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과거(科擧) 부정행위 (1)
“허신년이 뭔 시를 짓는다는 말인가? 내가 아무렇게나 몇 구절 휘갈겨서 그가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게 할 수 있다고. 그날 그 대신 사촌 형 허칠안이 시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자양거사의 그 옥패는 아마 내 것이었겠지.”
주퇴지는 그날의 행사를 떠올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과거 부정행위 아닌가?”
유각이 상대방을 떠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운록서원의 서생들은 이 말을 듣고 분노하면서 하나같이 그를 노려보았다.
‘과거 부정행위라…….’
이 단어가 주퇴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순간 모든 의문을 관통한 듯했고, 허신년이 후세에 전해질 만한 명작을 지어 회원에 급제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내 주퇴지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네. 시사는 글이 아니야. 사전에 시험 문제를 알게 되어야 충분한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네. 유 형, 내가 자네에게 ‘춘경(春景)’을 주제로 제시하고 3일이라는 시간을 주었다면, 자네는 후세에 전해질 만한 작품을 한 수 지을 수 있겠는가?”
유각이 고개를 저었다.
“부끄러워 진땀이 나는군. 내게 3년을 줘도 쓰지 못할 것 같네.”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깊은 뜻을 내포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하지만 주 형 생각해 보게. 만약 그 대신 시를 지은 사람이 은라 허칠안이라면?”
모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운록서원의 서생이든 국자감의 학자든 모두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곰곰이 헤아려 봤다.
그렇다. 만약 허 시괴가 사전에 시험 문제를 알 수 있었다면, 3일은 고사하고 하루면 쓸 수 있을 것이다.
송별시와 영매시 그리고 운주에서 ‘희생’하기 전에 목청껏 노래 부른 그 반 수짜리 시 모두 벼락치기로 지은 글이었다.
운록서원의 서생은 또 서원의 공명 벽에 붙어 있는 《권학시(勸學詩)》를 떠올렸다. 서원 대유가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허칠안은 열 번 호흡할 때마다 시를 짓는 놀라운 재능을 지닌 셈이었다.
“흥, 은라 허칠안은 또 어떻게 시험 문제를 알아낸단 말인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입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운록서원의 서생이 질문했다.
“모르겠네, 모르겠어.”
유각이 손을 내젓더니 웃으며 말했다.
“본디 취해서 한 말이네. 제멋대로 추측했을 뿐이야. 허나 그 허칠안은 은라고, 위연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관리 사회에 소문났으니…….”
그는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다.
운록서원의 서생들은 이 에피소드가 생기니 술을 마실 기분이 사라져서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작별을 고했다.
교제에 능한 유각은 직접 주퇴지 일행을 배웅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 자발적으로 계산하였다. 사람들은 주루 밖에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 * *
일각 후, 유각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주루 밖에 세워 둔 마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마차 안에는 부잣집 차림의 중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엄지손가락에 옥가락를 끼고 손에는 호두를 굴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찻잔을 받쳤다.
“조 관사(管事)!”
유각이 공손히 읍했다.
중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찻상 위에 엎어 놓은 찻잔을 뒤집어 차를 한 잔 따른 뒤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몸에서 술 냄새가 나니 차 한 잔 마시게.”
“감사합니다, 조 관사님.”
유각이 양손으로 찻잔을 받쳐 든 채로 단번에 마신 뒤 천천히 말했다.
“몇 가지 알아낸 일이 있는데 운록서원의 몇몇 서생들 말에 의하면 허신년은 근본적으로 시를 지을 줄 모르고, 수준이 형편없다고 합니다. 그 《행로난》도 십중팔구 다른 사람이 대필한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증거는 없지만요.”
중년은 그의 말을 듣더니 만족스럽게 조소하며 말했다.
“증거는 필요 없네. 이것만 있어도 충분해.”
