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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15화 (415/712)

415화. 선전포고 (1)

한참이 지난 뒤, 문무백관들이 조회를 마쳤다. 그다음이 바로 전시였다.

설령 허신년일지라도 이 순간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였다.

“꿀꺽…….”

공사 사이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 갑자기 뒤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로 호통치고 욕을 퍼붓는 소리였다.

그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오문 문 너머로 문무백관의 가는 길을 가로막은 백의 술사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 백의는 사람들을 등진 채 주위의 호통 소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유가 8품인 허신년은 호통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양천환, 자네 반역을 일으키고 싶나? 속히 꺼지게!”

“양천환, 자네 뭘 하고 싶은가? 여기는 오문이고, 오늘은 전시일세. 소란을 피우고 싶어도 안 되네!”

욕설이 오가는 사이로 나지막한 탄식이 들려오더니 백의가 천천히 말했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랫동안 전해지리라! 퉤……!”

찰나의 적막이 흐르고, 이내 문무백관들의 감정이 격앙되었다. 그들이 왁자지껄 떠들어 대자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공사 하나가 망연하게 말했다.

“이, 이건 은라 허칠안이 제공들을 비꼰 시 아닌가? 그, 그 백의는 사천감 사람 같던데?”

“그가 사라졌네…….”

공사 사백여 명은 정숙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귓속말로 속닥대고,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려 오문을 쳐다봤다.

“정숙!”

예부의 관원이 큰 소리로 호통 치며 말했다.

“자네들 일이 아니니 마음 놓고 시험을 보면 될 것이야. 만약 누군가 다시 귓속말로 소곤댈 경우, 오문에서 쫓아낼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3년 더 기다리겠는가?”

공사들은 갑자기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금 흩어진 제공들이 다시 돌아왔다. 누군가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누군가는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졌으며 누군가는 분노로 치를 떨며 금란전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각 후, 제공들은 금란전에서 나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양천환이라……. 이 이름 아주 낯이 익는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단 말이지…….’

허신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경성 운록서원의 공사, 급제자 허신년.”

이때, 예부 관원의 목소리가 허신년의 생각을 끊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홍려사(鴻臚寺) 서반(序班) 관원 손에서 잘 밀봉된 시험지를 받고, 고개를 들어 금란전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 * *

전시는 하루에 책문만 시험을 보고, 날이 저물 때쯤 시험지를 제출한다.

허신년은 석양빛을 딛고 황궁을 나섰다. 큰형이 황성 입구에서 말 등에 높이 앉아 손에는 다른 말의 고삐를 쥐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내가 너를 데리러 가겠다고 숙부께 말씀드렸다.”

허칠안이 물었다.

“어떻게 봤니?”

“그럭저럭요!”

허신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제가 국자감 서생이라면 일갑은 따놓은 당상이에요.”

‘……너 제발 허세 부리지 마!’

허칠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구나. 이래야 큰형의 명성에 어울리지. 나중에 제삼자가 너한테 호가견제(*虎哥犬弟: 호랑이 형과 개 아우)라고 하지 않을 거야.”

허신년은 탄식하며 말했다.

“물론 형님이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어쨌거나 지식인은 아니잖아요. 허부가 경성에서 입지를 굳히고 남들에게 존중받으려면 과거 출신의 지식인이 한 명 더 있어야 해요.”

허칠안은 ‘응’하고 대답했다.

“신년, 열심히 노력하렴. 나는 방금 임안공주마마 저택에서 나왔단다.”

“…….”

허신년은 공수했다.

그가 졌다. 역시 허세로는 큰형을 이길 수 없다.

허칠안은 말고삐를 허신년에게 내던지고 말했다.

“신년아, 너 이미 과거의 길에서 걸어 나왔으니 오늘 저녁에 큰형이 한턱내마. 교방사에 가서 축하하자꾸나.”

“어머니와 여동생은…….”

허신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숙모한테 오늘 야간 순찰이라고 말했고, 너는 전시가 끝났으니 동창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게 정상적인 일 아니냐?”

