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혼자서 군신을 막다 (2)
조정방의 패거리가 잇따라 대열에서 나와 반박했다.
조당의 제공들은 잠시 기다리던 중, 놀랍게도 위연이 말을 하지 않고 수하의 어사 역시 공격을 멈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건…… 그가 심복 허칠안을 버리려는 건가?’
금란전 내 관원들의 마음속에 갖가지 생각이 스쳤고, 바람의 방향이 슬그머니 바뀌었다. 이부 도급사중이 대열에서 나와 탐색하는 발언을 했다.
“대리사경께서 하신 말씀은 이 사건을 반드시 엄히 다스려야 하며, 절대로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조정의 위엄이 서지 않고, 폐하의 위엄이 서지 않을 겁니다.”
순간 육과 급사중이 잇따라 대열에서 나와 대리사경의 의견을 지지했다.
주모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말을 하지 않던 병부시랑은 고개를 돌려 조국공을 쳐다보았다.
지금 문관들은 태도를 표명했다. 일등공작인 조국공이 더 불을 붙인다면 금란전 내부에는 강한 힘이 형성될 수 있다. 폐하께서는 이유 없이 대학사 하나를 위해 이 힘과 정면충돌하는 항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조국공이 무표정으로 대열에서 나오자 주위 대신과 훈귀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국공 역시 과거 부정행위 사건을 선동하는 중이다……. 그가 만약 훈귀를 대신해 나선다면, 기선 제압에 실패한 위연이 더 이상 상황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그에게 허신년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그와 심복 허칠안 사이에 메울 수 없는 틈을 만들 것이다…….’
제공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조국공이 대열에서 나온 후 손 상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읍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 신은 형부와 부아가 이 사건을 너무 경솔하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각대학사 조정방은 평소에 청렴하고 명성이 아주 자자한데 어찌 뇌물을 받겠습니까? 그리고 허신년이 한낱 서생이기는 하나 운록서원에서는 여러 해 동안 ‘회원’을 배출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경솔하게 사건을 규정한다면 서원의 대유들이 어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조국공의 말을 다듬어 보자면 사실 아주 간단했다.
<허신년은 운록서원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서생이므로 그를 처벌할 때 서원의 태도를 고려해서 과하지 않아야 한다.>
손 상서는 목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조금씩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조국공을 주시했다.
좌도어사와 병부시랑의 얼굴색 역시 변했다. 상소를 올려 탄핵하기 전에 두 사람은 한 차례 비밀 모의를 가졌더랬다. 그런 뒤 조국공이 자진해서 선동하여 훈귀와 연합하고 두 사람을 지지하려 했다.
여러 측이 암묵적으로 동맹을 결성하고 함께 힘을 보탰다.
이 순간, 원웅과 진원도는 ‘혁명’을 배반당한 분노가 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금란전 내의 제공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조국공이 진영을 옮겼나? 그렇다면 그가 전에 선동한 의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갑자기 제공들은 소름이 쫙 끼치면서 위연을 쳐다봤다.
‘언제지? 위연이 언제 조국공을 설득했지? 무슨 이익을 약속했지?’
제공들이 연이어 추측할 때, 위연은 정신을 차리고 뜻밖에도 조국공을 쳐다보았다.
‘위연 역시 아주 의아해하는 것 같은데. 그도 내막을 모르나…….’
이 사소한 부분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고, 대신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한순간에 조당의 형세가 갑자기 이상야릇해지기 시작했다.
신하들은 침묵에 빠졌다. 바로 튀어나와 반박하지 않고, 상황의 흐름을 방관하기로 했다.
병부시랑은 침묵을 지킬 수 없어서 세 걸음 앞으로 내디뎌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 조국공의 말은 나쁜 동기를 규탄하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허신년이 운록서원의 서생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면, 국자감 학회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천하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해 문조(文祖) 황제께서 국자감을 설립하고 운록서원의 지식인을 조당에서 몰아낸 게 무엇을 위함이었습니까? 바로 운록서원의 지식인이 군주를 헤아리지 않고 글로써 법을 어지럽혔기 때문입니다.
