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화. 천겁(天劫)
허칠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왼쪽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중하게 이동하다가 거대한 벽화를 보았다.
문자가 출현하기 전, 벽화는 사건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도 ‘벽화 기사(記事)’의 전통이 유행했다.
허칠안과 초원진은 앞뒤로 횃불을 높이 들고 벽화를 비추었다.
벽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무시무시한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인류 도시에 침입했다. 둘둘 휘감기 시작한 몸뚱이는 성벽보다도 높았다. 선홍색 빛을 뿜는 뱀의 눈동자는 징그럽고 무서웠다.
이때 비검을 밟고 있는 도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대한 뱀을 베어 죽였다.
성안의 황제는 신하들을 데리고 나와 도인을 영접했다.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 절했다. 도인은 비검을 밟고 공중에 뜬 채로 아래쪽의 황제와 신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큰 뱀은 요족인가요?”
항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원진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는 각지를 떠돌아다녔지만, 갑자탕요 이후에 요족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게다가 20년 전 산해관전역에 요족이 나타났지만, 초원진은 당시에 아직 어린아이였다.
허칠안마저도……. 그와 모두는 함께 금련 도사를 쳐다봤다.
“확실히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요족들이 있네. 체형이 방대하지. 하지만, 이렇게 과장스러운 정도는 아니네. 게다가 요족이 5품일 때 요단을 모을 줄 안다는 사실을 그대들이 안다면, 벽화의 이 뱀을 요족이라고 여기지 않을 걸세.”
금련 도사는 뒷짐 지고 서 있었다. 득도한 달인의 패기가 엿보였다.
세 사람의 생각은 각자 달랐다.
허칠안의 생각은 이러했다. 알고 보니 5품 요족이 집중적으로 제련한 건 요단인데, 도사의 말뜻은 요단을 집중적으로 제련한 후에 체형이 축소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요족의 수련 방법이 결코 체형의 성장이 아니라는 말인가?
초원진은 오히려 요족이 아니라면 이 뱀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는 속으로 어렴풋이 추측했다.
항원의 생각은 비교적 간단했다. 이 뱀은 그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 당분간은 불법이 항복시킬 수 없는 요괴다.
금련 도사는 뜸을 들이지 않고 말했다.
“체형이 방대한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네. 물론 힘은 세지겠지만, 많은 허점을 드러낼 것이야. 이 세상에 체형이 방대하기로 유명하면서 실력도 센 건 상고 시대의 신마네. 허나 먼 옛날 신마가 활약하던 시대에 인류는 여전히 몽매한 시기에 처해 있었지. 부족 시대였지. 따라서 벽화의 이 뱀은 아마 상고 시대 신마의 후손일 테야. 물론 진정한 신마는 아니지만.”
초원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도사가 말과 그의 생각이 일치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 도인은 뱀을 벨 수 있으니 그 실력이 예사롭지 않을 겁니다.”
초원진이 말했다.
벽 전체는 마치 그림 같았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후속 내용을 보았다.
황제는 도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에게 고대를 만들어 주었으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엎드려 절했다.
“이건 저희가 전에 본 벽화 아닙니까?”
허칠안이 말했다.
군신이 고대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장면은 바깥의 그 벽화와 똑같았다.
사람들은 이어진 벽화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김새가 흐릿한 도사가 검을 휘둘러 황제를 베어 죽인 뒤 용포를 입고 황관을 썼다. 그가 황위를 찬탈했다.
‘이게 무슨 신의 전개야…….’
허칠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문이 막혔다.
초원진은 입을 벌렸다. 그는 마찬가지로 도사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금련 도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항원 대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고수는 권력에 연연해서가 아닐 텐데요. 황위에 오르는 게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가 말을 마치니 허칠안과 초원진이 동시에 ‘허’하고 소리를 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상대방과 본인 모두 원경제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이어 벽화에 묘사된 내용이 전쟁으로 바뀌었다. 흑갑(黑甲) 군대와 백갑(白甲) 군대가 전투를 벌였는데 백갑 군대 뒤쪽에는 거인 같은 황제가 있었다. 황위를 찬탈한 그 도인이었다.
