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허신년이 시를 지을 줄 안다고? 퉤!
“제가 만약 이유를 알고 있다면, 부친이 천겁에 인멸하지 않았겠지요.”
낙옥형이 입을 삐죽거렸다.
“일리 있네.”
황갈색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간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은 당분간 꺼내지 말게. 우리 다음 정보를 얘기해 보자고. 도인이 도겁에 실패한 후 자신을 위해 무덤을 만들고, 유체에게 전국옥새를 수호하라고 명령했네. 안에는 그가 수집한 기운이 응집되었지. 도인이 유체에게 훗날 옥새를 가지러 돌아올 거라 말했네. 그 유체가 허칠안을 도인으로 오해하고 두 손으로 옥새를 받쳤지. 다음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자네가 한번 추측해 보게.”
낙옥형의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밝게 반짝이며 캐물었다.
“허칠안이 전국옥새를 얻었습니까? 이거 정말 좋은 소식인데요. 사형, 사형의 정보는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만약 허칠안의 손에서 전국옥새를 가져와 안에 있는 기운을 빌려 수행할 수 있다면 1품으로 들어서는 건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그녀는 구린 남자와 쌍수하는 일로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1품으로 승직하면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고 수명이 길어진다. 그녀는 더 이상 국사를 할 필요도 없고, 원경제를 상대할 필요도 없으며 경성에 얽매여 있을 필요도 없다.
낙옥형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 박동 소리가 점점 더 격렬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인종이 성립한 이래로 길고 긴 역사 속에서 2품은 쇠털처럼 많아졌으나 1품은 매우 드물고 진귀했다. 천겁이 여러 호걸을 막아섰다.
“옥새가 사라졌네.”
금련 도사가 유감스러워하며 말했다.
낙옥형의 표정이 갑자기 굳고, 호흡이 멈췄다.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옥새가 사라졌다고요? 그럼 어디 있습니까? 가져 나오지 않고 무덤에 남겨 두었나요? 상성 밖의 산맥이라고 했지요? 그 산맥의 확실한 위치를 제게 알려 주시면…….”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비검과 총채를 불러와 뒤에 매달리게 했다. 이어 밖으로 걸어가면서 황갈색 고양이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손아귀에 넣었다.
낙옥형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매님!”
금련 도사는 목덜미가 들리고 사지가 축 처진 채 ‘움직이기 귀찮은 나를 마음대로 괴롭히게’하는 태도로 말했다.
“옥새는 무덤에 없어. 자네가 찾으러 가도 찾을 수 없을 게야.”
낙옥형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크게 뜬 채로 나무랐다.
“도사님, 한 번에 말을 제대로 할 수는 없습니까? 빨리 말씀하세요. 옥새는 어디에 있습니까?”
낙옥형이 소매를 휘두르자 황갈색 고양이가 벌렁 나자빠졌다.
“옥새는 파괴됐네…….”
황갈색 고양이는 낙옥형이 화를 내기 전에 덧붙였다.
“품고 있는 기운을 허칠안에게 모조리 빼앗겼어.”
낙옥형은 이 말을 듣더니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었다.
한참이 흐른 뒤, 낙옥형은 아무 말 없이 부들방석으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중얼거렸다.
“기운을 전부 그에게 빼앗겼다고…….”
“예전에는 자네가 그의 기운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네가 1품에 들어서도록 도울 수 있을 테지. 물론 누구와 쌍수하든, 쌍수를 하든 말든 사매 자네의 일이지만.”
황갈색 고양이가 온화하게 말했다.
고양이는 잠시 웅크려 앉았다. 그는 낙옥형이 멍하니 얼빠져 있는 모습을 보자, 참지 못하고 기침 소리를 내어 상기시켰다.
“이 두 가지 정보가 혈태환 두 알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네만.”
말을 마치자 낙옥형이 소매에서 도자기 병 두 개를 날렸다. 하얗고 투명했다.
황갈색 고양이는 입을 벌리고 도자기 병 두 개를 배 속으로 삼킨 뒤 웃으며 말했다.
“고맙네, 사매.”
고양이는 탁자에서 가뿐하게 뛰어내려 꼬리를 치켜세우고, 엉덩이를 흔들며 화단을 경쾌하게 지나쳐 영보관을 떠났다.
낙옥형은 조각상처럼 한참 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치켜 올라간 긴 눈썹이 떨리더니 옥미인(玉美人)이 살아났다.
