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그가 왔다 (2)
남환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문주, 천인 양종이 겨루는데 문주께서는 어느 쪽이 더 승산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인 양종은 수천 년간 싸우면서 상승상부했습니다. 저희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 참견하지 맙시다. 허나 초원진과 이묘진 두 사람 중에 저는 초원진의 승산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쌍도문 문주가 말했다.
“왜지요?”
남환은 웃으며 반문했다.
“초원진은 6년 전에 위연에게 경성 제일 검객으로 칭송받았습니다. 허나 그때 이묘진은 아직 미성년이었지요. 이 내막만으로도 이미 이묘진을 능가했습니다.”
문주가 말했다.
남환은 오히려 생각이 달랐다.
“문주께서 모르는 바가 있습니다. 초원진은 인종의 기명 제자이나 걷는 건 무사 체계고 수련한 건 인종 검도입니다. 노선에 문제가 생겼지만, 이묘진은 뿌리가 올곧은 천종 성녀이지요.”
‘이런 내막이 있었다니…….’
눈팅족들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어느 경성 백성이 소리 높여 물었다.
“그 두 분은 우리 허 은라보다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들은 남환은 웃어넘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쌍도문 문주는 피식 비웃었다.
“어이, 당신 둘, 무슨 뜻이오?”
경성 백성들은 기분이 나빠졌다.
나비검 남채의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허 은라는 하늘에서 내려 준 인재로 그 자질이 진북왕과 대등하지만, 그는 그저 7품 무사입니다. 그리고 인종 제자 초원진과 천종 성녀 이묘진. 초원진은 몇 년 전에 4품 금라와 겨루어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비록 패했으나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으니 실력이 4품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묘진도 감히 경성에 와 선전포고했으니 자연히 4품이지요.”
경성 백성들이 수련은 모르지만, 간단한 품계 구분은 이해했다. 알고 보니 그들 마음속 대봉의 영웅 허 은라가 고작 7품 무사였다?
천인 간 전쟁의 두 주인공은 확실히 4품이었다.
“헛소리. 감히 허 은라를 비방하다니. 모두 돌을 던져 그녀를 내리칩시다.”
“꼬마 소저가 외모는 빼어난데 말버릇이 아주 고약하구먼. 캭, 퉤…….”
평민 백성들은 아주 실망했고, 이어 분노가 치밀어 나비검 남채의에게 화풀이했다.
“흥, 개자식은 분명 6품인데.”
임안이 불평했다.
그녀는 마음이 좀 언짢았다. 임안의 인식 속 개자식은 운주에서 홀로 수천 반란군을 막아선 대영웅이었다. 관성루 앞에서는 전력을 다해 불문 나한을 꺾었더랬다.
이는 거물이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개자식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에게 비교당하고 분석당했고, 졸지에 개자식의 품계가 고작 7품이라는 점까지 알아냈다.
이런 어마어마한 좌절감은 그녀를 아주 불편하게 했다.
“대봉 경성에서 젊고 4품 수련 경지를 지닌 자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네.”
검은 장포를 두른 강호 떠돌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음, 허 은라는 단연코 4품 무사라 불릴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직 너무 젊기에 초원진과 이묘진과는 차이가 크지.”
또 다른 강호 인사가 덧붙였다.
쿵!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무형의 보호막 위에서 가루가 되었다.
그 강호 인사는 벌컥 화를 내면서도 화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은 경성 관내로 주위가 전부 고관대작과 관아의 고수였다. 그가 만약 손을 대 백성들을 해친다면 틀림없이 관아 강자가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허 은라는 단칼에 금신을 부쉈다고. 얼마나 위엄 있는가. 어떻게 고작 7품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내 말이. 그 무슨 초원진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어째서 두법하러 가지 않았단 말인가. 어째서 승려의 금신을 부수러 가지 않았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경성의 젊은 고수 중에서는 허 은라가 가장 뛰어나네. 자네들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허 은라의 명예를 못 봐주는 게지.”
욕설이 난무했다. 평민 백성들의 반향은 격렬했고 의분으로 가득 찼다.
허나 욕을 하다 보니 허 은라를 위해 말하는 강호 인사는 없었다. 관아 사람 그리고 야경꾼조차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점점 이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거대한 실망감이 솟구쳤다.
