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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12화 (412/712)

412화. 중대한 사안

왕 재상이 성큼 나와 읍을 올리며 말했다.

“이 계책은 나라와 백성에게 화를 미칠 것입니다. 원웅을 벌하십시오! 폐하, 바야흐로 춘경입니다. 백성들이 농사일로 바쁜 시기에 요역을 더 늘려서는 안 됩니다. 자고로 식량은 백성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춘경 때 백성들을 방해하면 안 됩니다. 또한, 작년에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백성들에게 남은 식량이 많지 않습니다. 이 계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여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좌도어사 원웅이 미간을 치켜올리며 반박하려던 차에, 저상룡이 냉소를 지으며 하는 말이 들렸다.

“왕 재상께서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니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다만 초주 각지의 백성은 대봉의 백성이 아닙니까? 왕 재상께서는 그들의 생사를 보고도 못 본 체하실 셈입니까?”

왕 재상은 태연하게 말했다.

“조정에서 북쪽 지역에 8만 6천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모두에게 좋은 땅 여섯 묘(畝)를 지급하였고, 군전(軍田)은 5천 경(頃)에 달하오. 매년…….

변방에서는 오랫동안 전투가 없었고, 초주 각지는 예년 날씨가 매우 좋소. 설령 조달할 군량과 마초가 없다고 해도 초주의 식량 비축에 따르면 수개월을 버틸 수 있지. 어찌 갑자기 돈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해졌겠소. 아마도 그 군전을 누군가에게 착복당했겠지.”

초주는 대봉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주로, 북방 오랑캐의 영토와 인접했다.

저상룡은 친왕을 등에 업었기에 조금도 겁내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지식인은 입을 놀리지 않으면서 전투해 본 적 있습니까? 병사들을 이끌어 본 적 있습니까? 경성에서 누리는 경들께서는 변방의 장병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폐하, 이번에 오랑캐가 맹렬한 기세로 몰려왔습니다. 작년 말에 이미 수차례 큰 전투를 치렀고요. 왕야는 초인적인 용기는 당해 낼 자가 없기에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 만약 군량과 마초가 부족하고 후방 근무를 보충할 수 없다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그르쳤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상룡은 읍하며 말했다.

“왕야께서는 용병술이 신과 같고 더없이 용맹하십니다. 오랑캐 놈들이 몇 번 패전한 뒤에는 저희 군과 정면으로 대치할 엄두를 내지 못하더군요. 기병 부대의 민첩함에 의지하여 사방에서 약탈할 수밖에 없지요. 저희 군이 비록 우세를 차지하고 있으나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조정에서 그들의 공로를 잊지 않았다는 점을 장병들이 알 수 있도록 폐하께서 급료와 보급품, 군량과 마초를 지급해주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왕 재상은 미간을 찌푸렸다.

작년 말, 성을 수호하지 못한다며 지탄받는 진북왕이 탄핵당한 뒤, 북쪽에서 당보에서 보내왔는데 확실히 진북왕이 수차례 승전하면서 변방을 침략하는 오랑캐를 저지했다고 적혀 있었다.

조국공이 즉시 말했다.

“진북왕께서 고생하시어 세운 콩이 크니 저희는 당연히 그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폐하, 운량역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계책이옵니다. 게다가 만약 보급품과 급료를 보내지 못한다면, 군사 정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이는 소탐대실이옵니다. 설령 부적절한 점이 있다고 해도 가을 추수 이후에 따져야 합니다. 이 일로 군량과 마초, 보금품과 급료를 억류해서는 안 됩니다.”

훈귀 몇몇이 찬성을 표했다.

전쟁에 관해서는 그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문관보다 훨씬 더 발언권이 있었다.

왕 재상이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 이 일은 장기적으로 협의해야 합니다.”

원경제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말했다.

“여러 경들 생각은 어떠한가?”

제공들은 이 상황을 보자 잇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아뢰었다.

“당연히 진북왕을 전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폐하가 자신들 쪽으로 기운 게 확실해 보이자 입방정을 떨었다.

왕당의 몇몇 중역이 슬그머니 왕 재상에게 말을 삼가라고 눈짓했다. 폐하가 진북왕을 얼마나 신임하는지는 조당 위아래가 모두 아는 바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해 진북왕에게 진국보검(鎭國寶劒)을 하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경제는 위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위 경, 자네는 군법 대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 재상은 즉시 위연을 쳐다봤다.

위연이 대열에서 나와 읍을 올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쟁이 없을 시, 군인은 군전을 갈고 파종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조정에서 군량과 마초, 군수물자를 할당하는 건 지극한 도리이지요.”

왕 재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깊은 눈빛으로 위연을 쳐다봤다.

저상룡은 이 말을 듣더니 미소를 띠었다. 전쟁 방면으로는, 입만 놀릴 줄 아는 지식인 무리의 백 마디보다 위연의 한 마디가 나았다.

군량과 마초 그리고 보급품과 급료를 얻어 내면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온 그의 임무가 절반 완성된다.

좌도어사 원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연이 그의 계책을 지지한다니 다소 뜻밖이었다. 그는 자신이 전혀 관여하지 않고도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풍파를 피할 수 있음을 알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일은 폐하의 뜻에 부합했다. 안으로는 전쟁을 원조하는 훈귀가 있으며 밖으로는 ‘압력을 가하는’ 오랑캐 대군이 있으니 대세에 속했다. 이 일을 반대하는 제공들 역시 형세를 파악했다.

