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68화 (368/712)

368화.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다

강율중은 호기루 탁자에 앉아 하급 관리가 내온 차를 받쳐 들고 열기를 호호 불더니, 차를 조금 마시고 개탄하며 말했다.

“작년에 여기서 차를 한 번 마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어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입술이 향기가 남아 세 시진 동안이나 흩어지지 않았지요.”

위연이 책장 앞에 서서 서적을 뒤적이던 끝에 그를 등진 채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궁 안의 최상품 차네. 3년에 3근만 생산하여 폐하조차 평소에 아껴서 드시지.”

‘어쩐지…….’

강율중은 문득 깨닫고 궁금해하며 말했다.

“이렇게 신기한 차는 어디서 생산하는지요?”

“경성에서 생산하네.”

“경성에 이런 좋은 차가 더 있었습니까? 소직은 어째 들어본 적이 없을까요.”

“어느 한 여인이 재배하는 것이네. 그녀가 경성에 있기에 이 차는 경성에서 생산되지.”

위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중후했다.

강율중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묻지 않았다. 물론 그도 차가 좋기는 하지만 어찌 일개 무사가 차에 관해 지닌 애정이 열정적이라고 할 정도가 되겠는가. 그가 이번에 호기루에 온 데에는 뚜렷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오늘 칠안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가 교방사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기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강율중이 말했다.

“미인은 시사를 좋아하지. 특히 기루 여인들이라면.”

위연은 웃었다.

“전혀 아닙니다.”

강율중이 고개를 저었다.

“시사 외에 두 가지 비결이 더 있다고 합니다. 각각 ‘깊은 사이가 아닌데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과 ‘도대체, 되나요’ 입니다.”

‘소직이 오랫동안 깨쳐도 아무런 수확이 없습니다……. 물론, 소직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소직은 순수하게 궁금할 뿐입니다.’

“위 공께서는 박학다식하시니 소직이 특별히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위 공의 학식으로는 틀림없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강율중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그윽하게 그를 주시하는 위 공을 보았다.

위연은 십여 초를 바라보더니 눈빛을 거두고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율중, 나와 함께한 지 10년 됐지?”

“네.”

“이 10년 동안, 맡은 바 임무를 근면 성실하게 수행한 점 본좌가 모두 알고 있고, 아주 흐뭇하네.”

위연은 책 한 권을 뽑더니 말했다.

“됐네. 본좌는 계속해서 책을 볼 터이니 자네는 물러가게.”

강율중은 다소 망연자실하게 나왔고, 자신의 당구로 돌아갔다.

그가 엉덩이를 채 붙이기도 전에 하급 관리 하나가 들어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강 금라, 위 공께서 분부가 있으십니다.”

‘방금 나보고 가라고 쫓아낸 거 아니었어……?’

강율중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위 공께서 말씀하시길 강 금라는 맡은 바 임무를 근면 성실하게 수행했고, 마땅히 계속 유지해야 하니 앞으로 한 달간, 야간 당직 업무를 전부 금라께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하급 관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위 공께서는 또 강 금라께 짐을 챙겨 관아로 이사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에는 당분간 가지 마시라고요.”

“???”

‘이게 맡은 바 임무를 근면 성실하게 수행한 부하에게 내리는 분부란 말인가? 이게 사람 말인가? 한 달 동안 밤을 새우고 당직을 서라니. 앞으로 한 달간은 교방사에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인조차 만질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강율중은 멍해졌다.

* * *

허칠안은 이번에 한 시진을 기다렸다. 무려 한 시진을 말이다.

‘올 때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러지 않았으면 난감했겠어……. 햇빛이 강렬하지는 않으니 내 처량함이 전혀 부각되지 않네…….’

그는 매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불평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았다.

허나 허칠안은 15분마다 궁녀 하나가 남몰래 마당 안에 서서 입구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칠안은 못 본 척했다.

