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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400화 (400/712)

400화. 수면 위로 떠오른 배후의 검은 손 (2)

허칠안은 오후가 되어 호기루에서 나왔는데 머릿속에 위연의 말이 맴돌았다.

<조국공과 진북왕은 한통속이다.>

그는 어젯밤 해 질 무렵, 왕사모의 ‘밀서’를 받은 뒤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는 신뢰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했지만, 경솔하게 믿지 않았다.

오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위연을 찾아가 검증하고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진북왕과 나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니 이건 아마 조국공 본인의 생각일 거야. 하지만 나와 조국공 역시 잘 알지 못하는데 나를 겨냥해서 뭘 하려는 생각일까? 금강신공…….’

허칠안의 머릿속에 이 생각이 스쳤다.

일도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급 관리 하나를 마주쳤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그를 찾으러 온 자였다.

“허 대인, 밖에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허칠안은 눈을 반짝였다.

“회왕 저택의 사람입니다.”

하급 관리가 대답했다.

‘회왕 저택이라…….’

허칠안은 탁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알겠네.”

그는 즉시 돌아서서 관아 밖으로 걸어갔다. 관아 입구에 이르니 길가에 멈춰 있는 호화로운 마차 한 대가 보였다.

양쪽으로는 무장한 병사 수위들이 마차 옆에 있었다.

허칠안이 나오는 걸 보자 즉시 수위가 걸어와 말을 전했다.

“허 은라십니까?”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褚) 장군께서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위가 말했다.

……그는 몇 초 침음하다가 시위를 따라 마차 옆으로 갔다. 안에서 남자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서 얘기 나누지.”

목소리가 상석에 오래 머무르는 자의 어조를 띠고 있어 명령처럼 들렸다.

허칠안은 마차에 올라 찻간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찻간 안에 구레나룻의 남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연한 자색의 도포 차림이었는데 사각형 얼굴에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눈빛은 마치 흐르는 전기처럼 날카로워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구레나룻의 남자는 청하는 손짓을 하여 허칠안에게 앉으라는 의사를 표했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허 은라의 사촌 동생이 과거 부정행위 사건에 휘말렸다던데.”

허칠안은 그를 주시하면서 상대를 떠보았다.

“장군께서는…….”

구레나룻의 남자가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답했다.

“저상룡(褚相龍), 진북왕의 부장군이네.”

‘진북왕의 부장군이라…….’

허칠안은 갑자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장군께서는 북방을 지키셔야 하지 않습니까? 어찌 경성에 돌아오셨습니까?”

“이건 자네 같은 일개 은라가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니네.”

구레나룻의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본 장군이 자네를 찾아온 건 거래를 하기 위함이야.”

“장군, 말씀하시죠.”

“금강신공의 수련법을 내놓으면, 본 장군이 자네 사촌 동생을 감옥에서 빼내 주겠네.”

저상룡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역시나 금강신공 때문이군. 하긴, 신체를 보호하는 신공을 생각하지 않을 무사가 어디에 있겠어. 신수 승려의 불멸의 몸 안에 금강신공이 있다고. 설령 고품 무사라 해도 이 공법에 눈독을 들이겠지……. 이렇게 말하고 보니 조국공과 이자가 내 금강신공을 꾀하고, 남의 집에 불 난 틈을 타 나한테서 이익을 탐하려고 하는군…….’

“불문의 금강불패는 보통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기연(大機緣)이 있어야 하지요.”

허칠안이 일깨웠다.

“자네가 나를 일깨울 필요 없네. 자네가 이미 금강신공을 습득한 이상, 그 속의 심오한 뜻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걸 의미하지. 금강신공의 심오한 뜻을 복제해 주게. 수련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본 장군 스스로의 일이네.”

저상룡은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말을 건넸다.

“자네가 신공의 심오한 뜻을 복제해 주기만 한다면, 본 장군이 알아서 사람을 빼내겠네.”

‘너 나한테 고혈을 짜내고 싶을 뿐만 아니라, 겸사겸사 내 지능지수를 희롱하고 싶지?’

허칠안은 속으로 찬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감히 장군께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빼내실 겁니까?”

“내게 다 방법이 있네.”

