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17화 (417/712)

417화. 나한테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자는 없다 (1)

황갈색 고양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대로 전해지길, 인종과 천종 두 창시자가 한 번은 도리를 논하던 중에 크게 싸워 쌍방이 중상을 입고 종문(宗門)으로 돌아가서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하네. 두 사람은 동시에 <육십갑자마다 천인 간 전쟁을 치른다>라고 유언을 남겼지.

그 후 수천 년 세월 동안 인종과 천종의 도수는 육십갑자마다 한 차례 천인 간 전쟁을 벌이곤 했네.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비기기도 했지. 훗날 점차 전통이 형성되어 도수끼리 싸우기 전에 뛰어난 제자 둘이 각자의 스승을 대신해 출전했네. 이긴 쪽은 세 수를 선점할 수 있지.”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제가 이묘진한테 듣기로는 천인 간의 전쟁 배후에 속사정이 있다고 하던데요? 도사께서는 아십니까?”

황갈색 고양이는 그를 흘겨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만약 모른다고 말하면 응하지 않을 셈인가?”

허칠안도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만약 응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진정한 이유는 천인 양종 도수만이 안다네. 하지만 지난 세월 간 단서에 의하면, 사실 몇 가지를 추측해낼 수 있네.”

황갈색 고양이는 여기까지 말하고 몇 초간 침묵하더니 입을 뗐다.

“대략 이천 년 전에 천종의 한 도수가 바깥 세계와 단절한 채 도를 닦다가 천인 간의 전쟁을 놓쳤네. 그런 뒤에…… 그는 사라졌어. 육백 년 전, 천종의 한 도수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홀로 무신교 총단(總壇)에 뛰어들어 중상을 입고 돌아왔는데 상처를 치료하는 기간에 천인 간의 전쟁을 놓쳤고, 그 역시 사라졌네. 인종에서는 여태껏 1품 육지신선이 나타난 적이 없지만, 천인 간의 전쟁에서 이긴 인종 도수는 극히 짧은 시간 내에 1품에 충격을 가하곤 하지.”

‘천인 간의 전쟁을 놓치면 천종 도수는 사라진다……. 천인 간의 전쟁에서 이기면 인종 도수는 바로 1품 육지신선에 충격을 가한다? 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허칠안은 점점 더 도문의 물이 상상 이상으로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사께서는 이유를 아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허칠안은 생각을 거두고 황갈색 고양이를 주시했다.

위에서 언급한 건 천인 간 전쟁 배후의 비밀이지만, 금련 도사가 그에게 이묘진과 초원진을 막아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낙옥형과 약속한 적이 있네. 장차 지종이 당파를 깨끗이 청산하고자 하는 행동을 개시할 때 그녀가 나를 도와 힘을 보탤 것이야. 그렇기에 나는 천인 양종의 싸움을 미루고 싶네. 지종 도수를 해결하기 전에 그녀에게 이변이 생기길 바라지 않아. 만약 천인 간의 전쟁이 예고된 대로 진행된다면 낙옥형이 위태롭네.”

황갈색 고양이의 눈빛에 진지함과 심각함이 묻어났다.

‘도사께서는 정말 기준에 부합하는 지종 제자입니다. 당파를 깨끗이 청산하기 위해 몹시 애를 쓰시는군요…….’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하였고, 금련 도사의 대의에 조금은 탄복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천인 간의 전쟁을 어찌 저 같은 일개 은라가 저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손사래 쳤다.

“자네에게 천인 양종 도수를 저지하라고 하지 않았네. 하지만 자네가 초원진과 이묘진을 막을 수는 있지.”

금련 도사가 차근차근 잘 타일렀다.

“허 대인, 한번 입신양명하고 싶지 않은가? 경성에 운집한 강호 인사들 앞에 제대로 얼굴을 내밀고 재주를 마음껏 뽐내고 싶지 않은가?”

‘내가 양천환도 아니고, 나는 허세 부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허칠안이 물었다.

“도사님의 뜻은 저더러 천인 간의 전쟁에 참여하라는 말입니까? 이건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우선 저는 그들을 이기지 못하고, 둘째로 설령 3일 뒤에 있을 싸움을 방해한다 칩시다. 그럼 5일 뒤에는요? 10일 뒤에는요? 도사님, 이 방법은 안 됩니다.”