허칠안이 말했다.

“형님 말에 일리가 있네요.”

허신년이 웃었다.

* * *

이튿날, 새벽녘의 영매소각에서 부향이 널찍하고 화려한 비단 평상에서 숙면하다 ‘음’하고 소리를 내더니 달콤하면서도 나른한 숨결을 뿜어냈다. 풍성하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이 떨리면서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나타난 건 허칠안의 높은 콧대와 선이 수려한 옆얼굴이었다.

그는 이미 깨어 조용히 지붕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허랑.”

부향은 이불 속에서 양팔을 내밀어 허칠안의 목덜미를 안는 동시에 말썽을 피우는 그의 손을 억눌렀다.

“좋은 아침은 무슨 좋은 아침이오? ‘어젯밤에 완전 훌륭했어요!’라고 말해야지.”

허칠안은 하품하며 물었다.

“몇 시요?”

부향도 하품하더니 볼로 허칠안의 얼굴을 문지르며 애교스럽게 말했다.

“물시계는 침상 다리에 있으니 허랑이 직접 보세요.”

허칠안은 상반신을 침상 밖으로 내밀어 침상 다리를 내려다보다가 침상에서 팔짝 뛰어올랐다.

“진시(辰時)라니. 애 먹이는 요부 같으니라고. 나는 즉시 관아로 가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하반기 월봉도 없어질 거야.”

부향은 팔뚝으로 머리를 괴고 웃으며 말했다.

“어제 허랑이 저를 괴롭혔으면서 적반하장은. 퉤.”

* * *

허칠안은 영매소각을 나선 뒤 마구간으로 가서 자신의 암말을 끌고 갔다. 예상대로 신년의 말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이미 교방사를 떠났다는 의미였다.

그는 암말을 타고 허부로 돌아가는 길에 좌우를 두리번거렸으나 청귤을 파는 자를 끝끝내 보지 못했다.

“종리가 아직 사천감에 있는 것 같던데 그녀를 데리러 가야겠어.”

허칠안은 중얼거리더니 길을 돌려 사천감 방향으로 달렸다.

* * *

“이랴이랴이랴…….”

허칠안은 제동을 걸고 사천감 지하로 통하는 돌문을 열었다. 그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

“종리, 사제를 데리러 왔습니다.”

목소리가 광활한 지하에 울려 퍼졌다.

잠시 뒤, 곧장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등불이 연소하면서 적색의 아우라가 사람 하나의 윤곽을 비추더니 점점 선명해졌다.

머리를 산발한 종리가 계단에 올랐고, 낭랑한 목소리가 머리카락에서 전해졌다. 다소 기뻐하는 듯했다.

“왔는가.”

“가시죠. 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요.”

허칠안은 돌아서서 가려 했다.

종리는 몸을 돌려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 사형, 문을 닫고 잘 반성하십시오. 더는 스승님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손잡이를 끌어당겨 돌문을 닫았다.

허칠안은 밖으로 걸어가면서 호기심에 물어봤다.

“양 사형이 무슨 일을 잘못했나요?”

종리는 그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양 사형이 어제 오문에 가서 문무백관이 가는 길을 막아선 뒤 자네 시를 읊었다네. 제공과 폐하께서 크게 노하시어 사람을 보내 스승님에게 양 사형을 엄중히 처벌하라고 견책했다네. 스승님께서는 양 사형을 매달고 한 차례 때리신 후에 열흘 간 잘못을 반성하라고 지하에 수감했네. 제공과 폐하께서는 그제야 물러나셨고.”

허칠안은 깜짝 놀라 멍해지고, 표정이 굳었다. 그는 허세를 부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감정이 양천환을 매달고 한 차례 때렸다니? 그때 내가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 너무 애석하다!!’

그는 속으로 안타까워하면서도 본연의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대당을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9품 의사들이 전부 도망간 탓에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종리에게 물었다.

“몸 냄새를 감추는 가루약이 있나요? 제가 어젯밤에 술을 좀 마셨는데 사저는 아마 모를 거예요. 저희 숙모와 여동생이 제가 술 마시는 걸 아주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

종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순히 말했다.

