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11화 (411/712)

411화. 시체의 신분

“맞아. 소소 낭자의 말에 일리가 있어. 예컨대 자네 곁에 활을 잘 쏘는 자 역시 군인은 아니지.”

허칠안은 곁눈질을 한번 하더니 끊기지 않는 손동작으로 머리 없는 시체를 살피며 말했다.

“여러분 자세히 보시오. 그의 허벅지 아랫부분에는 굳은살이 없소. 만약 오랫동안 말을 탄 군인이라면, 허벅지 쪽에 분명히 굳은살이 있을 것이오. 군인이 아니면서도 활을 잘 쏘는 점은 북방 사람의 특징과 부합하오. 대봉 각지의 강호 인사는 활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 않소.”

북방 사람은 활과 화살을 잘 다룬다. 보통 성인 남자라도 활을 쏠 수 있다. 허칠안이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북방 몇 개 주의 강호 인사는 외출할 때 칼과 활을 기본으로 챙긴다.

심지어 어떤 때는 비수와 단도로 대체할 수 있어 칼은 없어도 되지만 활은 없으면 안 된다.

이때 소소는 반박할 구실이 하나 또 떠올랐다.

“혹 궁병(弓兵)은요?”

허칠안은 비웃으며 말했다.

“누가 궁병을 파견하여 서신을 전하겠니? 잘못 추측한 게 아니라면 이 자는 아마 북방의 강호 인사겠지. 그가 전하고 싶었던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누군가에게 파견되었는지 누군가의 독수에 걸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이묘진은 소리 없이 탁한 숨을 내쉬더니 흐뭇해하며 말했다.

“그럼 그의 일은 자네가 맡아서 처리해 주게. 자네는 명색이 야경꾼 은라이니 마땅히 이런 일을 처리해야지.”

소소 역시 따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비록 이 못난 남자가 여색을 좋아하고 얄밉지만, 능력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 분석은 일리 있고 근거도 있었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수긍했다.

그녀와 주인님은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떻게 조사해 나가야 할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 일을 맡긴 후 바로 단서가 잡혔다.

비록 소소는 쓸데없이 참견하는 이묘진에게 시도 때도 없이 불평하고, 남자의 정기를 흡수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선량한 여자 귀신임을 알았다.

그들이 머리 없는 시체 사건을 만약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녀와 이묘진은 심리적인 부담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허칠안은 아주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돋보였다.

* * *

이묘진과 소소에게 객실을 마련해 주고 취사부에게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분부한 뒤, 허칠안은 서재로 돌아와 시체를 지서 파편에 거두고 잔혼을 불러들였다. 그는 암말을 타고 관아로 갔다.

“위 공께서 북방은 전쟁이 빈번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대봉이 잇따라 패전하니 문관들이 상소문을 올려 진북왕을 탄핵했으나 원경제가 억지로 위연에게 책임을 돌려 그의 좌도어사 관직을 박탈했다. 혈도 삼천 리라. 이런 큰일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왜 전에 들어보지 못했을까? 사건이 중대하니 즉시 위 공에게 보고드려야 해.”

암말은 미친 듯이 달려 관아에 이르렀고, 허칠안은 입구에 당직 서는 하급 관리에게 말고삐를 건넨 뒤 황급히 호기루로 달려갔다.

“허 은라, 위 공께서 궁에 들어가야 하니 방금 막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궁에 들어가야 한다니……. 입궁은 원경제 그리고 문관들과 입씨름하며 하는 시간 낭비지…….’

허칠안은 정색하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들어가서 통전하게.”

“네…….”

수위는 눈치껏 호기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위에게 확실한 대답을 들은 뒤, 허칠안은 한 손에 칼을 쥐고 계단을 올랐다. 위연은 탁자 뒤에 단정히 앉아 세월에 씻긴 세상의 온갖 풍파를 머금은 눈동자로 온화하고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청의 차림이었지만, 위에는 번잡한 구름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고 가슴에는 푸른 교룡이 있었다.

