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이묘진, 입경(入京)하다 (2)
이묘진은 길가에서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지서 파편을 움켜쥔 채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이: 허칠안, 이 후레자식! 우리를 언제까지 속이려 했지?]
문자를 보냈으나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묘진은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라 전서로 말했다.
[이: 설마 자네들 모두 그가 삼호임을 아나? 연합해서 나를 속이는 거야?]
이래야만 구성원 모두가 허칠안이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왜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순간에 침묵하고 있는지 설명이 됐다.
[구: 묘진, 그들은 허칠안의 신분을 전혀 모르네. 그가 왜 다시 살아났는지는 말하자면 길어. 내가 자네에게 주소를 줄 테니 이곳으로 나를 찾아오게.]
이때 이묘진은 금련 도사의 문자를 받았다.
이묘진은 금련 도사의 전서를 주시하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는 자신이 화가 났는지 기쁜 건지 아니면 수치스러운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주인님, 그 자식 정말 죽지 않았어요?”
그녀가 전서를 마치자 소소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캐물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에 긴장과 남모를 기쁨이 드러났다. 마치 그 남자의 사활이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듯했다.
이묘진은 화를 억누르며 ‘응’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동안 수시로 곁에 있는 ‘매(魅)’와 하늘이 뛰어난 인재를 시기했다고 개탄하며 허칠안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자신을 떠올리면, 얼굴을 가리고 땅 구멍으로 파고들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소소 역시 이런 기분이었기에, 주인과 종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옮겼다.
* * *
[구: 이묘진이 이미 경성에 들어왔네. 자네 한번 만날 텐가? 내가 그녀를 차단해서 그녀가 많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긴 해야 할 것이야.]
연예장 안, 허칠안은 금련 도사의 문자를 받았다.
‘도사님, 잘하셨어요!’
허칠안은 눈꼬리에 희색이 만연하여 문자를 보내 답했다.
[삼: 그녀를 만나도 됩니다.]
[구: 내 거처로 오게.]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잘 챙기고, 부스러기 은전 몇 알을 내던지며 말했다.
“본관이 처리할 중요한 일이 있네. 자네들은 술을 다 마신 뒤 계속 거리를 순찰하게.”
“네, 대장.”
* * *
외성, 버드나무가 심긴 어느 소원(小院) 입구에서 이묘진은 도의 차림을 한 채 마당 문을 살짝 걸어 잠갔다. 이내 마당 문이 저절로 활짝 열리면서 금련 도사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이묘진은 귀신 종 소소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작은 뜰을 지나쳐 문턱을 넘으니 방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금련 도사가 보였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한 가닥씩 늘어진 탓에, 이미지가 지난날과 다름없이 지저분하고 자유분방했다.
“훌륭하군. 역시 천종에서 가장 천부적인 자질을 지닌 제자 중 하나답군그래. 자네 이미 원영경에 들어섰구먼.”
금련 도사가 칭찬하며 말했다.
도문 4품, 원영!
“초원진이 검법에 조예가 깊지 않습니까. 4품에 들어서지 않으면 그를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이묘진이 말했다.
“자네 사형이 일찍이 4품 원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가?”
“누가 알겠습니까. 아마 어떤 여인의 복수로 죽었거나, 어느 오랜 친구에 의해 감금됐다가 상에 올리는 고기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그의 일에 상관하기 귀찮아요.”
이묘진은 상관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금련 도사는 침음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네와 초원진이 사투를 벌이는 일을 바라지 않네. 자네 둘이 맞붙어 싸우는 모습은 더욱이 보고 싶지 않아.”
이묘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는 도문의 숙명입니다. 천인 양종은 여러 해 동안 싸웠으나 줄곧 승부가 나지 않았지요. 이제 장교(掌敎)가 1품에 들어서면 드디어 이 도통 논쟁에 매듭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금련 도사는 웃을 뿐, 이 이야깃거리를 계속 이어가지 않았다.
이묘진은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허칠안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는 결코 죽지 않았네. 그날 사천감의 탈태환을 복용하고 죽은 척을 했을 뿐이야…….”
