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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98화 (398/712)

398화. 숙모와 왕 소저의 원거리 격투 (2)

숙모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허칠안의 손을 끌어당기며 놓지 않았다.

“칠안, 역시 집에서 네가 가장 잘났구나. 숙모가 고생해서 너를 키운 게 헛되지 않았어.”

‘아니, 숙모 이런 말을 하면서 정말 양심에 찔리지 않아요?’

허칠안은 의아해했다.

숙모는 마음이 단숨에 맑아져서 여유롭게 허영음을 두고 화풀이했다. 숙모는 고운 손가락으로 그녀의 툭 튀어나온 이마를 힘껏 찌르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먹을 줄만 알지. 너를 낳아 무슨 소용이 있니. 차라리 쥐를 낳는 게 낫겠다.”

“어머니, 저 배고파서 그렇잖아요.”

허영음은 얼굴을 젖히고, 억울하게 말했다.

“네 배가 언제 배부른 적 있었니?”

숙모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네 친오라버니에게 큰 위험이 닥쳐올 텐데 아직도 여기서 먹기만 하다니. 생각 없는 것.”

허영음은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큰 오라버니는 지금 여기에 잘 있는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그냥 저한테 먹을 걸 주기가 싫은 거잖아요. 그리고 자기 혼자 숨겨 놨다가 몰래 먹잖아요.”

숙모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몸이 휘청거렸다.

허칠안, 허영월 그리고 허평지는 좀 난감했다.

리나는 식사 파트너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너 오빠 한 명 더 있잖아.”

허영음은 생각하더니 자신이 정말로 오라버니가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갑자기 ‘엉’하고 울기 시작했다. 입 안에 있던 떡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는 옷과 다리에 떨어진 떡을 주워서 입 안으로 쑤셔 넣으며 울었다.

“둘째 오라버니 죽었어요? 둘째 오라버니가 죽는 거 싫어요. 엉엉엉…….”

이때 문지기 장씨가 들어와서 말했다.

“밖에 소저 한 명이 있는데 영월 아가씨를 만나겠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온 가족이 허영월을 쳐다봤다.

허영월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어느 댁 아가씨가 나를 무슨 일로 찾지?”

문지기 장씨가 고개를 저었다.

“들어오라고 하게.”

허영월이 말했다.

이내 문지기 장씨가 분홍색 유군(襦裙)을 입은 고운 소저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가 입은 옷의 옷감은 보통 부잣집 아가씨보다도 좋았다.

“너구나?”

허영월은 그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비는 난아라고 합니다. 아가씨께서 오늘 영월 소저를 뵙고 싶어 하셔요. 영월 소저께서 오늘 시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자칭 난아라는 간드러진 노비가 인사했다.

“저 아이는 왕 재상댁 소저, 사모 소저 곁의 여종이에요.”

허영월이 설명했다.

그녀는 큰 오라버니의 지혜라면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챌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왕정문 딸의 여종? 그녀가 왜 저택에 사람을 보냈지? 빈정대려는 건가?’

허신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허칠안 역시 왕사모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화가 좀 치밀었다.

‘이 시대의 여인이 이렇게 방자하고 오만하게 굴다니……. 하지만 나는 남녀평등 사상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신시대 인류라고. 여우를 쳐내는 데는 우유부단하지 않을 거야…….’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오늘은 일이 있으니 다음에 내가 꼭 찾아뵙게.”

허영월은 담담하게 말했고, 갑자기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돌아가서 왕 언니에게 전해줘. 나는 언니를 아주 좋아하고, 그때 가면 꼭 언니와 교류할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다음 순간,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다시 연약하고 힘이 없는 여동생으로 변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큰 오라버니, 다른 일 있으면 먼저 가세요. 둘째 오라버니 일은 큰 오라버니에게 부탁할게요.”

허칠안이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난아 낭자가 긴장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허 회원께 무슨 일 있나요?”