황갈색 고양이는 고개를 살짝 젓더니 후배를 일깨워주는 말투로 말했다.

“수를 내려면 순서가 있어야 하는 법이고, 일 처리도 그러하네. 자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비집고 들어가면, 이묘진과 초원진도 당연히 자네를 상대하지 않을 걸세. 다행히 전투를 깬다고 해도 후속 전투를 깨기란 불가능하지. 하지만 자네가 내게 이유를 찾아 줄 수 있네.”

“이유요?”

허칠안은 반문했다.

“예컨대 허 대인이 보기에 천인 양종은 언급할 가치가 없고, 양종 제자가 그저 그러할 따름이라 자네도 솜씨를 발휘하여 그들과 맞붙고 싶다고 하는 거지. 군웅(群雄) 앞에서 그들에게 싸움을 걸면 그들은 도박할 걸세. 만약 그들이 자네와 싸워서 이길 수 있으면 천인 간의 전쟁은 계속될 테고,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자네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천인 간의 전쟁은 진행하지 않는 걸세.”

허칠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됩니까? 이렇게 억지스러운 이유는…….”

금련 도사는 ‘허’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그건 자네가 강호에서 떠돌아다녀 본 적이 없어서야. 강호 인사의 선전포고는 지금껏 단순하고 거칠었네. 전투에 응하지 않으면 아주 잔인하게 응할 때까지 모욕을 준다네. 이 정도면 그래도 규칙을 중시하는 편일세. 규칙을 중시하지 않으면 바로 찾아가 현장을 부수고 난동을 부릴 거야.

이묘진과 초원진 모두 자존심이 세고 승부욕이 강한 자들이네. 자네가 만약 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체면을 깎는다면, 십중팔구 전투에 응할 걸세. 그리고 일단 응하면 약속이 성립되는 것이네. 설령 천종의 윗사람이라고 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걸세. 최대한 빨리 자네를 해결하라고 이묘진을 재촉할 수밖에.”

‘천종 윗사람이 정말 잇따라 산에서 내려와 한 사람씩 나한테 싸대기 날리지는 않겠지?’

허칠안이 말했다.

“만약 그들이 끝내 저를 이기지 못하면 천인 간의 전쟁은 진행되지 않습니까?”

황갈색 고양이는 다시 그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빈도는 허 대인의 이 점을 가장 높이 사네. 바로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 말이야. 내가 말했잖나. 천인 간의 전쟁을 저지할 수 없다면 미룰 수는 있다고. 자네가 일 년 반만 늦춰 주면 되네. 물론 확실히 천종의 미움을 살 게야.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만 자네는 문제없지 않은가.”

‘내가 문제없다는 말이야, 아니면 도사가 나한테 문제없다고 억지로 말하는 거야…….’

허칠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왜요?”

황갈색 고양이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충분히 젊고, 이묘진과 친분이 있지 않은가. 만약 다른 사람이 억지로 참여한다면 천종의 윗사람들은 아마 나서지 않을 테지. 하지만 저지한 사람을 베어 죽이라고 이묘진에게 명령할 테고, 심지어는 상응하는 법보와 단약을 하사할 것이야. 이 점은 의심할 필요 없네. 천종 도수는 충분히 무관심하거든.”

“그럼 저는 그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나를 믿게. 낙옥형이 죽지 않으면 장차 자네는 상상하기 어려운 선물을 얻게 될 것이네. 이 역시 내가 자네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이유 중 하나지.”

황갈색 고양이가 여유 있게 말했다.

‘고양이가 그림의 떡을 주다니…….’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더니 말했다.

“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양이는 인내심을 충분히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돌 탁자 옆에 앉아 이 일에 개입했을 시 장단점을 고민했다.

우선 공수표(상상할 수 없는 선물)는 배제한다.

