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약점
손요월은 밥을 배불리 먹고 술을 충분히 마신 뒤,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주루를 나섰다. 그는 주루 밖에 세워진 마차에 들어가 수행원의 부축을 받아 마차로 올랐다.
그는 잠시 눈을 붙이려던 중, 호피가 깔린 푹신한 평상 위에 웅크리고 앉은 길고 가느다란 체형의 황갈색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호박색의 눈동자로 그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는 어떠한 인기척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차창이 갑자기 활짝 열리더니 황갈색 고양이가 뛰어내렸다. 고양이는 꼬리를 치켜세운 채 아주 빠른 걸음을 내디뎌 북적거리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 *
손 상서는 형부에서 하급 관리를 불러와 물었다.
“감옥에 가서 허신년이 자백했는지 물어 보거라.”
하급 관리는 명령을 받들고 물러났고, 몇 분 후 돌아와 복명했다.
“상서 대인, 허신년은 맷집이 아주 세서 아무리 때려도 자백하려 하지 않습니다.”
“덜 맞아서 그렇다.”
손 상서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형부에 가혹한 형벌이 얼마든지 있으니 그에게 하나씩 맛보게 하거라. 돌멩이도 꽃을 피우지 않느냐. 음,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하급 관리가 물러나자마자 한 사람이 허둥지둥 대며 뛰어 들어왔다. 그는 부잣집 영감 옷차림에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문턱을 넘을 때 발이 걸리기도 했다.
“자네가 관아에 무슨 일로 왔는가.”
손 상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자는 손부의 집사로 손 상서를 수십 년 동안 따른 늙은 종이었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늙은 집사는 우거지상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이, 공자님이 사라졌습니다.”
“공자님이 사라졌다니?”
손 상서가 안색이 변한 채 일어서서 걸어왔다. 그는 늙은 집사를 주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공자님이 사라졌다니!!”
“공자님을 따라 외출했던 하인이 방금 전에 저택으로 돌아와 보고하길 오늘 공자님이 주루에서 동창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술을 마시고 마차에 들어간 뒤…… 그리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차가 저택에 돌아온 후에야 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요.”
늙은 집사는 안절부절못하더니 조급하면서도 망연자실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택의 객경이 말하길 혹, 혹시 나리께서 최근에 누군가의 미움을 사셨는지요?”
대봉 관리 사회에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정치 투쟁은 정치 투쟁일 뿐, 절대로 가족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덕적 마지노선이 얼마나 높은지가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 역시 똑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눈치가 없으면 규칙을 알지 못한다는 취급을 받고 전체 계층의 배척을 받기도 한다.
이 암묵적인 규칙은 그 권위성이 높다. 심지어 조정에서도 인정하지만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공개석상에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봉에는 제도가 하나 있다. 어떤 관원이든 일단 경성에 들어와 관리가 되면 부모나 처자식도 함께 경성에 들어와야 한다.
이 제도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제도 하나가 암묵적인 규칙을 위해 길을 터 준다는 데서 이 암묵적인 규칙의 권위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다라…….’
손 상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허칠안 이 개자식이 떠올랐다.
“어리석긴!”
손 상서가 크게 소리치자 수염이 벌어졌다. 그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어 울부짖었다.
“내 아들을 납치하면 본관을 굴복시킬 수 있을 줄 아는가? 무식한 새끼, 스스로 자폭하는군. 만약 내 아들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긴다면, 경성 전체에 네 몸을 둘 수 있는 곳은 없을 거다. 아니, 네 온 가족 전부 죽어야 할 것이다.”
그는 포효한 뒤 탁자 위의 접본을 모조리 바닥에 쓸어버렸다. 찻잔이 ‘쨍’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문방사우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늙은 집사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큰 숨을 내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리는 여러 해 동안 관직에 있었기에 칭찬과 모욕에 아랑곳하지 않는 마음속의 담을 진작 쌓았더랬다.
그가 이렇게 노발대발하는 모습은 두 번 본 적 있다. 첫 번째는 말 못할 치욕을 가져다준 그 시였다. 두 번 다 허칠안이라는 무식한 새끼 때문이었다.
손 상서는 갑자기 관포 아랫단을 들고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씩씩하고 힘찬 몸으로 미친 듯이 방을 뛰쳐나갔다.
“나리, 분부하실 게 있으시면 저를 시키시면 되는데요……!”
늙은 집사는 쫓아 나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손 상서는 상관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여봐라, 여봐라. 속히 감옥에 가거라. 고문해서는 안 된다, 고문해서는 안 돼…….”
형부 관아의 하늘에 손 상서의 ‘고문해서는 안 된다(음이탈)’가 울려 퍼졌다.
* * *
일각 후, 이미 어느 정도 침착해진 손 상서가 숨을 헐떡이며 당내로 돌아왔다. 그는 늙은 집사가 내온 따뜻한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무식한 새끼가 감히 본관을 협박하다니. 무지하고, 어리석구나!”
욕설을 퍼붓고 손 상서는 말머리를 돌려 집사에게 분부했다.
“너는 즉시 야경꾼 관아에 가서 그날 죽인 개새끼더러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하거라.”
상대가 규칙을 깼지만 손 상서는 지금도 강경하게 나갈 수 없었다. 대화가 잘 되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우선은 적자의 무탈을 확인하고 개새끼 허 씨와 결판을 낼 작정이었다.
