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군신들을 풍자하는 시
위연과 왕 재상, 한 명은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 명은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동시에 허신년을 쳐다봤다.
허신년은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마음속의 기쁨을 억누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원경제가 말했다.
“짐이 피곤하니 조회를 마치겠다.”
끝났다. 이로써 과거 부정행위 사건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을 듯했다.
허신년이 전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글을 형편없게 쓰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럴 확률은 아주 미미했다. 명색이 운록서원의 서생 그리고 당조 회원으로서 그의 재능은 틀림없이 공사 중에서도 출중했다.
가장 중요한 건 폐하께서 이 자를 아주 좋게 본다는 부분이다. 이거야말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조당 제공들의 낯빛이 불가사의했다. 이 사건이 이렇게 끝을 맺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서 돌아왔구먼…….’
손 상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전시 이후, 과거 부정행위 사건이 끝나면 틀림없이 누군가 기회를 틈타 공격할 것이다. 그가 직권을 남용하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했다고 비난할 것이 분명했다.
육과 급사중 그리고 나머지 3품 대원들의 마음속에는 실망과 불만이 가득했다.
이런 불만은 허신년을 한림원에 들여보낸다고 한 원경제의 약조를 들은 뒤 절정에 달한 듯했다.
운록서원 서생이 무슨 자격으로 한림원에 들어간단 말인가. 국자감이 창립된 이래로 이백 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
금란전 안의 제공 및 금란전 밖의 군신들은 복잡한 마음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대광장을 지날 때 칼을 짚고 선 은라를 보았다.
그는 오문에서 나오는 군신들을 향했다.
회경과 임안 두 공주는 허칠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은 채 멀리 섰다.
한쪽은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수백 명으로, 실권을 손에 쥔 경관이다.
다른 한쪽은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저속한 무사이자 야경꾼 은라다.
혼자서 대봉에서 권력이 가장 센 무리를 막아섰다.
군신들은 길을 막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은라에게 주의를 기울였고, 그의 신분도 알아봤다. 경관 중에서 그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그가 뭘 하고 싶은 거지? 이 저속한 무사가 득의양양하게 거들먹거리려는 건가?’
육부 상서, 시랑, 육과 급사중, 종실, 훈귀의 시선들이 허칠안을 향했고,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낱 무사가 감히 우리의 길을 막아서?’
한 사람이 칼 한 자루를 쥐고 오문에 서서 군신들을 홀로 막았다.
허칠안은 군신을 맞이하면서 천천히 훑어보더니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단전에 기를 가라앉히고 느릿느릿 말했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퉤!”
그는 매섭게 침을 뱉더니 칼을 든 채 어정어정 떠났다.
단체로 비웃기!
오문 안팎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오문 안팎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수백 명의 관원이 집단으로 실성한 듯했다. 풍자의 의미가 아주 짙은 이 시구가 귓가에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지식인만이 이 시에 뒤섞인 풍자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식인은 욕먹는 일도 다투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말다툼을 하면서도 도리를 논한다고 생각하며 우쭐대고 뽐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지위가 낮은 지식인은 지위가 높은 지식인과 말다툼 벌이는 걸 좋아한다.
명성이 오래된 자는 같은 레벨의 지식인과 말다툼하는 일을 좋아한다. 심지어는 황제를 찾아가 말다툼하는 일을 즐기기도 한다. 황제가 화를 내며 정신을 못 차리면 그들은 황제를 가리키며 ‘그가 안달 났어, 그가 안달 났어’라고 말한다…….
급사중은 바로 이 중에서도 특출 난 존재다.
하지만 지식인,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지식인은 세 가지 이유로 욕먹는 걸 두려워한다.
첫째, 사서.
둘째, 글.
셋째, 시사.