* * *
외성,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마당 안에서 방금 혈태환을 삼킨 금련 도사는 봄날의 따뜻한 햇살에 젖었다. 몸이 더는 으슬으슬하지 않고, 더 이상은 음물 쪽으로 변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속에 음기가 약간 남았다. 그래도 다른 혈태환 한 알로 제거하기에 충분했다.
“이 육신과 내 원신이 잘 맞지는 않으니 오랜 시간 사용할 수는 없겠군. 다행히 대자연 금련이 곧 여무니 연밥으로 내 육신을 다시 만들 수 있으니 그때 경성을 떠나야 하겠군. 그때 가서 이변이 생기지 않길 바라야지.”
금련 도사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 * *
“첫째 공자님, 그, 그 소저는 대봉 인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문지기 장씨의 아들이 생각하더니 묘사하며 말했다.
“검은 피부의 못생긴 소저로 눈은 푸른색이었어요. 머리카락도 곱슬곱슬한 게 보기 흉하더라고요.”
‘오호?! 제기랄, 그녀가 우리 집에 뭐 하러 왔지? 금련 도사가 그녀한테 오라고 한 건가? 그럼 그녀는 내가 삼호라는 사실을 아나?’
금련 도사는 삼호가 아니라 그에게 오호 찾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삼호의 품계가 너무 낮다’라는 핑계로 덮어 감출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가의 언출법수는 후반으로 갈수록 실력이 더 어마무시해진다.
하지만 초기 품계에서 9품부터 7품까지는 쓰레기다. 6품 유생경(儒生境)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솜씨를 베낄 수 있기에 상당히 훌륭한 전투력을 갖출 것이다.
초원진과 항원이 보기에 삼호 허신년은 더할 나위 없이 총명하지만, 진정으로 필요할 때는 전투력이 센 사촌 형 허칠안이 더 믿음직했다.
‘보아하니 오늘은 결근하는 수밖에 없겠어…….’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겠네. 휴가를 낸 뒤에 자네와 함께 저택에 돌아가겠네.”
* * *
휴가를 낸 뒤 허칠안은 말등에 앉아 허부 방향으로 갔다. 문지기 장씨의 아들은 옆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이각 후 관아에서 멀지 않은 허부에 도착했다. 허칠안은 말고삐를 장씨 아들에게 건네주고 곧장 저택으로 들어갔다.
막 바깥뜰에 들어가자 따뜻한 음식과 찐빵, 쌀밥을 받치고 안뜰로 걸어가는 취사부들이 보였다.
“첫째 공자님 돌아오셨군요…….”
취사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하면서 시선을 안뜰로 옮겼다.
“저택에 공자님을 찾는 소저가 왔어요. 공자님과 무슨 관계인지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웅얼웅얼 해서 열 마디 중에 아홉 마디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열 마디 중에 아홉 마디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니. 오호의 남강 사투리가 좀 세구나…….’
허칠안은 빈정대면서 취사부와 함께 안뜰로 들어갔다. 저 멀리 내청(內廳)에서 허영월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나 소저께서 남강에서 먼 길을 왔는데 저희 큰 오라버니는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거예요?”
“네 큰 오라버니를 찾으러 온 게 아니라 친구들을 찾으러 온 거야. 자유로이 경험을 쌓으려고…….”
리나는 사투리가 아주 센 목소리로 팔푼이의 대봉 관화(官話)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은방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심지어 듣기 좋았다.
“그러니까 우리 큰 오라버니를 모른다고요?”
“몰라.”
‘두세 마디 나눠 보니 속내가 파악되는군. 이 아가씨는 딱히 똑똑하지 않아. 큰 오라버니와도 관계가 없고…….’
허영월은 리나를 친절하게 대접했다.
숙모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소 적의를 품은 눈빛으로 리나를 살폈다.
‘이 이민족 여인은 정말 잘 먹는다. 반 시진 동안 집안의 사흘 치 식량을 다 먹어버렸어. 은자로 환산한다면 이게 다…… 얼마야?’
그래도 특별히 취사부에게 쌀국수, 찐빵 그리고 야채 요리를 준비하라고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생선 요리와 고기 요리였다면 은전을 얼마나 먹어 치웠겠는가?
