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36화 (436/712)

436화. 조건

생명 분야에서 유전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람은 자연계에서 생존할 수 있고, 약효를 흡수할 수 있으며 ‘유전’ 두 글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예전에 한 가지 견해를 들은 적이 있다. 현대 인류가 만약 고대로 돌아가면 이동하는 전염원으로 변해 세계를 멸망시킬 거라고 했다.

이런 견해의 핵심 의미는 고대 사람들이 현대 바이러스에 저항할 항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는 대자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후손에게 유전할 수 있다.

이 몸이 약재를 흡수할 수 없는 건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이묘진은 감지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 신체는 깨끗합니다. 영지도 없고 영혼도 없어요. 산 사람의 껍데기보다 더 좋습니다. 소소의 육신으로 삼기에 제격이에요.”

여기에는 한 가지 지식 포인트가 연관된다. 보통 사람의 영혼은 신체와 일치한다. 영혼이 몸에 일시적으로 빙의되는 이유는 육신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못해 밀어내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양기가 쇠약하고, 영혼은 음기가 고갈되니 이는 양쪽이 함께 망하는 길이다.

일단 산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부패하기 마련이므로, 영혼이 영원히 의탁할 곳으로 삼기에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육신에는 영혼이 없다. 소소가 만약 이 몸에 빙의한다면, 육신이 산 사람과 다름없이 영혼에 응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묘진은 바로 소소를 쳐다보며 말했다.

“들어가 볼까?”

소소는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말을 듣더니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 인형 몸에서 벗어나 ‘남자’의 몸속을 뚫고 들어갔다.

‘저기, 너 내 첩 노릇 하겠다고 말했잖아. 이건 내 생각과 다른데. 내가 원한 건 남녀 간의 잠자리지, 동성 간의 잠자리가 아니라고…….’

허칠안은 이 광경을 보자 입을 딱 벌렸지만, 마음속의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체면을 차려야 했기에 입 밖으로 이 말을 내기에 부끄러웠다.

이때 소소가 튕겨져 나와 종이 인형 몸으로 되돌아왔다.

이묘진은 정교한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소소는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묘진은 한참을 침음하더니 짐작해냈다.

“나 알겠어. 이 육신은 보통 껍데기와 달라. 육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돌과 같아. 소소 같은 망령은 돌에 기생할 수 없거든.”

송경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돌인 육신을 정련해냈다?”

그는 이 결과에 아주 실망했고,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이묘진은 침묵했다.

소소는 입술을 깨물었고, 반짝이는 눈동자는 순식간에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알고 보니 괜히 기뻐한 모양이군…….’

초원진과 항원은 서로 눈을 마주치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공자, 자네는 연금술 분야의 천재잖나. 생명 연금술에 관한 자네의 조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송경이 읍을 올리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큰 소리로 말했다.

“허 공자님,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소소는 어두운 눈동자에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고, 간절하게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참, 허칠안이 송경에게 생명 연금술을 가르쳤고, 무슨 청서도 쓴 적 있다고 하니 6품 연금술사가 그에게 깍듯한 거군…….’

이묘진, 항원 그리고 초원진은 바로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이,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입만 좀 놀리는 정도라면 문제없지만, 이 주제는 이미 범위를 벗어났다고…….’

허칠안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사형의 생명 연금술 기록을 저에게 주세요. 우선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서 너희를 속일지 연구해야지…….’

송경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황급히 밀실을 뛰어나갔다. 얼마 후, 그는 두꺼운 청서 한 권을 움켜쥐고 들어와 허칠안에게 정중하게 건넸다.

현재 사천감 술사들은 청서로 자신의 친서를 충당하는 게 이미 습관이 되었고, 전통이 형성될 수 있길 바랐다. 그들은 몇 세대 이후에는 청서와 연금술이 제휴를 맺고 같아지리라 믿었다.

앞으로 외부 세계에서 술사들의 연금술을 논할 때는 청서로 대신할 것이다.

허칠안은 청서의 제1대 창시자로서 송경의 연금 친서를 받더니 펼쳐서 훑어보았다.

‘너무 길어, 안 볼래……. 봐도 모르겠고…….’

그는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참 동안 읽는 척하였다.

천지회 구성원 그리고 송경은 두 눈을 그에게 고정하고 허칠안이 책을 덮을 때까지 기다렸다. 송경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허 공자, 잘못한 부분이 있는가?”

이묘진 등은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고, 시선을 집중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문제가 적잖이 있습니다. 송 사형, 이 방법은 끝이 없습니다. 사형께서는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고, 태만하면 안 됩니다.”

허칠안은 개탄하더니 진지하게 타일렀다.

“그래서 문제가 도대체 어디에…….”

송경이 말을 마치기 전에 허칠안이 그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송 사형, 연금술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사형의 작품에 관해 사형께서 참고하실 수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송경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주의를 돌리고 절실하게 캐물었다.

“허 공자, 자네는 틀림없이 방법이 있을 줄 알았네. 만약 내가 그를 기를 당시, 자네가 현장에 있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좋았을 걸세.”

‘아니, 그때 가면 나는 옆에서 짱짱짱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을걸…….’

허칠안은 목청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훑어본 후 시선을 송경에게 옮기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세상에 구색연화라고 불리는 희귀한 보물이 있다더군요. 만물을 점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설령 돌이라도 영지를 만들 수 있지요. 사형의 사람 형체는 구색연화의 점화가 필요합니다.”

“구색연화, 구색연화…….”

송경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그런 신기한 물건이 있다니.”

천지회 모든 이들은 문득 깨달으면서 허칠안의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맞아, 구색연화는 만물을 점화할 수 있으니 당연히 이 육신을 점화할 수 있다. 그가 트이기만 하면 소소가 빙의할 수 있어…….’

