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무서운 액운 (1)
항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방금 사숙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을 헤아리는 건 소승이고, 중생을 헤아리는 것이야말로 대승이라고요.”
정진은 멍하니 있다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더니 말했다.
“사숙조의 말씀이 맞네. 자네는 역시 혜근(慧根) 갖추고 있어. 좋아, 좋아.”
비록 대승불법을 깨달았지만 자신을 헤아리는 건 십수 년간 이어진 사상적 관성이라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참뜻을 깨닫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다. 도액 나한은 참뜻을 깨달았으므로 이런 사상적 관성을 다시는 품지 않을 것이다.
“내일 사숙조께서 우리를 데리고 서역으로 돌아가실 거네.”
정진 승려가 말했다.
“이렇게 빨리요? 부정한 물건의 일은 캐내지 않기로 했습니까?”
“부정한 물건이 곤경에서 벗어난 지도 이미 수개월이 지났으니 급할 일도 없지. 사숙조께서는 우선 서역으로 돌아가 대승불법을 확대, 발전시키고 싶어 하시네.”
정진 승려가 설명했다.
항원이 정진 승려를 배웅하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마당의 어둠 속에서 서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는 늙은 도사가 눈에 들어왔다.
“금련 도사님?”
* * *
허부에서 서쪽에 걸린 석양이 한 귀퉁이만 남긴 채 곧 지려 했다. 짙은 붉은 빛의 노을은 아주 아름답고 다채로웠다.
허칠안은 암말을 타고 저택으로 돌아와 말고삐를 문지기 하인에게 내던진 뒤 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시간을 아주 정확히 맞춰서 마침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식탁 위, 허신년은 오늘 문회에 참가한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월을 연못 속으로 밀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간단하게 언급했다.
“뭐라고? 영월이 물에 빠졌다고?”
허칠안은 여동생을 자세히 보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다.
“몸은 어떠니?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지는 않고? 감기에 걸리진 않았지?”
허영월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큰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택에 돌아온 후에 약을 먹었으니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어찌 된 일이지?”
허칠안은 허신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 여동생을 어떻게 보살핀 거야? 문회에 참가해서 물에도 빠질 수 있다니. 네가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이니?”
허신년이 쳐다보자 허영월이 황급히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를 탓하지 마세요. 둘째 오라버니가 시시각각 저만 주시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물에 빠진 후에 둘째 오라버니가 첫 번째로 저를 구하러 왔다고요. 저를 물에 빠트린 건 형부상서의 조카인데 이미 사과하고 배상했어요.”
‘형부상서의 조카라…….’
허칠안은 눈꼬리를 치켜올리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나중에 내가 손부(孫府)로 사람을 보내 쪼그려 있으라고 해야겠어. 그 조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차를 몰고 가서 부딪혀 죽이면 그만이니까.”
그는 말을 마친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영월을 쳐다봤다.
“동생아, 큰 오라버니가 너를 말려 들게 했구나.”
허영월은 볼을 부풀리고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큰 오라버니 무슨 말이에요. 한 가족인데 이렇게 남처럼 대하기에요?”
허칠안은 감동했다.
‘이 여동생 참 좋다!’
* * *
허칠안은 저녁밥을 먹고 머나먼 수행의 길을 시작했다. 토납, 관상, 심검 체득, 양의 체득 및 금강불패 신공 체득.
그는 학교 다니던 시절로 돌아가 고되게 수업받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운무가 자욱해지더니 겹겹이 낀 안개가 보였고, 신수 승려의 세계에 이르렀다.
안개를 뚫고 허름한 사찰에 이르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수려한 승려가 보였다.
신수 승려는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곧 깊은 잠에 빠져 당분간은 소생할 수 없으니 자네의 생사를 돌볼 수가 없네. 자네에게 정혈 한 방울을 더 베풀 테니 금강불패를 수련할 때 사용하게.”
‘그의 피가 금강불패를 수련할 수 있다고?’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신수 승려는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가 불멸의 몸이고,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알아야 하네. 다른 이한테 이 기술은 수련이 어렵고 진척이 느리지만, 자네는 단기간 내에 높고 깊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네. 이렇게 되면 자네에게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생길 걸세.”
