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희미한 단서
허칠안은 ‘고신 회생, 세계 종말’ 이 글자들로 관심을 돌렸다.
“천고부의 예언자가 고신이 끝내는 회생하여 세상을 고(蠱)만 있는 세계로 바꿀 거라고 미루어 판단했다……. 일리가 없다. 물론 고신은 품계를 초월하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무적은 아니다.”
서방에 부처가 있고, 동북에는 무신 및 행방을 알 수 없는 도존 그리고 이미 자취를 감췄다고 스스로 자처하는 유성이 있다.
도존과 유성은 차치하고 부처와 무신만 가지고도 고신 하나 때려잡는 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고부의 예언이 거짓일 리는 없다. 이는 그 속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고신은 상고 시대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마다. 갑자기 포인트를 발견했다. 상고 시대에 품계를 초월한 신마는 고신 하나에 그치지 않는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왜 결국에 살아남은 사람은 고신뿐일까? 이건 아마도 고신이 세계 종말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천고부의 그 전임 우두머리는 고신이 계속해서 깊이 잠들어 있게 기운을 빼내 고신 억압을 선택했나…….”
허칠안은 눈이 갑자기 번쩍 뜨이면서 귓가에 벼락이 치는 듯했다. 그는 이미 잊힌, 사소한 부분이 머릿속에 번뜩였다.
오호 리나가 일찍이 지서 파편에서 말한 적 있다. 고족이 극연을 탐색하다가 유가 성인의 조각상을 발견했다고 말이다.
“유가 성인의 조각상이 고신을 억압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데……. 유가 체계와 기운이 관련 있다니……. 천고족의 그 우두머리가 극연에 있는 그 조각상에서 영감을 얻어 대봉의 기운을 도모했나?”
‘이…… 알고 보니 이런 일이었군.’
허칠안은 탁한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자신이 그해의 진상 일부분을 추리해 냈다고 생각했다.
“천고 부족의 전임 우두머리가 고신을 억압하기 위함이라면 신비로운 술사 패거리는 또 뭘 위함이지? 아이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머리가 아프다. 역시 지적 장애가 가장 즐거운 법이야…….”
허칠안은 자조하며 말했다.
원신이 통증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에 가서 산해관전역의 도화선과 전 호부시랑 주현평의 권종을 살펴볼 계획이었다.
주현평은 세은 사건을 일방적으로 주도했다. 그는 내력이 불명한 술사와 분명히 연관이 있을 것이다.
* * *
그가 방을 나서자 손에 도자기 그릇을 받치고 다른 손에는 선지를 든 이묘진이 보였다. 천종 성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소소를 찔러서 뭐 하려고. 그녀가 그저 종이 인형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착실한 양갓집의…….”
“그럼 내가 그녀를 책임져야 하오?”
“아니, 내가 자네 발톱을 썰어 버릴 거야.”
“…….”
‘내 발톱을 썬다고? 내 발톱은 신수 승려만큼 그렇게 강하지 않아. 잘리면 이을 수 없다고…….’
허칠안이 속으로 빈정대다가 갑자기 온몸이 굳었다.
‘신, 신수 승려? 내가 운주에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내 몸속에 신수 승려가 있기 때문인가? 이게 배후의 검은손을 꺼리게 하고 직접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나? 신수 승려의 반격을 불러올까 봐 두려웠겠지…….
맞다. 배후의 검은손이 운주에 있을 때 근거리에서 나를 관찰하고, 내 몸속에 있는 신수 승려의 존재를 발견한 게 틀림없다. 감정, 그는 진작에 다 안배했나? 그는 내가 기운을 품었음을 간파한 후에 계획하고 구성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는 만요국 잔당의 계략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왜냐하면 신수 승려가 내 몸속에 기생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가 나를 위해 택한 보디가드인가? 배후의 검은손이 기운을 되찾아 가지 못하게 하려고 신수 승려를 통해 기운을 내 몸속에 확실히 붙들어 맸다…….’
“감정은 너무 무서워…….”