금련 도사가 그 연유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왜 줄곧 저희를 속이려 했대요?”
소소는 잔뜩 성이 나서 뾰로통하게 말했다.
“이 문제는 자네들이 그에게 직접 물어 보게.”
금련 도사는 웃으며 마당을 바라보았다.
곧 ‘다그닥다그닥’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허칠안은 말을 타고 뜰 밖에 멈췄다.
그는 암말을 잘 붙들어 매고 마당으로 들어와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묘진을 향해 어색하면서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오. 이 장군 어째 변장을 하셨소?”
그런 뒤 송정풍과 주광효의 종이 인형 여신을 바라보더니 조롱하며 말했다.
“소소 낭자, 결정했어? 내 첩이 될 거야?”
“흥!”
소소는 그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몹시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천종의 제자네. 천인 간의 전쟁은 자연스레 이런 차림을 해야 하지.”
이묘진은 무표정으로 말을 마치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삼호라는 사실을 모든 지서 파편 소지자에게 공표하겠네.”
허칠안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웃었다. 그는 탁자에 앉아 물을 따르고 마시면서 말했다.
“이 장군이 무얼 하고 싶어 하건 당연히 내가 막을 수는 없소. 허나 아주 공교롭게도 나 역시 일이 아주 많아서 그들과 공유하지 못했소. 예컨대 운주의 이모저모, 예를 들면…… 이 장군 자신이 사건 해결 천재라고 말했던 일말이오. 물론 더 많지만.”
‘덤벼, 서로 상처 주자고. 누가 무섭대!’
이묘진은 애써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마음속의 수치심을 참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천인 간의 전쟁을 개의치 않기 전에 우선 혼쭐을 내줘야겠군.”
그녀가 작은 손으로 탁자를 치자 등 뒤의 비검이 칼집에서 나와 허공에서 호선을 반 정도 그리다가 허칠안의 엉덩이를 푹 찔렀다.
소소는 아주 고소해했다.
이묘진은 곁눈질로 금련 도사를 보았다. 그녀는 틀림없이 금련 도사가 자신을 저지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본 건 수염을 어루만지며 웃는 금련 도사였다. 그는 말릴 생각이 없었다.
‘흥, 보아하니 도사 역시 이 자식이 얄밉나 보군. 내가 그를 혼쭐내길 바라는 거야…….’
이묘진은 잠깐 생각하는 사이 그 자식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뻗어 비검을 잡는 모습을 보았다.
허칠안의 손바닥이 재빠르게 짙은 빛깔의 금빛으로 물들었고, ‘띵’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서 금석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묘진은 벌떡 일어서서 호기로운 눈을 크게 뜬 채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허칠안의 팔뚝을 주시했고, 경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문의 금신?”
허칠안은 입을 찢으며 말했다.
“맞소. 두법할 때 딴 금강신공이오. 이 장군, 비검이 좀 부드러우니 기운을 불어넣으시오.”
‘두법으로 얻어낸 불문 금신이라…….’
이묘진은 깜짝 놀랐다. 조정의 방에는 관련 내용이 쓰여 있지 않았다.
“주인님, 그가 주인님을 무시해요.”
소소가 바로 화를 돋우었다.
방금 걱정은 마음에서 우러나왔지만, 지금 돋운 화 역시 진심이었다.
“마침 도문의 비검에 관해 가르침을 청하고 싶소.”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좋네.”
이묘진은 더는 수를 두지 않고, 비검을 조종해서 허칠안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웅웅웅…… 비검은 끊임없이 몸체를 뒤흔들었으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천종의 성녀는 엄중한 기색을 내비치며 한 손으로 결(訣)을 빚어 비검을 뒤로 후퇴시키고 조금씩 나아갔다.
허칠안 옆얼굴의 깨물근이 돌출되고, 이마와 손바닥의 핏줄이 올라왔다. 마치 격한 팔씨름을 하는 듯했다.