햇빛이 찬란하고 봄바람이 따뜻했다. 봄이 되자 소음원의 뒤 화원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점차 풍경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면모를 드러냈다.

이공주 임안은 도화안을 뽐내며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얼굴로 뾰로통하게 정자에 앉아, 수행 궁녀 둘이 오목 두는 걸 지휘했다.

그녀는 오목을 많이 두다 보니 어느새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가르쳐 주는 일도 즐기기 시작했다.

두 궁녀는 놀이를 체험한 적이 전혀 없었지만, 화가 난 이공주를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공주마마, 허 대인이 아직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궁녀가 정기적으로 와서 보고했다.

임안은 딱딱하게 ‘응’하고 대답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궁녀는 물러갔다.

일각 후, 그녀는 다시 가서 상황을 살폈다가 허칠안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 걸 보자 마음속으로 좀 감동했다.

‘우리 공주마마는 항상 성질을 부리셔. 이건 뭐 허 대인 같은 준걸을 회경공주마마한테로 쫓아 보내는 거 아닌가…….’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칠안이 몸을 휘청이더니 빳빳하게 바닥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는 게 보였다.

“아이고…….”

궁녀는 급한 마음에 달려가서 상황을 살폈다. 허칠안은 안색이 창백한 채 괴로워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허 대인, 허 대인?”

궁녀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으로 조급하게 그를 밀치락달치락했다.

허칠안은 ‘서서히’ 깨어났고, 가슴을 감싸고 몇 차례 기침하더니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나는 괜찮아. 두법할 때 부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방금 너무 오래 서 있다 보니 상처가 재발했네. 좀 쉬면 되네.”

궁녀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여 권했다.

“허 대인, 우선은 돌아가시지요. 이공주마마께서 지금 화가 나신 상태라 대인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

“마마께서 화가 나셨다고?”

허칠안이 깜짝 놀라 물었다.

“마마께서 무슨 일인가? 어느 무심한 놈이 마마를 화나게 만든 것인가?”

궁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속으로는 ‘마마를 화나게 한 사람이 당신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소음원의 시위가 허 대인이 궁으로 들어가 덕형원에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허칠안은 침묵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자 궁녀는 갑자기 좀 실망하여 신신당부했다.

“허 대인 돌아가십시오. 다음에 마마께서 화를 가라앉히면 오세요.”

그녀는 말을 마친 뒤 허칠안을 내팽개치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빨리 달려 내원 정자에 이르렀고,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마마, 허 대인이 방금 기절하셨어요.”

임안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녀는 놀라면서도 긴장한 표정이 얼굴에 스쳤으나 이내 억누르고 태연하게 말했다.

“정신을 잃었다고?”

“허 대인 말씀이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어제 두법할 때 입은 부상이 다시 재발했다고 하더군요.”

궁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내가 그한테 기다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오목도 둘 줄 모르고, 너희 둘은 바보야.”

임안은 안절부절못하며 욕지거리를 하더니 돌아서서 궁녀에게 말했다.

“가지 않았으면 그에게 들어오라고 해.”

* * *

허칠안은 편청으로 안내받았다. 그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들어오는 붉은 옷차림의 그녀를 보았다. 동글반반한 얼굴, 아름다운 이목구비, 무표정한 얼굴, 매력적인 눈동자는 억지로 냉담한 눈빛을 가장했다.

“본 공주가 손님을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너희 그에게 왜 들어오라고 했니?”

임안은 뻔한 거짓말로 한마디 질책하더니 시선을 곧 허칠안에게 돌렸다. 그녀는 그를 한 차례 훑어본 후 한시름 놓았다는 듯 분부했다.

“허 대인이 조정을 위해 힘을 다했으니, 본 공주 역시 자네를 헛되이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야. 홍아, 물건을 들여오너라.”

궁녀가 물러갔다가 금세 소음원의 당차를 데리고 들어왔다. 손에는 단약, 보양 약재를 받친 채였다.