남매 둘 다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차가운 표정을 짓자 숙모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 집안의 아가씨가 왕 재상의 여식이니? 그럼 정말이지 아주 잘됐구나. 우리 집 둘째가 과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어느 오라질 새끼한테 모함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부 감옥 안에 수감되었단다. 낭자, 나 대신 네 집안 아가씨에게 둘째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겠니?”

허칠안과 허영월은 굳은 표정으로 숙모를 쳐다보았다.

‘숙모는 정말 머리가 없나?’

‘어머니는 정말 머리가 없나?’

병이 위급하여 아무 의사에게나 막 내보인다 해도 적의 앞에 뛰어들지는 못한다. 심지어는 빠르게 죽지 못하는 사실을 싫어하는데, 남에게 칼을 하나 더 꽂으라고 하다니?

허칠안은 어두워진 얼굴로 냉랭하게 말했다.

“난아 낭자, 배웅하지 않겠소.”

난아는 의구심을 가득 안고 초조한 태도로 작별을 고했다.

* * *

왕사모는 널찍한 마차 안의 푹신한 평상에 앉아, 때로는 차창의 발을 젖히고 밖을 보다가 때로는 귤색 숯불이 밑바닥을 할짝거리는 찻주전자에 관심을 가졌다.

왕 소저는 마음속의 근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반 시진 넘게 지났는데도 난아 그 못난 여종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인재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만약 허 소저가 그녀의 방문을 거절한다면, 아마 허씨 집안과 허신년의 뜻을 대표하는 의사 표현이리라.

‘그럼 내가 계속 찾아가야 하나? 아니면 형세가 불리함을 알고 물러서야 하나?’

후자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고, 전자라면……. 그녀는 아직 출가하지 않은 여인으로 재상의 여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체면과 명성이 중요하기에 더 이상 찾아오기는 민망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차창의 발을 젖혀 보았는데, 놀랍고도 기쁘게 난아의 마차를 발견했다.

마차가 천천히 멈추더니 여종 난아가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와, 높고 큰 마차로 기어올라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나쁜 계집애, 이렇게 늦게야 돌아오다니. 벌써 몇 시진이니?”

왕사모는 마음이 복잡해서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했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물었다.

“허씨 집안 소저가 뭐라고 했니?”

난아는 고개를 저었다.

왕사모의 표정이 갑자기 무너졌고, 눈 속의 밝은 빛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이때 난아가 침을 삼켜 한숨 돌리고는 말했다.

“아가씨, 큰일 났어요. 허 회원이 과거 부정행위로 형부에 의해 체포됐대요.”

“뭐라고?”

왕사모는 이 소식을 듣자 마음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가장 먼저 솟구쳐오른 감정은 경악과 걱정이었다. 그녀는 허신년의 앞날과 안위가 걱정되었다.

뒤이어 그녀는 실낱같은 기쁨이 밀려왔다.

‘알고 보니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아니었어. 고의가 아니라 형부에 의해 체포되어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거야. 내가 그를 잘못 탓했어.’

난아는 즉시 허부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있는 그대로 왕 소저에게 전했다. 더불어 허칠안의 냉랭한 태도와 허영월의 소원한 태도도 포함해서 말이다.

‘형부 손 상서는 내 아버지와 같은 당이니 그들은 내 아버지가 배후에서 주모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만약 정말 아버지가 암암리에 밀어붙였다면 그럼, 그럼 내가 어찌하겠는가…….’

왕사모는 마음이 씁쓸했다.

난아는 분노하며 말했다.

“흥, 그 사람들은 태도가 너무 형편없는 데다가 아가씨한테 허 회원을 구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허씨 집안사람들도 참 뻔뻔해요.”

왕사모가 미간을 찌푸렸다.

“말 제대로 하렴.”

잠시 멈칫하다가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허칠안의 요청이니?”

‘아닌데. 나는 허 회원과 한 번밖에 보지 않았고, 말 몇 마디 나눠 봤을 뿐이잖아. 허칠안은 똑똑한 자인데 어떻게 왕 재상의 딸인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할 수 있겠어? 아버지조차도 모르는데 그가 내 생각을 알 리가 없지.’

