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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77화 (377/712)

377화. 미궁과 재회 (2)

전우는 횃불을 치켜올린 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눈두덩이가 움푹 파여 마찬가지로 초췌한 모습의 부두목이 보였다. 그자가 연로한 야생 술사였다.

이 순간 그가 입은 흰색 장포는 이미 더럽고 낡아 있었다.

이어 그는 남강의 그 소녀를 보았다. 원래 동글반반했던 소녀의 얼굴이 핼쑥해져 아래턱이 다소 뾰족해졌지만, 여전히 미모가 빼어났다. 다만 그녀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했는지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선 데다 초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한 명씩 다 확인하면서 인원수를 철저하게 점검하니 마음이 아주 무거워졌다.

이번에 묘궁(墓宮)에 내려간 사람은 32명인데 현재 12명밖에 남지 않았다.

“여러분, 많이 배고프시죠? 제가 여러분을 위해 마른 식량과 물을 챙겨 왔습니다.”

전우는 등에 매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 사람들에게 마른 식량을 나눠 주었다.

남강에서 온 소녀를 포함한 모든 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그들은 마치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절세미녀를 쳐다보는 것처럼 화덕 만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대오는 가져온 음식이 진작 바닥났기에 지하에서 며칠을 굶주림에 시달렸더랬다.

전우는 음식을 나눠주다가 패거리 형제들이 모두 부상당했다는 걸 알았다. 어떤 이는 심지어 팔 하나가 잘렸는데 옷소매까지 같이 사라졌다. 상처를 간단하게 싸맸으나 은근히 피가 배어 나왔다.

“두목,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전우가 물었다.

이 말을 듣더니 게걸스럽게 먹던 모든 이가 동시에 굳었다. 두목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 성가신 일을 겪었네.”

‘그건 장님도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전우가 속으로 말했다.

“여기는 미궁일세. 아무리 가도 빠져나올 수가 없어. 내가 형제들을 데리고 무덤에 내려간 뒤 강시로 가득한 무덤에 들어갔네. 적잖은 형제들이 희생하고 난 뒤에야 그 검특한 놈들을 해치웠네. 이건 리나 덕분일세. 그러지 않았으면 죽거나 다친 형제가 더 많았을 게야.”

두목은 고개를 숙이고 만두를 먹고 있는 소녀를 힐끗 본 뒤 계속해서 말했다.

“그 무덤에 들어간 후 우리는 나간 적이 없네. 수일 내내 계속 빙빙 돌다 보니 물과 식량이 점점 줄었지. 이 때문에 패거리와 모셔 온 고수들 사이에 말다툼이 발생했네……. 이게 가장 엉망진창이 아닐세.

한 번은 우리가 잠에서 깼는데 ‘야간 당직을 서던’ 형제들이 사라진 걸 깨달았지. 그때부터 매일 형제 여러 명이 아무런 까닭 없이 실종됐네. 대오는 거대한 공포에 사로잡혔어. 모셔 온 고수들과 우리 사이에 분열이 생겼고, 격렬한 말다툼 끝에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했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대오를 떠났던 사람들을 발견했네. 전부 죽었어. 마치 무언가에 갉아 먹힌 듯 죽은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네.”

전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의 발에 걸렸던, 참혹하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그 시체가 뜬금없이 생각났다.

두목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안의 음식물을 삼키고 말했다.

“그건 괴물이네, 아주 강대한 괴물이야. 그놈이 우리를 사냥하고 있어. 매일 두 사람을 먹네. 더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되네.”

이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우리는 이미 그 괴물을 두 번이나 물리쳤네. 리나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자네는 이미 우리를 볼 수 없었을 게야.”

두목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리나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네. 음식물과 물이 보충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에 생명이 다하는 때를 맞이할 걸세. 참, 자네는 어떻게 내려왔나?”

전우는 이 질문을 듣더니 갑자기 기운이 생겼다. 그는 몇 차례 힘껏 목을 가다듬어 패거리 형제들의 주의를 끌더니 말했다.

“두목, 형제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위해 지원군을 모시고 왔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저희 곧 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 말을 듣자 아주 기뻐했고, 흥분에 겨워 물었다.