허칠안은 몸서리를 쳤다.
그는 지혜로운 자의 포석과 희미한 단서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견문을 넓혔다.
바깥 대청에 오니 대청에 앉은 노란색 치마가 보였다. 그녀는 달걀형 얼굴에 왕눈이 눈을 한 미인 저채미였다.
원형 탁자 위에는 각양각색의 떡, 단 과자 그리고 육제품이 놓여 있었다. 대략 50~60명의 장정이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이때 탁자에 앉아 그것들을 상대하는 존재는 외모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질적인 식사량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짐승 세 마리였다.
저채미, 리나, 허영음.
“채미 소저, 오랜만이오.”
허칠안이 인사를 건넸다. 이 소저는 여러 회차 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오사저가 나타난 후부터 나는 너와 헤어지고 싶었다고.’
짐승 세 마리가 동시에 쳐다봤다. 그들은 유전자에 낙인된 동물의 먹이 보호 본능을 눈빛에 감추었다.
“나는 허부에 자주 와. 그저 네가 낮에는 관아에서 사무를 보니 나를 볼 수가 없지.”
저채미는 볼을 부풀리고 음식을 씹으면서 모호하게 대답했다.
해가 진 후라면, 아직 시집가지 않은 소저가 다른 이의 저택에 머무는 건 틀림없이 안 되는 일이었다.
리나가 이어서 말했다.
“저와 채미 소저는 아주 죽이 척척 맞아요.”
허영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그래요, 저도 그래요!”
‘죽이 척척 맞는다고? IQ가 같은 수평선에 있어서 마음이 잘 맞는다는 말이야, 아니면 먹보 속성 면으로 잘 맞는다는 말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댔다. 그는 짐승 세 마리가 자신을 이렇게 경계하는 걸 보고, 눈치껏 안으로 들어가 먹을 걸 달라고 하지 않았다.
‘참내, 나는 점심으로 닭다리 하나밖에 먹지 않았다고. 게다가 허영음에게 반은 나눠 줬는데…….’
그는 허부를 나서서 애지중지하는 암말에 올라 다그닥다그닥 관아로 달려갔다.
암말은 점점 더 웅건해졌다. 매일 전투마 급의 농후사료를 먹으면서 힘을 기르니 발색이 남다르고 곡선이 늠름해졌다.
* * *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에 도착한 뒤 먼저 ‘일도당’에 돌아가서 수하의 동라들에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거리를 순찰하라고 분부했다.
부하 동라들은 개탄하며 말했다.
“대장, 사무를 띄엄띄엄 보셔도 양 금라께서 탓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처럼 했으면 진작에 파면당하셨을 거예요.”
허칠안은 정색하고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하러 가게.”
동라들은 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17살 정도 된 동라가 무서워서 벌벌 떨며 말했다.
“대장, 듣, 듣자 하니 대장께서 교방사의 단골이시라고요……. 저, 저는 오늘 대장을 교방사로 모시고 싶습니다.”
다른 동라가 웃으며 말했다.
“대장, 이 자식은 대장한테 길 안내를 부탁하고 싶은 거예요. 그는 아직 영계예요. 작년 말에 막 연기경을 돌파하고 관아에 들어왔거든요.”
허칠안은 여기까지 듣자 좀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의 아래에 속하는 동라들에게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좋다. 퇴근한 후 자네들을 데리고 가지. 본관이 한턱내겠네. 자네 그 정도 봉록에 교방사에 가서 소비할 자격이 어디 있겠는가. 대장인 나를 따르면서 평생 무임승차하게.”
허칠안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라들은 환호하였고, 제대로 줄 섰다고 생각했다. 관아에는 그들의 대장처럼 허세를 부리는 금라, 은라가 없었다.
허칠안은 오히려 좀 감개무량했다. 자유연애를 숭상하지 않는 이 시대에는 집에서 일찍이 혼사를 정하거나 교방사나 기생집에 소비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 * *
정급(丁級) 당안고(檔案庫)에는 전 호부시랑 주현평의 권종이 없었다. 허칠안은 을급(乙級) 당안고에서 관련 권종을 찾았다.
