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숨 막히는 암투 (2)
허신년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자색 옷의 소녀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
“영월, 어떻게 된 일이니?”
허영월은 코를 훌쩍였는데 머리카락이 청초한 얼굴에 달라붙은 모습이 연약하면서도 가여웠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저, 저는 모르겠어요. 이 언니가 저한테 왕부에서 꺼지라고 하면서 그녀와 동석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어요. 제가 상대하지 않으니 그, 그녀가 저를 연못으로 밀쳤어요.”
모든 이가 순간 자색 옷의 소녀를 쳐다봤다. 공자들은 애처롭고 가련하여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허영월을 쳐다보더니 다시 교활하고 포악한 자색 옷의 소녀를 쳐다보곤 남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아닌데.”
자색 옷의 소녀는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허영월을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
“네가 감히 나를 해치려 해? 분명히 네가 먼저 나를 꼬집었잖아. 너희 저 계집애의 말을 믿지 마! 저 계집애가 나를 해하려고 일부러 물에 빠졌다고!”
한 소저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염아가 좀 난폭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물속에 밀어 넣을 정도는 아니야.”
자색 옷의 소녀는 절친을 향해 감격의 눈빛을 보낸 뒤,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허영월에게 삿대질했다.
“저 애 혼자 한 짓이라고. 나를 모함하고 싶어서 자기가 일부러 물에 뛰어들었다고. 아주 못됐어.”
모든 이가 의심의 눈초리로 허영월을 바라보았다.
허영월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왈칵 쏟으며 슬피 울었다.
“둘째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가 누구의 미움을 샀나요? 저 염아 언니가 말하길 큰 오라버니가 그녀의 숙부와 자주 대적한다고 하더라고요. 큰 오라버니를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저를 몰래 기루에 팔아 버릴 수도 있다고 했어요.”
‘기루에 팔아 버린다고…….’
순간 허신년은 분노가 머리 꼭대기 차올라 자색 옷의 소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소저가 어느 집안 사람인지 모르겠소.”
왕 소저는 약간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염아의 숙부가 형부 손 상서입니다.”
모든 공사들은 문득 모든 걸 깨치고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공사인 그들은 장차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될 것이 자명했기에 조당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형부 손 상서와 허칠안의 원한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시가 바로 《상백 사건, 손 상서에게 바친다》였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흥미진진하게 오르내리는 시였다.
오늘날 허 시괴의 명성이라면 이 시는 틀림없이 후세에 전해질 테고, 손 상서 역시 오래도록 후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오늘 염아 소저가 허 시괴의 여동생을 밀쳐 물에 빠트린 동기는 아주 충분했다.
“너…….”
자색 옷의 소녀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정말 이런 말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본래 부인하고 싶었지만, 주변 지식인들의 표정을 보니 자신의 변명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듯했다.
“내 여동생이 그대를 꼬집었다고 말하는데, 그대의 어디를 꼬집었소?”
허신년이 물었다.
“제 허리요.”
자색 옷 소녀의 눈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허신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저, 좋은 계락이오. 지식인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가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테지요. 검증할 수 없는데 모든 걸 그대 입으로 설명하려 들다니.”
자색 옷의 소녀는 어리둥절하다가 갑자기 이 계집애가 허리를 꼬집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일리가 있지만 제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저희 조사할 수 있어요.”
한 소녀가 말했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스스로 꼬집어 보면 멍 자국이 생길 거요. 내 여동생은 말주변이 서툴러서 입이 백 개라도 해명할 방법이 없소.”
‘그건…….’
자색 옷의 소녀와 그녀의 절친은 허신년에게 갈굼 당해 말을 내뱉지 못했다.
허신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그대가 내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소.”
자색 옷의 소녀는 화가 난 나머지 눈언저리가 빨개졌고, 그녀는 허신년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
“너 너무 오만하게 굴지 마. 고작 회원이 뭐라고 네가 감히 나를 어떻게 한단 말이냐!”
착!
허신년이 손바닥을 뒤집어 귀싸대기를 날렸다.
자색 옷의 소녀는 몇 걸음 휘청거렸고, 순식간에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 너가 감히 나를 때려?”
모든 이가 너무 놀라 멍하니 있었다. 허신년이 이렇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여인을 때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일은 여러분이 전부 증인입니다. 저는 지금 그녀를 포박하여 관아로 갈 터이니 추후에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허신년은 말을 마친 뒤 자색 옷의 소녀를 주시하고 쌀쌀맞게 말했다.
“형부에 가는 것도 관아에 가는 것도 아니오. 나는 소저를 모시고 야경꾼 관아에 갈 것이오.”
사람들의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야경꾼 관아가 어떤 곳인가? 안에 들어가면 설령 형부상서라고 해도 쉽지 않다. 정말 따지고 들자면 사람을 밀어 물에 빠트린 건 살인미수로 판결 날 테고 야경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형부상서가 전력을 다해 빼낸다 해도, 나온 후에 소저의 명예는 실추될 것이니 장차 가문이 엇비슷한 집안에 시집이나 갈 수 있겠는가?
자색 옷 소녀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왕 소저 옆으로 걸어가 울면서 말했다.