저상룡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 사건의 배후는 아주 넓고 복잡하게 얽혔으니 그 문관들은 절대 장군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저를 세 살짜리 어린아이 취급하지 마시지요.”

허칠안은 무례하게 냉소를 지었다.

“나는 사람을 빼낸다고만 말했지, 허신년의 죄를 벗겨 준다고 말하지는 않았네.”

저상룡은 신랄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는 그저 보잘것없는 인물일 뿐일세. 정말 그를 놓아주지 않고 죽자 살자 매달릴 자는 없다고. 나는 그의 처벌을 느슨하게 할 자신이 있네. 기껏해야 3년 미루면 다시 과거를 응시할 수 있을 걸세. 청주에 있는 운록서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그에게 가장 좋은 길을 것이야.”

허칠안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허나 제 요구는 먼저 사람을 구해 달라는 겁니다.”

저상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네.”

* * *

허칠안은 이야기를 마치고 마차를 나선 뒤 무표정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에 이르니 조국공이 배후에서 선동한 진짜 목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진작에 내 금강신공을 노리고 있었어. 예전에 내가 명성과 위세를 한창 떨칠 때는 좀 꺼리더니, 지금은 과거 부정행위 사건으로 신년을 제압해서 내가 얌전하게 금강신공을 내놓게 하려는군……. 그래, 이 몸이 너희를 어떻게 낚는지 봐라.”

그는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야경꾼 관아로 돌아가지 않고 긴 거리 끝으로 사라졌다.

* * *

하룻밤 동안의 발효, 전파 그리고 뜻있는 자의 조장으로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근거 없는 소문이 이튿날 폭발했다.

위로는 귀족들, 아래로는 백성들까지 모두 이 일을 논하며 한가한 시간에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논의가 가장 격렬한 곳은 단연 유림이었다. 허 회원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말을 믿지 않는 자도 있었지만, 더 많은 지식인들이 믿기로 했다. 그들은 탁자를 치며 갈채를 보내 조정이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과거 부정행위를 한 자는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온 천하의 지식인들에게 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신년의 명예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칭찬받고 존경받는 회원에서 대중의 비난을 받는 평민이 되었다.

그리고 허신년은 감옥에 있으니 이 일에 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침 형부와 부아의 첫 번째 심문을 앞둔 참이었다.

쾅, 쾅…….

옥졸은 막대기로 울타리를 두드리며 호통 쳤다.

“허신년, 따라 나와라. 대인께서 너를 심문할 것이다.”

* * *

다른 한편, 심문실 안. 형부시랑과 부아의 소윤이 탁자에 앉은 뒤 차를 마시면서 사건의 경위를 논했다.

“시랑 대인, 왜 고문하면 안 됩니까?”

소윤이 의문을 제기했다.

“손 상서의 명령입니다.”

시랑은 한마디로 설명한 뒤 하찮게 여기며 말했다.

“허신년은 그저 애송이니 이따가 본관이 먼저 그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여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 뒤 천천히 심문하지요. 그때 가면 번거롭겠지만 소윤 대인이 얼굴을 좀 붉혀 주십시오.”

관아의 소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벌로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서생은 입만 살았지, 피를 보면 분명히 깜짝 놀라 얼굴에 핏기가 사라질 겁니다.”

모든 관원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 모두 경험이 풍부한 심문관으로 젊은 서생을 상대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 * *

옥졸이 허신년을 데리고 감방에서 나와 심문실로 왔다. 그들이 심문실 안에 있는 관원 몇 명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대인 어르신들, 범인 허신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눈치 빠르게 물러났다.

허신년은 입구 자리에 서서 심문실의 상황을 훑어보았다. 주 탁자 뒤에는 붉은 도포를 입은 관원 둘이 앉아 있었는데 각각 형부시랑과 부아의 소윤이었다.

양측에는 심문을 수행하는 관원, 글을 기록하는 하급 관리 그리고 사천감의 백의 술사 한 명이 더 있었다.

탁!

형부시랑은 경당목을 쥐고 탁자를 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허신년, 자네가 주임 시험관 조정방을 매수하여 과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사실인가?”

허신년이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입니다.”

