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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10화 (410/712)

410화. 나는 귀신이야

그리하여 이묘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저도 오호를 만나고 싶군요. 그녀가 북쪽으로 천리만리 길을 오면서 분명 적잖이 고생했을 겁니다.”

‘금련 도사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단 말이지…….’

허칠안은 금련 도사가 자신의 눈빛을 수시로 주시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눈치챘다.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은 채 얼굴에 미소까지 띠더니 말했다.

“이 장군, 나를 따라 저택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금련 도사는 두 사람과 귀신 하나를 떠나보내고 침음하더니 말했다.

“천인 간의 전쟁이 끝난 뒤 나는 경성을 떠날 걸세. 그 전에 이 싸움을 교란시킬 방법을 강구해야 해.”

* * *

“묘진…….”

말 등 위, 허칠안은 막 입을 열자마자 이묘진에게 저지당했다. 천종 성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자네 그래도 나를 이 장군이라고 부르게.”

“그럼 얼마나 서먹서먹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친한데.”

허칠안은 뻔뻔한 낯짝으로 웃으며 말했다. 말투 또한 금방 능청스러워졌다.

“천인 간의 전쟁에 관해 의문이 있소.”

이묘진은 전방을 주시하며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암말 곁을 따라갔다. 그녀는 그의 질문에 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 마음속에 아직 화가 있어서 나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허칠안은 생각하다가 짐짓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그날 상성에서 오호를 찾은 경위에 대해 아직 얘기하지 않은 듯싶소만.”

그가 말을 마치자 이묘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사께서 줄곧 내 지서 파편을 차단하였지. 자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감추기 위함이었으리라는 점을 진작 생각했어야 하는데.”

이묘진은 금련 도사가 허칠안을 도와 그녀를 ‘속인’ 일을 아직까지도 마음에 두었다.

이어 그는 무덤에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이묘진에게 얘기했다. 그는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그중에 신수 승려와 미라의 문답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묘진은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녀는 이제 고고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아주 열성적으로 그와 논의하기 시작했다.

“스승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는데 ‘천지인’ 삼종 중에 인종이 가장 미련하다고 하시더군. 왜냐하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인간 세상의 기운에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네. 지종이 그다음으로, 공덕을 닦고 복연을 형성하지만, 속세의 일은 인과가 있으니 어찌 ‘행선사(行善事)’ 세 글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지종 사람이 2품일 때 종종 인과가 몸에 들러붙어 마도에 빠지기 쉽네.”

‘지종 도수가 바로 그 예지……. 왜 자발적으로 인간 세상의 기운에 가까이 다가가는 인종이 가장 미련하지? 인간 세상의 기운은 접촉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아니면 어떻다는 말이야……. 씁, 그래서 인종의 선배가 결국에는 옛 몸뚱어리를 벗어 버렸나?’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종은 어떻소?”

“천종은 응당 올바른 도리를 걷고, 감정에 움직이지 않아 천인합일을 이루는 데 이게 바로 천도(天道)네.”

이묘진은 날렵한 아래턱을 치켜올렸다.

“천종은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걸 중시하고, 가장 높은 경지가 천인합일이오. 이 이념에 따르자면 만사·만물에 관해 욕심이 없고 무관심해야 하오. 한데 왜 이렇게 천인 간의 전쟁에 집착하고, 도통에 이토록 집착하시오?”

허칠안은 내친김에 자신이 방금 내비친 의문을 질문했다.

이묘진은 다소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자네가 이 점을 생각할 수 있다니. 드문 일인데 말이야.”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네. 마침 자네가 한 말처럼 이토록 싸움에 집착하는 일은 확실히 천종의 이념과는 부합하지 않아. 하지만 사문도 사문만의 이유가 있겠지. 내가 물은 적이 있으나 답을 얻지는 못했네.”

‘다시 말해서 천인 간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이념과 도통 논쟁이지만, 사실 배후에는 더 깊은 단계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원인을 명색이 천종의 성녀도 모른다……. 도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관행이 있구먼.’

* * *

반 시진 후, 그들은 허부에 도착했다.

소소는 허칠안의 뒤를 따라가면서 좌우를 두리번거렸고, 허부의 구조와 배치에 아주 만족했다.

“좋네요. 경성에서 이런 대저택에 살다니. 은전을 엄청 많이 횡령했나 봐요?”

“맞아. 그러니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앞으로 틀림없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거야.”

허칠안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농담을 내뱉었다.

그들이 안뜰에 이르자 허영음을 데리고 문턱 위에 앉아 있는 리나가 보였다. 두 사람은 무릎 위에 각자 말굽떡을 한 접시씩 놓은 상태였다.

리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기마 자세를 하란 말이야. 못 하면 떡 못 먹어!”

콩알이가 대답했다.

“저 힘들어요. 제가 말굽떡도 언니한테 절반 나눠줬잖아요. 그럼 오늘은 절반만 하는 걸로 해요, 네?”

리나가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좋아.”

“큰 오라버니!”

콩알이는 허칠안이 돌아오는 걸 보자 기뻐하며 소리치더니 짧은 다리를 내디뎌 사나운 용처럼 그의 품에 부딪혔다.

“그녀가 오호?”

이묘진은 리나를 살피고 있었다.

리나는 아주 예쁘장한 소녀로 어깨에 드리워진 검은 머리는 그 끝이 살짝 말려 있고, 피부는 건강한 밀색이며, 눈은 마치 푸른 바다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런대로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리나 역시 이묘진을 의식했으나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칠안은 손짓하더니 말했다.

“리나, 그녀가 바로 이호요. 천종 성녀 이묘진.”

리나는 듣자마자 갑자기 얼굴에 친절한 웃음을 머금고 말굽떡을 손에 든 채로 깡충깡충 뛰어왔다.

