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약속 실행
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바로 잡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고 수련의 천재입니다. 영음은 골격이 단단하고 기가 충분하며 기혈이 두텁습니다. 우리 역고부에서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천재예요. 여러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은 꼬마 아이의 식사량이 이렇게 어마어마하다니요.”
‘그녀가 식탐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고……?’
허씨 가족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약간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허영음이 먹는 방법대로 다른 아이가 먹는다면 일찍이 배가 터져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기운이 펄펄 났다.
리나는 음식을 집어넣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희 역고부의 수련 방식은, 어릴 때 역고를 한 마리를 골라 삼켜서 몸속에 기숙하게 합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역고가 숙주의 정혈과 역량을 흡수할 겁니다. 만약 신체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이라면 아주 허약해질 거예요. 하지만 역고와 숙주는 생사를 같이하는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숙주를 짜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와 함께 쇠약해질 뿐이지요. 이는 선천적인 결핍을 초래합니다.”
그녀는 말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허영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역고에게 아주 훌륭하고 따뜻한 침상을 제공해 주어 어릴 때 기반을 단단히 다질 거예요. 게다가 영음은 골격이 크고 힘이 세서 정신을 수양하지 않아도 역량은 동년배보다 훨씬 뛰어날 겁니다. 일단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면 그녀는 높이 날아오를 거예요.”
가족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숙모가 잠시 침음하더니 떠보며 말했다.
“그럼 이 아이가 너처럼 잘 먹는 사람이 되는 거니?”
리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아니요.”
숙모는 막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마자 리나가 겸손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저보다 더 잘 먹을 거예요.”
“…….”
숙모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리는요?”
허평지는 아들과 조카를 쳐다보더니 의견을 구했다.
“너희 둘 생각은?”
허칠안이 평가하며 말했다.
“어쨌든 학문 정진에도 미래가 없고, 무술 연마할 재목도 아니니 차라리 시도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숙모는 탁자를 ‘쿵쿵’ 쳤다. 그녀는 허칠안이 본인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생각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화를 냈다.
“허칠안 너 무슨 말이니? 영음은 네 여동생 아니니?”
보아하니 앞으로는 필요 없었다. 오늘부터 숙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숙모와 조카의 모자간의 정은 종결을 선언했다.
허영월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어머니, 큰 오라버니 말도 맞아요.”
분노하던 숙모는 아주 갑작스럽게 딸한테 등침 한 대를 맞았다.
허신년이 말했다.
“제자로 거두는 건 괜찮소. 하지만 소저에게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역고는 도를 닦아 언제 출사(出師)할 수 있소?”
리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이요. 개인의 천부적인 자질에 따라 달라요.”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영음을 보고 말했다.
“그럼 리나 소저가 경성에서 5년 혹은 20년을 머무를 수 있소?”
리나의 입이 머리보다 빨리 움직였다.
“여러분이 밥만 주신다면 저는 계속 있을 수 있어요.”
“안 돼!”
허씨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리나는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껏해야 당신네 집 쌀 몇 입 먹는 거 아니야? 쪼잔하기는.’
결국 한 집안의 가장인 허평지가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수고롭겠지만 리나 소저가 딸아이를 지도해 주시오.”
허신년과 허칠안은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설마 정말로 리나더러 경성에 5년 심지어 20년을 살라고 해야 하나? 속수 비용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이에 허평지는 허허허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영음은 여자아이이니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지 않아도 돼. 배울 수 있을 만큼 배우고, 설령 출사할 수 없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아. 너희 둘은 말이야. 패기가 너무 넘쳐서 매사에 머리를 지켜야 하고.”
허신년과 허칠안은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숙부(아버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리나는 허영음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만약 나와 남강에 돌아가면 우리 아버지가 틀림없이 너를 수제자로 거두실 거야. 많더라도 10년이면 너는 산 한 채를 옮길 수 있을 거야.”
허칠안은 그 말에 상응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10년 후, 다 큰 허영음이 큰 산을 받쳐 들고 있고, 걸음을 뗄 때마다 지진 같은 효과를 동반한다. 그녀는 기뻐하며 말한다.
“큰 오라버니, 저 돌아왔어요. 산 한 채 선물할게요, 받으세요!”
‘허씨 집안 딸아이가 자라서,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듯하겠구나…….’
허칠안은 몸서리를 쳤다.
* * *
여명이 밝아 오기 전날 밤, 높은 하늘.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우아한 걸음을 내디뎌 넓고 고요한 길거리를 드나들다가 손부 대문 밖에 이르렀다.
고양이는 거리와 인접한 건물의 용마루에 가뿐하게 뛰어올라 사방을 조망한 뒤, 용마루에서 뛰어내려 재빠르게 손부 대문 입구까지 달아났다.
이어 황갈색 고양이가 목구멍을 굴리자 원형 윤곽이 드러나더니 천천히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그건 작고 정교한 옥석경이었다. 고양이는 옥석경을 토해 낸 뒤,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거울 면이 반짝이면서 의식을 잃은 귀공자를 흔들어 떨어트렸다.
황갈색 고양이는 입을 벌리고 옥석경을 배 속으로 도로 넣은 뒤 꼬리를 치켜올린 채 재빠르게 떠났다.
또다시 일각이 흐르고, 늙은 문지기가 하품하며 대문을 열었는데 바닥에 누운 화려한 복장의 귀공자를 보곤 깜짝 놀랐다. 그는 귀공자의 용모를 제대로 본 뒤 흥분하여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내, 하인 몇 명이 서둘러 오더니 화려한 복장의 귀공자를 들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손 상서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는 비단 평상에 누워 의식을 잃은 아들을 보자 마음이 순간 들떴다.
