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숙모와 왕 소저의 원거리 격투 (1)
손 상서는 숨을 내쉬었다.
“본관이 자네를 한 번 믿지. 허신년을 고문하지 않겠네. 그리고 내 아들이 저택에 돌아왔을 때 상처 없이 온전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자네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야.”
“당연하지요.”
허칠안은 흥얼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저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요. 허신년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안배해주시지요.”
그는 말을 하면서 무정한 발걸음을 내디뎌 입구까지 걸어가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참, 자작 대인……. 잘 부르셨습니다.”
손 상서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화가 난 나머지 수염을 떨었다.
* * *
끼이익…….
쇠사슬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옥졸이 감옥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눅눅하고 케케묵은 냄새가 확 풍겼다.
허칠안은 옥졸의 안내를 따라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허신년이 수감된 감방 앞에 이르렀다.
허신년은 눈을 감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 죄수복을 입고 있는 그는 얼굴이 창백하고, 몸에는 핏자국이 얼룩덜룩했다.
아우의 처참한 모습을 보니 허칠안은 공연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국 한발 늦게 오는 바람에 신년이 감옥에서 쓴맛을 좀 봤다.
그는 자신에게 보복하길 간절히 바라는 손 상서의 결심을 과소평가하였다.
허칠안은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신년, 신년…….”
허신년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의심하면서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음침한 통로 위, 울타리 밖. 야경꾼 차복을 입은 큰형이 그곳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펴보았다.
허신년은 갑자기 눈이 번쩍였다. 멍석에서 일어나니 족쇄와 수갑이 따라 움직이며 ‘데구르르’ 소리를 냈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손 상서가 형님을 들어오게 했어요?”
허신년은 의외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허칠안은 상황을 보니 마음이 놓여 훑어보던 시선을 거두고 숨을 토해 냈다.
“보아하니 그저 찰과상이군.”
그런 뒤 그는 옥졸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물러 가거라.”
옥졸은 눈치 빠르게 나갔다.
허신년은 ‘퉤’하고 침을 뱉더니 말했다.
“이 개새끼들, 채찍으로 때려서 너무 아파요.”
‘신년이 지금 나한테 고자질하는 거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형이 너를 구해서 나갈 방법을 강구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가 막 말을 마치자 허신년은 손을 저으며 그의 말을 끊고, 강조해서 말했다.
“형님, 아마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이 일 자체는 과거 부정행위가 아니라 국자감과 운록서원의 충돌입니다.”
‘아니, 나 아주 잘 알거든…….’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허신년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수다스럽게 쉴 새 없이 지껄였다. 말하는 목소리에 기력이 왕성했다. 그저 찰과상만 좀 입은 게 확실했다.
“사실 저는 진작 예감이 들었어요. 운록서원의 서생이 회원에 급제했는데 어찌 이렇게 간단하고 수월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서원이 조당에 복귀해 세력을 확장하려면 누군가는 선두에 서고, 누군가는 후발주자를 위해 길을 터야 하지요.”
허신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제가 바로 그 길을 트는 사람입니다.”
‘신년아, 사람들은 첫 번째로 길을 트는 사람한테 탄복하지 않는단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탄복하는 건 길을 확장하는 사람이라고…….’
허칠안은 ‘음’하고 소리를 냈다.
“계속 말해봐.”
“사실 저는 감옥에서 이미 해결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허, 어쨌거나 조당에서 벌어지는 암투에 대해선 그래도 집안에서 제가 제일 정통하지 않습니까.”
허신년은 거만하게 아래턱을 치켜올리고 말을 이어갔다.
“서원의 대유는 평민의 몸으로 조당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위연은 가능하지요. 형님이 위연을 찾아가 부탁해보세요. 그에게 바로 제 죄를 벗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너무 어려우니까요. 반드시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이건 여러 문관과 전쟁을 벌이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지요.
제 요구는 공명을 파면하되, 과거에 응할 수 있는 권한을 남기는 것입니다. 혹은 저를 전시에 가둔 후에, 3년 뒤 회시를 다시 한번 보는 겁니다. 국자감 출신 문관들의 주요 목적은 제가 아니라 운록서원을 억압하는 거예요.”
허신년은 말을 마치고, 멍하니 넋이 나간 큰형을 보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네, 형님한테는 이 일들이 확실히 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형님은 그저 제가 말한 대로만 하면 됩니다. 제가 비록 감옥 안에 있지만, 똑같이 후방에서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요.”
‘신년아, 너는 네가 18층에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 너는 지구 표면에 있단다…….’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큰형은 생각이 다른데.”
허신년은 어리둥절하다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바로 허칠안은 위연이 분석한 ‘1타 3피’를 허신년에게 들려 주었다. 그리하여 감방 안은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랬군요. 알고 보니 이 사건의 배후에 이렇게 복잡한 맥락이 있었군요. 저, 저 끝났나요?”
허신년은 아주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발을 뺄 가망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분석이 지나치게 얕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그 혼자서 생각한 제왕의 수와 서로 부합하지 않았다.
“안심해. 큰형이 최선을 다해 너를 구해 줄 테니까.”
허칠안은 이렇게 위로했다.
이곳은 형부의 지하감옥이라 너무 많이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허신년은 참담하게 웃었다.