흑갑 군대 뒤쪽은 텅텅 비었다.
황제의 군대가 반란을 평정했지만, 그는 마치 좋은 황제가 될 계획이 없는 듯했다. 보좌를 추켜든 황제의 품에는 홀딱 벗은 여인이 앉았다. 옆에는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들이 그를 둘러쌌다.
더 뒤로는 남자와 여자가 점점 많아지더니 수많은 남녀로 가득 찼다.
“이건 우리가 밖에서 본 그 벽화 아닙니까?”
허칠안은 말을 마치고 자신의 이 말이 아주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벽화는 밖에 있는 그 벽화와 같다. 행기경락도(行氣經絡圖)가 없을 뿐이지……. 이 벽화가 전달하려는 의미는 황제가 나중에 쌍수에 빠져서 도문 쌍수술의 열광적인 숭배자가 되었고, 도리에 어긋나는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건가? 아니다. 그 사람은 본래 도인인데 황위를 찬탈하여 황제가 되었지!’
허칠안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고, 그러다 초원진이 목소리를 낮추고 하는 말을 들었다.
“도사님, 이 황제는 도문 쌍수 유파와 아주 큰 연원이 있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도사가 그 유파의 개종 창시자일지도 모른다는 건가? 초원진이 그래도 아주 똑똑한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금련 도사를 쳐다봤다.
“모르네.”
금련 도사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요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천천히 걸으면서 계속 벽화를 보았다.
아마 하늘도 황제의 우매한 행동을 못 봐주겠는지 어느 날 갑자기 먹장구름이 크게 몰려왔고, 벼락을 내리쳐 그를 죽였다. 황제가 서거하였다.
“도사가 황위를 찬탈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방탕한 생활을 하여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쳐 그를 죽였군……. 아무래도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두목은 고개를 저으며 평가했다.
‘너무 극적이다’라는 의미는 ‘드라마틱하다’와 비슷했다.
천지회 구성원들의 표정은 아주 괴상했다. 그들이 더 많은 것들을 연상했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은 이성적인 관점에서 출발하여 분석했다.
“이상하군요. 어떤 부분들은 논리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금련 도사와 초원진 등은 허칠안이 사건 수사 방면으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퍼져 나가는 생각을 쉴 새 없이 억누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만약 이 묘지의 주인이 벽화 속의 황제이자 도인이라면 이 벽화는 아주 이상해집니다.”
허칠안이 나지막이 말했다.
“설령 우리 대봉의 영명하고 위풍당당한 폐하일지라도 사서를 수정하여 자신의 오점을 감출 줄 압니다. 하지만 이 벽화는 적나라하게 이곳에 그려져 있으니, 풍자인가요?”
‘영명하고 위풍당당한 폐하가 사서를 고쳐 자신의 오점을 감춘다라……. 허칠안도 너무 신중한 거 아닌가? 이런 장소에서도 ‘불경죄’라는 꼬투리를 남기지 않는군.’
초원진은 속으로 말했다.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쳐 그를 죽였으니 이 묘지는 아마 신하와 후손이 만들었을 겁니다. 그를 비판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항원이 말했다.
“대사, 대사께서는 어쩌면 원수를 위해 묘를 만드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을 수 있지요.”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후손이 그를 증오한다면 이렇게 규모가 큰 무덤을 짓지 않았을 겁니다. 또 이와 반대로 이런 벽화를 그리지 않았을 테죠. 벽화의 내용이 아주 진실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초원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도인의 실력이라면 평범한 벼락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네. 이 벼락에 다른 우의가 있는 것 아니겠나?”
이때, 금련 도사가 말을 했다. 그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나지막이 말했다.
“천겁(天劫)이네.”
“천겁?”
허칠안 등은 이 말을 듣더니 금련 도사를 쳐다봤다. 이는 낯선 단어였다.
