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20화 (420/712)

420화. 그가 왔다 (1)

“천종 성녀와 형님이 벗이오. 두 사람은 작년 운주 사건 때 인연을 맺었소. 천종 성녀는 우리 형님과 함께 용감하게 적을 무찌르고, 반란군을 참살해 산적을 토벌했소. 고난을 함께 하여 두터운 정을 쌓은 듯하오.”

허신년은 설명하면서 차를 마셨다.

이 말들은 큰형이 그에게 알려준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천종 성녀가 지난 1년 동안 운주에서 사군(私軍)을 조직하여 비적을 토벌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아는 이유는 천종 성녀가 직접 그녀에게 말했기 때문이다.

‘천종 성녀와 허 은라가 두터운 우정을 나누었다고…….’

왕사모는 문득 깨닫고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품고 말했다.

“제가 저택의 객경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천종 성녀 이묘진은 4품의 실력을 지니고 있고, 초원진 역시 그녀와 겨루어도 실력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경성으로 시야를 넓혀 봐도 이렇게 젊은데 4품 수련 경지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고요.”

‘초원진은 젊지 않은데…….’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천인 간 전쟁의 두 주인공은 확실히 뛰어난 인재지요.”

왕사모는 내친김에 말했다.

“허나 몇 년만 더 있으면 허 은라는 틀림없이 그 두 사람과 어깨를 견줄 수 있을 거예요. 두법 후에 경성 사람들 모두 허 은라의 천부적인 자질이 진북왕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허신년은 아래턱을 치켜들고 산뜻한 말투로 말했다.

“형님의 수련 경지는 아직 좀 부족합니다. 이런 유언비어는 전부 교만에 빠지게 하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역시 허칠안을 치켜세우니 허신년의 환심을 살 수 있구나……. 재밌네.’

왕사모는 속으로 분석했다.

* * *

마차가 천천히 달리다가 내성 성문 입구에서 회경과 임안 대오와 우연히 마주쳤다. 금사목으로 만든 마차 두 대가 성문 입구에 멈춰 있었다.

“마마, 저건 왕씨 집안 소저의 마차 아니에요?”

창문의 발을 젖히고 경치를 보던 여종이 왕사모의 마차를 보고 기뻐하며 고개를 돌리고 임안에게 알렸다.

“정말 사모 소저의 마차네.”

임안이 다가가서 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분부했다.

“가서 그녀에게 오라고 통지하거라. 그녀와 동승해야겠구나.”

여종은 즉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 * *

다른 한편, 마차 안에 있던 왕사모는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깜짝 놀라 발을 젖혔다. 그녀는 맞은편에 있는 금사남목 마차의 노란 비단 덮개에 임안이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진 걸 똑똑히 보았다.

그녀는 곧바로 웃으며 대답했다.

“임안 마마.”

임안은 여종을 밀치고 맨손으로 발을 젖히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모 자매도 천인 간의 전쟁을 보러 위수에 가는 거지?”

왕사모는 기분 좋게 ‘네’하고 대답했다.

임안은 순간 기분이 좋아져 도화안을 초승달처럼 구부리고 손짓했다.

“와, 본 공주 마차로 와.”

왕사모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격하게 기침했다.

임안은 친절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왕사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며칠 전에 감기에 걸렸어요. 약을 몇 첩 먹었더니 별 탈 없기는 하지만, 감기 기운을 마마께 옮기면 안 되니까요.”

임안은 아쉬워하는 얼굴로 왕씨 집안 소저에게 잘 쉬라고 당부했다.

왕사모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때, 갑자기 전방에 있던 마차의 차창이 젖혀지더니 차디찬 못 같이 맑은 눈동자가 그녀를 냉랭하게 흘겨보았다.

순간 왕사모는 자신의 모든 기분, 모든 생각을 속속들이 드러낸 듯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웃으며 발을 내렸다.

마차가 어느 정도 길을 빠져나가자 왕사모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했다. 그녀는 가슴을 툭툭 치더니 허신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회경 마마와 가까이 지내는 게 제일 무서워요. 그녀는 너무 똑똑해요.”