어찌 짐작했겠는가? 위연이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허나 그 전에 소신 폐하께 아뢸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쳐다보았다.

위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제공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경제가 말했다.

“말하게.”

“수하의 동라가 경성 교외에서 강호 인사들이 사투를 벌이는 걸 발견하고는 나아가 큰소리로 저지하였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쪽수가 많은 한쪽이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포위하여 목을 벤 뒤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위연은 마치 사건의 진상이 바로 그가 한 말인 듯 우렁차게 말했다.

“죽은 자가 임종 전에 ‘북방에 변화가 생겼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원경제를 포함해서 자리에 있던 제공들은 위연의 말을 듣더니 안색이 변했다.

저상룡은 고개를 홱 돌려 위연을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무례하게 굴 엄두는 나지 않아 목을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북방에는 당연히 변화가 나타납니다. 오랑캐가 사방에서 약탈하고, 전쟁을 도발하지 않습니까…….”

위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북방에서 오랑캐가 삼천 리 대량 학살을 벌이는데 저 장군은 만행을 저지른다는 한마디로 얼버무릴 셈인가?”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듣고선 아연실색했다. 더욱이 원경제는 의자에서 일어나 대청 아래에 있는 위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위연, 말을 똑바로 하게. 어째서 혈도 삼천 리라는 뜻인가……. 어?!”

저상룡이 황급히 말했다.

“폐하, 절대 없는 일입니다…….”

“닥쳐라!”

원경제는 손을 들어 말을 끊고, 그를 냉랭하게 쳐다보더니 돌아서서 위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증거라도 있는가?”

위연은 품속으로 손을 뻗어 향낭을 꺼냈다. 그가 붉은 끈을 풀자 푸른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라 허공에서 비틀더니 생김새가 모호하고 눈빛이 멍한 사나이로 변했다. 그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혈도 삼천 리, 혈도 삼천 리.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해 주십시오…….”

위연은 이어 말했다.

“소신이 이미 이자의 시체를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궁문 밖에 있으니 폐하께서는 사람을 보내 검시하시면 됩니다. 이 자는 북방 인사입니다!”

어서방 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원경제는 천천히 일어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검시하거라!”

늙은 태감은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명령을 전하러 돌아갔다. 그는 마치 도망치는 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원경제는 용의에 높이 앉아 어두운 표정을 한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래쪽의 제공들 역시 소리 없이 눈빛을 주고받았고, 저상룡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위연을 곁눈질로 노려보았다.

그가 마음을 졸이며 일각을 기다리니 늙은 태감이 돌아와서 원경제의 귓가에 속삭였다.

원경제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사천감 술사가 입궁하여 말을 물을 것이다. 짐이 피곤하구나. 여러 경들도 편전에 가서 잠시 쉬시오.”

그는 저상룡을 주시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는 이곳에 남게.”

원경제는 말을 마치고 먼저 일어나 어서방을 나섰다.

제공들은 환관의 안내를 받아 편전에 쉬러 갔다.

* * *

호부상서는 편전 안에서 차를 받쳐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무표정인 위연을 쳐다보고 떠보며 말했다.

“위 공, 이 일이 사실입니까?”

순간 모든 관원이 위연을 쳐다보았다. 진지한 표정의 위연은 호부상서에게 쌀쌀한 눈빛으로 답했다.

“조 대인은 본좌가 농을 친다고 생각하시오?”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요.”

호부상서가 탄식하더니 말했다.

“혈도 삼천 리라.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북방에서 사람이 얼마나 죽었다는 말입니까? 야경꾼 관아의 첩자가 도처에 널렸는데 왜 소식을 받지 못했지요?”

위연은 호부상서의 타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 재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주향의 시간이 지나고 늙은 태감이 편전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말했다.

“제공들께서는 어서방으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이어 사천감으로부터 소환한 백의 술사가 저상룡과 문답을 진행했다. 대답은 예상대로 저상룡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진북왕은 북방에서 오랑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북방 오랑캐의 유격 전술은 확실히 진북왕에게 아주 큰 골칫거리를 안겨 주었고, 북방 변방을 지키는 군인들을 지치게 했다.

오랑캐 대군은 변방 밖에 가로막혔기에 혈도 삼천리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어서방 안. 한순간에 분위기가 풀리면서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흥!”

저상룡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위 공께서 어디서 얻은 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마터면 폐하와 제공들께서 왕야를 오해하실 뻔했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했으나 왕야께서 위 공의 미움을 사지는 않았지요?”

위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 걸어 나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큰 관련이 있습니다. 저 장군의 말이 사실일지 몰라도 북방의 상황이 정말 그러하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저상룡이 미간을 치켜세우고 반박하려던 참에 왕 재상이 대열에서 나와 맞장구를 쳤다.

“폐하, 소신은 위 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대한 사안인 만큼 경솔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왕 재상과 위연의 선동에 제공들은 잇따라 호응했다.

원경제가 침음하더니 말했다.

“여러 경들은 이 일을 어떻게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왕 재상이 말했다.

“폐하, 군량과 마초, 보급품과 급료를 계속해서 거두어 초주로 운반하면 됩니다. 동시에 수행하는 흠차 대오를 북방 변방으로 파견하여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입니다.”

위연이 말했다.

“신은 동의합니다.”

원경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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