이 삼자는 지식인이 가장 신경 쓰는 ‘명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몸 앞뒤로의 명성 말이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나쁜 동기를 규탄하는 이 멘트, 어떠한 지식인도 이 시사에 담긴 풍자를 참아 낼 수 없었다. 너무 악의적이다.
수백 명의 경관은 이 순간 혈기가 얼굴로 솟구치는 듯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엄청난 모욕감에 휩싸였다.
시사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들 지식인을 모욕한 자가 바로, 바로 저속한 무사 나부랭이라는 말이었다.
그가 몸에 짧은 피풍을 걸친 굳세고 힘찬 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그때서야 관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뢰한, 풋내기, 우악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감히 이렇게 우리를 업신여기다니. 대인 어르신들, 절대로 참을 수 없습니다. 속히 군사를 보내 이 개자식의 목을 베어야겠습니다.”
말을 한 사람은 좌도어사 원웅이었다.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자 그는 기분이 바닥을 쳤는데, 사람 전체가 마치 화약통 같았다. 이 시기에 허칠안이 일부러 오문에서 기다리다가 발로 밟아 그의 마음에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원웅은 허칠안의 이 시구가 자신을 풍자하고, 자기를 치욕의 기둥에 못 박으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폭주한 사람은 병부시랑 진원도였다. 그는 격분하여 몇 걸음 앞으로 뛰쳐나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위, 시위 어디 있는가. 저 개자식을 막아서라. 조당의 제공을 모욕한 건 불경죄이니라. 그를 막아서라!!”
애석하게도 궁중 시위는 원경제의 명령만을 들었다. 공주와 황자조차도 그들을 움직일 권한이 없었다.
손 상서는 마음이 아주 복잡했고, 분노를 피할 수 없었지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 허칠안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를 치욕의 기둥에 못 박고 균등하게 나누었다. 모두가 받은 치욕은 그렇게 날카롭지 않았다.
손 상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독서를 많이 한 손 상서도 노신(魯迅)이 쓴 책을 본 적이 없었다.
“위 공께서는 정말 유능한 부하를 키우셨군요.”
왕 재상이 입꼬리를 삐죽이며 괴상야릇하게 말했다.
속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왕 재상 역시 화가 났을 정도로 이 시의 살상력은 대단했다.
모든 관원이 노발대발하며 따지는 듯한 눈빛으로 위연을 쳐다봤다.
위연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는 태연하게 반문했다.
“여러분, 뭐 하십니까? 설마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 보셨습니까?”
관원들은 표정이 굳었다. 위연이 툭 내뱉은 말에 상황이 역전된 것 같았다.
“그럼, 그럼 오늘 이 일은 사서에 어떻게 기록해야 합니까?”
젊은 한림원 시강(侍講)이 나지막이 말했다.
시강이 말을 하자마자 관원들이 고개를 돌려 그를 지긋하게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공부하다가 머리가 멍청해졌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한림원 시강이 머리를 움츠리고 말했다.
“이런 사소한 일은 역사책이 기재할 가치가 없지요.”
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조회는 이미 끝났습니다. 제공들께서 오문에 떼 지어 모여있는 건 좋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흩어집시다.”
위연이 말을 마치고 앞장서서 나갔다. 그는 일정 정도를 걸어 나간 뒤, 입가에 퍼지는 웃음을 더는 감추기 어려웠다. 그는 고소하게 생각하며 ‘헤’하고 소리 냈다.
* * *
그는 궁 문을 나와 찻간에 들어갔다. 위연은 기분이 최고인 채로 마차를 모는 남궁천유에게 오문에서 발생한 일을 알렸다.
겉으로는 유순하나 속이 검은 수양아들이 ‘허’하고 소리 내더니 말했다.
“의부님, 의부님께서도 그때 제공들 사이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위연의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씩 가셨다.
* * *
오문 밖, 회경과 임안은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서 문무백관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회경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제공들의 뒷모습이 비쳤지만, 오히려 마음속에는 야경꾼 차복을 입은 채 칼을 들고 가는 힘 있는 모습만 남았다.
