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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28화 (428/712)

428화. 드러나기 시작하는 단서 (1)

이묘진은 여종 귀신을 데리고 들어올 때, 남매 둘이 침상 옆에 앉아 너 한 입 나 한 입 닭다리를 베어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했고, 무관심한 표정이 조금 호전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장포를 갈아입었다. 연분홍색의 깔끔한 긴 치마를 입고, 같은 색 허리띠로 허리를 묶었다. 소맷부리의 구름 문양은 번잡하면서도 화려했다. 지극히 아름다운 양갓집 규수답게 보일 만한 차림새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매서운 기질이 그녀의 이미지를 망가뜨렸다.

허칠안은 그녀가 경갑(經甲)이나 위장복, 경찰복 등의 제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녀의 매섭고 노련한 기질을 부각할 수 있었다.

천종 성녀가 원형 탁자에 앉아 어두운 표정으로 쌀쌀맞게 말했다.

“나는 이유가 필요하네.”

‘이유가 필요하다고? 필요하다고? 필요하다고……?’

허칠안은 머릿속에 주성치의 대사가 스쳤지만, 이묘진에게 맞아 죽을까 봐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금련 도사께서 내게 도움을 청하셨고, 지불한 보수는 청단이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소.”

허칠안이 말했다.

“천인 간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나쁜 일에 가담하려 하나? 청단이 목숨보다 중요한가?”

이묘진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모르잖아. 내 몸에는 너무 많은 비밀이 있거든. 실력은 내 저력이고…….’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천종이 만약 장군더러 나를 죽이라고 한다면 죽일 생각이오?”

“아니.”

이묘진은 무슨 스승의 명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둥 억지를 부리지 않았지만 아주 진지하게 허칠안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끝내 자네를 이기지 못하면, 종문의 어르신들이 나설 것이네. 나를 믿게. 그들은 자발적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야.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면 심리적 부담도 사라지네. 자네를 죽이는 건 둘째 치고, 필요하다면 경성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걸세. 물론, 그들은 이런 일을 하찮게 여기지만.”

‘세상에나. 천종이 사이비 종교보다 더 무서운데. 사이비 종교는 적어도 자신이 나쁜 짓을 한다는 점을 알거나 나쁜 짓을 하려는 이유는 있던데. 천종은 정말 감정이 없나 보군…….’

허칠안이 침음하며 말했다.

“장군도 앞으로 이렇게 변할 셈이오?”

이묘진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완전히 지친 그녀의 두 눈에서 두터운 정을 보았다. 다른 성분이 끼지 않은 두터운 친우의 정 말이다.

그들은 몇 초간 말없이 서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허칠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정말 너무 슬픈 일이오.”

그 뒤로 일각에 달하는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입을 떼고 말을 하지 않았고, 허영음은 큰 오라버니 품에 누워 전심전력으로 닭다리 뼈를 빨아먹었다.

“종문 쪽은 내가 쥐고 통제하겠네. 정말 부득이한 경우에 부딪히면 자네가 제때 패배를 인정하면 돼. 우리 천종 사람들은 지금껏 원한을 새긴 적이 없어.”

‘그건 그 자리에서 원수의 머리를 쳐내기 때문이잖아……?’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묘진이 간 뒤, 허칠안은 허영음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큰 오라버니를 도와 리나 소저를 불러 주렴. 그녀에게 물을 말이 있단다.”

“아.”

허영음은 작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침상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그렇게 닭다리 뼈를 손에 쥔 채 통통한 몸을 흔들며 뛰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나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활기차고 매력적인 눈으로 말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았나요?”

그녀는 제대로 된 남강 사투리를 구사했다.

“리나 소저, 우리 집에서 여러 날 묵었는데 혹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소?”

허칠안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물었다.

리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없어요.”