어느 집에서 이런 아가씨를 키울 여유가 있겠는가.
“리나 소저? 우리 저택에는 무슨 일로 왔소?”
허칠안은 문턱을 넘어 의아해하는 얼굴로 남강에서 온 난폭한 계집애를 살펴보았다. 어제의 상처 입은 창백한 낯빛과 비교했을 때 지금 그녀는 혈색이 좋고, 눈동자가 밝게 빛나 마치 상처가 완쾌된 듯했다.
“금련 도사가 저더러 대인을 찾아가라고 했어요. 경성에 있는 동안 여기에서 머물라고 말이죠. 허 대인,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리나는 얼른 젓가락을 내려놓고 음식물을 삼킨 뒤 거침없이 허칠안을 뜯어보았다.
그녀는 원래 자신이 경성에 오면 금련도사나 삼호나 혹은 사호, 육호가 그녀를 맞이할 줄 알았다. 결국에 낯선 남자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될지 누가 생각했겠는가.
어제 일은 금련 도사가 이미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리나는 겉모습이 아주 훌륭한 이 젊은 은라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알았다.
도사가 신뢰하는 친구이니 리나 역시 전적으로 그를 믿었다.
‘그녀가 나를 삼호가 아닌 허 대인이라고 부르다니…….’
허칠안은 리나를 잠시 쳐다보았으나 맑고 깨끗하고 사심 없는 푸른 눈동자로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금련 도사가 왜 그녀를 내 곁에 배치하려는 거지?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건가? 이런 일을 벌이기 전에 이 약삭빠른 인간은 나와 상의도 하지 않다니. 내가 약삭빠른 놈들과 왕래해본 경험으로 판단해보자면 사전에 의논하는 건 어떠한 계략이 없다는 뜻이다. 사전에 의논하지 않는 건 분명 깊은 뜻이 있다.’
따라서 허칠안은 물었다.
“도사께서 소저에게 또 뭐라고 하셨소?”
리나가 찐빵을 한 입 베어 먹으며 애매모호하게 말했다.
“금련 도사께서 대인은 그가 경성에서 사귄 참된 벗이니 안심하고 저택에 머무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찐빵을 삼킨 뒤 다소 분하고 억울해하며 말했다.
“도사께서는 제가 너무 잘 먹는다며 저를 먹여 살릴 수 없다고 하셨어요.”
아……. 허칠안의 표정이 멍해졌다.
‘알고 보니 금련이 그녀를 나한테 보낸 이유가 너무 잘 먹어서 먹여 살릴 수 없어서야? 이건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이유잖아. 같은 이치로 양로원에 머무는 육호와 먹고 자는 것 모두 옛 친구의 도움에 의지하는 사호 역시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를 먹여 살릴 수 없으니까. 빌어먹을. 개 같은 대부호 취급받는 기분 아주 별로네. 사람이 강호를 떠돌면 상대가 무임승차하거나 내가 무임승차하는 건데. 인과응보군…….’
허칠안은 탄식했다.
“그렇구려.”
“콜록콜록!”
숙모가 힘껏 기침 소리를 내어 주인 마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허칠안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알겠소. 곧 소저에게 방을 마련해주겠소.”
“허칠안!!”
숙모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내가 네 숙모인데 너, 너는 설마 나랑 의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거니?”
그녀는 말을 하면서 식기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식탁을 자꾸 곁눈질했다. 그렇게 재수 없는 조카에게 이 아가씨는 밑 빠진 독임을 알렸다.
‘그건…….’
허칠안은 순간 망설였다. 숙모가 고려하는 부분도 일리가 있었다. 경성의 물가는 비싸다. 이 아가씨가 이렇게 잘 먹으니 확실히 은자가 너무 많이 든다.
‘게다가 요즘 내 기운에 변화가 생겨 더는 은자를 줍지 않아. 명성 쌓기로 바뀌었잖아. 그리고 위연이 내 월급도 깎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