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왔는가?
금련 도사는 청동관을 보더니 시선을 옮겨 고대 가장자리로 걸어가 가장 가까운 미라 한 구를 자세히 살폈다.
이 미라는 비늘로 된 갑주를 입고, 손에는 자금추(紫金錐)를 들고 있었다. 청동 가면을 써 두 눈만 보일 뿐이었다.
갑주의 비늘은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는데 비늘마다 기이한 부문(符文)이 새겨져 있었다. 요상하면서도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건 도문의 작품 같은데요?”
초원진 역시 미라를 관찰했다. 그런데 사실 그가 보던 건 그 미라가 손으로 짚고 있는 시퍼렇게 녹이 슨 청동검이었다.
금련 도사는 미라 네 구를 다 살펴보고, 그들의 갑주를 관찰한 뒤 침음하며 말했다.
“확실히 도문의 흔적이 있네. 허나 나는 이런 상고 시대의 부문을 대략 추측할 수밖에 없네. 서쪽의 저 주금(走金)은 남․북․동이 각각 주화(主火), 물, 나무네.”
“흙은요?”
허칠안이 물었다.
금련 도사는 대답하지 않고 중앙에 놓인 청동관을 쳐다봤다.
“중앙 주토(主土)!”
초원진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런 구도가 무슨 의미를 나타냅니까?”
“왕생(*往生: 목숨이 다하여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이오?”
야생 술사 공양숙이 종리를 바라보았다.
종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천지 만물은 모두 오행이 변화한 것으로, 고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후 무덤에 묻히고 무덤은 흙에 있으니, 만약 무덤에 오행진(五行陳)을 설치할 수 있다면 죽은 자가 결국 언젠가는 흙에서 환생할 거라 믿었소.”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듣던 중 허칠안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가 말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도사님, 천겁으로 죽어서 사라졌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 사라졌는데 어떻게 환생하지요? 오행진이 또 무슨 소용이 있나요?”
금련 도사는 처음에 어리둥절하다가 동공이 약간 수축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가세. 주묘는 탐색했으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고, 막 철수를 선포하려는데 갑자기 청동관 안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서늘한 감각이 꼬리뼈에서 솟구쳐 곧장 두피까지 퍼져 나갔다. 허칠안은 ‘꿀꺽’ 소리를 내며 침을 삼키고, 문득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쳐다봤는데 그들은 표정이 엄숙하기는 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금련 도사는 허칠안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보기 흉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물었다.
“자네 왜 그러는가?”
“저 들었습니다. 관 안에서…….”
허칠안은 입술을 몇 차례 우물거리더니 잇새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누, 군, 가, 말, 했, 습, 니, 다.”
서늘한 느낌이 사람들의 꼬리뼈에서 솟구치더니 순간 두피가 저려 왔다.
종리는 천천히 몸서리치다가 하마터면 업고 있던 리나를 놓칠 뻔했다.
초원진은 낯빛이 새파래진 채, 낮으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세, 주묘를 떠나자고. 빨리 떠나야 해…….”
이 순간, 모든 사람이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드러냈다. 그들은 헛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갈 준비를 했다.
끽!
이때, 사람들의 뒤에서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묵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건 청동관이 열리는 소리였다.
청동관이 열리던 순간, 음예한 기운이 감돌았다. 주묘 안의 분위기가 뚝 떨어지고 횃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막 돌아서서 떠나려다 온몸이 굳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이 남고 싶었다기보다는, 온몸의 혈액이 응결된 듯했다. 음침한 기운이 자욱했다. 극한의 환경에 놓여 몸뚱이와 피가 전부 얼음으로 뒤덮인 듯했다.
만약 금련 도사가 고양이 몸이라면 그는 지금 이미 털이 솟구쳤을 것이다.
콰당!