그가 말을 마치고 정혈 한 방울을 튕기자 정혈이 허칠안의 미간에 부딪혔다.
이어 그는 짙은 안개로 뒤덮인 세계에서 튕겨 나와 방안에서 눈을 떴다.
펑펑펑…….
몸에서 콩이 터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그의 피부 표면의 근육이 두드러지고 혈관이 튀어 올랐다. 뒤이어 근육과 혈관이 모두 금칠로 물들어 촛불이 비치는 가운데 반짝반짝 시선을 사로잡았다.
허칠안의 머릿속에 아주 큰 ‘제기랄!’이 스쳤다.
금강불패는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다만 지금 그가 정사 승려와 육탄전을 벌이게 되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이 일을 불문의 눈앞에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허칠안은 금강불패를 거두고 탁자에 앉아 찻잔을 쥐고 생각에 잠겼다.
‘신수 승려는 불문 사람이고, 불사불멸과도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그 역시 필연적으로 금강불패를 수련했을 것이다. 그리고 감정이 불문과의 두법을 동의하고 사천감을 대표해서 참가할 자로 나를 지명했다……. 감정은 왜 내게 길을 내어 주는 거지? 이렇게나 뻔하게? 아니, 나는 왜 그가 돈줄을 키우는 것 같지…….’
이때 누군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허칠안은 일어서서 방문을 열었다. 한밤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도사가 손에는 불진(佛塵)을 쥐고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청삼 검객 초원진과 체구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노지심이 있었다.
“여러분…….”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그들이 왜 갑자기 우리 집에 왔을까?
“나의 젊은 친구에게 일이 생겼네. 허 대인의 도움이 필요하네.”
금련 도사가 말했다.
‘한 젊은 친구에게 일이 생겼다라……. 오호인가? 아니면 금련 도사가 아는 다른 후배인가?’
허칠안은 적당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도사님의 그 젊은 친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조정의 군대를 동원해야 합니까?”
금련 도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는 상주(襄州)에 있네.”
‘상주가 경성 남쪽이니까 여정은 대략 400km……. 가깝지도 멀지도 않군.’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사께서는 일이 있으니 본관이 책임을 맡겠으나 우선은 관아에 가서 휴가를 내야 합니다. 어쨌거나 이번 여정은 요원하니까요.”
금련 도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저택의 하인더러 내일 대신 휴가를 내라고 하게. 우리는 오늘 저녁에 바로 출발하세. 시간이 촉박하네……. 참, 그 예언사는? 사람을 찾으려면 반드시 망기술의 도움이 있어야 하네.”
“그녀는 사천감에 있습니다…….”
허칠안은 한숨을 내쉬더니 농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녀의 어머니 댁에 가서 그녀를 찾아오겠습니다.”
‘이 예언사는 분명히 여인이겠지…….’
육호 항원 및 사호 초원진은 속으로 동시에 짐작했다.
* * *
세 사람은 바로 방에 들어가 기다렸고, 허칠안은 뒤뜰에서 암말을 끌고 와서는 말을 타고 사천감으로 내달았다.
사천감의 등불은 밤새 켜 있다. 허칠안은 1층 대당으로 들어가 밤새 쉬지 않고 연구하는 약사들에게 물었다.
“제가 종리 사저를 찾는다고 사형 한 분께서 통전 좀 해주십시오.”
분위기가 순식간에 굳었다. 약사들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말했다.
“종리 사저는 지하 1층에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 백의가 안으로 들어갔고, 몇 초 후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리 사저, 허 공자님이 찾아왔습니다.”
말을 마친 그 술사는 매우 서둘러 뛰쳐나왔다. 그는 마치 뒤에 큰 벌레라도 쫓아오는 듯 아주 빠른 속도로 나왔다.
* * *
대당 안, 다른 백의들은 잇따라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계단으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대당 안이 조용해졌다. 허칠안 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또 몇 분 흐르니 종리가 안에서 나왔다. 종리는 머리를 산발한 채 거칠고 긴 장포를 입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상 치르는 여인의 표준적인 차림새였다.