“지분(脂粉) 냄새를 숨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네. 기다려 보게. 내가 자네에게 마취용 향을 찾아 주겠어.”

‘이거 좀 어색하네…….’

허칠안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 * *

그가 허부로 돌아오니 정원의 돌 탁자 옆에서 리나와 소소가 승부를 겨루고 있었으며, 허영음은 멀지 않은 곳에서 기마 자세를 했다.

“큰 오라버니…….”

콩알이는 아주 기쁜 척 그를 맞이하더니 이 기회를 틈타 게으름을 피우며 휴식했다.

리나는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부임이 확실했다. 그녀는 엄숙함과 사색이 가득한 예쁜 얼굴을 하고 온 정신을 기울여 바둑판을 주시했다.

‘별나긴 해……. 미적분을 토론하고 있는 두 열등생을 본 듯해…….’

허칠안은 궁금해하며 걸어가 눈여겨보았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오목을 두고 있었다!

‘가야지, 가야지…….’

그가 오는 길에 이미 종리에게 상기시켰기 때문에 사천감의 오사저는 귀신이 마당에 앉아 오목을 두고 있는 걸 보고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을 단지 몇 번이고 다시 볼 뿐이었다.

“아주 보기 드문 매(魅)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매는 예쁘고,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에서 행인을 꾀어낸 후에 그들의 정기를 빼먹는 일을 즐긴다는 특징이 있지. 음, 이 정기는 올바른 정기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 의사를 표했다.

종리는 이 모습을 보더니 더는 말하지 않았다.

뒤이어 허칠안은 이묘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순간 깜짝 놀라 마당으로 뛰어가 소소에게 물었다.

“너희 집 주인은?”

소소는 고개도 들지 않고 바둑판에 온 정신을 쏟은 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보관에 갔어요.”

* * *

장포 차림의 이묘진이 황성 문밖에서 호분위에게 가로막혔다.

그녀는 조급해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돌아서서 얼마간 되돌아갔고 등을 툭 치자 ‘쨍’하는 소리와 함께 비검이 칼집에서 나왔다.

멀지 않은 곳의 호분위는 이 모습을 보고 그녀가 강제로 황성에 뛰쳐 들어가려는 줄 알고 아연실색하며 잇따라 무기를 뽑았다.

이묘진은 가뿐하게 검 등으로 뛰어올랐고, 비검은 그녀를 데리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더니 20장(丈) 고공에서 멈췄다. 이 고도에서는 아주 먼 곳에 있는 영보관을 볼 수 있었다.

성벽 위의 호분위는 활시위를 당기고, 상노와 화포를 움직여 이묘진을 조준했다. 장관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즉시 발사였다.

호분위 천호는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이묘진을 살폈는데 가슴속이 번쩍했다.

‘장포, 여인, 황성에 들어오려 한다……. 천종 성녀 이묘진인가? 천인 간 전쟁의 주인공 중 한 명?’

하지만 이묘진이 만약 고집스럽게 비검으로 황성에 돌진한다면, 그녀를 기다리는 건 금군 고수와 야경꾼들의 반격임이 틀림없었다.

이묘진은 당연히 자신이 갇혔다는 걸 알았지만, 문제가 크지는 않았다. 그녀는 황성에 강제로 쳐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먼 곳에 있는 영보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전에 기기를 가라앉히고 청월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종 성녀 이묘진, 스승님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인종 제자와 절차탁마하며 도리를 논하고자 합니다. 시간, 장소는 인종 도수께서 정하시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마한 관통력이 있었다. 귀가 멀 정도로 진동하지는 않았으나 멀리까지 전해져 황성 안팎에서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황성 안에 거주하는 고관대작, 종실, 관아의 관원들이 이 순간 모두 이묘진의 ‘선전포고’를 들었다.

황성 밖, 붉은색 성벽과 인접한 내성 주민들 역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행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노점상은 고함을 멈추고 잇따라 고개를 돌려 황성 방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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