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401화 (401/712)

401화. 혼자서 군신을 막다 (1)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 편청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대로 사천감은 역시나 허신년 편이군요.”

형부시랑이 나지막이 말했다.

부아의 소윤은 허허허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과거 부정행위 사건’에서 부아는 조용히 지켜보며 부화뇌동하는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오늘 사천감 술사를 모실 필요가 없겠군요.”

형부시랑이 말했다.

“그러지요.”

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부아의 소윤이 허신년 심문에 참석하러 형부에 왔다가 하급 관리에게 이끌려 손 상서를 만나러 갔다.

“소윤 대인, 앉으시게.”

손 상서는 의자에 앉아 웃으며 인사했다.

“소직, 상서 대인을 뵙습니다.”

소윤이 공수하고 예를 갖춘 뒤 자리에 앉았다.

손 상서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받친 채로 개탄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 사건을 아주 중요시하시네. 우리에게 최대한 빨리 진상을 밝혀내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지. 지금 조정방의 관사가 이미 죄를 인정했으니 허신년의 입만 비틀어 열기만 하면 이 사건은 마무리되는 셈이야. 맞는가?”

소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다소 어색하게 말했다.

“그건…… 상서 대인께서 고문을 하려고 하지 않으시는데 허신년이 어찌 죄를 인정하겠습니까.”

손 상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를 인정하게 하는 데 꼭 고문해야 할 필요는 없지.”

소윤은 마음속으로 깨닫고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손 상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급하지 않네, 급하지 않아. 자네 잠시 돌아가서 진 부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게.”

* * *

소윤은 부아로 돌아와 손 상서의 말을 진 부윤에게 전했다.

진 부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가능하네. 손 상서께서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지.”

소윤은 난처해하며 말했다.

“대인, 이 일은 규칙에 어긋납니다. 만약 허신년이 무고하다면…….”

진 부윤은 탁자에 앉은 뒤 비웃으며 말했다.

“허신년이 무고한지는 중요하지 않네. 그는 그저 작은 배역일 뿐이야.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건 ‘죄증’이지 진상이 아니네. 죄증이 생기면 그들은 비로소 조당에서 서로 싸울 수 있네. 죄증이 생기면 그들은 비로소 구실을 만들 수가 있지. 폐하께서도 그들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실 게야. 내일 조당에 구경거리가 생기겠군. 우리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여기서 막힐 것이야. 그때 가면 자네 머리 위의 모자가 버티지 못할 것이네.”

소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공수하며 말했다.

“대인 고견이십니다.”

진 부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 공께서 뜻밖에도 나서지 않으시다니, 이상하단 말이야, 이상해……. 자네 여청에게 야경꾼 관아에 다녀오라고 하게. 이 일의 감춰진 내막을 허칠안에게 까발리게.”

소윤은 부아를 나와 형부에 이르렀다. 여전히 범인을 심문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진 부윤의 대답을 손 상서에게 전했다.

손 상서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소윤 대인, 이 사건이 마무리된 후 본관이 저택에서 연회를 베풀 테니 그때 반드시 행차해야 하네. 여러 대인께서 자네와 알고 싶어 하시네.”

* * *

이튿날, 동틀 무렵이 되자 문무백관은 침묵을 지키고 질서정연하게 오문을 지나쳐 조회에 참석했다.

또 일각이 흐른 뒤, 허칠안이 야경꾼 차복 차림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왼쪽에는 흰색 궁군을 입은 회경이 있었는데 그림 속 신선처럼 도도했다.

오른쪽에는 불타는 듯한 붉은 치마의 임안이 있었다. 그녀는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자태에 눈빛이 매력적이었다.

“자네 얼마큼 자신 있는가?”

회경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곁에 있는 허칠안을 쳐다봤다.

허칠안은 하늘을 향해 절을 한 뒤 중얼거렸다.

“반반으로 보우해 주십시오.”

“반반?”

임안은 아름다운 눈을 반짝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개자식, 자신감이 꽤 넘치는데?”