“아, 언니가 이호구나……! 말굽 떡 먹을래요?”

‘역시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

이묘진은 고개를 젓더니 물었다.

“남강에서 경성까지 먼 길을 왔을 텐데 적잖이 고생했지?”

“네네.”

리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북쪽에서 떠돌며 겪었던 고달픈 일들을 얘기했다. 그녀는 은자를 사기당하고 속아서 중노동을 하러 가고, 밥 한 끼를 위해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일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강호 인사들이 그녀의 미색을 노리고 미연(迷烟)을 사용해 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고족 사람으로 심연도 간 적이 있기에 평범한 독약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장 수월하고 유쾌한 직업이 거지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낡은 그릇을 들고 길거리에 앉아 있어도 선량한 사람들이 동전을 주니깐 말이다.

이묘진은 다 듣더니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 엄청 예뻐요.”

콩알이는 소소 곁으로 걸어가서 작은 얼굴을 치켜들고 부러운 마음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소소는 어리숙한 이 아이를 데리고 놀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는 귀신이야…….”

콩알이는 깜짝 놀라 멍해졌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

이묘진은 마음속에 동정과 연민이 가득 차서 리나를 몇 마디 위로해 주더니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쳐다봤다.

“내가 경성으로 오는 길에 시체 한 구를 발견했는데 누군가에게 멸구당한 듯하네. 내가 잔혼을 소환하여 물었다가 큰일을 발견했어.”

‘큰일?’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서재로 가서 얘기하시죠.”

그는 곧바로 이묘진을 데리고 서재로 걸어갔다. 소소는 붉은 우산을 받쳐 들고 두 사람 뒤를 따르다가 어느 정도 걷더니 고개를 돌려 보았다.

콩알이는 여전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갈망으로 가득하였다.

* * *

“못난 남자 같으니라고. 대인 집 아이 머리가 어떻게 됐대요?”

소소는 종종걸음으로 서재에 들어가자 그제야 등에 가시가 박힌 듯한 감각이 사라졌다. 정말 이상하다. 그녀는 뜻밖에도 대여섯 살짜리 아이의 시선에 온몸이 편치 않았다.

“너야말로 비정상이야. 너희 온 가족이 다 비정상이잖아. 아, 너희 가족 없어진 지 오래됐다는 점을 잊었네.”

허칠안은 인정사정없이 공격했다. 그는 그때 숙모가 한 실없는 말을 이미 잊었기에 소소가 콩알이에게 악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끽…….

허칠안은 서재 문을 닫았다. 본래는 이묘진에게 차를 한 잔 따라 주고 싶었지만 이따가 검시해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차를 마실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여 손님에게 차를 내어 주지 않았다.

이묘진 역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지서 파편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떨어지더니 ‘털썩’하고 서재 바닥에 퍼질러졌다.

허칠안은 오감이 예민하여 짙은 피비린내를 맡았다.

그는 머리가 없는 시체를 잠시 살피더니 물었다.

“그의 영혼은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이묘진이 큰일이라고 말한 이상, 도문의 수법을 이용해 영혼을 소환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묘진이 향낭을 툭 치자, 푸른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오르더니 허공에서 눈빛이 멍하고 생김새가 모호한 중년의 사나이로 변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혈도 삼천 리, 혈도 삼천 리,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해 주십시오…….”

천종 성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영혼이 손상되었네. 뒷얘기를 알고 싶으면 혼을 보양해야만 하는데 영혼의 불완전한 정도에 따라 적어도 두 달은 걸려.”

허칠안은 그녀를 쳐다보고 ‘허’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두 달 후면 너무 늦소.”

이묘진이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네가 말해 봐.”

그녀는 확실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고작 단서 하나만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진상을 규명한단 말인가?

소소는 흑백이 분명한 아름다운 눈으로 천천히 응시했다. 그녀는 허칠안의 사건 해결 능력으로는 확실히 주인처럼 얼떨떨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알았다.

소소는 기대에 차면서도 궁금했다. 그녀는 그가 어떤 각도로 분석할지 알고 싶었다.

허칠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몸을 구부리고 시체의 옷을 제거했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예상대로 그는 북방 사람이오.”

이묘진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고, 그녀는 캐물었다.

“근거는?”

그녀는 염치없는 삼호가 시체를 검사하는 전 과정을 방관하였으나 그와 같은 결론을 얻지 못했다.

“한 지역의 풍토가 그 지역의 사람을 기른다고, 외모와 피부에서 죽은 자가 어느 지역 인사인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소. 머리가 없고, 영혼의 얼굴이 지나치게 모호해서……. 그렇기에 이 머리 없는 시체가 어디 사람인지 판단하고 싶다면 신체의 세세한 부위부터 검증해야 하오.”

허칠안은 시체의 오른손을 들고 말했다.

“여러분이 보시죠. 이 자는 손바닥의 굳은살 외에도, 집게손가락에 두꺼운 굳은살이 있소. 칼을 쓰거나 검을 쓴다 해도 이런 굳은살은 생기지 않죠.”

소소와 이묘진은 뚫어지게 보더니 과연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절세미인 여자 귀신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깜박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무슨 무기를 사용한 거예요? 뜸 들이지 말고요.”

이묘진은 문득 깨달았다는 기색을 보였다.

“활이야.”

‘역시 군영에 있어 본 장군답게 반응이 빠르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이 자는 활 쏘는 데에 능하오.”

소소는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반박했다.

“고작 이걸로 어떻게 그가 북방 사람인지 설명하나요? 저는 대인이 제멋대로 꾸며내는 것 같은데요. 활 쏘는 데 능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군대에 있는 사람은 안 되나요?”

이묘진은 고개를 끄덕여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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