“나리, 공자님은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크게 다치지 않으셨어요.”
침상 옆에 서 있는 늙은 집사가 말했다.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손 상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공자님께서는…… 채찍 십여 대를 맞아 피부가 찢기고 살이 터졌습니다만, 다행히도 전부 찰과상이라 연고를 바르고 나면 큰 문제없습니다.”
늙은 집사는 고개를 숙였다.
“뻔뻔한 놈! 신용을 지키지 않다니!”
손 상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들끓던 분노가 갑자기 사라졌다.
손 상서가 잠시 침묵하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돌아오면 됐다.”
* * *
호기루, 다실.
“예왕은 진작에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사라졌기에 제게 은혜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직도 그때의 예왕이었다면, 아마 쉽게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조국공에 관해서라면 그와 진북왕의 부 장군이 연합하여 제 금강불패를 꾀하더군요. 저는 위 공께서 조당의 다툼은 이익 다툼이니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허칠안은 차를 받쳐 들고 채광이 잘 통하는 다실에 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요망대에서 태양을 쬐며 풍경을 조망하는 위연을 쳐다보았다.
“잘했네. 자네가 통찰력은 있는데 안타깝게도 성질은 고치기 어렵구먼. 조당에 적합하지 않아.”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 공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지요.”
허칠안이 겸손하게 말했다.
위연은 웃더니 두 손으로 난간을 누르고, 화창한 봄날에 아름다운 햇살이 비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그는 물었다.
“과거 부정행위 사건 때문에 사방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관아에도 얼마 있지 못했을 텐데, 고생했네.”
“그래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허칠안은 대답하고선 호로록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위연은 허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요점을 파악하게.”
허 색마는 어리둥절하다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고생이요?”
위연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돌아서지 않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관아에 얼마 있지 않았잖나.”
“…….”
위연은 여세를 몰아 말했다.
“그러므로 이번 달 월봉은 없네.”
허칠안은 멍한 눈빛으로 위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위 공, 저 이번 달 봉록은 진작에 없었습니다.”
“그런가?”
위연은 어리둥절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달 월봉도 없네.”
“???”
‘내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가…….’
총명한 허 색마는 더는 이 화제에 매달리지 않았다. 영원히 리더와 겨뤄서는 안 된다. 창피를 자초할 뿐이다.
“위 공, 진북왕의 부 장군은 어떻게 경성에 돌아왔답니까?”
“북쪽 정세가 긴박하네. 군량과 급료가 부족하여 은자를 달라고 돌아온 것이야.”
위연이 말했다.
“진북왕은 어떤 인물입니까?”
“포악한 인물이네.”
‘포악한 자는 보통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게다가 친왕의 신분이니 어느 정도 규율을 경시할 수는 있지…….’
허칠안은 속으로 판단했다.
* * *
그는 위연과 작별하고, 암말에 올라탔다. 안장에 묵직한 포대 자루를 매달고 다그닥다그닥 회왕부로 달려갔다.
지금, 그는 약속을 이행하러 진북왕의 부 장군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상하단 말이야. 저상룡이 나더러 일이 마무리된 후에 진북왕 저택에 가서 그를 찾으라고 했다는 건 그가 경성에 돌아와 있는 동안, 자기 집이 아니라 진북왕 저택에 머문다는 의미잖아. 적어도 대부분의 시간을 진북왕 저택에서 머문다는 건데. 게다가 진북왕은 변방에 있으니 저택에는 천하제일 미인인 왕비만 있을 테고…….”
진북왕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아우와 과부로 지내는 왕비가 같은 처마 아래서 함께 지내게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저상룡이 굳이 이렇게 하면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떳떳한 걸 보면, 그는 진북왕의 부탁을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진북왕이 왜 이렇게 하려고 할까? 부 장군에 대한 신임이 왕비보다 훨씬 두터운 건가…….’
* * *
회왕부, 바깥 대청에서 얇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군을 입은 여인이 탁자에 앉아 다구를 만지작거렸다.
대청 안, 저상룡이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하고 허리에 패도를 찬 채 의젓하게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왕비를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저택 시위가 하는 말을 들으니 왕비께서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실종되셨다던데요?”
여인은 얇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채 못 들은 척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다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동작이 가볍고 부드러우며 자태가 우아했다.
“왕비께서는 어째서 저택 시위를 속이셨습니까? 또 사천감 술사를 어떻게 속이셨어요? 최근에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일을 겪으셨습니까?”
“시끄럽구나!”
여인이 얇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채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지금 나를 추궁하는가?”
“감히요!”
저상룡은 고개를 숙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직이 이번에 경성에 돌아온 이유는 폐하께 보급품과 급료를 요구하는 것 외에 왕비마마를 모시고 북쪽으로 가서 대왕과 만나 뵙기 위함도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십시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고 날렵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눈동자를 주시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그동안 저는 왕부에 묵을 것입니다. 왕비께서 외출하고 싶으시면 소직이 전 일정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여인은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이때, 시위 한 명이 대청 안으로 들어와 읍을 올리며 말했다.
“저 장군님, 은라 허칠안이 만나 뵙기를 청합니다.”
저상룡은 고개를 끄덕이고 왕비를 쳐다보더니 공수하고 읍을 올린 뒤 대청에서 물러났다.
‘허칠안, 그가 왕부에 뭐 하러 왔지…….’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굴리자 교활함이 묻어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