관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응했다. 그가 돌아서서 나가려는 차에 수위 하나가 문턱을 넘어오더니 읍을 올리며 말했다.
“상서 대인, 허칠안이 또 왔습니다.”
‘마침 잘 왔군!’
손 상서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순식간에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들어오라고 하거라.”
이내 수위는 은라 차복을 입은 허칠안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개자식 허씨는 실눈 뜬 채, 조용한 뜰을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걸었다. 오전에 회견을 청할 때처럼 어두운 표정을 하고 화를 억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손 상서의 표정은 마침 그때의 허칠안 같았다.
“내 아들 손요월 어디에 있는가? 허칠안, 얼른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게. 본관이 이 일은 발생하지 않았던 걸로 쳐줄 수 있네.”
손 상서는 허칠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못 알아듣겠습니다.”
허칠안은 무고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좋습니다. 손 상서께서는 제 친척 동생이 과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누명을 씌우더니 저조차도 물건을 훔쳤다고 모함하시는군요. 세상에 이렇게 비열하고 염치없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자네…….”
손 성서는 마침내 시선을 옮겨 허칠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입을 떼려다가 당내의 하급 관리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 그런 뒤 또박또박 말했다.
“본관은 자네가 젊고 규칙을 알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여 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네. 만약 자네가 여전히 경성 관리 사회에 머무르고 싶다면 얌전히 풀어 주게.”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손 상서께서는 분명 잘못 아시는 겁니다. 본관은 상서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문득 모든 걸 깨우치고선 친절하게 말했다.
“손 상서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들어보니, 설마 귀공자께 사고가 생겼습니까? 나쁜 놈이 납치했습니까? 제게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남 돕기를 가장 좋아하고, 사건 해결은 저를 따라올 자가 없지 않습니까. 손 상서께서 말씀하시기만 한다면, 하루 안으로 그를 찾아서 돌아오겠다고 장담하지요.”
‘어리숙한 척하긴…….’
손 상서는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서 표독스럽게 말했다.
“허칠안, 자네 역시 가족이 있다는 걸 잊지 말게.”
허칠안은 탄식하더니 비통한 심정을 드러냈다.
“상서 대인, 보아하니 저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저는 어릴 적에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둘째 숙부가 저를 키우셨습니다. 하지만 숙모께서는 저를 업신여기고 백방으로 치욕을 주었더랬죠. 열다섯 살 때는 저를 집 밖으로 쫓아내 개집에서 살게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십만 군대가 둘러싸고 사실을 왜곡하는 부친이 없습니다…….”
“허칠안!”
손 상서는 화가 나 소리치며 말을 끊었고,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가? 과거 부정행위 사건은 폐하께서 조사하시려는 문제네. 형부와 부아가 주심이지. 조정의 문무백관이 주시하니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만약 내 아들로 협박하고 싶다면, 본관은 자네와 피 터지도록 싸우는 수밖에 없네. 유치하게 굴지 말게!”
‘이 시대에는 더 난폭하게 구는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사촌 동생의 중요성은 당연히 아들만 못 하고. 나는 마음을 모질게 먹을 수 있지만 그는 못 해…….’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 상서의 앞으로 걸어가서 귓속말로 소곤소곤 속삭였다.
“저는 한 가지 요청뿐입니다. 허신년이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고문해서는 안 되고 자백받을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그의 손가락 하나가 없어지면, 저는 당신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겠습니다. 그의 몸에 상처가 있는 만큼, 대인 아들 몸에 똑같이 상처를 남길 생각입니다. 과거 부정행위 사건이 끝난 후에 허신년이 죄를 벗을 수 있든 말든 저는 대인 아들을 말씀드린 대로 풀어 줄 겁니다.”
“허칠안…….”
손 상서가 막 호통 치려는데 허칠안이 갑자기 흑화하더니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매섭게 말했다.
“저를 자작 대인이라고 부르십시오.”
……손 상서는 누그러뜨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자작 대인, 내가 무슨 근거로 자네를 믿는가?”
허칠안은 탁자 옆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떡 하나를 집어 들고 먹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손 상서께 선택권이 있습니까? 믿든지 말든지 대인께서 적자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닌 이상, 제 뜻에 따라 처리하셔야 합니다. 대인께 허신년의 죄를 벗겨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이 일은 어렵지 않지요?”
그는 손 상서 앞으로 걸어가서 붉은 도포 위를 문지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대인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 역시 가족이 있습니다.”
이 수는 위연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하지만 방법과 계획은 그 스스로 생각했다. 위연이 세운 계책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이 인자하길 바라는 건 그저 황당무계한 말일 뿐이다. 오늘 아침 형부에서 겪은 희롱과 냉대가 바로 이에 딱 들어맞는 증명이다.
적을 공격해서 쓰러뜨리려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약점은 피붙이다. 하지만 가족을 해치는 건 금물이다. 그 수위는 허칠안 스스로 헤아리고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손요월 하나만으로 신년을 빼낼 수 있을 거라고 기상천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손요월을 가지고 손 상서와 거래할 뿐이다. 이렇게 하면 난이도가 훨씬 낮아지고, 그 성질도 가벼워진다.
손 상서가 동의하지 않고 굳이 허신년을 고문하려고 한다면, 허칠안 역시 말한 대로 할 것이다. 나아가 손 상서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그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수위를 잘 조절한 덕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