“이치대로라면 횡령하여 실각한 호부시랑의 권종 등급이 이렇게 높아서는 안 되는데…….”
을급 당안고는 금라만이 열람할 권한이 있었다. 다만 허칠안의 지위는 확실히 특수했다. 갑급(甲級) 당안고가 위연의 친필 서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을급 당안고의 자료는 그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허칠안은 주현평의 권종을 다 본 뒤 왜 을급 공문서인지 드디어 이해했다.
“관아의 조사에 따르면 전 호부시랑 주현평은 20년 동안 백은을 횡령한 액수가 이백만이 넘는다. 하지만 재산을 몰수할 때 착취한 은자는 고작 수천 냥이다. 이렇게 많은 은자가 어디로 갔을까? 설령 20년 동안 음악과 여색을 마음껏 즐겼다 해도 물가가 저렴한 이 시대에 이백만 냥이나 쓰지 못한다. 호부시랑 주현평은 유배 도중에 죽었으니 십중팔구는 멸구 당했으리라.”
허칠안은 권종을 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배후의 검은손이 조정에 어느 정도 침식했다. 주 시랑이 그의 사람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 시랑을 제외하고 또 다른 첩자가 있을까? 만약에 있다면 누구일까?”
그는 권종을 덮고 다시금 정신을 쥐어 짜자 피로감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는 전에 없던 스트레스를 받았다.
“더는 그럭저럭 살아가면 안 되겠다. 대중 연예장에서 노래 듣는 것도 물린다. 알고 보니 감정이 줄곧 나를 도와 용솟음치는 암류를 막았던 거야. 내 실제 처지는 아주 엉망이었다. 그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틀림없이 내 몸속의 기운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음, 내 몸속에는 옥새의 기운도 있군. 이는 고분 속의 그 인종 도사 것이다. 그가 자신의 기운을 뺏어 가는 신비로운 술사를 앉아서 구경만 할까?
하지만 생사를 모르는 상고 시대 인류에게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우선 작은 목표를 정하자. 2년 내로 작위를 적어도 한 등급 올려 더 큰 권력을 장악한다. 대봉은 국력이 쇠약하지만, 여전히 인재가 많다. 감정이 있고, 위연이 있고, 약삭빠른 문신 그리고 수백만의 군대가 있다. 이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두 번째 목표는 연말 전에 반드시 4품으로 승직하는 것! 실력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실력이 있어야만 바둑돌에서 기사(棋士)로 변할 수 있다.”
‘후…….’
허칠안은 숨을 내뱉더니 하급 관리를 불러서 말했다.
“산해관전역의 모든 권종을 내게 가져오게.”
하급 관리는 두꺼운 자료를 한 묶음 가져왔다.
허칠안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렸고, 반 시진 만에 다 보았다. 권종에는 산해관전역의 도화선이 남강 오랑캐와 북방 오랑캐가 음모를 꾸며 대봉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 일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대봉은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보자 황급히 서방의 형님에게 콜했고, 함께 손을 잡아 남북 오랑캐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허칠안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산해관전역에는 요족과 무신교의 형상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주 대륙의 모든 세력을 휩쓴 혼전이었다.
상대는 각각 이러하다. 남북 오랑캐, 북방 요족, 만요국 잔당, 무신교.
대봉과 서불(西佛)이 2대5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는 구주 버전 전쟁에 맞먹는데. 이렇게 방대한 규모의 전쟁이 절대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악……. 마치 내 전생의 전쟁처럼 영문을 모른 채 싸우기 시작했나? 이게 핵심은 아니지…….’
허칠안은 스스로 비아냥거렸다.
“나 IQ가 떨어졌어. 이런 일은 바로 아빠를 찾아가면 되잖아. 왜 굳이 나 혼자 여기에서 집착하고 있는 거지?”
허칠안은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머리를 툭 치더니 생각을 접고 당안고를 나와 호기루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