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99화 (399/712)

399화. 수면 위로 떠오른 배후의 검은 손 (1)

왕 재상은 정색하고 ‘음’하고 소리 내더니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너 단짝 친구와 호수 유람하러 가지 않았니? 내각에는 뭐 하러 왔어? 누가 너를 데리고 황궁에 들어왔니?”

왕사모는 웃더니 여유롭게 찬합을 열었다. 그러더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어탕(魚湯)를 받쳐 들고,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수를 유람할 때 호수 안에서 토실토실한 잉어를 봤지 뭐예요. 사람을 시켜 몇 마리 잡아 올리라고 했어요. 가장 신선할 때 저택으로 가져와 아버지를 위해 직접 어탕을 끓였어요. 아버지는 공무로 바쁘시니, 건강 유의하셔야 해요. 보양탕 많이 드시고요.”

왕 재상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졌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선한 냄새를 맡으며 한입 맛보더니 순식간에 만끽하는 표정을 보이며 칭찬했다.

“어탕에 치킨스톡을 넣으니 과연 인간 세상의 맛 좋은 음식이 되는구나. 사천감에서 이걸 연구하고 제조해 냈으니 정말로 대봉 백성의 먹을 복이야.”

사천감에서 연구·제조한 치킨스톡이 시장에 유입된 후, 즉시 각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 경성의 고관대작 및 상인과 부호는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이미 치킨스톡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일반 백성들도 이따금 사치스럽게 반찬에 뿌려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왕정문은 아주 여러 해 동안 사천감에서 이렇게 좋은 걸 연구·제조한 걸 본 적이 없었다.

왕사모는 그 김에 말했다.

“제가 예전에 들은 소식이 있는데 이 치킨스톡은 사실 사천감이 연구·제조한 게 아니래요. 다른 사람이래요.”

왕정문은 어리둥절했다.

“다른 사람이라고?”

왕사모가 웃으며 말했다.

“임안공주마마가 말씀하시길 치킨스톡의 진정한 개발자는 은라 허칠안이고, 사천감은 그저 한 차례 개량한 것뿐이래요.”

왕정문은 이런 작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딸이 하는 말을 듣자 순간 멍해져서 한참 동안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이자는 정말 똑똑하군. 뛰어난 인재야…….”

왕정문은 개탄하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계속해서 어탕을 마셨다.

왕사모는 계속해서 잡담을 늘어놓았다.

“원래는 우림위를 시켜 아버지께 어탕을 전해 드리려고 했는데 누가 알았겠어요. 길에서 임안 마마를 마주쳐 그녀를 따라 궁으로 들어왔지 뭐예요.”

이로써 그녀는 왕정문의 두 가지 질문에 관한 대답을 마쳤다.

왕사모는 왕정문이 어탕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일어서서 작별을 고했다.

“아버지, 천천히 드셔요. 퇴근하시고 그릇 챙겨 돌아가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문연각 내부는 여인의 출입을 금하니 저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을게요.”

그녀는 마지막 질문 역시 대답을 마쳤다. 그녀가 문연각에 온 건 그저 늙은 부친에게 어탕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왕정문은 이에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돌아가렴. 모아(慕兒)의 효심, 아버지가 잘 알았구나.”

‘늙은 여우 같은 아버지, 너무 대응하기 어렵잖아요. 아버지한테 잔꾀를 부리는 건 정말 힘들어…….’

왕사모는 속으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름답게 웃더니 돌아서서 편청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는 진짜로 문연각을 나서지 않고 바깥에서 기다리는 여종을 향해 손짓했다.

여종은 다른 찬합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주인과 종 두 사람은 다른 대학사의 사무실로 갔다.

* * *

또 다른 편청, 왕사모는 찬합을 탁자에 두었다. 그러고는 냄새가 향기로운 어탕을 받쳐 들고 친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아저씨, 제가 오늘 호수를 유람하는데, 호수 속에 있는 살지고 기름진 물고기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시켜 몇 마리 잡아 올려 아저씨와 아버지께 드릴 어탕을 끓였어요.”

전청서는 몸이 호리호리한 노인으로 위엄 있고 침착한 왕정문과는 달랐다. 그는 기질이 더 부드럽고 편안하여 소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윗사람으로 보였다.