허신년이 웃었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심지가 견고하면 모든 상황에 담담하게 임할 수 있다. 설령 속마음을 들킨다 해도 상관없다.

이 점은 허신년이 여러 번 사회적 매장을 겪으면서 갈고닦은 이치다.

삶이 최고의 스승이다.

* * *

금사남목 마차 두 대가 내성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십여 명의 은라와 삼십여 명의 동라를 이끌고 금라 여덟 명이 왔다. 질서정연한 기마 대오도 왔다.

마지막 금라는 며칠간 관아에서 당직을 서기에 떠날 수 없었다.

임안은 야경꾼들이 나오는 걸 보자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기색이었다. 그녀는 줄곧 시위가 너무 적어서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뒤섞인 환경에서는 자신과 회경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임안은 회경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더랬다.

“이렇게 많은 금라, 은라가 동행하니 설령 맞은편이 천군만마라고 해도 나와 회경은 안전하겠어.”

임안은 갑자기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졌다.

회경은 차창의 발을 젖히고 야경꾼을 한번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허칠안은?”

강율중이 고개를 젓더니 농담조로 욕을 했다.

“이 자식은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사무를 보지 못하더군요. 대부분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요.”

* * *

회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내리자 대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성을 지나 관도를 반 시진 넘게 달린 뒤 마차는 천천히 멈춰 섰다.

“마마, 더 앞으로 가려면 걸으셔야 합니다.”

시위장이 말했다.

회경과 임안이 각자 마차에서 나왔는데 둘 다 바지 경장 차림이었다.

회경과 임안은 야경꾼과 궁중 시위의 보호를 받으며 관도에서 나와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걸어 들어갔다. 일각을 걸으니 임안의 바지통과 면 장화에 이슬과 초말(草末)이 잔뜩 묻었다.

“사람 정말 많다…….”

임안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표했다.

위수의 폭은 20장(丈)으로, 물이 불어나는 시기에는 강 너비가 30장(丈)까지 늘어나곤 했다. 이때 위수 양안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칼을 메고 검을 든 강호 인사도 있었고, 경성에서 구경 나온 시정 백성도 있었다.

또한 경성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부잣집 공자, 휴가를 내고 천인 간의 전쟁을 감상하러 나온 관원 및 훈귀 등의 귀족 계층도 있었다.

물론 국자감과 운록서원의 서생 그리고 왕사모 같은 호족의 소저도 빼놓을 수 없었다.

이들 모두 십여 명, 수십 명의 시위를 거느리고 난폭하게 장내를 정리한 뒤, 한 장소를 독차지했다.

“장내를 정리하거라.”

회경이 좋은 장소를 고른 뒤 손짓하여 시위들에게 일하라 명령했다.

“또 거물이 왔구먼.”

“저 여인 참으로 예쁘구먼. 씁……. 곁에 이렇게 많은 금라들이 호위하고 있다고?!”

내쫓긴 강호 인사는 습관이 됐는지 구시렁거리며 활동의 장을 바꾸었다. 그는 내친김에 회경의 신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 대봉의 장공주마마시네. 봉호는 회경이고.”

한 경성 인사가 말했다.

“생각났네. 그날 두법할 때 그녀는 황붕(皇棚)에 앉아 있었어.”

“우리 대봉의 공주마마가 이렇게 절세미인이라니. 혼사를 치르셨나? 부마는 누구인가?”

“황실의 네 공주마마 모두 출가하지 않은 처녀시네. 그녀 곁의 저분은 이공주 임안이고. 내 생각에 임안공주마마는…….”

그는 본래 몇 마디 평가하고 싶었지만, 귀와 눈이 밝은 금라들에게 이쪽에서 왈가왈부하는 말이 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입을 닫았다. 그는 공주마마를 엉터리로 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임안은 인파 속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개자식은? 회경, 개자식은 어디에 있어?”

회경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이때,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임안과 회경이 돌아서서 보니 수십 명의 무장 병사가 칼집을 휘두르며 군중을 몰아냈다.

병사들은 유모(帷帽)를 쓴 여인을 호위했다. 유모에는 얇은 면사를 드리웠고, 안에는 면사가 한 장 더 있었다. 수련 경지가 아무리 높은 무사라고 해도 두 겹의 방어를 뚫고 여인의 참모습을 볼 수 없었다.