손바닥과 비검이 마찰하며 이를 시큰하게 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 없는 힘겨루기가 몇 초간 지속됐다.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폭한 기기에 지붕이 벗겨져 날아갔고 끊어진 대들보와 기와가 ‘와르르’ 떨어졌으며, 창문 역시 순식간에 부서졌다.
소소는 20년 묵은 귀신답게 음기 보호벽을 쳐 기기의 충돌을 간신히 막았다.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제발! 제발!”
금련 도사는 가슴 아프게 멈추라고 외쳤다.
허칠안과 이묘진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한 명은 검을 거두고 한 명은 손을 거뒀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그의 수련 경지가 이 정도까지 정진했다니…….’
이묘진은 매우 복잡한 눈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허칠안을 운주에서 만났을 때 그는 연신경에 충격을 가하던 8품 무사였다.
당시 5품이었던 이묘진의 눈에 수련 경지는 훌륭한 편이었다.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는 두세 달 후 이미 이 정도까지 강해진 뒤였다.
그녀는 본인의 수련 정진이 결코 느리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그녀는 지금 도문 4품 원영으로 옛날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묘진은 자신의 천부적인 자질이 같잖다는 약한 무력감이 들었다.
“콜록콜록!”
금련 도사가 기침 소리를 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비검으로 그의 육신을 공격하는 건 자신의 결점으로 상대의 장점을 공격하는 것이야. 소소한 절차탁마 한 번 했다고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네.”
이묘진은 4품 고수고, 진정한 천종의 솜씨는 아직 발휘하지 않았다. 그녀의 비검술로 6품 동피철골을 베는 덴 문제가 없지만, 불문 금강에 대적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이 자식은 금강신공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정진하는 거지…….’
금련 도사는 허칠안을 주시하다가 마음속에 의문이 스쳤다.
“정말 싸우고자 하면 나는 장군의 상대가 못 되오. 허나 장군이 내 금강불패를 부수려면 힘을 좀 써야 하지요.”
허칠안은 겸손하게 말한 뒤,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최대 7일, 내가 신수 승려의 정혈을 다 흡수하면 금강신공을 소성(小城)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신수 승려가 그에게 남긴 정혈의 진정한 효과는 금강신공의 수련 속도를 끌어 올리는 것이다. 신수 그 자체가 금강신공의 대성자(大成者)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혈이 금강신공에 완벽하게 일치하려면 허칠안이 이 기술을 수련할 때 정혈을 흡수해야만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묘진은 ‘흥’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검을 뽑은 후, 가슴 속에 억눌렀던 분노를 어느 정도는 없앴다. 그래서 그녀는 방금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동시에 허칠안의 ‘위협’은 그녀를 망설이게 했다.
허칠안의 신분을 밝힌다면, 애당초 그녀가 운주에서 했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역시 천지회 내부에 공표될 것이다……. 서로 헐뜯는 이런 방법은 천종 성녀의 풍격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허칠안이 기어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이유를 이해한 셈이었다.
애당초 그는 그녀보다 훨씬 더 심하게 허풍을 떨었더랬다. 이게 만약 밝혀진다면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없었다.
“묘진, 만약 객잔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허칠안 저택에 묵어도 되네. 오호 역시 그곳에 있어. 허부는 내성에 있고, 동 세 채가 딸린 대저택이네. 아주 품격 있지.”
금련 도사가 말했다.
‘또 시작이야? 우리 집이 언제 천지회 고아 수용소가 됐지…….’
허칠안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소소는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객잔에서 머물기보다는 당연히 대원(大院)에서 묵는 편이 훨씬 편했다. 게다가 그녀는 저녁에 이 남자를 꼬셔 자신을 사천감에 데려가 달라고 하고 싶었다.
반면 이묘진은 머리 없는 시체가 떠올랐다. 그녀는 마침 사건 해결 능력에 한계를 느껴 고민하던 차였다. 조정에 관한 그녀의 불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관아에 넘기지 말라고 저항했다.
그녀는 자리만 차지하고 국록을 축내는 그 자식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봐 두려웠다.
마침 이 일을 허칠안에게 넘겨 처리하고 그의 곁에서 유용한 사건 해결 기법을 배우는 일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