이건 위연이 조회에 참석하거나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할 때 입는 조복(朝服)이었다.

“십여 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으니 일이 있으면 빨리 말하게.”

위연은 심복과 대화할 때 말투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위 공께서 시간이 급하시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허칠안 역시 마음 씀씀이가 좋지 않아 바로 옥석 파편을 꺼내 가볍게 털었다.

철썩……. 머리 없는 시체가 깨끗하고 말끔한 다실에 떨어져 청결한 마루가 오염됐다.

위연은 다소 놀라 눈가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묘진이 오늘 경성에 도착하여 현재 저희 집에서 묵고 있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음!”

위연은 그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머리 없는 시체를 주시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시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허칠안이 입을 벌리고 말했다.

“관계가 많지요. 이 시체는 그녀가 경성에서 80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단칼에 아주 깔끔하게 수급을 베었어요. 이묘진은 또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죽은 자의 잔혼을 소환하여 상황을 파악했다고 합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일부러 멈칫했다. 뜸을 들이고 싶었으나 위연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외출할 때 왼발을 먼저 내디뎠다는 이유로 다다다음달 월급이 깎일까 봐 두려운 마음에 바로 얘기했다.

“영혼이 한 마디 했는데, 음, 위 공께서 직접 보시지요.”

그가 이묘진이 준 향낭을 꺼내 붉은 끈을 풀자, 푸른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라 허공에서 생김새가 모호하고 눈빛이 멍한 사나이로 변했다. 그는 중얼거리며 반복해서 말했다.

“혈도 삼천 리, 혈도 삼천 리,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해 주십시오…….”

위연은 눈동자가 갑자기 수축되었고, 더할 나위 없이 예리한 눈빛으로 잔혼을 쏘아보았다.

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말했다.

“자네 무슨 단서가 있는가.”

이건 의문문이 아니라 긍정문이었다. 그는 마치 허칠안이 분명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총애하는 은라는 지금껏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허칠안이 보고했다.

“소직은 우선 그는 북방 사람으로 서신을 전하려 경성에 들어오는 도중에 살해당했으리라 단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을 소상히 얘기했다.

“북쪽을 제외하고 대봉은 최근에 전쟁을 치르지 않았지요. 위 공, 아마 저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북방의 정세가 더 끔찍한 듯합니다. 허나 조정은 제대로 된 당보(塘報)를 받지 않았지요?”

“그렇네.”

위연은 고개를 가로젓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자네는 진북왕이 군정을 거짓으로 보고하였다고 의심하나?”

허칠안은 위연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건 이상할 일도 없지요. 소직이 이상하게 여기는 점은 만약 진북왕이 거짓으로 군정을 보고한다면 왜 관아에서 정보를 받지 못했을까요?”

야경꾼의 첩자가 구주에 쫙 깔렸는데 혈도 삼천 리 같은 큰일에 관해 어찌 전혀 소식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연초에 내가 첩자 대부분을 동북으로 이동시켜서 북방에는 얼마 남지 않았네. 소식이 막힐 만하네.”

위연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첩자를 전부 동북으로 이동시켰다고? 위 공께서 뭘 하고 싶은 거지? 무신교를 치려고……?’

허칠안은 문득 깨닫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럼 위 공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위연은 방구석에 둔 물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우선 입궁하여 폐하를 봬야 하니 시체와 영혼은 자네가 데리고 가게. 이 일은 자네가 신경 쓸 필요 없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또 말했다.

“이묘진이 기왕 이미 경성에 왔으니 그럼 천인 간의 협정도 곧 끝나겠군. 경성의 치안이 훨씬 더 좋아지겠어. 그동안 정보를 염탐하려는 첩자가 얼마나 섞여 들어왔는지 모르겠네. 다행히 감정이 주시하고 있어서 위험한 일을 저지르지는 못할 걸세. 자네 이묘진에게 좀 주의하라고 하게. 비상시기니 함부로 성을 나가거나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되네. 있을 수 있는 위험을 방비하게.”

