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기이함
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야.”
‘이 대답은 정말 실망스럽군…….’
모든 이가 속으로 말했다.
이때, 전우가 기침 소리를 내더니 물었다.
“두목, 방금 괴물이 여러분을 사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괴물입니까?”
“외형은 거대한 도마뱀 같지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송곳니가 빽빽하게 자라나 있네. 움직이는 속도가 아주 빠른데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네.”
두목의 눈빛에 공포가 스쳤다. 그는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괴물은 내장을 좋아하네. 무릇 그에게 죽임당한 사람은 사지는 멀쩡해도 내장은 다 비었지.”
‘이거 이상한데. 내가 본 그 시체는 하반신이 물려서 잘렸던데…….’
전우는 가슴이 철렁했고, 다시 물었다.
“체형은요?”
“몸길이는 7척 정도라 그리 큰 편은 아니네.”
이때 리나가 귓바퀴를 움직여 고요한 어둠 속에서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포착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일어서서 소리쳤다.
“조심해. 괴물이 또 왔어.”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한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혀를 튕겨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후토방 구성원을 휘감았고, 그를 혀에 감은 채 가려고 했다.
쿵!
바닥에 깔려 있는 벽돌이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리나가 포탄처럼 돌진하여 검은 그림자를 세게 들이받았다.
괴물은 들이 받치는 순간 꼬리를 휘둘러 리나의 등을 후려쳤다. 쟁쟁한 소리와 함께 그녀 등 뒤의 옷이 갈라져 살갗이 드러나고, 핏방울이 촘촘하게 맺혔다.
괴물은 들이 받친 후 갑자기 기척이 사라졌고 이렇게 물러나려는 듯했다.
하지만 리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면서 주위의 단서를 포착했다.
“모두 조심해. 이 사악한 괴물은 아주 교활하다고. 이 새끼가 우리를 기습하지 못하도록 주의해.”
두목은 무기를 꺼내 패거리들과 함께 진을 치고 적을 기다렸다.
지난 며칠 동안, 후토방 패거리들이 하나둘씩 죽으면서 생존한 사람들은 괴물의 습성을 똑똑히 파악했다.
그 괴물은 리나 소저에게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해 시시때때로 어둠 속에 숨어 그들을 습격할 기회를 노렸다.
한 번 공격할 때 목적을 달성하면 즉시 떠났다.
리나는 천천히 후퇴하여 전우 손안의 횃불을 재빨리 뺏어 왔다. 애교스러우면서 귀여운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횃불을 쥔 채로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갑자기 횃불을 투척했다.
불빛이 흔들리는 가운데 벽에 붙은 거대한 도마뱀류의 괴물이 보였다. 회갈색의 두 눈은 양옆으로 자랐는데 다소 멍해 보이는 게 광선에 전혀 민감하지 않은 듯했다.
전우는 처음으로 괴물의 형태를 똑똑히 보았다. 괴물의 몸길이는 1장(丈)이 채 되지 않았고 꼬리와 몸이 동일하게 길었다. 몸 전체는 두꺼운 각질로 덮여 있었다.
횃불이 괴물을 비춘 순간, 음식을 섭취한 후의 리나가 펼쳐 보인 강한 기운의 폭발 속에서 그녀는 소리 없이 무릎을 구부리고 돌연 몸을 튕겼다. 발밑의 푸른 벽돌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형체가 사라졌다.
벽에 붙어 있던 괴물은 이상을 눈치채고 몸을 흔들더니 사라졌다.
남강에서 풍부한 사냥 경험을 쌓은 리나가 바짝 추격했다. 사람 하나와 괴물 하나가 묘실에서 각축전을 벌였고, 삽시간에 ‘쿵쿵’ 싸우는 소리와 괴물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리나의 앙칼진 고함이 들려왔다.
마침내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리, 리나 소저?”
두목은 억지로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했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리나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 죽겠네.”
이어 그녀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고, 손에는 괴물의 시체를 끌고 있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후토방의 모든 구성원들은 놀라면서도 기쁜 나머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큰 소리로 외치며 마음속의 울분을 토했다.
그들을 수일간 괴롭힌 위기가 이로써 드디어 해소되었다.
리나는 괴물의 시체를 사람들 앞에 내던지며 흐뭇하게 말했다.
“먹을 수 있나?”
‘못 먹어, 못 먹어…….’