이묘진의 얼굴에 희색이 드러났다. 그녀는 한순간에 목표가 생겼으니 더는 막막하지 않았다.

소소는 구색연화가 즉시 여물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육신을 얻을 수 있다.

‘아니, 아니,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여인의 몸이라고. 내가 남자가 돼야 한다니……. 하지만 만약 남자의 몸이라면 허칠안에게 아이를 낳아 줄 필요가 없어지잖아. 윽, 만약 그가 여전히 그의 첩 노릇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소소의 머릿속에 남자의 몸을 얻은 자신을 허칠안이 침대에 누르고 채찍질하며 독촉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구색연화는 지종의 진귀한 보물입니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연금술의 재료 중 하나에 속하지요. 어쨌거나 만물은 연금술이 가능하니까요.”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만물은 연금술이 가능하다라…….”

송경은 내심 깊이 탄복하였고,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허 공자, 자네는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연금술의 귀재야. 나는 심지어 분노한 적도 있네. 자네 숙부가 자네를 일찍이 사천감으로 보내 스승을 모시고 기예를 배우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 말이야.”

‘……하지 마. 우리 숙부는 이미 충분히 가엾다고, 그를 놓아줘!’

이번 사천감행은 소소에게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일이나 다름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감회가 꽤 복잡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연금술에 관한 송경의 조예가 깊음에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생명 연금술을 보고 심신이 불편했다.

* * *

사천감을 나서기 전, 허칠안은 송경을 사람 없는 외진 곳으로 끌고 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송 사형, 저 사형께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말하게.”

송경은 허칠안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사형께서 저 매(魅)가 빙의하는 데 쓰일 여인의 몸을 정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되면 제가 방법을 생각해서 구색연화를 구해 오겠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좋네, 반드시 그렇게 하지.”

송경은 허칠안이 구색연화를 구해 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껏 흥분했다.

“하지만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허칠안은 목소리를 점점 더 낮추었다.

“우선, 여인은 예뻐야 합니다. 아주 예뻐야 해요.”

* * *

허칠안에게 이번 사천감행은 반드시 필요했고, 그 당시의 약속은 지킨 셈이었다.

그는 언약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 전생이든 현생이든 모두 그러했다.

초원진과 항원은 사천감을 나와 작별 인사를 하고 갔다. 허칠안은 이묘진, 소소, 리나를 데리고 허부 방향으로 걸어갔다.

미니언즈 여동생 저채미는 멀리서부터 배웅하다가 보니 허부까지 함께했다. 그래서 그녀는 허부에서 저녁밥을 먹기로 했다.

저채미는 밥을 다 먹은 다음 또 허부에서 쉬면서 리나와 동침하기로 했다. 그녀는 리나에게 열렬한 애정을 보냈다.

사람들이 흩어진 후 허칠안은 신년의 서재에 들어갔다. 그는 등불을 높이 걸고 책상에서 책을 읽는 아우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야유했다.

“오늘은 왕 소저와 재미있게 놀았니?”

허신년은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형님, 왕씨 집안 아가씨가 제 미색을 탐내는 것 같아요.”

‘어휘 사용이 틀렸지만, 의미는 이 의미지…….’

허칠안은 좀 의외였다. 허신년이 반응을 보였다고?

허신년은 바보가 아니고, EQ도 낮지 않다. 그저 여성과 교제한 경험이 부족할 뿐이다. 지난 두 번은 그가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왕 재상(공기)과의 기 싸움에 빠진 상태였다.

“그녀는 저한테 잘생겼다고 자주 칭찬하고, 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미를 행동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허신년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네 뜻은?”

허칠안이 물었다.

“왕 재상과 위연은 정적이고, 형님은 위연의 심복이잖아요. 제가 어찌 왕씨 집안 아가씨와 얽힐 수 있겠어요?”

허신년은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나는 늘 신년에게 환관 당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았고, 그가 조당에 빽이 없는 게 고민이었는데 만약 그가 왕 재상에게 빌붙을 수 있다면……. 하지만 이런 일은 결코 어린애 장난이 아니야. 내 이런 생각이 신년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을지 누가 알겠어?’

허칠안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적절한 어휘를 골라 말했다.

“스스로 결정하렴. 앞으로의 길은 네 두 발에 의지하여 걸어가야 한다. 조당에서는 영원한 적이 없어. 위 공과 왕 재상도 지금은 손을 잡고 하급 벼슬아치의 폐단을 응징하잖니? 게다가 설령 네가 장차 왕 소저와 함께 있다고 해도 그녀가 허씨 집안으로 시집오는 것이지 네가 데릴사위가 되는 게 아니잖니. 여기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너는 여전히 자유의 몸이야.”

허신년은 다소 난처하여 얼굴빛이 빨개졌다.

“형님 말씀은 마치 저와 왕 소저가 정말 무슨 부적절한 관계인 것처럼 들리네요.”

그는 이어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제가 잘생겨서 좋다고 할 뿐이에요. 만약 제가 무섭게 생겼으면 저를 좋아했을까요?”

허칠안이 그에게 대답했다.

“그건 ‘생기다’의 기준에 달렸지.”

그는 왕 소저가 허신년의 미색을 탐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얼굴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는 임안을 좋아하고, 회경을 좋아하고, 채미를 좋아하고, 이묘진을 좋아하고, 소소를 좋아하고 리나를 좋아하고 심지어 국사를 매우 좋아한다. 그녀들이 모두 예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칠안은 종리 같이 머리를 산발하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여인에게는 그녀를 좋아할 권리를 보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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