단지 초원진과 이묘진의 싸움이다. 이건 절차탁마가 아니라 스승의 사명을 짊어진 사투다. 더욱이 초원진은 진정한 인종 제자가 아니지만, 그가 다루는 검법은 인종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향불을 그에게 갚으라고 했기에 그는 전력을 다해서 낙옥형을 위해 세 수 선점을 따낼 것이다.

이묘진은 일을 처리할 때 맺고 끊는 게 확실하다. 그녀한테 천인 간의 전쟁에서 고의로 져 달라고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격 외에 천종의 체면과도 연관된다.

‘가장 좋은 해결은 1승 1패로 쌍방 모두 피해를 보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결과는 아마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다치는 경우겠지? 하지만 내가 만약 천인 간의 전쟁을 저지할 수 있다면,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있다. 허나 나는 그저 6품 무사고, 뛰어난 두 제자의 실제 전투력은 4품…….

음, 신수 승려의 정혈로 자양하여 내 금강신공은 진작에 정상 품계를 초월했지만 말이야. 나는 아마 전투력 방면에서 6품 무사보다 강할 테지만, 확실히 4품 나아가 5품 무사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방어력을 논하자면, 4품 무사도 아마 나보다는 못할 것이다. 금련 도사가 이렇게 내가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니 내 속사정을 간파한 듯하다……. 그날 나와 이묘진이 맞붙었을 때 도사가 갈피를 잡았나?’

“도사님, 저 도사님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초원진과 이묘진 모두 천지회의 내부 구성원이지만, 종문의 명령에 구애를 받기에 손을 떼지 않을 겁니다. 그들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모두가 보기 원치 않을 테지요.”

허칠안이 탄식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치 꼬마 아이를 낚는 데 성공한 어른 같았다.

“천종 윗사람들의 반감이라면 저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도사께서 저를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허칠안이 말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다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저는 거절합니다.”

허칠안은 결론을 냈다.

황갈색 고양이의 미소가 갑자기 굳어졌다.

“왜?”

황갈색 고양이는 절박한 말투로 말했다.

“허칠안, 상부상조가 천지회의 취지네.”

‘일이 있을 때는 허 대인, 일이 없을 때는 허칠안. 도사께서는 정말 현실적인 고양이입니다…….’

허칠안은 뼈아픈 경험을 하소연했다.

“지난번에 저희가 리나를 찾으러 갔을 때 하마터면 지하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이득을 보기는커녕 목숨만 잃을 뻔했지요.”

“자네는 옥새의 기운을 흡수하지 않았는가.”

황갈색 고양이는 앞발톱을 들어 탁자를 쳤다.

“그럼 이번에는요? 이번에는 제가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허칠안은 한탄하며 한숨 쉬었다.

“도사님, 제가 명성을 얻기까지 쉽지 않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경성 백성들 모두 저를 숭배하고, 저를 대봉의 영웅으로 여긴다고요. 초원진과 이묘진의 수련 경지는 저보다 훨씬 높습니다. 저더러 얻어맞으러 가라면, 저 혼자 칼 한 자루 쥐고 수천의 반란군과 홀로 싸웠다는 명성에 해가 됩니다. 제가 불문을 격파했다는 명성에도 해가 되고요.”

황갈색 고양이는 탄식했다.

“자네 뭘 원하는가?”

허칠안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가지 요구가 있습니다. 첫째, 보물 하나를 원합니다. 무엇인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으나 도사께서 저한테 빚진 셈 치십시오. 하지만 앞으로 제가 요청하는 건 도사께서 번복하실 수 없습니다.”

황갈색 고양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자네 역시 터무니없이 요구하면 안 되네……. 휴, 두 번째 요구는 뭔가?”

허칠안이 표정을 바로잡고 말했다.

“저는 청단(靑丹) 한 알을 원합니다.”

“!!!”

황갈색 고양이는 발톱을 들어 탁자를 세 번 힘껏 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청단은 탈태환과 마찬가지로 일갑자에 고작 세 알 제련하네. 탈태환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데 청단은 정제 기법이 복잡하고, 재료가 비싸서 원가를 따지자면 탈태환의 몇 배일세.”

‘이 자식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나? 만약 나한테 청단 같은 보물이 있다면, 애당초 영보관의 낙옥형을 찾아가서 단약을 구해 달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