후토방 사람들은 연거푸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나 소저, 이 괴물은 무덤에서 태어나 독극물과 썩은 고기를 먹으며 자고 음예한 기운을 흡수하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맹독을 지닌 괴물이지.”
술사 공양숙이 상기시켰다.
후, 후후…….
그런데 이때, 전방의 복도에서 바람 소리가 스며들었다. 비린내를 휘감은 바람 소리가 횃불을 껐다.
바람 소리는 마치 숨쉬는 소리처럼 박자감 있게 출렁였다.
아니, 이건 바로 숨소리였다.
공양숙의 얼굴이 공연히 창백해졌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전방에 음예한 기운이 있네. 무언가 왔어.”
방금 큰 재난을 겪고 살아남아 기분이 유쾌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횃불에 불을 붙이게.”
두목이 분부했고, 이어 무거운 표정으로 리나를 쳐다보았다.
“소저, 싸울 수 있소?”
전우는 전전긍긍하며 횃불이 있는 위치로 달려갔고, 부싯돌을 꺼내 치직치직 불을 붙였다. 그는 손을 쉴 새 없이 떨어 아무리 해도 부싯돌이 불꽃을 지펴 내지 못했다.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비린내 역시 점점 짙어졌다. 하지만 유독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 어서, 좀 빨리…….”
전우는 급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치직치직, 부싯돌에 미약한 불꽃이 붙더니 횃불 위의 기름에 불이 붙었다.
“후!”
불길이 치솟아 어둠을 몰아냈다.
전우는 횃불을 쥔 채로 두말하지 않고 먼 곳을 향해 내던졌다.
횃불이 바닥에 떨어지자 눈을 자극하는 불꽃이 일었고, 밝은 불빛 사이로 복도에 있는 형체를 볼 수 있었다.
복도에서는 거대한 괴물이 포복을 강행 중이었다. 이는 바로 사냥할 때 힘을 축적한 뒤 대기하는 자세였다.
이 괴물의 체형은 방금 그 괴물의 세 배고, 같은 종류에 속했다. 회갈색의 눈동자는 다소 멍해 보이고 입술은 다문 채였지만, 송곳니가 위로 돌출되어 있었다.
‘또 있다고?!’
횃불에서 치솟는 불길은 한순간뿐이었다. 다음 순간 사람들은 그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두목은 스쳐 지나가는 음험한 바람만 느꼈다. 마치 아주 빠른 속도의 물체가 자신과 고속으로 스친 듯했고, 그 후 그는 리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나 소저!”
두목은 크게 소리치면서 돌연 돌아섰다. 사람들이 그와 같은 동작을 취했다.
뒤에 그 괴물은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를 입에 문 채 머리를 흔들었다. 치명적으로 흔들었다.
두목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고함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 짐승 같은 놈을 말려 죽이자!”
어둠 속에서 리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때 다른 편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러나시오!”
횃불을 치켜든 한 청삼 남자가 복도에서 뛰쳐나왔다. 검지(劍指)를 세우고 횃불을 쑤시자 생명이 부여된 듯 불길이 치솟았다.
청삼 남자가 손가락 끝에 불똥을 쥐더니 갑자기 튕겼다.
불똥은 어둠 속에서 곧고 선명한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허공을 갈랐고, 그 괴물의 등을 찔렀다.
펑!
피와 살이 터지고 누린내가 만연했다.
갑자기 습격을 당한 괴물은 입에 물고 있던 사냥감을 놓쳤다. 괴물은 정신을 차리고 묵직한 비명을 지르더니 환영이 되어 청삼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람의 그림자가 청삼 남자 뒤에서 번쩍이더니 괴물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금칠 한 점이 그의 미간에서 반짝이더니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는 묵직하고 낮게 포효하더니 묵묵히 부딪쳤다.
땅!
괴물은 철판에 부딪힌 것처럼 머리 전체가 떨리면서 앞으로 돌진하던 몸이 정체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 금빛 찬란한 형체는 거꾸로 날아가 마치 신철(神鐵)처럼 벽에 쾅 박혔다.
이 틈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괴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안정감 있게 그의 머리 꼭대기 위로 뛰어올랐다.
입으로 아미타불을 외며 뚝배기처럼 큰 주먹을 치켜올렸다.
퍽퍽퍽…….
비 오듯 촘촘한 주먹 세례를 받은 괴물은 격하게 발악하다가 몸 전체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결국에는 머리를 맞아 생명을 잃었다.