“이 약재와 단약은 본 공주가 어약방에서 가져온 것이니 허 대인은 가져가거라.”

임안은 딱딱하게 말했다.

“전부 마마께서 오랫동안 청하셔서 폐하께서 비로소 넘겨주신 겁니다.”

홍아가 덧붙였다.

“말이 참 많구나!”

임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말했다.

“홍아, 손님을 배웅하거라.”

허칠안은 가지 않았다.

양측이 잠시 대치하던 중 허 색마가 낯짝 두껍게 말했다.

“제가 오랫동안 오목을 연구하여 천하를 모조리 쓸어버릴 만한 무적의 비결을 얻었습니다. 마마께서는 도전에 응하실 수 있겠습니까?”

임안은 과연 술수에 걸려들어 도전에 응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여종에게 바둑판과 바둑알을 가져오라고 이른 뒤, 그녀와 허칠안은 편청에서 여러 판 대전을 벌였다. 허칠안은 3전 3패 하자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했다.

“과연 마마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우십니다. 소직 탄복했습니다.”

허칠안은 여세를 몰아 아부를 떨었다.

임안은 아래턱을 약간 치켜들고 아주 딱딱하게 ‘응’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배은망덕한 놈이라는 생각에 다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오목도 다 두었으니, 더는 허 대인을 붙잡지 않겠네.”

“서두르지 마십시오. 소직이 또 새로운 놀이법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마마께서 흥미가 있으시다면 소직이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허칠안의 수법은 무궁무진했다.

조용한 소음원이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임안은 소음원 내의 시위에게 벌목을 지휘하고, 허칠안은 벤 나무를 다시 한 토막씩 베었다.

“너는 가서 염료를 가져오고…… 너는 가서 조각칼을 가져 오거라…….”

그녀는 시위에게 지휘를 마친 뒤 다시 궁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눈언저리에 웃음을 띤 그녀는 의욕이 넘쳤다.

* * *

두 궁녀는 명령을 받들고 나선 다음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마마께서는 얼마 전까지도 화가 나서 잔을 던지고 눈가가 빨개지셨는데……. 허 대인은 정말 능력 있지 않니? 감언이설조차 하지 않았는데 마마께서 그를 용서하셨다니.”

“마마께서는 단지 성질을 부리시는 거지, 정말로 허 대인을 미워하지 않아. 만약 그가 가 버리면 마마께서는 정말 속상해하실 거야.”

“콜록콜록!”

남자의 나지막한 기침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두 궁녀는 놀란 사슴처럼 깜짝 놀라 펄쩍 뛰었고, 고개를 돌려 보니 허칠안이 있었다.

“허 대인께서는 참 너무하십니다. 노비가 깜짝 놀랐다고요.”

홍아는 불평했다.

허칠안은 아름다운 궁녀 둘과 몇 마디 시시덕거리며 장난치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관이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그 단약은 아주 값진데 마마께서는 언제 준비하셨느냐?”

“그 단약은 폐하께서 직접 복용하시는 겁니다. 원기를 돕고 정신을 보양하지요. 듣건대 한 화로에 단약이 24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24개의 화로를 제련해야 한 화로를 성공시키지요. 어제 마마께서 한참 동안 소란을 피워 폐하께서는 참지 못하고 한 알을 하사하신 겁니다.”

하아가 말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즉시 허 대인을 모셔 오라고 사람을 보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른 궁녀가 덧붙였다.

“가거라!”

허칠안은 얼른 두 궁녀를 몰아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서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했다. 토막 난 나무를 편평한 원형으로 조각한 뒤 위에다가 줄을 새겼다.

임안 역시 그 과정 중에 조각을 도왔다. 어쨌거나 그녀는 학문을 공부하고 무술을 연마했었다. 둘 다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초는 탄탄한 셈이었다.

나무를 편평한 원형으로 조각하는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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