이곳의 음식은 남강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야채 요리도 아주 신선하게 삶을 수 있고, 길거리도 넓고 방도 크고 침상도 아주 편했다……. 솔직히 말하면 리나는 남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그녀는 이 집안사람들이 자신을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이곳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다.

“마음에 들면 됐소. 우리 대봉 사람들은 손님 접대를 아주 좋아하잖소.”

허칠안이 말을 하고 몇 초간 멈칫하더니 리나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줄곧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은자를 줍는 사람이 나라는 걸 소저가 어떻게 알았소? 소저는 또 무엇을 알고 있소? 누가 소저에게 알려주었소?”

허칠안은 이미 한참 동안 자신을 괴롭힌 의혹을 묻고 난 바로 다음 순간, 후회했다.

질문 그 자체가 적합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말을 묻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는 자폭했다.

오호 리나는 그가 삼호인지 몰랐다. 허칠안이 그녀에게 알려준 정보는 자신이 천지회의 외부 구성원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그는 방금 질문으로 영락없이 자신의 신분을 까발렸다.

‘아, 전부 이묘진 탓이야. 삼호의 신분이 이미 까발려진 듯한 착각을 들게 했잖아……. 역시 지금 머리가 혼란스럽고 통증을 느끼는 상태와 관련 있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않다…….’

허칠안은 약간 굳은 표정을 한 채 조심스럽게 리나를 쳐다봤다.

“안 돼요!”

리나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흥분하여 두 팔을 휘둘렀다.

“저는 천고 할머니한테 약속했어요. 이 일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되고, 이 정보를 그녀한테 들었다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안 돼요.”

‘아, 정보를 천고 할머니한테서 얻었구나……. 잠깐, 그녀가 아직 나의 자폭에 반응하지 않았단 말인가?! 인재다…….’

허칠안이 리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감복이 충만했다.

“그건 소저의 자유요. 군자는 억지로 강요하지 않소.”

허칠안은 강요할 생각이 없다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리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소저가 허부에서 머무른 그동안의 비용을 한번 따져 보지요.”

그는 우선 리나가 입은 예쁜 치마를 보더니 말했다.

“내 여동생이 소저에게 옷을 두 벌 만들어 주었소. 사용한 건 황제께서 하사하신 최고급 비단으로 한 필에 은자 열 냥 정도고, 인건비까지 더해 옷 두 벌을 계산하면 은자 삼십 냥이오. 숙박비는 하룻밤에 은자 삼 전인데 소저가 집에서 여러 날을 묵었으니 삼 냥 정도겠군.

그리고 음식. 리나 소저, 본인의 식사량은 내가 군말할 필요 없겠지. 이렇게 여러 날 동안 소저는 총 사십 냥의 은자만큼 먹었소. 지금 비용을 지불해 주시오. 총 120냥이오.”

리나는 넋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빨리 은자의 총액을 계산해 낼 수 있다니요.”

‘헤헤, 이상 전부 내가 쓸데없이 되는대로 지껄인 내용이지……. 너 같은 멍청이를 속이는데 설마 꼼꼼히 계산하겠어? 어쨌든 너도 계산해 내지 못하잖아……. 아니, 나 역시 너한테 나쁜 물이 든 셈이지 뭐.’

허칠안은 침상 가장자리를 툭툭 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내 핵심을 파악하시오.”

남강의 까만 피부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저는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돼요.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요.”

“좋소. 그러면 소저는 은전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우리 집에서 나가시오.”

허칠안이 험상궂게 말했다.

“저는…….”

리나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타지인으로서 무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외롭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제가 가면 되잖아요. 금련 도사를 찾아갈게요. 설령 배고픔에 밖에서 죽고, 길거리를 유랑한다 해도 저는 천고 할머니를 팔지 않을 겁니다.”

“잠깐.”

허칠안은 그녀를 불러 세운 뒤 마지막 총력을 기울였다.

