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방법 (1)
원경제는 비홍(*批紅: 신하의 건의가 쓰인 종이에 황제가 붉은 글자로 재가하는 것)한 접본을 늙은 태감에게 툭 내던지며 웃었다.
“태감, 짐에게 말해 보거라. 이 회원 허신년이 도대체 부정행위를 한 것이냐 안한 것이냐?”
늙은 태감은 접본을 받아 재빠르게 훑어보더니 말했다.
“제가 우둔하기는 하지만 이 일에는 확실히 수상쩍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경제는 그를 몇 초간 주시하더니 분부했다.
“부아와 형부에 이 사건을 처리하라고 명령한다.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늙은 태감이 명령을 받들고 물러나자, 원경제는 용의에 앉아 어서방 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1타 3피군.”
* * *
망포를 입은 늙은 태감이 어서방에서 나와 고개를 숙이고 내달렸다. 100m쯤 갔을까.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부르르 떨며 가슴을 쳤다.
“재가해 놓고 나한테 뭘 물어……. 위연아, 위연. 내가 그대를 돕지 않는 게 아니라 내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중의 훈령이 각각 형부와 부아로 전달되었다.
형부 손 상서는 미리 예상했다는 듯 훈령을 받은 뒤 즉시 허신년을 체포할 사람을 파견했다.
진 부윤은 궁 안에서 전해 온 훈령을 받더니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장풍파랑회유시……. 큰 파도가 밀려와 그대의 배를 부숴 사람이 죽을까 두렵군.”
그는 즉히 소윤(少尹)을 불러와 나지막이 말했다.
“즉시 사람을 보내 허신년을 체포하여 관아로 데리고 와 심문하거라. 반드시 형부가 빼앗기 전에 체포해야 한다……. 사람을 보내 허 은라에게 알려라.”
* * *
따사로운 봄날, 허신년은 허부에서 책상을 나무 그늘 아래 두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뚫고 나와 책상 위, 책 그리고 그의 수려한 얼굴을 알록달록하게 비추었다.
손 옆에는 찻잔과 떡이 있었다.
숙모는 허영월과 허영음 자매 둘과 집에서 기숙하는 리나를 데리고 놀러 나갈 계획이었다.
리나는 나무 아래의 허신년을 보고 시원시원하게 칭찬했다.
“둘째 공자님은 정말 빼어나게 잘생겼어요. 만약 우리 부락에 있었다면 아줌마들이 그를 차지하기 위해 피범벅이 되도록 싸울 거예요.”
숙모는 순간 경계했다. 그녀는 마치 자기 집의 배추를 파헤치려는 멧돼지를 본 듯했다.
‘이 남강의 까만 소녀가 암시를 하나? 신년에게 관심 있다고? 퉤, 허황된 망상 같으니라고. 제 분수를 모르는구나.’
숙모는 아름다운 눈으로 리나를 흘겨보더니 재촉했다.
“시간이 늦었다. 어서 외출하자꾸나.”
그녀는 이번 외출에 수행원을 데리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수행원이 백 명 있어봤자 남강의 까만 소녀를 당해내지 못한다. 리나의 실력은 허평지와 허칠안이 인증했다.
숙모 역시 리나가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손쉽게 가루로 으스러뜨리는 걸 직접 목격했다.
갑자기 리나가 준수한 허신년을 뒷전으로 두고, 기뻐하며 밖으로 갔다. 그녀는 대봉 경성 구경을 간절히 희망해 왔다.
리나는 전에 남강에 있을 부락의 어르신들이 대봉 경성에 대해 하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라고 했다.
‘못난 계집애. 많이 먹는 데다가 우리 신년이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다니. 그녀를 쫓아낼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숙모는 남몰래 속으로 생각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이민족 여인이 숙모의 배척 사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마침 이민족 여인을 어떻게 쫓아낼지 궁리하는데 뛰쳐 들어오는 관병들이 보였다. 그들은 문지기 장씨를 바닥으로 밀치고 곧장 안뜰로 달려왔다.
우두머리 포두가 손에 초상화를 들고 대조하더니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보고 있는 허신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자가 허신년이다. 체포해라.”
“당신들 뭐 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까닭으로 우리 집 둘째를 체포한다는 말이에요?”
대경실색한 숙모는 자식을 보호하겠다는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 관병 앞을 막아섰다.