바로 이때, 날카롭게 윙윙대는 바람 소리가 머리 꼭대기에서 들려왔다. 한 그림자가 검을 밟고 날아가 위수하 상공에서 멈췄다.
이자는 수려한 용모에 청의 차림이었는데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어리지도 않았다. 이마에 늘어진 흰 머리 한 가닥은 그가 겪은 산전수전을 토로했다.
“초원진!”
아래쪽, 군중 속에서 놀라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또 날카롭게 윙윙대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먼 곳에서 비검을 밟은 여인이 쏜살같이 오더니 초원진 맞은편에서 멈췄다.
천종 성녀는 소박한 장포를 입고, 흑단(黑檀) 도잠(道簪)으로 머리를 묶었다. 희고 날카로운 갸름한 얼굴, 새까만 눈동자, 정교한 입술. 그녀는 딱 소문대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미인이었다.
이 광경을 보자 그전까지만 해도 분노하던 경성 백성들이 갑자기 실성했다.
어검(御劍)이 날아 하늘 높이 섰다. 이는 화본과 설화인 이야기에만 존재하는 신선이었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대체로 말을 타고 행차하는 허 은라는 확실히 체면이 서지 않았다.
“오늘 전투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묘진은 맞은편의 청삼 검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좋소.”
초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수 간의 대결이 도수들의 일이라면, 현재 천인 간의 전쟁은 그들 두 사람의 일이었다.
초원진은 만약 낙옥형이 1품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천인 간의 전쟁이 절망적이라는 걸 알았다. 만약 그가 이 전투를 피한다면, 인종은 그대로 다른 제자를 보내 출전시킬 것이다.
이묘진에게 지고 인종의 체면을 깎기보다는 그가 나가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세 수를 선점할 수는 있었다.
검법을 전수한 인종의 은혜를 갚는 셈이기도 했다.
“모두 열 장(丈) 물러나시오.”
초원진이 크게 소리쳤다.
위수 양안의 구경꾼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천인 간의 전쟁은 일촉즉발이었다. 수많은 두 눈이 허공 위의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긴장되고 흥분되었다.
이대, 갑자기 관통력이 아주 뛰어난 은은한 칠현금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위수 상공에서 울려 퍼지더니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내리쬐는 들판에도 울려 퍼졌다.
이 칠현금 소리는 어우러지지 않아 초원진과 이묘진의 리듬을 흐트러뜨리고, 두 사람의 고조된 기세를 단숨에 꺾었다.
갑자기 이묘진의 표정이 굳은 걸 본 초원진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았고…… 초원진의 표정 역시 덩달아 굳어졌다.
구경꾼들은 칠현금 소리를 따라 쳐다보았는데, 먼 곳에서 날아오는 오봉선(烏篷船)만이 보일 뿐이었다. 뱃머리에는 힘찬 젊은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칼을 짚은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파도가 치는 강의 수면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가 왔다. 전속 bgm을 깔고 천천히 왔다.
* * *
위수가 출렁이고 아침 햇살이 비치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그림자가 칼을 짚은 채 배를 밟고 왔다. 배경에는 곡조가 구성지고 듣기 좋은 칠현금 소리가 흘렀다.
대봉 토박이들은 직접 bgm을 틀고 출전하는 방식을 본 적이 없었기에 순간 놀랐다. 그들은 열심히 실눈을 뜨고 빛과 그림자가 뒤엉킨 여명 사이로 그 남자의 용모를 제대로 보길 원했다.
때마침 아침 햇살이 뱃머리에 있는 사내를 내리쬐었고, 남성적이면서도 수려한 얼굴을 비췄다.
“허 은라다.”
드디어 똑똑히 보았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던 백성들이 크게 소리쳤다.
“그도 관전하러 왔나? 역시 허 은라답군. 나타나는 방식이 평범한 자들과는 다르군.”
비록 방금 강호 인사의 평가로 분노하고 실망했지만, 그래도 탈덕하지 않은 백성들이 많이 있었다.
“개자식이 드디어 왔네.”
여우는 까치발을 들고 아래턱을 치켜올려 먼 곳을 바라보더니 우물우물 말했다.
