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40화 (439/712)

440화. 요강을 닦다

허칠안은 갑자기 깨달았다. 이번에 병문안은 명목이었고, 진정한 목적은 그가 대신 나서게 하는 것이었다.

병사 역시 사람이다. 그들은 더는 이런 환경을 참고 견딜 수 없었고, 가슴속에 울분이 가득했다. 이와 동시에 허 은라야말로 이번 사절단의 수석 수사관이었다. 조정에서 칙명으로 지정한 수석 수사관 말이다.

그들은 억울하고 제기할 주장이 있어 허칠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허칠안만이 자신들을 위해 나서 줄 수 있다고 여겼다.

만약 수석 수사관 또한 그들더러 선실 바닥에 웅크리고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비로소 단념할 것이다.

“나는 지금 하나만 명령하겠네.”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인, 분부하십시오.”

진효가 고개를 떨구고 읍했다.

“대인, 분부하십시오.”

모든 병사들이 일어서서 고개를 떨구고 읍했다.

허칠안은 머리 꼭대기의 갑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올라가서 요강을 닦는다.”

“네!”

“감사합니다, 대인. 감사합니다, 대인.”

“가세, 가세, 가세. 요강을 닦으러 가세. 진작에 이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고!”

단숨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 * *

저상룡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행원에게 차를 타라고 분부했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받치고 살짝 마시더니 물었다.

“왕비마마께서는 최근에 어떠한가?”

“계속 방 안에 계십니다.”

수행원이 말했다.

사치스럽고 널찍한 큰 방안에 묵고 있는 왕비는 사실 꼭두각시였다. 진짜 왕비는 보통 여종들 사이에 섞여 매일 나가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때는 취사장에 가서 몰래 먹기도 하고, 사공이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걸 신명 나게 지켜보면서 쓸데없이 명령하곤 했다.

사공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 평범한 외모의 나이 든 여종에게 커다란 호감이 생겼다. 재산을 적잖이 모았으나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사공들은 사적으로 그 여종의 상황을 알아보았다.

이런 부분이 바로 왕비의 매력이었다. 설령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일지라도 오래 접하다 보면 남자들에게 사모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저상룡은 병사들이 갑판에 오르는 일과 사적으로 왕비에게 접촉하는 일을 금지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었고, 여종에게 보통 이상의 관심을 드러낼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북상하여 초주에 도착하면 왕야가 파견한 군대와 합류할 것이고 그러면 완전히 안전해집니다.”

저상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사 사절단에 섞여 지내는 건 의심할 나위 없이 현명한 결정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수석 수사관인 허칠안 등 일련의 고관조차 왕비가 함께하는지 몰랐다.

이때 그는 갑자기 갑판에서 비롯된 빽빽한 발소리를 들었다. 뒤이어 남자들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실 바닥의 병사들이 나왔군…….’

저상룡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이내 화가 치밀었다. 그는 아래에 있는 병사들에게 갑판에 올라오면 안 된다고 여러 번 되풀이하여 경고했다.

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고?

* * *

저상룡은 방을 걸어 나가 복도를 지나 갑판 위에 이르렀다. 한데 무리를 지은 병사들이 요강을 들고 오물을 강물에 와르르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불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백부장 진효는 갑판 위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다 버리면 요강을 깨끗이 닦는 일을 잊지 말게.”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상룡은 뒷짐 지고 서서 어둡고 진지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누가 자네들에게 올라오라고 했는가!”

떠들썩한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병사들은 황급히 요강을 내려놓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쩔쩔맸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상룡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사람이 많으니 규칙을 위반해도 된다고 여기나? 갑판에 올라오는 게 좋다 이 말인가? 여봐라. 군장을 준비하거라. 형을 집행하겠다.”

이내 소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상룡이 데리고 온 호위대가 손에 군장을 든 채 갑판 다른 편에서 돌아왔다.

“저 장군, 이, 이건…….”

진효는 다급해졌다. 그가 저상룡에게 허 은라가 허락한 거라고 바로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화를 돋우며 두 대인을 꼬드겨 갈등을 빚고 있다고 생각하게 할까 봐서였다.

그리고 허칠안이 마침 방으로 돌아갔으니 그는 필연적으로 밖의 인기척을 들었을 것이다. 만약 진심으로 금군들을 위해 기꺼이 책임을 지고자 한다면 그는 나올 터였다.

반대로 그가 잠잠하다면 이는 그가 저 장군과 갈등을 빚길 원치 않는다는 의미였다. 어쨌거나 이 저 장군은 진북왕의 부장군이자 병권을 쥔 거물 아닌가.

“저 장군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화를 내십니까. 제가 그들에게 올라와서 요강을 닦으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금군들이 기대하던 목소리가 선실에서 들려왔고,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발소리가 동반되었다. 은라 차복을 입은 허칠안이 한 손에 칼을 쥐고 걸어 나왔다.

저상룡은 돌아서서 허칠안을 바라보며 살기 등등한 어조로 말했다.

“내 명령을 모르는가? 만약 몰랐다면 지금 당장 그들더러 꺼지라고 하고,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도록 시키게. 만약 알았다면 나는 설명이 필요하네만.”

진효는 눈 딱 감고 읍하며 말했다.

“저 장군, 이렇습니다. 몇몇 병사들이 병에 걸리자 소직이 속수무책이라 어쩔 수 없이 허 대인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리를 지키든가 똑똑하든가…….’

허칠안은 속으로 평가하더니 말했다.

“자네가 말할 곳인가? 저쪽으로 꺼지게.”