똑똑하고 지혜로운 왕 소저는 즉시 실마리를 파악해 냈다.

난아가 고개를 저었다.

“허씨 집안의 주인마님이 한 말이에요. 그날 저희가 만났던 아주 농염한 부인이요.”

‘허씨 집안 마님의 요청이라…….’

왕사모의 표정이 다시 한번 심각해졌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분석했다…….

‘그녀는 허 회원의 어머니다. 이런 일을 당했으니 틀림없이 나와 왕씨 집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쁠 텐데 왜 또 나한테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걸까? 꾀 많은 딸, 기개가 비범한 조카, 재주가 남다른 아들을 키워 낼 수 있는 이런 여인은 결코 평범한 여인이 아니다. 잘 좀 생각해야겠다. 잘 생각해봐야지. 경솔하면 안 돼…….’

“난아, 그 마님이 나를 욕하거나 내 아버지를 욕했니? 그녀의 태도는 어땠니?”

왕사모가 물었다.

“가족 중에 그녀의 태도가 가장 좋았어요. 부탁할 때 정말 간절했고요.”

난아가 말했다.

‘그럼…….’

왕사모는 눈을 번쩍 떴다. 마음속에 상응하는 짐작이 갔다.

‘내가 처음에 아버지의 명의로 허 회원에게 문회에 참가하라고 초대한 건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어. 그런데 내가 또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허 회원에게 호수를 유람하자고 했지…….’

그리고 호수를 유람하는 이런 일에 관해, 세심하지 않은 남자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그녀는 명색이 지혜로운 여인이니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설령 내 마음을 확신하지 않는다 해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잖아……. 그러니 이건 간 보는 기회?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반감이 아니고, 내가 왕씨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적대시하고 미워하지 않았어. 그녀는 자신의 태도를 확실히 드러내고 보여주었어. 그러고 나서 난아를 통해…… 이 요청을 한 거야. 나에게 암시하는 거야. 역시 허씨 집안 마님은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야……. 가족 중에 그녀만이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어…….’

왕사모가 주먹을 꽉 움켜쥐자 연약한 몸이 다소 떨렸다.

동시에 그녀는 호적수를 만나 흥분하기도 했다.

“난아, 황성으로 가자. 관아에 아버지를 찾으러 가야겠구나.”

왕사모는 또박또박 말했다.

* * *

왕정문은 문연각 대학사다. 이러한 이유로 문연각은 당연하게 대학사 등의 관원이 입직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곳이 되었다.

당내(堂內), 붉은 도포를 입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왕정문이 탁자 앞에 앉아 공무를 처리했다. 나머지 문관과 하급 관리는 각자 자신의 공무로 바빴고, 이따금 작은 소리로 토론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용하고 화기애애했다.

문관들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편청에서 크게 한바탕 싸워 승패를 가르곤 했다. 하지만 지식인들의 말싸움이니, 통상적으로 아무도 어느 누구를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상급자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해야 했다.

“재상 대인, 사모 소저가 만나 뵙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왕 재상은 휘갈기던 붓을 종이에 대고 순간 움직이지 않았다. 먹물이 순식간에 종이에 자욱하게 퍼지면서 묵적이 되었다.

‘그녀가 어째서 황궁에 들어왔지……. 그녀가 내각에 뭐 하러 왔을까…….’

왕 재상의 머릿속에 두 가지 의문이 차례로 떠올랐다.

문연각은 황궁의 동쪽에 있었으나 황궁의 높은 담 안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설계상으로는 황궁에 속했기에 밖에서 수비하는 대군이 관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재상의 딸 역시 ‘관계자 외’에 속했다.

“안 만나겠네……. 그 아이에게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하게. 나는 편청에서 기다리겠네.”

왕 재상은 붓을 내려놓았다. 그는 한 손은 뒷짐 지고, 한 손은 복부에 올려놓고 침착하게 내당을 나서 편청으로 갔다.

그가 편청에서 몇 분 기다리자 우아하고 고상한 기질의 왕사모가 찬합을 들고 들어와 탁자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선 달달하게 불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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