“형부에서 사람을 체포하는데 감히 막아서? 전부 데려가라!”
그 포두가 손을 휘둘러 부하에게 숙모를 체포하라고 분부했다.
관차(*官差: 관아에서 파견하는 하급 관리) 두 명이 즉시 앞으로 나서 밧줄을 꺼내 숙모의 머리에 씌웠다.
“쿵!”
리나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서 관차의 가슴을 가볍게 밀쳤다.
“아…….”
비명 소리와 함께 관차가 날아가 얼떨떨하게 떨어졌다.
쨍!
관차들은 잇따라 무기를 뽑아 들고 칼날을 리나에게 겨누었다.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는 다소 흥분하여 입술을 핥았다. 그녀가 열 번 숨을 쉬는 사이에 이자들을 전부 죽일 수 있었다.
숙모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리나 뒤로 숨었고, 문득 이 까만 피부의 소녀가 참 믿음직스럽고 의지할 만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멈추시오.”
허신년이 큰 소리로 꾸짖더니 서적을 내려놓고 걸어왔다. 차가운 눈빛으로 모든 관차들을 훑어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공명을 세운 회원이오. 당신들이 함부로 우리 저택에 쳐들어와 경솔하게 칼날을 휘두르는 건 큰 죄요.”
이때 맞아서 날아간 관차 둘이 가슴을 어루만지며 일어났다. 포두는 그들이 아무런 이상 없는 걸 보자 잠시 침음하더니 칼을 거두고 훈령을 꺼내 말했다.
“우리는 허 회원을 관아로 데리고 가 심문하라는 형부의 명령을 받드는 것이오.”
허신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소?”
“우리를 따라 다녀오면 알 것이오.”
포두가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데려가라.”
리나는 나서고 싶었지만, 허신년에게 제지당했다. 그는 기꺼이 형부의 관차를 맞이했다.
“당신들을 따라가겠소.”
숙모와 허영월은 저택 바깥까지 쫓아 나가 관차가 허신년을 호송하여 길거리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 공자님도 은자를 주워요?”
그녀는 은자를 주우면 관병에게 체포될 것임을 알았다.
이 순간, 문지기 장씨가 허신년의 말을 끌고 와서 말했다.
“부인, 아가씨. 제가 지금 바로 사람을 시켜 나리께 통지하러 가라 하겠습니다.”
숙모와 허영월은 동시에 돌아서서 소리쳤다.
“칠안을 찾으러 가게.”
“큰 오라버니를 찾으러 가게.”
* * *
“뭐라고? 형부 관차가 저택에 와서 신년을 체포했다고?”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에서 소식을 접하자 어리둥절했다. 너무 갑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첫째 공자님, 빨리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부인과 아가씨가 급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셨어요.”
문지기 장씨의 아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체포했지?”
장씨의 아들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갑자기 관병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심지어 제 아버지를 밀쳐 곤두박질치셨어요. 그러곤 둘째 공자님을 잡아갔습니다.”
“알겠네. 자네 먼저 돌아가게.”
허칠안이 분부했다.
“숙모와 영월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알리게.”
“첫째 공자님, 직접 돌아가서 그녀들에게 말씀하셔야 해요.”
문지기 장씨 아들이 말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저어 그를 쫓아냈다. 그러고는 탁자에 앉아 잠시 침음하더니, 일어서서 일도당을 나섰다. 형부에 갔다 올 계획이었다. 그는 우선 형부가 왜 허신년을 체포했는지 확실히 알아보려 했다.
* * *
‘형부상서가 조카딸 일로 화풀이하려고 일부러 트집 잡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해결하기 쉽다. 신년은 공명을 떨쳤으니 일반적인 사소한 일로는 그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당 우두머리들의 일 처리 스타일을 보면 설령 조카딸 일로 화풀이한다 해도 아무런 근거 없이 사람을 체포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약점을 잡고 공격이 먹힐 거란 자신이 있어야만 나설 것이다. 따라서 신년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게 틀림없다. 내가 아직 모를 뿐…….’
그는 마당을 나왔다. 그가 마침 마구간에 가 암말을 끌고 나오려던 차에 부아의 총포두 여청이 쾌수 두 명을 데리고 분주한 발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허 대인.”
