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혐오감
낯빛이 변한 후토방 패거리들은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허겁지겁 달아났다.
잠시 동안, 정신을 잃은 리나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썩을 놈의 자식들…….’
두목은 속으로 욕을 퍼붓고, 강렬한 공포를 억누르며 되돌아와서 리나를 데리고 가려 했다.
그는 리나의 두 손을 잡았다. 몸을 굽혀 그녀를 어깨에 메면서 고개를 들어 도굴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시체가 절대 이 순간에 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는데 그러다가…… 그는 반들반들한 머리통을 보았다.
이 머리통은 축 늘어진 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등에는 긴 삼베 도포를 입고 머리가 산발인 소저가 엎드려 있었다. 두 사람이 너무 대비되는 모습을 하여 ‘왜 머리카락을 그에게 좀 나눠주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목은 우두커니 몸을 구부린 자세를 유지했다. 손으로는 여전히 리나의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나오는 남녀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직면한 세 사람 역시 그처럼 넋을 잃고 우두커니 있었다.
한순간에 사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초원진이 중얼거렸다.
“그자인가요?”
‘복연이 더 두터워졌다. 천기를 차단한 감정의 법술이 효력을 잃었나? 그, 그가 어떻게 미라 손에서 도망쳤지…….’
여러 가지 생각이 금련 도사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아주 어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그자일 걸세.”
이때 허칠안이 웃는 얼굴을 치켜들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나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는 말하면서 종리를 위로 받쳐 들었다.
복도가 협소해서 공주님 안기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업기로 바꿔야 했다.
“허 대인…….”
황혼의 햇살에 흠뻑 젖은 항원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르고, 불법이 무한하다.
그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약간은 떨리는 양손을 합장했다.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 불호를 외웠다.
“은인이여, 은인이여……. 죽지 않았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전우는 슬그머니 도망치던 중 무탈한 모습으로 나오는 허칠안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기뻐하더니 다시 슬그머니 한달음에 도망 왔다.
이 자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천성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은인께서 복이 많고 명이 길군요. 잘됐습니다, 정말 잘됐습니다.”
후토방의 구성원들이 희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되돌아왔다.
허칠안은 그들의 칭찬에 조금은 쑥스러워 속으로 말했다.
‘기운의 자극을 받아 신수 승려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 정말 도망쳤을지도 모르거든…….’
옥새가 흰 모래로 변하고 기운이 그의 몸속에 스며든 그때, 허칠안은 몸속에서 무언가 되살아났다는 걸 눈치챘다. 그건 신수 승려의 단수였다.
그는 배짱이 생겼기에 남아서 후방을 엄호할 엄두가 생겼다. 그러지 않았으면 전우보다 빨리 달리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곰’을 맞닥뜨렸을 때 당신과 경쟁하는 존재는 곰이 아니라 당신의 전우다.
* * *
허칠안은 성 밖, 남산 산맥과 매우 요원한 거리에 있는 산골짜기 시냇가에서 전우가 건넨 물을 받았다.
‘개천에서 채운 물인데……. 마시면 배탈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전부 세균일 텐데…….’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꼴꼴꼴꼴 다 마셨다.
그는 고분을 탐사하는 데만 하루를 썼다. 마지막에 BOSS와 큰 전투를 치르면서 체력 소모가 심했기에 수분 공급이 시급했다.
리나는 옆에 내던져진 채 쿨쿨 잠을 잤다. 종리는 시냇가에 덩그러니 앉아 자신의 상처를 처리했다.
술사 체계는 전투에 능하지 않아서 무사처럼 자신을 보완하는 체계와는 그 신체와 정신을 비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술사는 누구나 대국수로, 의사 노릇을 하며 세상을 구하는 무리다.
이 정도 상처는 종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허칠안이 옆에서 허풍을 떠는 데 지장을 미치지 않았다.
“그때 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러분이 얼른 도망가고, 모든 위험은 제가 막고 싶을 뿐이었지요…….”
허칠안은 사방으로 침을 튀겼다.
후토방 구성원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하면서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던 자신의 행위를 돌이켜보았고, 하나같이 부끄러워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허칠안은 사적으로 금련 도사 일행에게 전음을 보내 설명했다.
“감정이 제 몸속에 여지를 남겼습니다. 무엇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감정이 그의 몸에 여지를 남겨 두었다니……. 과연 내 예상이 맞았군. 허칠안은 감정의 중요한 바둑돌이야. 지금 보아하니 이 바둑돌의 중요성이 예사롭지 않구나.’
금련 도사는 문득 모든 걸 깨닫고 개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어쩐지 사천감의 종리 소저가 그를 따른다 했어…….’
초원진은 먼 곳에 있는 종리의 수척한 뒷모습을 쳐다보더니 문득 깨달은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이 밖에도 더 많은 사소한 부분을 떠올렸다. 예를 들어 감정이 왜 그에게 불문과의 두법을 대신하라고 직접 거명했는지, 또 예를 들어 금련 도사가 왜 허칠안을 이렇듯 중시하고 보살피는지.
그리고 방금 미궁에서 길을 안내할 때 보여준 디테일, 모든 것들이 허칠안이라는 자가 절대 만만하지 않고, 그 이면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는 걸 암시했다.
좀 재미있었다.
항원의 생각은 상대적으로 순수했다. 그가 보기에 허칠안은 좋은 사람이다. 허칠안이 죽지 않았으니 세상이 잠시나마 아름다웠다.
‘애석하게도 내가 금강불패를 수행할 기회가 없었네. 3품과는 거리가 멀군.’
항원은 속으로 개탄했다.