“제가 일을 좀 처리하러 경성을 떠났다가 빠르게 돌아올 예정인데, 사저의 역량이 필요합니다.”
허칠안은 예의를 차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
종리는 간결하지만 핵심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호구가 갖춰야 할 순순함을 갖추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천감을 나섰다. 허칠안은 말을 타고, 종리는 걸었는데 그 속도가 결코 암말보다 느리지 않았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부로 돌아와 금련 도사를 필두로 한 천지회 세 명과 회합했다.
초원진이 말했다.
“내성은 비행하기에 적당치 않으니 우리 외성으로 갑시다. 번거롭겠지만 허 형이 우리를 데리고 성을 나가게.”
만약 그 한 사람이라면 내성에서 하늘을 날고 땅에 은둔해도 무방하다. 성안의 고수들은 인종의 체면을 봐서라도 나서서 막거나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수가 많아지면 눈감아 줄 수가 없으니 번거로움만 가중시키는 셈이 된다.
즉시 허칠안은 세 사람을 데리고 저택을 나섰다. 길을 안내하는 은라 허칠안이 있으니 야경꾼이든 어도위든 형식적으로 묻고 그 이상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가 가는 길에 금련 도사가 허칠안을 쳐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호가 실종됐네.”
초원진이 갑자기 허칠안을 쳐다봤다.
허칠안이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도사님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음, 도사님, 오늘은 왜 고양이에 빙의하지 않으셨나요?”
금련 도사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오호는 지사 파편 소지자의 순번이네. 이건 자네가 잘 알게야. 항원을 구하던 그 날 자네에게 은혜를 입었지. 음, 자네 고양이가 어쨌다고?”
허칠안은 ‘아’하더니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제가 잘못 기억했습니다.”
금련 도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 역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진은 먼저 두 사람을 보더니, 그다음에 항원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상백 사건 때 구한 사람이 항원 대사인가?”
항원 대사는 양손을 합장하고 말했다.
“그때 허 대인 덕분에 살았지요.”
항원은 실제로 상백 사건에 휘말렸다. 그때 그가 지서 파편에서 말하길 야경꾼 관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전부 허칠안의 공이라고 했었다……. 지금 보아하니 이 일 배후에 다른 내막이 있었다. 금련 도사는 삼호를 통해 허칠안에게 연락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허칠안은 천지회와 지서 파편의 존재를 안다.
‘이렇다면 나는 내 추측에 더 확신이 든다. 금련 도사가 비록 지서 파편을 운록서원의 서생 허신년에게 주었지만, 그는 사실 둘 다 원한다.’
초원진은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 * *
외성에 도착해 초원진이 등을 치자 인종의 법기인 검이 검집에 꽂힌 채 날아와 허공에 매달렸다.
금련 도사가 품속에서 종이학 한 마리를 꺼내 가볍게 내던지자 종이학이 순식간에 몸길이 7척의 큰 새로 변해 날갯짓을 하며 빙빙 돌았다.
“도사님, 저 도사님을 따르겠습니다!”
허칠안이 황급히 말했다.
이건 바보라도 선택할 줄 아는 문제다. 초원진 쪽은 입석이고, 금련 도사 쪽은 좌석이다.
항원과 초원진이 검집에 뛰어올라 ‘슉’하고 허공을 가르며 갔다.
허칠안과 금련 도사는 백학에 앉은 뒤에야 자리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종리의 자리가 없었다.
“술사는 비행할 수 있나요?”
허칠안은 아래쪽에 있는 ‘상 치르는 여인’을 향해 물었다.
“할 줄 모르네. 순간 이동 진법은 4품이 되어야만 시전할 수 있어.”
종리는 고개를 저었다.
허칠안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허벅지를 보았다.
“괜찮네!”
금련 도사가 목잠을 풀어서 종리에게 던졌다.
종리는 목잠을 움켜쥐었고, 목잠의 인솔하에 ‘슉’하고 고공으로 솟구쳐 초원진의 비검에 바짝 따라붙었다.
‘도사님, 가는 길이 좁아터졌군요…….’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백학이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