“왕비께서 오셨어요. 저희 가서 인사 드려요.”

임안이 회경을 쳐다봤다.

회경은 냉담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금라들은 잇따라 고개를 돌려 시위에게 빼곡하게 둘러싸인 왕비를 살폈다.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진북왕비는 대봉의 제일 미인으로 칭송받았지만, 그녀의 참모습을 본 자는 극히 드물었다. 현장에 있던 금라도 그녀를 처음 본 게 아니지만, 매번 겹겹이 방호하여 아리따운 미모를 볼 기회가 없었다.

“그녀조차 왔다니. 지난번 두법도 왕비마마를 번거롭게 하지 않았건만.”

강율중이 개탄했다.

“두법은 매우 현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운데 뭐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다고. 도문의 천인 간 전쟁은 60년에 한 번이고, 한 달 남짓 분위기가 조성됐으니 궁금하지 않은 자가 없겠지.”

장개태가 말했다.

이때 막 묘시가 되었다. 삼각 더 있으면 천인 간의 전쟁이었다.

위수하반에 수천수백에 달하는 사람이 모여 이어지는 전투를 손꼽아 기다렸다. 백성들의 표정은 장날 장을 보러 가는 듯 아주 흥겨웠다.

군중 밖에 차양막을 치고 차와 아침 식사를 팔았다. 가격은 내성 노점보다 훨씬 비쌌다.

강호 인사의 표정은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천인 간의 전쟁은 60년에 한 번이었다. 매번 모두 대봉 강호의 태평성대로 13년에 한 번 열리는 무림대회에 버금갔다.

“어이, 자네들 보게. 쌍도문의 류운(柳芸)이 왔네. 그녀 곁에 저자는 문주(門主) 정한생(程恨生) 아닌가?”

누군가 외쳤다.

소리를 따라 보니 경장을 입은 한 강호 인사가 걸어왔다. 그들은 만도(彎刀) 두 자루를 등에 메었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눈매가 매서운 점이 특징이었다.

그중에 쌍칼을 등에 멘 어린 낭자의 용모가 유난히 고왔다. 밀색의 피부, 민첩하고 날카로운 눈동자, 마치 날렵하고 힘찬 표범처럼 야생미가 흘렀다.

그녀는 한 중년 남자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 중년 남자의 기운은 함축적이라 지나치게 자신을 뽐내는 문하생보다도 못해 보였다.

* * *

“여애검각 사람도 왔네. 나비검 남채의(藍彩衣)는 참 아름답구먼. 명불허전이야.”

“각주 남환(藍桓)은 현재 수련 경지가 무엇인가? 내가 기억하기로 작년에 그가 4품 무사를 돌파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말이야.”

“나는 만화루의 용용 낭자를 보았네. 헤헤, 역시나 사람을 홀리는 요정이더군.”

“저 몇몇은 청룡사 승려 아닌가?”

결전의 시간이 임박함에 따라 더 많은 강호 문파의 고수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산수(*散水: 어떠한 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수련하는 자)와 달리 근거지가 있고 명예가 있는 ‘거물’이었다.

여애검각의 각주 남환은 시야가 탁 트인 좋은 위치를 고른 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의 쌍도문 문주를 쳐다보며 읍을 올렸다.

“모두가 쌍도문 문주의 수련 경지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던데 오늘 보니 명불허전입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프닝 멘트였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엄숙한 쌍도문 문주가 이에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남 각주, 과찬이십니다. 저는 각주만 못하지요.”

그는 아직 4품에 이르지 않았다.

‘뭐라고? 쌍도문 문주가 여애검각 각주보다 못하다니?’

주위에 있던 강호 인사들의 눈이 반짝이며 빅뉴스를 듣기 위해 분발했다. 장차 지인들에게 허풍 떨 때 이 ‘기밀’로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달달한 용모에 활발한 기질을 띤 나비검 남채의는 밀색 피부의 쌍문 여협객 류운을 쳐다보았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남채의는 거만하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류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찮다는 듯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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