정아성이 운록서원에 비석을 세우고 글을 새겼습니다. <정의를 받들고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켜 군주의 은혜에 보답하여 오랜 세월 이름을 떨치리.> 어떻게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지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지요. 여러분께서는 설마 그해 문조 황제의 부득이함을 다시 되풀이하려는 겁니까?”
원경제는 순간 눈을 가늘게 떴다. 더는 무심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대권을 손에 쥔 군왕의 모습으로 전환했다.
대단하다!
손 상서와 대리사경은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개념을 슬며시 바꿀 때 쓰는 이 최고의 수는 마치 조당에 선을 하나 그은 듯했다. 한쪽은 국자감 출신의 지식인이고, 다른 한쪽은 운록서원이었다.
도통 논쟁은 어떻게 택하는가?
게다가 문관이 허신년을 대신해 발언하려면 본인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다. 설왕설래로 자신이 조당과 신하들의 등을 돌리지는 않을지 고려해야 했다.
좌도어사 원웅은 하마터면 수염을 어루만지며 박장대소할 뻔했다. 이렇게 보니 위연이 어쩔 수 없이 등판해야 했다. 어떤 말들은 지식인들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관 당의 지도자인 그는 괜찮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출신의 지식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연이 등판한다면 왕 재상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나머지 방관하는 중립 문관들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위연을 끌어들이고 대세를 몰아 그를 공격한다. 그가 타협하게 만들어 도찰원의 지배에서 물러나게 한다. 이것이 좌도어사의 중요한 계책이었다.
“흥!”
이때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서린 콧방귀 소리가 금란전 안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뜻밖에도 줄곧 존재감 없었던 예왕이 있었다. 어두운 노란색의 반용복(盤龍服)을 입은 친왕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검푸른 얼굴색, 희끗희끗한 귀밑머리, 눈가의 깊은 주름살로 인해 더없이 늙어 보였다.
그가 대열에서 나서자 방금까지 흥분하던 병부시랑 진원도는 공연히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백 년 전, 본왕은 운록서원의 지식인이 군주를 암살한 일이 있었다고 들어본 적이 없네. 이게 바로 너희 국자감 지식인이 소위 말하는 충군애국인가?”
예왕은 큰 소리로 질책했다.
“위선적이군!”
이어 그는 원경제를 향해 읍을 올리고 말했다.
“폐하,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진상이 어떠하든 간에 아우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아우는 다만 우매하고 무능한 형부 관원들이 자리만 차지하면서 국록을 받아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만약 사건을 처리할 줄 알았다면, 제 가엾은 평양이 어찌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죽었겠습니까.
만약 야경꾼 은라 허칠안이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묵은 억울함을 벗지 못했을 겁니다. 과거 부정행위 사건은 중대한 사안이니 폐하께서는 이 사건을 다시 심사하시길 바랍니다. 삼사가 야경꾼과 연합하여 합동 심리해야 합니다.”
원경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
예왕은 바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폐하, 제 가엾은 평양이…….”
‘뻔뻔하다!’
손 상서, 대리사경, 좌도어사, 병부시랑 등의 얼굴빛이 변했다. 평양군주 사건은 문관과 원경제 간의 가시였다.
병부시랑이 원경제에게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관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예왕은 원경제에게 국자감의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로 종실을 음해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며 실행에 옮길 것이라 말했다.
위연은 속으로 남몰래 웃었다. 그 자식이 예왕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한 점이었다. 하지만 조국공이 무슨 이유로 출전해서 배반했는지는 속으로 대강 짐작이 갔지만 지금 검증할 수는 없었다.
허칠안은 비록 당쟁에 능하지는 않지만, 이해력이 아주 높기에 상황을 파악하고 정곡을 찔렀다.
이때, 조국공과 나머지 훈귀들이 연달아 맞장구를 치며 은근히 문관과 대치 구도를 형성했다.