그녀가 팔을 들어 올리자 소매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녀는 뽀얗고 영롱한 섬섬옥수로 도잠(道簪)을 비틀어 가볍게 뽑았다.
연화관이 굴러떨어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속박에서 벗어나 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국사, 국사…….”
이때 치맛자락을 들고 면사를 쓴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가 문턱을 넘자 폭포 같은 머리카락에 아름답고 어여쁜 낙옥형이 보였다. 그녀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복면의 여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낙옥형을 가리키며 ‘아아아’하고 소리쳤다.
“너 드디어 깨달았구나. 원경제와 쌍수하려고?!”
그녀는 말을 하면서 요염한 자태의 여인을 곁눈질했다.
낙옥형의 새하얀 얼굴은 살짝 홍조를 띠었다. 그녀는 난화수(*蘭花手: 중국 전통극에서 엄지와 중지를 구부리고 나머지 손가락은 편 손놀림)로 도잠을 비틀며 머리카락을 가볍게 돌려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머리를 틀었다.
그녀는 바닥에 굴러떨어진 연화관은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어?”
낙옥형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복면의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곧장 탁자 옆으로 걸어가 엎어진 찻잔을 들고 따뜻한 차를 따랐다. 그러더니 꼴꼴꼴꼴 다 마시고, 편안하게 트림을 했다.
“왕부가 변방에서 전해온 서신을 받았는데 서신에서 적혀 있길 진북왕이 이미 3품 대원만(大圓滿)으로 나아가 늦으면 내년 초, 빠르면 올해 3품 전봉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
면사를 쓴 여인이 정실에서 서성였다.
“큰일이야, 큰일.”
낙옥형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렇게 빨리?”
그녀는 침음한 후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지 않을 게 뭐 있어. 그가 2품으로 승직하면 네 진북왕비의 지위는 바로 황후 밑이라고. 궁중의 비와 귀비들이 너를 봐도 머리를 숙여야 해.”
“누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쓴다고.”
면사포를 쓴 여인이 말하면서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맞다, 서신을 보내온 자가 그의 부장(副將)인데 그 저속한 무사 부장이 나한테 불문 두법의 일을 묻더라.”
* * *
허칠안은 임안부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작별 인사를 고하고 나섰다. 그는 애지중지하는 암말에 올라타 임안부에서 얻은 수확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기는 그녀한테 너무 어려워. 그녀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가 같이 만든 장기판과 장기는 아주 소중히 여기더군……. 용오천과 자하의 화본은 그녀도 좋아하긴 하는데 이번 내용에는 좀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어디를 잘못 썼는지 물어봐도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니…….
오늘 임안과 두 번 손을 잡았다. 한 번은 그녀한테 장기 두는 법을 가르치다가, 다른 한 번은 뒤쪽 연못에서 배를 탈 때 그녀를 끌다가. 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이득을 보지 않는 이상, 그녀는 나와의 스킨십을 적당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실험으로 증명됐다. 좋은 징조야. 친구 이상이지만 아직은 연인이 아닌 딱 그런 상태.
진정하자, 진정해. 현재의 사랑은 마차와 같다. 임안이 안에 있고 나는 밖에 있다. 머지않아 사랑은 한 침대처럼 변하겠지. 흠흠.”
이내 야경꾼 관아가 보였다.
“첫째 공자님, 첫째 공자님…….”
이때, 관아 입구에서 익숙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허칠안이 표정이 굳은 채 소리를 따라서 보니 문지기 장씨의 아들이었다.
“네게 몇 번을 얘기했니? 밖에서는 나를 공자님이라고 부르란 말이다.”
허칠안은 화를 내며 한 마디 꾸짖더니 이어 물었다.
“관아에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외성에서 데려온 하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를 첫째 공자님이라고 부르고, 허신년을 둘째 공자님이라고 불렀다. 이로 인해 허칠안은 전생이 떠올랐다. 진작에 성년이 되었는데 부모님이 여전히 그의 아명을 불러 아주 창피했다.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저택에 공자님을 찾는 아가씨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녀에게 공자님과 무슨 관계인지 물었는데 말하지 않더군요. 그냥 한 마디로 딱 잘라 공자님을 찾는다고 하니 부인께서 저택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문지기 장씨의 아들이 설명했다.