“천고 할머니는 남강에 계실 테고, 나는 경성에 있으니 두 지역은 수만 리나 떨어져 있소. 소저가 얘기하지 않고 내가 얘기하지 않는데 어찌 신의를 저버리는 셈이 되겠소?”

“그런가요?”

리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이오.”

허칠안은 진지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교방사에 가서 여인과 잠자리를 가지면 계집질인 것과 같소. 하지만 은자를 주지 않으면 계집질이 아니오. 맞소?”

리나는 어리둥절하다가 생각하더니 허칠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허칠안은 그녀를 차근차근 잘 타일러 가르쳤다.

“게다가 소저는 타향에 있어서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데 생존하기 위해 신용을 좀 희생하는 게 대수요? 소저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리나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고, 다소 융통성을 보였다.

허칠안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계월루 3일 치 식사면 소저가 먹기에 넉넉할 것이오.”

‘꼬르륵…….’

리나는 남몰래 침을 삼키곤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래 성사되었어요. 하지만 맹세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요.”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는 돌아서서 방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몰래 엿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서는 마음 놓고 탁자 옆으로 돌아와 말했다.

“지난번에 삼호가 지서 파편을 통해 그의 친구가 자주 돈을 줍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어요. 우리 고족의 천고부는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이해하고, 위로는 별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산천을 살피지요. 모르는 게 없어요. 제가 천고부의 지도자 천고 할머니에게 물었는데 말씀하시길 은자를 줍는 그 자식은 친구가 아니라 본인임이 틀림없다고 하셨어요…….”

갑자기 리나가 말을 멈췄다. 그녀는 멍하니 허칠안을 쳐다보면서 조금씩 눈을 크게 뜨더니 극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허칠안을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대, 대, 대인이…… 삼호?!”

‘이제야 반응이 왔나?’

허칠안은 속으로 공수하고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맞소. 내가 바로 삼호요. 하지만 나는 신분을 노출하지 않겠다고 금련 도사에게 약속했소. 지금 잘됐소. 우리 둘 다 신의를 저버렸으니 대수로울 거 뭐 있겠소.”

리나는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침내 허칠안이 삼호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모두가 신의를 저버렸다고 하니 마음속의 죄책감이 순간 훨씬 가벼워지는 듯했다.

“천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20년 전에 두 도둑이 대부호 집에서 아주 귀중한 물건을 훔쳐 갔다고 해요. 그 대부호 집안에서 누군가는 이미 반응이 왔고, 누군가는 지금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고요. 천고 할머니께서는 대인이 어디에 있냐고도 물으셨어요. 제가 경성에 있다고 말하니 이 대답을 들은 뒤에 믿기 어려워하셨죠. 마치 대인이 절대 경성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듯했어요.”

“소저, 우선 기다리시오.”

허칠안은 리나의 말을 끊고 높은 베개에 기대어 10분 정도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계속하시오.”

“그 후에 제가 남강을 떠나기 전에 천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 두 도둑 중에 한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라고 했어요. 우리 남강에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는 고신이 극연에서 소생하여 세상을 멸망시키고 구주 천하를 고(蠱)만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거래요. 이 전설은 천고부의 예언자들이 대대로 추론해낸 것으로 무조건 다가올 미래이지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외할아버지께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래서 남강을 떠났어요. 그 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요. 그가 고족에 남긴 최애 고(蠱)가 고갈됐다는 건 그의 죽음을 예지하는 거예요. 천고 할머니는 제게 그 물건이 곧 세상에 나올 거라고도 알려주셨어요. 그녀는 저 역시 거기에 말려들 것이라 예견하셨고, 그렇기에 제게 경성에 가서 기연을 찾으라고 하셨어요.”

리나는 말을 마쳤다. 칠절고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걸 제외하고 다른 정보는 전부 얘기했다.

칠절고는 천고 할머니가 인연이 깊은 사람에게 선물하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리나는 이것이 허칠안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였으니 그에게 밝힐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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