“하여간 나서는 건 참 좋아해. 두 주인공의 볼거리까지 뺏었잖아. 회경, 얼른 그에게 오라고 지시해.”
그녀는 명색이 공주인 만큼 목청 높여 소리치지 않을 예정이라, 이 임무를 회경에게 내팽개쳤다.
회경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오는 뱃머리 위 허칠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좀 의아했다.
허칠안 이 자는 비록 의기양양하지만, 그런 태도도 그가 어쩔 수 없이 나설 때만 국한되었다. 예컨대 과거 부정행위 사건이라든가 불문 두법 등등 말이다.
이번 천인 간 전쟁의 주인공은 초원진과 이묘진으로 그와는 별 상관없었다. 이치대로라면 그는 성격상, 이 순간에 자신과 임안 곁에 서 있거나 다른 여인의 곁에서 해죽대며 구경했을 것이다.
“참나, 이 자식 아주 신선한데. 칠현금 소리와 함께 배를 밟고 오다니. 이렇게 기묘하게 등장해서 은근슬쩍 초원진과 이묘진을 압도하는 거잖나.”
강율중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야유하며 말했다.
“모르는 자들은 그가 천인 간의 전쟁에 참가하러 온 줄 알겠군.”
‘모르는 자들은 그가 천인 간 전쟁의 주인공인 줄 알겠지…….’
왕비는 까치발을 세우고 강 수면 위, 뱃머리에 우뚝 선 남자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허칠안 이 자를 매우 싫어했다. 방탕하고 여색을 밝히며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았다. 그는 여인이기만 하면 다 좋아했다. 또한 그는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제멋대로 날뛰고 떠벌렸다. 그는 중용과 함축을 몰랐다.
군중들 사이, 허신년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그는 황급히 기침 소리를 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설명했다.
“우리 형님이, 음, 그는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오. 동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
그가 보기에 큰형의 이런 겉만 번지르르한 등장은 정말이지 난처하고 창피했다. 방관자는 방관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이 순간 수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 더 과시할수록 이따가 주눅 들어 군중에 유입될 때 얼마나 망신스러운가.
바로 이때, 나지막하게 읊는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워 떠들썩한 논쟁 소리를 압도했다.
“칼을 옆으로 들고 배를 밟아 위하에 우뚝 서니, 원수를 위함도 은인을 위함도 아니네.”
‘엇? 허 은라가 또 시를 읊으려나 보군. 천인 간의 전쟁에 흥을 돋우려고 그러나? 어쩐지 그가 배를 밟고 왔다더라니.’
적잖은 사람들이 문득 깨달은 기색을 드러냈다.
군중 속, 지식인 이상으로 흥분한 자들은 없었다. 맞다. 60년에 한 번 맞닥뜨리는 천인 간의 전쟁인데 어찌 흥을 돋우는 시사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허 시괴는 영리했다.
‘허칠안이 시를 선물하러 왔나? 훌륭하긴 하구먼…….’
초원진은 명색이 지식인이라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슨 거지 같은 시를 읊어서는 내 싸움을 방해한담…….’
이묘진은 속으로 불평했으나 얼굴에는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같은 천지회 구성원으로서 허칠안이 천인 간의 전쟁에 흥을 돋우기 위함임을 알았다.
허칠안은 구경하는 군중을 훑어보더니 계속해서 낭송했다.
“수많은 전투에서 날을 세우지 않는다 스스로 칭하고, 날 때부터 두 눈은 군웅을 멸시하니.”
‘수많은 전투에서 날을 세우지 않는다 스스로 칭하고, 날 때부터 두 눈은 군웅을 멸시한다라…….’
초원진은 이 말을 듣자 속으로 ‘허’하고 탄식했다. 허칠안의 이 시는 비위를 맞춘다는 의심이 가긴 했지만, 그는 명색이 지식인이라 아주 통쾌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묘진은 그녀 자신에게 들려 주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는 운주에서 비적을 토벌한 그녀의 경험과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허 시괴의 시는 지난날과 다름없이 경외한 기세를 떨쳤다.
사람들은 두법할 때 그가 한 걸음마다 시를 읊으며 불경으로 들어선 장면을 떠올렸다. 매 구절이 모두 보기 드문 좋은 구절로 사람들의 열정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