뒤에서 관 뚜껑이 땅에 떨어지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이와 동시에 고대를 등졌던 사람들은 아래쪽의 계단에서 일제히 목을 비틀고 골격 구조에 어긋나게 180도 몸을 돌린 갑옷을 입은 미라 시위를 보았다. 미라 시위는 정면이 등 뒤로 돌아간 채 아무 소리 없이 사람들을 응시했다.
이 장면은 지나치게 무섭고 괴상했다. 거대한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폭발했다. 후토방의 도굴꾼들은 극도로 두려워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철컥철컥.
허칠안은 멀지 않은 곳에서 뼈가 우드득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고대 네 귀퉁이에 우뚝 선 갑인(甲人)들 역시 되살아났다.
그는 천천히 눈알을 굴려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초원진은 눈을 크게 떴고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등 뒤에 있는 장검이 시도 때도 없이 진동하였다. 마치 자루에서 나오고 싶은데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억눌리는 듯했다.
항원 대사는 얼굴 근육이 실룩거리고, 저작근이 돌출되었다.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보이지 않는 힘의 압박을 뚫고 자유로운 몸을 되찾으려 애썼다.
금련 도사는 마치 토납하는 듯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는 가장 침착하고 가장 냉정했으나 눈에는 결연한 기색이 엿보였다.
‘도사님, 필살기를 벼르고 있나요? 꼬리를 자르고 살길을 찾고 있나요, 아니면 본인을 희생해서 저희를 보호할 계획인가요…….’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눈언저리의 눈알을 굴려 종리를 쳐다봤다.
그녀가 업은 리나는 여전히 의식 불명이었으나 오히려 현장에서 가장 ‘가뿐한’ 사람이었다. 재수 없는 종리는 긴 삼베 도포 아래의 몸뚱어리를 약간 떨었다.
‘그녀 책임인지 내 책임인지 모르겠군……. 어쩌면 우리 둘 다 책임이 있을지도!’
허칠안은 고난 속에서 겨우 즐거움을 찾았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저절로 한 장면이 떠올랐다. 녹색 털이 무성히 난 한쪽 손이 청동관에서 나와 관의 가장자리를 누르며 버텼다.
관 안의 사람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노란 도포를 입은 미라로, 머리 꼭대기에는 순금으로 만든 황관을 쓴 채였다. 얼굴의 피부는 뼈에 바싹 들러붙었고, 코는 썩어서 구멍 두 개만이 남았다.
안구는 눈언저리에 박혀 있었는데 언제든지 떨어질 듯했다.
신각이 이 미라를 포착한 순간, 허칠안은 머리에 강철못이 박힌 듯 고통스러웠고 하마터면 졸도할 뻔했다. 이에 따라 장면이 산산이 부서졌다.
‘관 속에 누운 자는 역시나 도겁에 실패한 2품인 그 도인이다. 어쩐지 이렇게 강하더라니…….’
허칠안은 두피가 다소 저렸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다가 첫 번째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미라가 청동관을 나와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웅웅웅…….
초원진 등 뒤의 장검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으나 끝내 자루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투둑……. 장원랑 이마의 땀방울이 마침내 굴러떨어졌다.
항원은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돌출되고, 볼과 이마의 핏줄이 하나씩 튀어나오면서 온몸의 근육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힘의 압박을 돌파할 수 없었다.
종리는 마치 메추라기처럼 온몸을 떨었다. 머리가 파묻을수록 낮아졌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로 인해 앞에 있던 후토방의 몇몇 구성원들은 깜짝 놀라 오줌을 지렸다.
하지만 이건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수천 년 전의 고분에 있던 사악한 괴물이 관에서 나와 뒤에서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더군다나 이건 실제로 발생한 일이었다.
금련 도사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는 눈이 맑고 깨끗해졌다. 그는 이미 결심을 내린 듯했다.
바로 이때, 발소리가 멎고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가 주묘의 모든 공간, 구석구석에 전해졌다.
“주군의 귀환을 공손히 맞이하거라!”