“상주 무림의 공손(公孫) 세가인가? 아니면 흑수(黑手) 강가의 용신보(龍神堡)인가?”

“만약 이 두 집안이라면 우리 이번에는 구제받을 수 있겠군.”

“그러게. 공손 세가의 가주(家主)가 5품이고, 수하에 고수가 넘쳐 나니 사도의 술법에 정통한 능력자가 부족하지 않을 걸세. 용신보는 더 강하지. 허나 이 두 세력 모두 먹음새가 보기 흉해 아마 무덤 안의 물건 중에 우리 몫은 없을 걸세. 게다가 최고가로 사례금을 주어야겠지.”

“머리가 어찌 된 건 아니지? 목숨도 잃을 판에 재물이 무슨 소용 있는가. 우리를 구해서 나갈 수 있기만 하다면 모든 건 문제되지 않네.”

두목이 탁한 기운을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전우, 자네 아주 잘했네.”

전우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제가 찾은 조력자는 공손 세가도 아니고 용신보도 아닙니다.”

“뭐라고?”

사람들은 순간 실망했다. 흥분하던 기색이 수포가 되어 사라졌다.

상성 근처의 무림 세력 중에 공손가와 용신보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실권자로 상성 관아와 긴밀하기 때문에 많은 강호 명수들도 그들에게 의지한다.

만약 상성에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오직 두 세력뿐이다.

두목 눈에 번쩍이던 희망의 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흰색 장포를 입은 부두목이 입을 떼 물었다.

“용신보도 아니고 공손 세가도 아니면 자네가 모신 조력자는 어떤 품계이며 어떤 신분인가? 혼자 수련하는 자인가 아니면 문파 배경이 있는 자인가?”

공양숙(公羊宿)이라는 이름의 부두목은 술사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천감 말고, 강호에서 혼자 수련하는 술사는 보기 드문 인재다.

술사는 기를 엿볼 수 있고, 풍수를 잘 보기 때문에 그야말로 선천적인 도굴꾼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양숙은 호토방의 보배였다. 비록 부두목이지만 패거리 구성원 모두 그의 말을 잘 들었다.

공양숙이 입을 열자 모두 즉시 조용히 전우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참 공교롭습니다. 그 조력자들은 제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들이 마침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더군요…….”

타주 전우가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를 쳐다보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리나 소저, 그들이 소저를 찾으러 왔습니다.”

이 말을 듣자 모든 이가 남강에서 온 소녀를 쳐다봤다. 마침 화덕 만두와 열심히 맞서던 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입가에 부스러기를 묻힌 채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봉에 처음 왔고, 가족들은 따라오지 않았어.”

리나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외롭고 처량하며 의지할 친구가 없음을 알렸다.

전우가 설명했다.

“제가 만난 건 6품 동피철골경의 무사입니다. 외모가 매우 빼어나고 머리가 산발인 여인을 등에 업은 채였는데…….”

그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나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몰라.”

“하지만 그들은 확실히 소저를 찾고 있습니다. 무덤에 내려간 사람 중에 남강에서 온 소저가 있냐고 제게 묻기까지 했어요.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요즘 상성에 남강 소저라고는 소저 한 명뿐입니다.”

두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리나가 이 일로 무언가를 숨기고 변명하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우선 이 소저는 단순하고 천진난만하여 꾀를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데다 마침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갈 때이다. 어느 누가 더 일찍 나가고 싶지 않겠는가. 이때 이런 걸 숨겨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이 계집애가 만약 대봉에 6품 무사인 친구가 있다면, 무슨 이유로 3박 3일을 굶주렸겠는가? 만약 자신이 그녀에게 한 끼 대접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할 계획이었다.

두목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침음하더니 말했다.

“자네 여러 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소상히 얘기해 보게.”

전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 남자와 여자를 제외하고는 체구가 크고 기골이 장대하며 사납게 생긴 승려가 있었습니다. 청삼을 입은 검객도 있는데 그는 검을 부려 비행할 줄 알더군요. 정말이지 신선의 수단이었습니다.”