왕 재상은 냉정한 태도로 방관했지만, 내심 의아해했다. 그조차도 지금처럼 훈귀와 문관이 대치하는 형국은 생각하지 못했다.
조국공과 예왕은 같은 편이 아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위연과도 같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양쪽이 손을 잡았다는 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누가 배후에서 이 모든 걸 조종하는 것인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는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아주 명확하게 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책략을 펼치고 ‘적수’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을 찾았다.
‘예왕…… 평양군주 사건…… 그자인가?!’
왕 재상의 마음속에 한 가지 짐작이 떠올랐다. 그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다가 이내 정상적으로 회복했다.
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손 상서 일행은 가슴이 싸해졌다. 이 사건을 만약 다시 심사하고 야경꾼 관아도 참견한다면, 모든 계획이 전부 물거품이 될 것이다.
결국에는 여러 측과 갈등을 빚으며 대치하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허신년은 이로써 전시에 참가할 수 없지만, 일개 회원이 전시에 참가할 수 있는지 없는지 누가 신경이나 쓴단 말인가?
손 상서는 명색이 왕당의 중역이라, 계속해서 왕 재상에게 눈짓했다.
‘형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가 앞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형님은 후방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다니요?’
왕 재상은 손 상서의 눈빛을 알아챘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이 사건으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전혀 관심 없었다. 첫째로 위연이 등판하지 않았고, 둘째로 허신년이 운록서원 전체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눈에 거슬린다면, 나중에 이유를 만들어 구석으로 보내 버리면 된다.
하지만 왕당 중역인 손 상서가 적진으로 깊숙이 돌격한 이 순간, 그가 만약 수수방관한다면 민심이 떠날 것이다. 당파의 폐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너무 많다.
“폐하, 신에게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왕 재상이 대열에서 나와 읍을 올리고 천천히 말했다.
“동각대학사 조정방이 문제를 유출했는지는 허신년을 시험해보기만 하면 됩니다. 폐하께서 그를 금란전으로 불러들이시고, 직접 문제를 내시어 제공들 앞에서 시를 짓게 하십시오.《행로난》을 다른 사람이 대필했는지는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지요. 경의와 책론에 관해서라면 전시가 곧이니 허신년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폐하께서 글을 보신 후에 직접 결정하십시오. 만약 정말 무능한 자라면, 문제 유출이 진실이고, 부정행위가 진실임을 의미하니 엄중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원경제는 왕 재상을 잠시 주시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재상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경의 말대로 하지.”
손 상서 일행은 희색이 만면했다. 왕 재상의 말이 언뜻 보면 두루뭉술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편향이 아주 분명했다.
폐하께서 직접 문제를 내시어 시사를 교정하고, 허신년에게 금란전 안에서 시를 짓게 한다. 대봉 전체에서 이를 할 수 있는 자는 시괴 허칠안뿐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무슨 전시를 논하겠는가?
예왕이 즉시 말했다.
“폐하, 이 방법은 지나치게 경솔합니다. 뛰어난 시사를 보통 사람이 닥치는 대로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장항영이 바로 맞장구쳤다.
좌도어사 원웅이 웃으며 말했다.
“고사장 역시 시간이 제한적이지요. 허 회원이 한 수를 지을 수 있는 이상, 두 번째 시는 왜 쓰지 못합니까? 예왕께서 하신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허신년이 후대에 전해질 만한 걸작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은 시사에 도를 텄다는 의미지요. 그가 한 수 더 짓고 난 뒤, 두 개를 비교해보면 자연스레 명백해지겠지요.”
“폐하, 이 방법은 아주 기발합니다.”
육과 급사중이 앞장서서 힘을 보태자 나머지 문관들이 잇따라 찬성했다.
조국공은 수수방관했다. 그는 그저 허신년의 가벼운 처벌을 약조했을 뿐, 그가 죄를 벗게 할 계획은 아니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예왕이 계속해서 설득하려고 했으나 원경제가 손을 내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짐은 이미 생각을 굳혔으니 예왕께서는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