금련 도사는 손에 횃불을 들고 마지막에 나타나 온화하게 말했다.
“겁낼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전우가 흥분하여 미친 듯이 외쳤다.
“저분들이 리나 소저의 친구입니다. 제가 모셔 온 지원병이에요.”
후토방 패거리는 금련 도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상대방이 온화하고 심오하여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만 이어졌다. 그들 마음속 절세 고수의 모습과 완전히 부합했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도사님.”
후토방의 모든 구성원이 환호했다.
손에 횃불을 든 금련 도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한 바퀴 쭉 훑어보았다. 어둠 속 먼 곳에 피바다에 누운 리나를 보았다.
금련 도사는 앞으로 나아가 상황을 살폈다. 몸 반쪽이 물어뜯긴 그녀는 피와 살이 뒤섞여 장기가 어렴풋이 보였고, 상처 사이로는 세밀한 은색 선이 한 가닥씩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은 재빨리 무서운 상처를 덮고 지혈한 뒤 부상을 치료했다.
본명고(本命蠱)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 고족 사람은 죽지 않는다.
금련 도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한편으로 종리는 허칠안의 복사뼈를 잡아당겨 45도 각도로 뒤로 젖힌 뒤 그를 벽에서 끌어 냈다.
허칠안은 금강불패를 거두고 소리 높여 물었다.
“도사님, 도사님의 젊은 친구는 상황이 어떠합니까?”
“좀 부상을 입긴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네.”
금련 도사가 종리를 향해 손짓하더니 말했다.
“종 소저,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을 챙겨 왔소?”
종리는 ‘응’하고 대답하더니 긴 삼베 장포에서 도자기 병을 하나 꺼내 순순히 금련 도사에게 건넸다.
“하루에 한 알, 사흘이면 완치됩니다.”
금련 도사는 나무 마개를 뽑아 냄새를 맡았다. 품질이 훌륭한 치료용 단환(丹丸)이었다.
‘사천감은 정말 부유하군. 빈도는 이미 여러 해 단약을 정제할 돈이 없었는데 말이지…….’
금련 도사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리나의 입을 비틀어 열어 한 알을 먹였다.
허칠안은 손에 횃불을 들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끼어들었다. 그는 전설 속의 오호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갈색을 띤 검은색으로 끝이 살짝 말려 있었다. 소녀의 몸은 마치 다부진 표범 같았다.
아주 정교한 이목구비, 얇은 입술, 빼어난 코, 건강한 밀색의 피부는 남강 난폭한 계집애의 이미지에 아주 부합했다.
‘괜찮게 생겼군. 대봉 여인들보다 이목구비가 좀 더 입체적이야……. 예쁜 인터넷 여사친이잖아!’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 만족해했다.
허칠안과 초원진 등 일행은 오호가 별 탈 없는 걸 확인하자 횃불을 휘두르며 사악한 괴물의 시체를 훑어보았다.
“이건 무슨 괴물이지?”
허칠안은 딱히 교양이 없는 터라 속으로 한마디만 했다. 제기랄.
“아마 진묘수(鎭墓獸)일 걸세.”
박학다식한 초원진이 설명했다.
“내가 관련 기록을 본 적이 있지. 고대 사람들은 죽은 뒤 무덤에 기이한 짐승을 풀어놓아 무덤을 수호하는 시위 역할을 충당하게 했네. 이런 종류의 기이한 짐승은 초반엔 그 숫자가 아주 방대했으나, 살아가려면 동반자를 삼키거나 썩은 시체를 배불리 먹는 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서서히 멸종하기에 이르렀지.”
금련 도사가 덧붙였다.
“대대로 번성하면서 음기로 자양하고 썩은 시체와 무덤의 유독 물질을 삼키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었네. 그것들의 선조와는 아주 판이하지.”
“시체에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저었다.
“종리, 그녀를 사저에게 맡길 테니 그녀를 잘 업어 주세요.”
허칠안은 아주 현실적으로 시선을 옮겨 사악한 괴물 시체를 더는 상대하지 않고 말했다.
“저한테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돼요. 아니면 제가 사저를 돌볼 수가 없으니까요.”
‘너무 멀리 떨어지면 내 투명 날개가 너를 보호할 수 없다고!’
금련 도사는 이렇게 안배하는 게 다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호는 이미 부상을 입었는데 그녀에게 또 사천감의 예언사를 따르라고 하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잔인했다.
‘그래도 이 자식의 기운이라면 아마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