“검을 부려 비행한다고?”

두목은 깜짝 놀랐다. 그는 여태껏 검을 부려 비행할 수 있는 무사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는 사람이오?”

공양숙이 리나를 쳐다봤다.

남강의 난폭한 계집애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정말 모른다고? 이, 이럴 리가 있나? 대협객과 그의 동료들은 리나 소저를 찾고 있는데…….’

전우는 의문을 품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도사가 한 분 계시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를 금련 도사라고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금련 도사?!”

리나가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치더니 희색이 만연하여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알아, 알아. 금련 도사님은 내가 아주 신뢰하는 선배야……. 엉엉, 금련 도사가 나를 찾으러 왔구나. 금련 도사는 역시 좋은 사람이야.”

‘아는 사이구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보니 리나와 진정으로 잘 아는 건 금련 도사고 다른 이들은 도사가 찾아온 조력자였다.

‘체구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대머리는 아마 무승 항원이겠지. 그러니까 육호……. 검을 부려 날아다니는 청삼 검객이 사호고. 음, 천인 간의 전쟁이 곧이라 그는 지금 경성에 있지……. 외모가 빼어난 6품 무사는 누구지? 우리 천지회에 이런 인물이 있던가?’

리나는 그다지 총명하지 않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켜 전우가 말한 ‘친구’를 껴 맞추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남자와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리나 소저.”

한 패거리의 구성원이 흥분한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쳐다봤다.

“소저의 친구들은 수련 경지가 어떠합니까?”

단순한 성격의 리나는 묻는 말에 대답했다.

“금련 도사는 지종의 고수인데 구체적으로 몇 품인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분명히 나보다 아주 많이 강할걸.”

사람들의 머릿속에 힘으로 강시를 찢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과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금련 도사가 그녀보다도 강하다고 하니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희망으로 가득 찼다.

“대머리 승려는 불문의 무승으로 수련 경지 역시 뛰어나.”

리나는 항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바로 생략하고 말을 이어갔다.

“청삼 검객은 초원진이라고 하는데 천인 간 전쟁의 주인공 중 한 명이야. 인종을 대표해 천종 성녀와 맞붙어 싸울 예정이지.”

“뭐라고요?!”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고, 두목 역시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상주는 경성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말을 타면 사나흘의 여정뿐이었다. 천인 간의 전쟁은 이미 경성 관내와 주변의 여러 주(州)에 널리 퍼졌더랬다.

바로 상성의 무림에서 천인 간의 전쟁이라는 성대한 일을 구경할 계획으로 많은 강호 인사들이 경성에 갔다. 물론 이는 단지 인종과 천종 후배 간의 목숨을 걸고 하는 대결일 뿐이지만 말이다.

지금 별안간 ‘천인 간 전쟁’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무덤에 내려와 그들을 구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후토방 사람들의 기분은 마치 논두렁에 있던 농민이 황제가 자신을 도와 모내기를 하러 온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았다.

그 말은 지나치게 몽환적이어서 진실성을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이건 리나가 한 말이다. 그들은 리나의 성격을 알고 있다. 천진난만하고 선량한 소저로 꾀를 부리지 않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열정적이라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그런데 이런 점들이 그녀가 바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함께 묘지를 탐색하기 위해 불러들인 대오의 한 강호 인사가 한밤중을 틈타 그녀를 모욕하려 한 걸 후토방 사람들이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리나 소저는 자기 딴에는 귀싸대기를 한 대 휘둘렀고, 그 머리는 수박처럼 터졌다.

사실 그녀는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남강에서 경성으로 올 정도였으니,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상성까지 올 수도 없을 터였다.

“지종의 고수, 불문의 무승, 천인 간 전쟁의 인종 제자라…….”

한 후토방 구성원이 꿀꺽 침을 삼키더니 흥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는 무슨 이력이 있습니까? 뭐 하는 분들인지요?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으니 틀림없이 명성을 떨치는 인물이겠지요, 리나 소저?”

그는 설레는 눈빛으로 그녀의 입에서 눈부신 이름이 나오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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