* * *
허칠안은 허신년과 작별 인사하고 형부 관아를 나섰다. 그는 여동생과 숙모를 위로하러 집에 다녀올 계획이었다. 한나절 이상이 지났고, 그는 줄곧 밖에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아마 집안의 두 안식구는 지금까지도 놀라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대청 안에서 숙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칠안은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니? 신년이 형부에 갇혀서 얼마나 고생할지도 모르는데 좌우간 믿을 만한 소식은 줘야지…….”
허영월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머니, 큰 오라버니는 틀림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관계를 중재할 거예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해 질 무렵에 퇴근하면 큰 오라버니가 돌아와서 알려 줄 거예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니? 네 엄마는 지금 일각이 지날 때마다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숙모는 엉엉엉엉 울기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한 말 못 들었니? 칠안이 형부에 부탁하러 갔는데 신년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욕당했다고 했잖니.”
허평지의 탄식이 이어졌다.
‘숙모는 비록 속이 좁고, 나이를 먹었어도 본인이 귀여운 줄 알지만, 이 순간 숙부에게 아들을 구하지 못해 무능하다고 창피를 주지는 않았다. 이게 아마 숙부가 숙모를 그렇게 예뻐하는 이유겠지…….’
허칠안은 갑자기 이 이전에 신경 쓰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을 발견했다.
“콜록콜록!”
허칠안은 내전에 들어가면서 기침 소리를 내 가족들의 주의를 끌었다.
허영월은 분명히 방금까지는 아주 침착했지만 이젠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는 허칠안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오열했다.
허칠안은 이 모습을 보더니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먼저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
허영월이 울먹울먹 외쳤다.
“큰 오라버니…….”
그런 뒤 데시벨 높은 숙모의 목소리에 의해 가려졌다. 숙모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면서 허칠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기대하면서도 긴장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칠안, 신년, 신년은 어떠니? 빨리 그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보렴. 집안에서 너만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잖니.”
숙부는 탄식했다.
“형부상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복하려고 하는데 칠안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에게 다시 한번 모욕당하란 말이오?”
숙모는 반짝반짝 빛나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허칠안은 숙모의 손을 툭툭 치고, 여동생의 손을 툭툭 치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 신년을 만났어요. 그는 다친 데 없이 아주 잘 있어요.”
숙모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맑고 아름다운 눈으로 조카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코를 훌쩍였다.
“칠안아, 나 속이면 안 된다.”
허영월은 기대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하고 큰 오라버니를 쳐다보았다. 이는 큰 오라버니를 숭배하는 한 여동생의 희망이었다.
허칠안은 가족들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제가 위 공과 공주마마를 모시고 손 상서께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는 감히 신년을 고문하지 못할 거예요. 안심하세요.”
‘만약 위 공과 공주마마가 나서면 확실히 감옥 안에 있는 신년이 크게 괴롭힘당하지는 않겠군……. 칠안은 위 공의 심복이니 이상할 게 없는데, 공주마마를 이 사건에 개입하게 하다니……. 칠안이 장공주와 이렇게 깊고 두터운 친분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허평지는 내심 개탄했다. 어느새 조카의 인맥이 우러러볼 만큼 방대해졌다.
‘칠안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항상 마음이 놓여…….’
숙모 가슴속의 돌이 천천히 떨어졌다.
허영월은 입을 오므리고 눈을 반짝였다. 큰오라버니는 지금껏 그녀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사실은 제가 손 상서의 아들을 납치했어요. 하지만 그는 증거가 없으니 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거예요. 저는 그저 그에게 고문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는 손 상서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거든요. 그리고 그는 쌍방이 함께 죽는 것보다 적자의 목숨을 더 마음에 두거든요.’
그는 비록 규칙을 파괴했지만, 수위를 잘 조절하면 미치는 영향을 최소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손 상서는 확실히 증거가 없고, 허칠안이 사람을 직접 잡은 것도 아니니 사천감의 망기술은 더욱이 두렵지 않다.
평양군주 사건 때, 예왕이 바로 증거가 없었다. 딸은 까닭 없이 실종되었는데 그는 적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물론 사건이 발생한 직후 양당(梁堂)이 치른 대가는 온 집안 재산 몰수와 참수형이었다.
‘효과가 좋기만 하면, 설령 대봉 율법에 쓰여 있는 규칙이라도 누군가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야. 더군다나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허칠안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생각 없이 옆에 앉아서 떡을 먹는 리나와 허영음을 쳐다보고 말했다.
“오늘 둘은 외출하지 마시오. 리나, 낮에 저택에 있는 안식구들의 안위는 소저에게 맡기겠소.”
“알겠어요!”
리나는 단박에 응했다.
‘리나는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지만, 싸움을 잘하니까…….’
허칠안은 아주 마음이 놓였다.
관리 사회에서 고립될지 보자면, 손 상서가 이 일을 퍼뜨릴지 말지는 둘째치고 설령 퍼뜨린다고 해도 그는 두렵지 않았다. 명색이 위연의 심복으로 그는 적이 너무 많았다.
고립되는 걸 두려워할까 봐?
허칠안은 벼슬길을 걸으려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는 야경꾼이다. 양자는 그 성질이 다르다. 전자는 명성이 필요하고, 관리 사회의 인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야경꾼은 필요하지 않다. 위연이 있으면 그가 있고, 위연이 쓰러지면 그도 쓰러진다.
허평지는 입을 벌린 채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 내심 서운하면서도 흐뭇했다. 그가 흐뭇해하는 지점은 조카가 성장해서 더는 예전에 그가 뒤통수를 때리도록 내버려 두던 자식이 아니란 부분이다.
서운한 점은 이 자식의 뒤통수를 이제 더는 때릴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