그런 뒤 그녀는 다정다감한 도화안으로 회경을 훑어보더니 흥하고 말했다.

“너 궁에 들어가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면 되지, 왜 구태여 무관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

“최근에 담이 적잖이 커졌네.”

회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예전 같으면 이때 임안은 틀림없이 깜짝 놀란 나머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다가 슬그머니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가지 않고 거만하게 가슴을 펴고 양손을 허리춤에 올려놓더니 회경한테 강수를 두기로 선택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본 공주가 틀린 말 했어?”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두 사람 가운데를 막아선 뒤 쓴웃음을 지었다.

“마마 두 분, 소란 피우지 마셔요. 주변이 전부 남이니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됩니다.”

‘너는 남 아니니?’

회경은 그를 힐끗 보았다.

기질이 얼음산 선녀 같은 회경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은라 허칠안과 임안이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가까워졌음을 눈치챘다.

예컨대 허칠안이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어 임안을 등지고 얼굴은 그녀를 향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이건 무의식적으로 전자의 행동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또 예를 들면 짝을 지어 올 때, 임안과 허칠안의 거리가 가까웠다. 이미 신과 공주 사이의 예의의 범위를 넘어섰다.

회경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허칠안은 이미 임안에게 다가갔다. 이 발견은 회경의 마음을 괜히 초조하고 불편하게 했다.

“마마께서 예전에 제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계획인지 묻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때는 자신이 부족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해야 할 건 다 했기에 그 성패는 하늘에 달렸지요.”

허칠안은 화제를 이끌어 두 공주가 다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역시 회경과 임안의 시선을 끌었고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맨 처음에 저는 신년의 결백을 어떻게 증명할지 고민했었지요. 그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부정행위를 했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죠.”

허신년은 그저 문관들이 정치 게임을 벌이는 구실로, 한 가지 이유거나 칼 한 자루일 뿐이다.

통속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허신년은 정치 싸움의 희생양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제의 핵심, 상황을 타개하는 관건은 ‘정치 싸움’ 네 글자다.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신년은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조당에 빽 하나 없는 놈이 결백한지 아닌지가 중요하겠는가?

회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말했다.

“자네가 해야 하는 건 그에게 조력자를 찾아 주는 일이야. 조당의 정세를 이길 수 있는 조력자 말이야. 난이도는 바로 여기에 있어. 운록서원 서생이라는 신분은 뿌리 없는 부평초라는 사실이 정해져 있지. 제공들이 낙정하석(*落穽下石: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괴롭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를 도와줄 리는 없네. 위 공이 만약 나선다면 중립적인 문관들 역시 등판할 거야. 위 공과 운록서원이 동맹 맺는 걸 보길 바라는 자는 없으니까. 왕 재상 역시 보고도 못 본 척할 리가 없고.”

회경은 그 속에 담긴 이 현묘한 이치들을 스스로 깨쳤다. 그녀를 성가시게 하는 부분은 ‘조력자’라는 글자였다.

위연이 없으면 허칠안이 어떻게 조당에서 좌도어사, 손 상서, 조국공, 병부시랑 등과 필적할 수 있는 세력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모든 배짱은 단지 위연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게임에서 원경제는 심판일 뿐이야……. 그가 자발적으로 신년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시도해볼 수는 있다고…….’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 * *

제공들이 금란전으로 들어가 침묵을 유지하며 일각 동안 조용히 기다리니 원경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흑발이 다시 자라는 늙은 황제가 소박한 도포를 입고 양 소매를 휘날리니 황제가 아니라 도사 같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답신한 후, 형부 손 상서가 갑자기 대열에서 나와 우렁차게 말했다.

“소신, 폐하께 아뢸 일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시선들이 비포(緋袍) 관복을 입은 뒷모습으로 향했다. 이 순간 다소 고요한 조정 분위기는 마치 용솟음치는 암류가 출렁이는 듯했다.

소용돌이가 조당 제공들 사이에 전달되고 세차게 솟아올랐다.