‘허칠안은 평범한 무사와는 달라. 그는 어떻게 사람의 급소를 공격하고, 어떻게 가장 날카로운 방법으로 적에게 복수하는지 알지만 또 본인을 위험하게 하지 않아. 시사로 그릇된 동기를 규탄하고, 문인의 취약한 부분을 호되게 공격하다니. 이건 허칠안의 독보적인 능력이야.’
“개자식 정말 위엄 있어…….”
임안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한 가지 장면만 들어왔다. 개자식이 툭 던진 시 한 구는 문무백관이 펄쩍 뛰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했다.
임안의 마음속에 이건 부황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물론 부황은 권세로 사람을 누를 수 있지만 개자식처럼 슬그머니 약 올리는 일은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매력적인 도화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 * *
원경제는 침전 안에서 조회가 끝나고 손에 경전을 쥔 채 늙은 태감의 보고를 말없이 들었다. 그는 오문에서 발생한 일을 확인했다.
“배포가 좋구나.”
원경제는 웃었다. 칭찬인지 조롱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늙은 태감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원경제가 이 일을 알았으며, 허칠안의 시건방진 행동을 알았는데도 죄를 물을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원경제의 심사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허칠안이 한 행동은 자신을 고독한 신하 방향으로 밀어붙여 위연의 길을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고독한 신하는 황제를 가장 안심시키는 존재다.
능력 있고, 재능 있고,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젊은이가 사람들의 환심을 삼으로써 사방에서 작당 모의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고독한 신하가 되는 편이 폐하의 생각에 더 부합했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원경제는 하하하 박장대소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시야, 좋은 시. 우리 대봉 시괴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구먼. 태감, 짐의 명령을 전하거라. 한림원에게 이 일을 역사책에 기록하라고 명한다. 짐이 직접 살펴볼 것이다.”
이는 한림원 공부 벌레들에 대한 폐하의 보복이다……. 허씨 형제의 시 두 수 전부 폐하를 기쁘게 했다. 늙은 태감은 명령을 받들고 물러갔다.
‘그대들의 몸과 이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원경제는 다시금 이 시를 읊조렸는데, 쾌감은 점점 사라지고 장생하고자 하는 갈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 * *
점심 식사 시간, 초원진은 식탁에 앉은 채 오랜 벗이 조당에서 발생한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또한, 허칠안 혼자 칼 한 자루 쥐고 문무백관을 막아선 뒤, 시사로 군신들을 풍자한 장면도 얘기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하다니……. 훈귀로 문신에 대항한다는 생각은 괜찮았지만, 그 자체로 난이도가 아주 높은데 허칠안과 삼호는 어떻게 한 걸까……. 삼호와 허칠안은 역시 형제답다. 시사에 타고난 자질 모두 놀랍기도 하고 말이야. 애석하게도 삼호는 현재 아직 성숙하지 않고, 품계가 낮기에 그의 사촌 형 허칠안과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날 무덤에 내려간 사람들 속에 분명 삼호가 있었겠지. 물론, 유가 체계가쇠약해진 지 이미 오래니 삼호의 품계가 낮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초원진은 삼호가 조당에서 지은 시에 관해 한마디 감탄하더니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시이기는 하나 애석하게도 마지막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초원진은 허칠안이 군신들을 풍자하는 시를 듣더니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그 자리에서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나는 전부터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국록을 받아먹는 그 인간들을 그렇게 욕하고 싶었네. 애석하게도 시사는 내 특기가 아니었네만. 허칠안은 역시 대봉 시괴답구먼. 필력이 뛰어나.”
초원진은 크게 웃었다.
그는 온몸이 후련해지자 즉시 허칠안을 찾아가서 그와 술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다가 한바탕 취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사촌 동생의 과거 부정행위 사건을 막 해결하고, 후속으로 처리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충동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