“하지만 관아의 시위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더니 오늘 공자님께서 관아에 계시지 않고 아직 점호하지 않았다고도 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허칠안은 자신이 어항에서 기르는 물고기를 돌이켜보았다. 우선 저채미는 배제했다. 그녀는 허부의 단골손님으로 뻔질나게 놀러 온다.
부향도 불가능하다. 그녀가 아무런 까닭 없이 찾아올 리가 없다. 게다가 숙모가 부향을 안다.
‘종리는 아니겠지…….’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물었다.
“그 소저의 외모에 어떤 특징이 있던가?”
* * *
내성의 한 주루 안, 운록서원의 서생 주퇴지가 동창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는 운록서원의 서생 말고도 국자감의 학자들도 여럿 있었다.
운록서원과 국자감 사이에는 도통(道統) 논쟁이 있고, 양쪽 서생 간에는 확실히 서로 적시하고 경멸하는 현상이 존재하지만, 그뿐이었다.
정말 풀릴 수 없는 갈등이 있다고 말하자면, 사실은 없다. 필경 도통 논쟁은 일반 서생들에게는 지나치게 요원하고, 대부분의 서생은 관리가 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혹은 말단 관리 노릇이나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한쪽이 자발적으로 기분을 맞추고 친분을 쌓는다면,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건 쉬운 일이다.
주퇴지는 최근에 춘시에 낙방하여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자존심이 세고 승부욕이 강한 주퇴지에게 이는 두말할 것 없이 큰 충격이었다. 더욱이 그동안 줄곧 경쟁 상대였던 허신년이 ‘회원’에 급제했다.
두 사람의 격차가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춘시 방이 붙은 후 동창들과 하루 종일 기루, 교방사, 주루를 전전하며 술로 괴로움을 달랬다.
“그에게 언제부터 이런 시재가 있었나?”
이 의혹은 시종일관 주퇴지를 괴롭혔다. 명색이 동창이자 경쟁 상대로서 허신년이 어떤 실력인지 그가 아직도 모르겠나?
책문과 경의는 확실히 최고라고 할 만하지만, 시사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주퇴지는 시사를 논하자면 허신년이 열 명 있어 봤자 자신보다 못하다고 자신했다.
“생각지도 못했네. 올해 춘시의 회원을 너희 운록서원의 허신년에게 빼앗길 줄이야.”
한 국자감 학자가 개탄하며 말했다.
“이건 우리 국자감에게 정말이지 크나큰 수치네. 만약 예전이었다면, 뒤집어 엎어졌겠지.”
“허나 만약 허신년이라면 모두가 승복하지.”
다른 국자감 학자가 바로 고개를 저으며 읊조렸다.
“행로난, 행로난, 다기로, 금안재?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
“매번 이 시를 되새길 때마다 마음속에서 호방한 감정이 들끓어 어떠한 난관도 그저 그러할 따름이네. 하하하, 술 마시게, 술 마시자고.”
운록서원의 서생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허신년이 ‘회원’에 급제하였다. 그들은 명색이 운록서원의 서생인지라 배로 영광스러워했다.
유독 주퇴지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술을 마셨다.
이때 말을 하지 않던 국자감의 젊은 학자가 주퇴지를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주 형은 기분이 별로인 듯한데?”
주퇴지는 그를 한번 쳐다봤다. 이자는 성이 유(劉)고, 이름은 각(珏)으로 외자다. 교제에 아주 능한데, 자신이 국자감의 서생이라는 이유로 운록서원의 서생에게 악담을 퍼붓는 자가 아니었다.
경성의 젊은 학자 중에서도 인맥이 아주 넓은 이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춘시에서 낙방했다.
주퇴지는 대답하지 않고 손사래를 치더니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유각은 개의치 않고 단단히 결심한 뒤 주퇴지를 화제로 끌어들이려 물었다.
“허 회원에게 이런 시재가 있었는데 왜 전에는 평범하기 그지없었으며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을까? 설령 문장 천재라고 해도 후세에 전해질 만큼 뛰어난 작품을 우연히 얻을 수 있다는 건 시사에 대한 조예도 그리 낮지 않다는 건데. 하지만 나는 경성 시단에 허신년이 있다는 얘기를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네.”
주퇴지는 ‘피식’ 비웃더니 잔 속의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경시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가 못 들은 건 고사하고, 운록서원의 서생인 나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네.”
그가 이 말을 내뱉자 국자감 학자들이 흥미를 느끼고 순간 쳐다봤다.
유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변하지 않은 어조로 툭 물었다.
“주 형, 그 말이 무슨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