전청서와 왕정문은 동창으로 가까운 벗이자 같은 기수 진사였다. 성적을 얘기하자면 전청서는 그해 1갑(甲) 탐화랑(*전시에서 3등으로 합격한 사람)이었다. 왕정문은 2갑(甲)으로 나중에 한림원에 들어가 서길사가 되었더랬다.

“제왕이 목재를 요청하면 신하는 목재를 베고, 제왕이 물고기를 요청하면 신하는 골짜기 물을 비워 내니…… 자고로 맛이 좋지.”

전청서는 한 입 먹더니 눈이 반짝였다.

“음, 맛있구나.”

‘공무로 바쁜 사이, 쉬면서 어탕 한 그릇 마실 수 있다니. 즐기자!’

“제가 최근에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춘시의 허 회원이 과거 부정행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고요?”

왕사모는 일부러 궁금해했다.

전청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부임한 좌독찰어사가 동각대학사 조정방이 뇌물을 받고 허신년에게 문제를 유출했다고 탄핵했어. 그리고 허신년의 《행로난》 역시 직접 쓴 게 아니라 사촌 형 허칠안이 대필한 글이라고 하더구나.”

‘허 회원의 시를 허칠안이 대필했다고? 게다가 이 일이 동각대학사 조정방과 연루됐다니…….’

왕사모는 낯빛이 변하더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표정을 잘 가다듬고 물었다.

“전 아저씨, 천천히 드시면서 이 속에 얽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네?”

전청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역시 음식을 얻어먹으니 거절하기가 어렵구나……. 하지만 너 확실히 해야 한다. 여기서 들은 말은 털끝만큼도 누설해서는 안 돼.”

왕사모는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당연하지요. 제가 뱉은 말은 꼭 지킵니다.”

* * *

허칠안은 허부 서재에서 책상에 앉은 후 다음 계획을 고민했다.

형부상서를 처리하는 일은 별거 아니었다. 신년의 형벌을 면하는 일은 단지 계획의 첫걸음일 뿐, 그는 문관한테서 진짜 적을 찾아내야 했다.

지피지기여야 백전백승할 수 있지 않은가.

“회경은 귀한 공주이지만, 조당 제공들의 모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끼어들 수 없어. 어쨌거나 실권이 없는 공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아마 감추고 있는 속내가 있을 거야……. 이 일에 관한 위 공의 태도는 아주 적극적이지는 않다. 내 능력을 시험하는 게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만약 내가 처리하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 위연은 틀림없이 나를 도와줄 테지만, 그가 실망하는 건 불가피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내막을 알 수 있을까? 장 순무는 좋은 후보지만, 그는 위연의 사람이라 대치 진영 문신들이 경계하니 많은 걸 얻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는 고민하는 사이, 귓바퀴를 움직여 발소리를 들었다.

쿵쿵…….

문밖에서 발소리가 멈추었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째 공자님, 아가씨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아가씨, 누구지? 으악, 나의 아가씨가 너무 많아서 전혀 짐작할 수가 없잖아…….’

허칠안은 대답했다.

“그녀를 안방으로 모시게. 곧 가겠네.”

그는 끊긴 생각의 흐름을 이어 다시 몇 분간 생각하더니 찻잔을 들고 목을 축인 뒤에야 일어서서 문을 나섰다.

* * *

그가 안방에 오니 옅은 자색의 유군을 입은 가냘픈 몸의 여종이 안방 안에 서 있었다. 콩알이는 그녀 주위를 빙빙 돌면서 아주 붙임성 좋게 말했다.

“언니, 우리 놀아요. 우리 놀아요. 제가 언니한테 말굽 떡 줄게요!”

가냘픈 몸의 여종이 쓴웃음으로 대응했다. 어린아이와 어울리는 데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난아 낭자?”

허칠안이 문턱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여종은 한 시진 전에도 왔더랬다.

“허 대인.”