갑편(甲片)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데 이어졌다. 고대 네 귀퉁이의 미라와 계단 위의 미라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무리 중의 누군가에게 엎드려 절했다.
음예하면서 무서운 기운이 마치 썰물처럼 재빠르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동 능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금련 도사는 도굴꾼들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전음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도굴꾼들은 두 다리를 떨었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과거의 경험이 아주 중요한 작용을 했다. 보통 사람처럼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래서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도망쳐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들지 않도록 했다.
동시에 그들의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주군?
‘주군이 누구지? 그 미라의 모습을 보면 마치 그 주군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은데?’
도굴꾼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했고, 전력을 다해 무리 속에서 ‘주군’을 찾았다. 누가 미라들의 주군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떠한 인물이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자가 우리 중에 있다…….
두목은 무의식적으로 금련 도사를 쳐다보았다. 벽화의 내용에 따르면 이 무덤의 주인은 도인이고, 현장에는 마침 지종의 고수가 한 명 있다.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이 늙은 도사가 미라의 주군이다.
“그, 그가 이런 신분이라니……. 이렇게 보니 이 지종 고수가 우리를 구하려고 이번에 특별히 무덤에 내려온 게 아니었군. 음, 고수가 하는 일을 어찌 나 같은 강호의 평범한 사람이 헤아릴 수 있겠는가.
두목은 전전긍긍했다.
야생 술사 공양숙은 의심의 눈초리로 금련 도사를 주시했다.
두 두목이 이상함을 눈치챈 반면, 후토방 패거리는 즉시 고수의 패기에 가장 부합하는 금련 도사를 쳐다보고선 마음을 아주 놓았다.
천지회 사람들은 가까이 서 있었기에 순간 노란 도포를 입은 이 미라가 누구에게 무릎을 꿇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초원진은 사고의 관성에 기인하여 우선 금련 도사를 쳐다봤다.
금련 도사는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원은 도문 사람이 아니라 무승이기에 천부적인 자질은 좋지만, 아주 이상한 점은 없다……. 리나는 남강 고족 사람이니 이 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천감의 종 소저는 바로 배제할 수 있다면……. 설마?!’
초원진은 별안간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지그시 주시했다.
그는 대오가 주묘에 온 이유가 떠올랐다. 바로 허칠안의 세 차례 연속된 ‘우연의 일치’로 그들은 주묘로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라 이유가 있었나……. 허칠안이 이 묘지 주인의 주군?’
초원진의 머릿속에 이 추측이 떠올랐다. 그는 한동안 두려움에 까닭 모를 전율을 느꼈다.
‘그가 나에게 무릎을 꿇는 건가? 나를 주군이라 부르고?’
당사자인 허칠안은 직감적으로 미라가 말하는 ‘주군’이 자신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막막함이 머리를 가득 메워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을 뻔했다.
<왜 나를 주군이라고 하는 거지!>
하지만 이성이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눈앞의 상황은 단지 두 가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그가 정말 노란 도포 미라의 주군이라면 그 신분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둘째, 미라는 어떠한 이유로 사람을 잘못 봤다.
첫 번째 가능성은 우선 제쳐 둔다. 만약 두 번째라면 미라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그가 성급하게 물으면 틀림없이 신분이 까발려질 것이다.
그때 가서 그들을 맞이했다간 전멸이다.
허칠안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끊임없이 들끓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노란 도포의 미라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잘했군.”
미라는 머리를 더 낮게 파묻었다.
두목은 이 광경을 보더니 멍해졌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알고 보니…… 알고 보니 시체가 말하는 주군이 지종의 도사가 아니라 저 6품 무사라고? 이, 이건……. 그는 단지 일개 무사인데.’
공양숙 역시 충격받은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 순간 그는 ‘지원군’들과 접촉한 뒤 소리 없이 망기술을 시전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자신은 아마 현장에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 사인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후토방 구성원들은 숨을 죽인 채 허칠안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