진효는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눈에는 감동의 빛이 스쳤다.

허 은라는 이로써 그를 떼어냈다.

허칠안은 백부장을 타이른 뒤 저상룡을 주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저 장군께서 설명을 원하십니까? 장군께서 선실 바닥에 한 번 다녀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만약 그곳에서 며칠 묵을 수 있다면 더 깊이 체감하실 텐데요.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진시 초부터 진시 말까지, 오시 초부터 오시 말까지, 신시 초부터 신시 말까지 선실 바닥의 금군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매일 갑판 위에서 6시간을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러면 공기의 질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도 하고, 병사들의 심신 건강에도 이로웠다.

갑판 위의 병사들은 희색을 드러내며 흥분한 나머지 눈빛을 교환했다. 바람과 파도가 아주 거세 선실 바닥은 심하게 요동치고, 이상한 냄새로 인해 토하고 싶게 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런 환경에서 식량을 먹어야 했다. 몸이 편치 않기도 했지만, 심리적인 고통이야말로 가장 괴로웠다.

저상룡은 태연하게 말했다.

“허 대인, 군대 인솔을 잘 알지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하지 말게. 이 정도 고통이 대수란 말인가? 정말 전쟁터에 나가면 진흙조차 먹어야 하고, 하물며 시체 더미 위에 누워 먹어야 하네.”

그는 말하는 내내 얼굴에 냉소를 지으며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경멸과 경시를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허칠안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반박했다.

“저 장군은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빈 노병이니 군대 인솔에 있어 제가 장군보다 못하겠지요. 하지만 장군께서는 저와 논리를 논하셔야 합니다. 저는 장군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발 앞으로 내디뎌 저상룡을 주시하면서 물었다.

“장군께서도 전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상시가 평소와 같을 수 있습니까? 저 장군 수하의 병사가 매일 변소에 살면서 대소변 냄새 속에 식량을 먹어야 합니까? 이 병사들 모두 정예병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마찬가지로 힘들게 훈련하고 전쟁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고생과 고통은 다른 개념입니다. 오랜 시간 군대를 육성하는 이유는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군대 육성조차 모르는데 장군께서 어떻게 군대를 인솔한단 말입니까? 장군께서 어떻게 전쟁을 치르신단 말입니까?

까놓고 말해서 이들은 장군의 병사가 아닙니다. 장군께서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으시니까요.”

‘말 잘했다!’

진효는 속으로 마구 소리 질렀다. 요 며칠 그는 의기소침한 병사들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들 모두 그 수하의 병사이기 때문이었다.

저상룡은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의 병사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 아닌가?

‘오랜 시간 군대를 육성하는 이유는 유사시를 대비하기 위함이라. 허 은라는 역시 대봉의 시괴답군…….’

진효는 진심으로 감복했다. 그는 생각할수록 이 말이 명언으로 보였다.

병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먹을 쥔 양손이 마음속의 분개를 드러냈다.

그들은 가장 말단 병사로 확실히 지위가 없었다. 하지만 병사 역시 사람이고 감정이 있다.

저상룡은 매우 화가 난 듯했고, 표정이 포악하면서도 거칠었다. 그는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본인의 얼굴을 허칠안의 얼굴에 가깝게 들이민 뒤 성난 목소리로 질문했다.

“자네 지금 나를 가르칠 셈인가? 자네가 뭔가?”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너무 빨리 실패를 인정해서 장군께서 너무 쉽게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장군 마음속에 잘못된 인식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허칠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저상룡과 거리를 벌렸다.

이런 행동은 저상룡의 눈에 당연히 우스워 보였다. 맞았다. 그의 마음속에 허칠안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이러했다. 그는 천부적인 자질이 매우 뛰어나지만, 권위에 연연해하여 더 큰 권력으로 지배하고 억압할 수 있었다.

이는 허칠안이 과거 부정행위 사건에서 보여 준 이미지와 부합했다. 그가 손쉽게 금강신공을 얻게 하고, 사후에 심지어 번복 없이 엉덩이를 흔들며 불상을 직접 가져다주었더랬다.

많은 무사가 그에게 개노릇을 하길 원했다. 설령 자신의 실력이 강하다고 해도 고관들에게 비굴하게 아첨하는 이유는 이런 부류들이 권세에 연연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닌가?”

저상룡은 경시하며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한 걸음 물러서는 허칠안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사납고 거친 로우킥을 날렸다.

어떠한 조짐 없이 들이받았다.

정상룡은 두 손을 교차해 막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기기가 잔잔한 물결로 폭발했다. 그는 마치 공성목(攻城木)에 부딪힌 것처럼 두 다리가 미끄러져 밀리더니 칸막이벽에 등을 세게 부딪혔다.

견고한 목재 벽이 투둑 갈라졌다.

금칠 한 점이 허칠안의 미간에서 반짝이더니 재빠르게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가 찬란한 금신을 드러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성미가 거친 개새끼랍니다.”

위연이 그에게 진북왕의 사람과 좋은 관계를 쌓으라고 일깨웠었다. 이는 사사건건 난처한 일 맞닥뜨리지 않고 더욱 편하게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위연은 절대 그에게 비굴하게 아첨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진북왕의 사람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면서 무시당하는 동시에 지혜로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면 됐다.

만약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면 조정에서 위임한 수석 수사관인 그는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진북왕에게 불리한 증거를 정말 밝혀낸다면 설령 그와 저상룡 사이에 의형제 간의 정이 있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허칠안은 일찍이 저상룡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아우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틈을 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그의 금강신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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