금련 도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문 체계에서 2품을 ‘도겁(渡劫)’이라고 부르네. 천겁을 넘으면 1품인 육지신선이 될 수 있지. 허허, 이는 사천감 예언사의 천벌에 비할 바가 못 되네. 이전 세대의 인종 도수가 바로 천겁 중에 사라졌지.”
알고 보니 도문 2품을 ‘도겁’이라 하고, 1품을 ‘육지 신선’이라고 했다. 천지회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하며 머리에 새겼다.
허칠안은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저 생각났습니다. 도사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그 죽일 놈의 지종 도수가 바로 도겁에 실패하여 마성(魔性)에게 해를 입고 요도로 추락했다고 말이죠.”
당시 자련을 죽인 후, 금련 도사는 한밤중에 허칠안의 방에 잠입해 그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더랬다.
“다시 말해서 이 황제는 도문 2품이고 전봉 2품이라 육지 신선의 경지까지 한끝 차이였다는 뜻이군요.”
초원진이 말했다.
금련 도사는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겁으로 죽어 사라졌으니 이 묘지는 아마 의관묘일 걸세. 큰 위험은 없을 게야.”
다른 사람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허칠안은 아주 가볍게 비웃었다.
“도사님, 지나치게 확신하는 판단은 종종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곤 합니다.”
‘도사 이 자식아, 함부로 깃발 꽂지 말라고.’
허칠안의 인솔하에 그들은 주묘의 다른 쪽으로 갔는데 실망스럽게도 벽화가 없었다.
주묘 주변 탐사는 이로써 끝났다. 허칠안은 손에 횃불을 든 채 사람들을 이끌고 중심 위치를 빙빙 돌다가 널찍한 검은색 통로를 보았다.
이 통로는 아주 곧게 가장 중앙의 고대로 통했다. 통로 양쪽에는 얕은 물웅덩이가 있었는데 수질이 탁했다.
“양쪽 모두 양초가…….”
허칠안이 횃불을 이동하자 주황색의 빛이 통로 가장자리를 비췄다. 열 걸음마다 사람 키 높이의 촛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고대까지 쭉 이어졌다.
촛대 위에는 아직 다 타지 않은 초가 있었다. 피처럼 새빨갛지만 맑고 투명하기도 하여 마치 홍옥 같았다.
“이건 아마 동해 홍룡(紅龍) 몸에서 제련해 낸 기름인 듯하네. 이 초 하나가 수십 년 동안 꺼지지 않고 탈 수 있지.”
금련 도사는 냄새를 맡더니 초의 재료를 알아냈다.
그가 말을 하는 사이, 허칠안과 초원진은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이 조용히 연소하면서 널찍한 주묘에 더 많은 빛을 선사했다.
허칠안은 사람들에게 양쪽에 있는 물웅덩이를 주의하라고 하면서 물속에 숨은 사악한 괴물을 방비했고, 한편으로는 통로 가장자리의 촛대에 불을 밝혔다.
횃불은 오랫동안 빛을 유지하지 못해 결국에는 꺼질 테니, 그는 횃불이 다 타기 전에 다른 물건을 사용하여 밝게 비추는 임무를 대체해야 했다.
허칠안은 고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멈췄다. 고대로 통하는 계단 위에 병사들이 두 열로 서서 불청객들을 조용히 주시했기 때문이다.
‘XX, 깜짝 놀랐잖아…….’
허칠안은 욕설을 퍼부으며 걸어갔다. 먼저 귀를 기울여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뒤이어 이 미라들을 관찰했다.
“시체일 뿐입니다. 여러분,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그는 한 마디 경고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고, 99번째 계단을 밟아 고대에 올랐다.
고대 위의 경물이 가장 먼저 허칠안의 눈에 들어왔다. 중앙에는 거대한 청동관이 놓여 있었고, 고대의 네 귀퉁이에 각각 높고 큰 형체가 서 있었다.
이 형체들은 손에 각기 다른 무기를 쥐고, 소리 없이 서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