난아는 예를 갖추고, 소매 속에서 잘 접은 종이를 꺼내 허칠안에게 건네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 집 아가씨께서 전해 달라 하셨어요. 실례했습니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난아는 허칠안에게 만류할 기회도 종이를 펼쳐 볼 기회도 주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허칠안은 의자에 앉아 종이를 펼쳐 빠르게 한 번 훑어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왜냐하면 종이 위의 정보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내막이 아주 훤히 쓰여 있었다.

상소를 올려 ‘과거 부정행위’를 탄핵한 자는 새로 부임한 좌도어사 원웅(袁雄)으로, 이자는 위연을 대신해 도찰원을 장악한 뒤 우도어사를 필두로 하는 ‘환관 당 잔당’과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이치대로라면, 우도어사 유홍 역시 주임 시험관 중 한 명으로 원웅의 표적이다. 허나 이번 과거 부정행위 사건에서 시험 문제를 유출한 건 동각대학사 조정방이다.

원웅이 만약 직접 우도어사 유홍을 탄핵했다면, 그와 정면으로 맞붙는 사람은 바로 위연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설령 운록서원을 탄압한다는 깃발을 들었대도 각 당파는 대부분 그저 냉정한 태도로 방관할 뿐이라 줄 수 있는 도움이 한정적이었다.

어쨌거나 허신년을 전시에 참가하게 하고, 조당에 들어가 관리가 되게 한다고 해도 조당 제공들은 마찬가지로 탄압하고 동결할 방법이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 배후의 두 번째 주동자가 나타났다. 병부시랑 진원도(秦元道)였다.

원래 병부상서가 평양군주 사건으로 온 집안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참수당했기에 본래 병부시랑 진원도가 병부상서의 첫 번째 순위 계승자였다.

하지만 원경제는 작은 당파의 두목이 병부상서의 직무를 이어받게 안배했다.

진원도는 승급에 가망이 없었으므로 발상을 바꾸었다. 그는 내각에 들어가 빽이 없고 세력이 강하지 않은 동각대학사 조정방을 배척할 계획을 세웠다.

허신년은 좌도어사 원웅이 탄압하려는 사람이며, 운록서원의 서생일 뿐만 아니라 은라 허칠안의 사촌 동생이었다.

허칠안이 만약 사촌 동생의 지위와 명예를 잃지 않게 하고 싶으면, 분명히 위연에게 나서 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위연이 가담하기만 한다면, 우도어사 유홍을 해결하지 못할까 봐 어찌 걱정이겠는가.

그리고 왕사모가 제공한 쪽지에는 조국공(曹國公) 송선장(宋善長) 역시 그중의 선동자라고 언급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좌도어사 원웅이 병부시랑 진원도와 손을 잡은 것이다. 기껏해야 그들의 패거리가 늘어난 것뿐이다. 실질적으로는 신년의 운록서원 서생 신분을 던져 버리려는 것이다. 그가 내 사촌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전의 상백 사건, 평양군주 사건 때 미움을 산 사람들은 반드시 기회를 잡아 내게 보복할 것이다. 손 상서가 바로 그 예다. 게다가 운록서원 서생의 신분을 더한다면…… 형세가 좋지 않다. 그리고 조국공은 뭐란 말인가? 문관이 트집을 잡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한낱 저속한 훈귀 무사도 성가시게 한단 말인가? 동기가 뭐지…….

그리고 내가 무슨 근거로 왕정문의 딸을 믿어야 하지? 그녀가 제공한 정보를 내가 믿을 수 있나? 하지만 그녀가 나를 속일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방관자의 각도에서 보자면 신년은 이번에 망했다. 그녀는 응당 옆에서 몰래 즐기면 되지, 쓸데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여종 역시 확실히 수상쩍어 보였다. 쪽지를 주고 뛰어간다는 건 제 발 저린다는 뜻 아닌가? 왕씨 집안 아가씨가 바보거나 그녀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신년과 영월의 분석을 들어보면 이 아가씨도 어리석지는 않던데. 제기랄, 그녀가 나를 얼간이라고 여기는 건가?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하지 못하면 위연을 찾아가야지. 음, 이 내막을 나 혼자 알아낸 거라 말하고, 그를 찾아가 증명을 요구하면 위연이 나를 괄목상대하게 할 수 있어. 만약 위연이 아무런 지장 없이 속는다면, 내가 조심스럽고 신중해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