그전까지의 놀이는 끝났다. 막이 서서히 열렸다.

이 일을 모의한 좌도어사 원웅, 병부시랑 진원도가 슬그머니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강렬한 투지와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 일에 가담한 대리사경 등의 당파는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들은 볼거리가 막을 올리길 기다리고 있었고, 허칠안과 위연에게 보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세력이 미약한 대학사 조정방 일파는 미간을 잔뜩 찌푸릴 뿐이었다.

평소라면 당파 간의 도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부시랑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터였다. 다만, 지금 병부시랑이 ‘대세’를 안고 나타나 동각대학사와 운록서원의 서생을 한데 묶었다. 동각대학사의 누명을 벗기려는 건 허신년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적이 너무 많았다.

금란전 안팎의 나머지 중립 당파는 약속이나 한 듯 구경하면서 상황의 변화를 조용히 관찰했다. 입장을 말하자면 당연히 형부상서에 기울었다. 운록서원에 기울 가능성은 없었다.

“경은 말씀하시오.”

원경제가 용의에 높이 앉아 세찬 기세로 말했다.

“신이 명을 받들어 동각대학사 조정방이 뇌물을 받고 응시생 허신년에게 문제를 유출한 사건을 조사하였사온데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연루된 자는 세 명이온데 각각 운록서원의 서생 허신년, 동각대학사 조정방 및 중개인 역할을 한 집사입니다. 그밖에 허신년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형 허칠안을 통해 동각대학사와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손 상서는 상주를 마쳤다.

“폐하께서 아뢰옵건대 소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어사가 대열에서 나왔다. 바로 운주에서 큰 공로를 세운 장항영이었다.

원경제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경은 말씀하시오.”

장항영은 손 상서를 곁눈질로 힐끗 보더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신은 직권을 남용하고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여 자백받은 형부상서 손민(孫敏)을 고발하려 합니다. 폐하께서는 심문하여 과거 부정행위 사건을 재조사하길 삼사에 명해 주십시오.”

이는 관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한 수다. 질질 끌기!

이 수의 효과가 어떠한지는 결국 황제의 뜻에 달렸다.

‘고작 그걸로?’

손 상서는 냉소를 짓더니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비아냥거렸다.

“이 사건은 폐하께서 직접 훈령을 하달하시어 형부와 부아가 공동으로 심사 처리하고 상호 감독하는데 어찌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여 자백받는다고 말하시오. 범인 셋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니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여 자백 받았는지는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시어 알아보시면 아실 겁니다.”

원경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장 어사를 쳐다보지 않고 물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장항영은 실망한 듯 그곳에 서 있었다.

손 상서는 하찮게 여기는 눈빛으로 장 순무를 힐끗 돌아보았다. 이렇게 무력하게 반격하다니, 포기하려는 작정인가?

동시에 손 상서 역시 솟구치는 실망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폐하의 태도는 아주 명확했다. 질질 끄는 것도 소용없지만, 바로 이 사건을 규정하지도 않았다.

폐하께서는 위연과 조정방 패거리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좌도어사 원웅은 위연을 끌어들일 생각하던 중 눈을 반짝이며 즉시 대열에서 나와 읍을 올리며 말했다.

“폐하, 소신이 생각하기에 이 사건은 매우 심각합니다. 여러 날 발효를 거쳐 경성의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서생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백성들은 분노로 치를 떨지요. 엄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백성들의 분노에 미치지 않을 겁니다.”

이때 대리사경이 대열에서 나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칠안이 사천감을 대표해 두법하고 큰 공적을 새로이 세웠는데 처벌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대리사경은 나쁜 동기를 규탄하는 말을 함으로써 원경제에게 그리고 금란전 내의 제공들에게 ‘허칠안은 공을 세워 오만하다는’ 방자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그가 이 말을 내뱉으면 원경제는 어쩔 수 없이 허칠안을 처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을 세워 오만하다는’ 견해를 검증하여 아주 좋지 않은 본보기를 보이고 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