“있을 수 있는 위험이요?”

허칠안이 반문했다.

위연은 다시 물시계를 보더니 아주 빠르게 말했다.

“나는 그저 이묘진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 첫째, 위험은 조정으로부터 비롯되네. 둘째, 위험은 다른 나라 첩자로부터 비롯되네. 이유는 자네 스스로 생각하게. 나는 입궁해야 하니.”

그는 재빠르게 허칠안 손안의 향낭을 빼앗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실을 나섰고, 걸으면서 하급 관리에게 분부했다.

“시체를 데리고 나와 함께 입궁하게.”

* * *

어서방에 원경제를 제외한 재상 왕정문, 형부상서 및 다른 3품 고관, 공작 훈귀와 도급사중 총 열여섯 명이 모였다.

안색이 창백한 정상룡은 군신 사이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말없이 묵묵히 있었다.

그는 사천감 술사가 준 환약을 복용하고 빠르게 침상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맥이 모두 끊긴 내상은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었다. 그래도 힘을 모아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충분히 몸조리하기만 하면 달포면 회복할 수 있었다.

원경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연이 아직 오지 않았군. 기다릴 필요 없다!”

그러고 나서 제공을 훑어본 뒤 말했다.

“진북왕이 조정에 보급품과 급료 삼십만 냥(兩), 마초와 사료 이십오만 석(石)을 요구했는데 여러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호부상서가 첫 번째로 뛰쳐나와 반대했다.

“원경 36년, 강주에 홍수가 나고 형주는 큰 가뭄이 들었으며 주에 황충해가 난리 난 바람에 조정에서 수차례 식량을 나누어 주어 이재민을 구휼했지요. 대봉의 식량 창고인 예주와 장주에 남은 식량이 많지 않아 모으기 어렵습니다.”

원경제는 침음하더니 말했다.

“각주에서 할당한다면?”

호부상서가 대답했다.

“설령 조운이 있다지만 각주에서 군량과 마초를 모으려면 시간과 힘을 쏟아야 하고 사람에게 재갈을 물려야 하지요. 초주 변방까지 운반했을 때 아마 반도 남지 못하겠지요.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가 말을 하고 있는 참에 환관이 어서방 입구로 걸어와 멈췄다.

원경제는 손을 들어 호부상서의 말을 끊고 입구의 환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위 공께서 오셨습니다.”

환관이 말했다.

원경제는 기쁨과 분노를 좀처럼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들라 하라.”

환관이 물러난 지 십여 초 뒤에 위연이 어서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관례대로 자신의 위치에 서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원경제가 언짢아하며 말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경들은 짐에게 반박할 줄만 아는가?”

좌도어사 원웅은 마음이 동요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큼 나와서 말했다.

“신에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원경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 경(卿) 말해 보시오.”

원웅이 말했다.

“조정에서 운량역(運粮役)이라고 하는 요역(徭役)을 임시로 늘리면 됩니다. 백성들에게 책임지고 운량초(運粮草)를 호송하라고 명령하십시오.”

원경제의 눈이 반짝였다. 이는 확실히 묘책이었다.

소위 요역은 조정에서 무상으로 징집한 각 계층 백성들이 종사하는 노동 활동이다. 만약 백성들에게 운량초 호송을 맡기고 관병이 감독한다면 조정은 관병이 먹고 쓰는 것만 부담하면 된다. 백성들은 알아서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보니 변방으로 운반할 때 군량과 마초가 낭비되지 않게 보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량을 운반하는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좋은 계책이구나!”

원경제가 웃으며 말했다.

원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가 그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크게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후유증이 최소화될 것이다.

전시 이후에 허신년이 우수한 성적을 받기만 한다면, 동각대학사 조정방의 반격과 위연의 낙정하석(落穽下石)을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의 좌도어사 자리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기에 면직당하면 자구(自救)해야 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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