허칠안은 허풍을 다 떤 뒤 후토방의 그 야생 술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나이가 쉰 정도 되어 보였고, 더러운 긴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어르신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어르신’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습니다. 늙은이의 성은 공양(公羊)이고, 외자 숙(宿)입니다.”
야생 술사는 손사래를 쳤다.
“어르신은 이 무덤을 어떻게 발견하셨는지요?”
허칠안이 물었다.
전우의 분석에 따르면, 남산 아래의 이 무덤은 풍수에 정통한 술사이자 부두목을 겸하는 공양숙이 발견했다.
‘이거 이상한데? 이 무덤이 그곳에 묻힌 지 수천 년, 아니, 만년 이상인데 어떻게 하필 이 시기에 발굴됐지?’
“그 무덤은 제가 아니라 제 스승님이 발견하셨습니다. 우리 이 계통의 술사는 거의 승직할 가능성이 단절됐지요. 대부분은 5품에 그치는데 그 이유는…….”
공양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체계의 비밀은 밝히기 편치 않습니다.”
‘조정에 빌붙어야 한다는 말 아니야? 진작 알고 있었는데…….’
허칠안은 남몰래 입을 삐죽거렸지만,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들었다.
“사람은 항상 밥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생계를 도모하는 수단이야 고작 몇 가지인데 가장 돈을 잘 버는 건, 헤헤, 죽은 자의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스승님을 따라 구주를 떠돌며 천하 강산에 족적을 남겼지요. 매번 길지를 맞닥뜨릴 때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파헤치기 위해 기록해 두곤 했습니다. 무덤이 있으면 횡재를 얻었고, 무덤이 없으면 부호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이 무덤은 제 스승님이 젊을 때 발견하여 기록해 두셨죠. 허나 제 스승님은 무덤 발굴에 열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이니 조만간 천벌을 받을 거라 말씀하셨죠. 정말 그 늙다리 말이 딱 들어맞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번에 은인이 나서지 않으셨다면, 이 늙은이는 지하에서 영원히 잠들었을 겁니다.”
‘나도 네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술사이니 망기술은 당신에게 전혀 소용없잖아……. 이 사건의 계기는 내가 아니라 오호고, 내가 천지회 구성원임을 아는 존재는 거의 없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오호의 행방을 안다는 것이다. 그럼 인위적인 안배라는 가능성이 배제된다…….’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했다.
그리고 운주에서 마주친 신비로운 술사가 떠오르자, 참을 수 없어서 남몰래 욕을 했다.
‘정말이지 술사는 모든 구성원이 약삭 빠르구먼. 음, 고품 술사만.’
저채미처럼 머리가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체계를 잘못 선택한 게 틀림없다. 종리도 그렇다.
허나 이렇게 말하면 종리를 다소 존중하지 않는 셈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불운하고 가엾고 딱히 주관도 없지만, 채미보다 IQ가 한 단계 높은 건 분명하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일부러 궁금한 척하며 물었다.
“공양 어르신, 여러분 그 계통의 술사는 창시자가 누구입니까?”
공양숙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이군. 표정에서 너무 티가 나잖아…….’
허칠안은 망연자실한 척하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초대 감정이 아닙니까?”
공양숙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술사의 기원은 초대 감정이나, 저희 계통의 창시자가 누구인지는 늙은이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백 년 전에 사천감을 이탈한 어느 유파겠지요.”
허칠안은 담담하고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공양숙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그는 입을 열고 목젖을 굴렸다.
“허 공자님,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나 하드디스크도 없어졌는데 왜 조용한 곳으로 가자는 거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고,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작은 개울을 따라 아래로 갔다.
공양숙은 아무 말 없이 따랐다.
* * *
그들은 자갈을 밟으면서 100m 밖까지 곧장 걸어 나갔다. 허칠안은 그때서야 멈췄다. 이 거리 정도면 그들의 대화를 금련 도사 등에게 ‘도청’ 당하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친구는 친구일 뿐입니다. 제게 돈을 주지 않는 이상, 저는 술사 체계의 비밀을 여러분에게 털어놓을 수 없다고요.’
뒤따라오던 발소리가 멎었다. 공양숙은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떠보았다.
“허 공자님, 또 무엇을 아십니까?”
“저는 그해 무종 황제가 황위 찬탈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불문과 동맹을 맺어 불문이 그를 도와 초대 감정을 죽였기 때문이라는 걸 압니다.”
허칠안은 돌아서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실조차 아시는군요. 공자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곁에는 예언사가 따르고, 고분의 사악한 시체 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니요.”
“제가 누구인지 어르신은 알 필요 없습니다. 저는 어르신께 지금의 감정이 그해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 여쭤볼 뿐입니다.”
허칠안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의혹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허, 이건 너무 뻔한 일 아닙니까? 만약 고품 술사가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지 않았다면, 불문이 1품의 술사를 죽이고 싶다 한들 어찌 그렇게 간단하겠습니까?”
공양숙은 냉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 경멸과 경시가 서렸다. 허칠안은 그게 불문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당대 감정을 겨냥한다는 걸 알았다.
‘내 짐작이 맞군. 감정은 그해 앞잡이 역할을 한 게 틀림없다. 그리하여 지금의 지위와 맞바꿨다…….’
허칠안은 마음이 불편하여 탄식했다.
그는 도덕적 결벽은 없지만, 이렇게 스승을 죽이는 행위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강호를 떠도는 술사들은 전부 그해 초대 감정이 죽은 후 갈라져 나온 자들입니까?”
허칠안은 표정의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물었다.
“그해 사천감에서 갈라져 나온 술사는 총 여섯 갈래입니다. 각각 초대 감정의 제자 여섯이지요. 저희 이 계통의 창시자는 초대 감정의 사제자로 품계는 4품 진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