형부시랑이 냉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조정방의 집사를 통해 은괴 삼백 냥을 뇌물로 주고 집사를 매개로 사전에 시험 문제를 얻었다. 조정방의 집사 주우(朱右)가 이미 자백했다. 이는 그의 자백이니 직접 보지.”

그는 말을 하면서 소매에서 자백서를 한 부 꺼내 하급 관리더러 허신년에게 전달하게 했다.

허신년은 받아서 자세히 보았다. 자백서는 아주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심지어 양측이 ‘거래’하는 시간까지 정확했다. 거의 빈틈이 없었다.

“역시 형부 사람답습니다. 당사자인 저조차도 허점을 알아챌 수 없군요. 허나 저한테도 증명서가 한 부 있습니다. 대인들께서 보시겠습니까?”

허신년이 말했다.

“무슨 증명서?”

형부시랑이 물었다.

“문방사우를 가져다 주십시오.”

허신년이 담담하게 말했다.

바로 하급 관리가 문방사우가 놓인 작은 탁자를 옮겨 왔다.

허신년은 수갑과 족쇄를 찬 채로 탁자 옆에 서서 붓을 들고 먹을 찍어 휘갈겼다.

삽시간에 아주 작은 글씨가 종이에 빼곡하게 적혔다. 허신년은 엄지손가락으로 먹을 묻히더니 종이에 지장을 찍고서는 붓을 던지고 말했다.

“대인께서 보시지요.”

형부시랑은 사람을 시켜 가져오더니 이를 눈여겨보았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고, 호흡이 점차 묵직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종이를 찢고 허신년에게 삿대질하며 화가 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했다.

“고문해라, 고문해!”

소윤은 어리둥절했다. 이는 방금 말한 것과 달랐다. 범인이 아직 혼란스러워지지도 않았는데 시랑 대인의 감정이 먼저 동요되다니?

자리에 있는 관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잘게 찢긴 종이를 쳐다봤고, 허신년이 뭘 썼는지 추측했다. 버젓한 시랑을 이렇게 분노하고 신경질 부리게 하다니!

“보십시오. 시랑 대인 역시 서생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지껄인다고 생각하십니까?”

허신년은 손을 펴고 하찮다는 듯 비웃었다.

“시간, 장소, 인물 그리고 구체적인 과정을 명확하게 쓰고 지장을 찍으면 제가 어느 집사를 매수했는지 증명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시랑 대인, 아, 아니, 제가 대인을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께서 했던 일이 전부 명명백백하게 쓰여 있습니다.”

관원들은 다시금 잘게 찢긴 종이를 보았는데, 위에 뭐가 쓰여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고문하거라, 고문해. 본관은 저 미친놈을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형부시랑이 찢어질 듯 노려보았다.

일개 서생이 감히 그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욕하다니. 한낱 공사가 감히 사람들 앞에서 정4품 시랑을 모욕하다니!

순간 형부시랑의 혈기가 낯가죽으로 솟았고, 분노가 차올랐다.

“시랑 대인, 노여움을 푸십시오. 상서 대인께서 고문하면 안 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형부의 한 관원이 황급히 가서 위로하며 귓속말로 소곤댔다.

“흥!”

형부시랑은 차 한 모금 마시더니 억지로 화를 삭이려 노력했으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부아의 소윤이 기침 소리를 내더니 심문하는 책임을 이어받아 물었다.

“허신년, 자네 부정행위를 저질렀나?”

허신년은 신랄하게 말했다.

“아니요. 저는 떳떳합니다. 절대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윤은 이 말을 듣더니 사천감의 백의 술사를 쳐다봤다.

‘이자는 허 공자의 사촌 동생이다. 허 공자가 오늘 아침 일찍이 사천감에 와서 경고한 적이 있다. 무릇 허신년이 하는 말은 전부 진짜라고…….’

백의 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소윤이 다시 물었다.

“그럼 《행로난》은 자네가 지었나?”

허신년은 가슴을 꼿꼿이 폈다.

“소생, 바로 서생이 지었습니다.”

백의 술사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소윤과 형부시랑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소윤이 침음하며 말했다.

“이 사건은 아주 복잡하게 얼기설기 뒤얽혀 있습니다. 차라리 날을 다시 택해 심문하지요?”

형부상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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