”
두 어사는 형부 포두와 대리시승의 말에 찬성했다.
한순간에 부담이 전부 허칠안에게 쏠렸다.
‘설령 그가 완강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사람 앞에서 같은 관원에게 배척당하다니. 위신이 전부 실추되었어…….’
왕비는 모든 관원들의 의도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녀는 두법에서 풍운을 일으킨 이 남자가 순순히 복종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순순히 복종하고 아니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아챌 수 있었다. 수석 수사관 허 은라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동료 관원들이 그를 배척하고 그를 압박하였다.
일단 이런 고정 관념이 형성되면 수석 수사관의 위엄이 여지없이 떨어지고 대오에서 그에게 복종하는 자가 없어질 것이다. 설령 겉으로 예의를 갖춘다고 해도 속으로는 하찮게 여길 것이다.
“만약 회왕이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그는 어떻게 할까…….”
왕비는 왠지 모르게 늘 무의식적으로 갑판 위의 저 젊은이와 회왕을 놓고 비교하였다.
그녀는 비교한 후에 두 사람의 상황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쨌거나 회왕은 친왕이자 3품 무사이기에 지금의 허칠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왕비는 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어떻게 할까?”
‘아마 순순히 복종하지는 않겠지……. 그러면 나는 그를 무시하겠어……. 아니다. 그가 순순히 복종한다면 나는 그의 약점을 비웃어야지…….’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고, 이어 허칠안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여러 장군께서는 명령을 들으시지요. 본관은 수석 수사관으로서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북경으로 사건을 조사하러 갑니다. 사안이 중대하므로 누군가의 기밀 누설,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금 관계없는 사람들을 몰아내야겠습니다. 그에 따라 저 장군을 배치하겠습니다.”
현장에는 은라 네 명과 동라 여덟 명만이 무기를 뽑아 들고 허칠안을 둘러쌌다.
갑판 위의 금군 백 명은 참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몇 초간 적막이 흐르다가 한 병사가 슬그머니 선실 바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고개를 숙인 채 갑판을 떠나 선실 바닥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판이 말끔하게 비었다.
“피식!”
저상룡의 하찮아하는 비웃음 소리가 유달리 귀에 거슬렸다.
대리시승은 조롱하는 얼굴로 그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했다.
형부 포두는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고 칸막이벽에 기댄 채 구경하는 자세를 취했다.
도찰원 어사 둘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자기 계단을 밟는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뚜벅뚜벅’ 줄줄이 이어졌다.
금군 백 명이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방금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그들 손에 있던 요강이 제식 군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무기를 가지러 선실 바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진효가 군도를 쥐고 허칠안 옆으로 걸어가 나지막이 말했다.
“칼을 뽑거라!”
쨍…….
칼을 뽑는 소리가 한데 울려 퍼졌다. 병사 백 명이 일제히 칼을 뽑고 저상룡 등을 멀리서 가리켰다.
“자, 자네들 반란을 일으키려는 건가?”
얼굴빛이 변한 대리시승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진효는 침묵하며 입술을 핥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리시승을 주시한 뒤 다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는 허 은라가 명령하기만 하면 나아가 수다스러운 이 문관들을 벨 엄두가 있는 듯했다.
대리시승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더는 눈에 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벽에 기댔던 형부 포두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고, 농담하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강적을 맞닥뜨린 듯 슬그머니 손안의 칼을 꽉 쥐었다.
명색이 무사인 그는 금군들의 눈에서 강인한 의지를 보았다. 칼을 휘두를 때 절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분노한 저상룡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는 여전히 명색이 진북왕 부장군인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걸 믿지 않았다. 이런 저급한 병사들이 감히 자신에게 칼을 뽑아 들다니.
“양연!”
저상룡은 나지막이 울부짖었다.
“너희 야경꾼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건가? 본 장군이 사절단과 동행하는 건 폐하의 구두 명령이네.”
“시끄럽네!”
양연의 목소리가 선실 안에서 들려왔다. 그는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 일을 모르네.”
“자네…….”
저상룡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그는 다소 변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한사코 노려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자네 어떻게 하고 싶은가.”
허칠안은 햇빛을 맞으며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 방금 제 결정을 그대로 따르십시오. 병사들은 매일 삼 시진의 자유 시간이 있습니다. 둘, 제 신분을 기억하십시오. 사절단에서 장군이 말할 곳은 없습니다. 충분히 명확하지요?”
저상룡은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칼을 들고 걸어가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셋, 이 몸에게 사과하시지요.”
순식간에 저상룡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고, 관자놀이의 핏줄이 튀어나왔으며 볼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왕비마마를 호송하는 일이 중대하니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저상룡은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허 대인, 대인은 도량이 넓으니 나와 똑같이 굴지 말게.”
허칠안은 ‘헤’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철드셨습니다.”
뒤에서 금군 백 명이 입을 벌리고 소박한 웃음을 지었다.
갑판 위는 괴상한 적막에 빠졌다.
삼사의 관원, 시위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감히 말을 내뱉어 허칠안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형부 포두는 방금 허칠안이 제 의견만 고집하고 싶어 하는 건 허황된 망상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니 이 순간에는 볼이 화끈거릴 뿐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형부상서가 분노했으나 이 상황을 어쩔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 자식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했지만, 그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물론, 가장 체면이 깎인 사람은 저상룡이었다. 그는 명색이 진북왕의 부장군으로서 변방에서 실권을 장악했다. 경성에 돌아와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조당의 제공들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생사와 앞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은 진북왕이기 때문이다. 제공의 권력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그를 처분할 수 없었다.
그는 점차 제멋대로 날뛰는 성격이 강해졌고, 이 순간에 이르러 허칠안에 의해 호되게 꼬꾸라졌다.
저상룡은 대세를 중시하는 자신을 타이르면서, 가슴속의 답답함과 분노를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는 갑판에 머무를 낯이 없어서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떠났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조롱이 서린 듯해, 한시도 남고 싶지 않았다.
시선들이 갑판 위 선실 안에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살며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 그들은 그를 관찰하고 구경했지만 이제는 경외했다.
은라의 관직은 별것 아니고, 사절단에서 그보다 관직이 높은 자는 많았다. 하지만 허 은라가 장악한 권력과 짊어진 황명은 수석 수사관인 그에게 충분한 자격을 부여했다.
만약 누군가 감히 면종복배하거나 관직으로 억압한다면 오늘 저상룡의 치욕이 그들의 본보기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