양측이 얼굴을 마주했다. 여청은 희색을 보이다가 이내 초조한 표정으로 연거푸 말했다.
“부윤께서 제게 허 회원이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고 알리라 하셨습니다.”
“알고 있소. 조금 전에 이미 형부 사람에게 잡혀갔소.”
허칠안이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 하니 형부 사람이 한 발 빨랐군요.”
여청이 탄식했다.
“여 포두 안으로 드시지요. 마침 가르침을 청할 일이 있소.”
허칠안은 마구간으로 갈 생각을 접고 여청을 이끌고 일도당으로 돌아왔다.
여청은 하급 관리가 내온 차를 받아 형식적으로 한 모금 적시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허 회원의 과거 부정행위를 조사하라고 교지를 내리셨습니다.”
허칠안은 ‘과거 부정행위’라는 말에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신년의 그 《행로난》은 확실히 내가 그에게 준 것이지만 이게 과거 부정행위라고 할 수 있나? 시험 문제는 내가 맞혔는데. 예상 문제를 추리는 행위를 조정에서 지지하지는 않지만, 지금껏 금지한 적도 없다. 유림에는 예상 문제를 추리는 관습이 있는 정도이니 엄격하게 말하자면 부정행위는 아닌 셈이라고……. 아니, 문제 자체가 부정행위가 아니다.’
허칠안은 음모의 기운을 감지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폐하께서 조사하라고 하셨소?”
여청이 당내의 하급 관리를 쳐다보더니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본관은 모릅니다. 허 대인께서도 멋대로 추측하시면 안 됩니다.”
“본관이 실언했소이다.”
‘하지만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만약 원경제가 신년을 손보고 싶다면 처리하기 쉽지 않고, 신년의 앞날은 거의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된다. 황제에게 헌신하고자 하는데 황제가 원치 않으면 지식인은 쓸모없어지니까…….’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여 포두, 상기시켜 줘서 고맙소. 본관은 서둘러 이 일을 처리해야 하니 붙잡아 두기 편치 않네만.”
“허 대인, 본관을 배웅해주시지요.”
여청은 뜻하는 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일도당을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저택 밖으로 걸어갔다. 여청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허 대인께서 형부에 다녀오시는 게 가장 좋을 듯합니다. 형부 손에 들어갔으니 못살게 굴도록 내버려 둘 거예요. 늦으면 전부 다 자백할지도 몰라요.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여청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다. 관아에서 수년 동안 재직하면서 유사한 사건을 적잖이 보았기에 관리 사회의 교활한 음모를 아주 잘 알았다.
* * *
허칠안은 여청을 배웅한 뒤 위연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방향을 바꿔 호기루로 들어갔다.
직감이 그에게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해 주었다. 관리 사회의 암투는 그 방법이 다양했다. 그는 경험이 부족하고 단수도 충분치 않다. 다행히 빌붙을 수 있는 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허칠안은 호기루에 들어갔다. 다실 안, 허칠안은 사건을 위연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위 공께서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위연은 찻잔을 쥐고 침음하더니 말했다.
“나는 궁 안에서 온 통지를 받지 못했네. 이는 폐하께서 내가 모르길 바란다는 걸 의미하네. 적어도 내가 당장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게지.”
허칠안의 안색이 변했다.
“폐하께서 저를 손보시려는 건가요?”
“손본다는 말이 얼마나 저속한가.”
위연이 싫어하며 말했고, 이어 고개를 저었다.
“자네 허씨 형제는 폐하께서 직접 등판하시기에는 아직 자격이 없네. 아마 누군가 탄핵했겠지. 목적은 우선 역대 과거 부정행위 사건의 사례로 비춰봤을 때 부정행위인 경우, 무조건 시험관이 문제를 유출했네. 이번 춘시의 주임 시험관 세 명은 각각 동각대학사 조정방, 우도어사 유홍 그리고 무영전대학사 전청서지. 나머지 잡어는 잠시 제쳐 두자고. 문제를 유출할 가능성 있는 세 명의 주임 시험관 중에 전청서는 우선 배제되네.”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위연이 대답했다.
“탄핵 상소문은 먼저 내각을 거쳐야 하네. 내각은 왕정문의 근거지고 전청서는 왕정문의 사람이네. 이해했는가?”
‘왕 재상이 상소문을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는 말은 이 일이 전청서와 무관하다는 의미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