“사모 언니, 저를 살려 주세요……. 저 야경꾼 관아에 가지 않을래요.”
왕사모는 즉시 허영월을 쳐다봤고, 그녀는 아무 내색 없이 고개를 획 돌렸다.
‘이 여인도 다루기 쉽지 않군…….’
왕 소저는 이런 생각이 떠올라 허신년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허 공자님, 염아는 고의로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그녀에게 사과하고, 영월 동생에게 상응하는 손해를 배상하라고 하겠습니다. 소녀를 봐서라도 이렇게 끝을 맺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녀는 아주 난감했다. 문회는 그녀의 저택에서 열렸고, 이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허신년이 사람을 데리고 가버리면 형부상서와 부친 간에 분명 악감정이 생길 것이다.
이는 주최자인 왕사모가 보고 싶지 않아 할 모습이었기에 그는 사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관아에 보고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좋소. 왕 소저의 체면을 봐서 관아에 보고하지 않겠소.”
허신년이 말했다.
왕 소저는 즉시 허씨 남매를 데리고 편청에 들어가 배상 및 사과 조항을 협의했다.
“염아는 성격이 거칠고 제멋대로여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마땅히 배상하고 사과해야 하지요……. 은자 오백 냥 어떠십니까?”
왕 소저는 영민한 눈동자로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자는 작은 문제일 뿐, 중요한 건 태도이지요.”
허신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왕사모는 자색 옷의 소녀를 쳐다봤다. 후자는 울분을 참으며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허신년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일천 냥이오. 한 닢이라도 빠지면 살인미수라고 알겠소.”
“……알겠어요.”
왕사모는 상냥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허 공자님, 어서 영월 동생을 데리고 돌아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시지요. 감기 걸리지 말고요.”
그래서 왕 소저는 은표 일천 냥을 가져오게 한 뒤 백번 천번 감사하다고 말하며 허신년에게 건넸고, 저택을 나가는 남매 둘을 직접 배웅해 주었다.
마차 안, 허신년은 은표 일천 냥을 허영월에게 건네며 말했다.
“동생아, 은표 잘 챙겨라. 앞으로 네 혼수의 일부분이야.”
그는 손을 뻗어 허영월의 어깨를 누르고 여유 있게 말했다.
“뜨거운 피가 들끓으면, 고뿔이 들지 않는단다.”
허영월은 몸속에 따뜻한 기류가 밀려와 한기를 몰아내는 듯했다.
그녀는 편안하게 숨을 내쉬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제가 나빴어요. 먼저 자리를 뜨게 했잖아요.”
허신년이 손을 내저었다.
“일찍 자리를 뜨는 것도 좋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왕 재상과 싸울 자신이 별로 없어. 그가 아직 오지 않은 틈을 타 일찍 벗어났지. 이를 추리피해 군자소위(*趨利避害 君子所爲: 이익은 좇고 해를 피하는 건 군자가 마땅히 해야 할 행위다)라고 한단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왕 소저라는 분은 단순하지 않더구나.”
허영월이 말했다.
“왕 소저는 기개가 비범하고 일 처리가 논리적이어서 상황을 제압할 수 있더라고요.”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전부 처리하였다. 분명 그녀와 관계없는 일인데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도 아주 좋고, 지도자의 풍격을 갖추었다.
허신년은 비웃으며 말했다.
“단지 일부분일 뿐이야. 네가 물에 빠졌는데 그녀는 네가 옷을 갈아입게끔 저택에 남기지 않았지. 이는 형부상서 집안의 계집애에게 보여주려고 한 행위야. 동시에 너와 내게 보라고 한 짓이란다. 영월, 네가 자발적으로 물속에 뛰어들었지?”
허영월이 그를 지그시 응시하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왜 둘째 오라버니보다 큰 오라버니가 더 사람들에게 예쁨받는지 알아요?”
허신년은 갑자기 승부욕에 불탔다.
“나는 지금까지 형님보다 남들에게 예쁨받았는데.”
허영월이 고개를 저었다.
“큰 오라버니였다면, 틀림없이 지금 저를 살뜰히 돌봐 주면서 저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을 거예요. 속으로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지만, 말로 내뱉지는 않을 거라고요.”
허신년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 * *
“왜 울어?”
왕 소저는 손에 손수건을 쥐고, 자색 옷 소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빙긋 웃었다.
“너는 적녀니 어릴 때부터 집에서 우쭐대고 감히 너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겠지. 어떤 일들은 네가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성질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걸 더 선호하는 건데 이는 옳지 않아. 장차 시집가면 고생길 시작이라고.”
“그 계집이 스스로 물에 빠졌다고요!”
자색 옷의 소녀는 억울함에 소리쳤다.
“중요치 않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그들이 네가 밀었다고 생각하면 네가 민 거야.”
왕 소저는 웃으며 말했다.
“언니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자색 옷의 소녀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그 남매를 당해 내지 못하겠어.”
왕 소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얻은 게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첫째, 허신년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고 혼약을 맺지도 않았다. 둘째, 허씨 집안 여동생의 기질을 분명하게 파악했다. 셋째, 비록 교류가 짧았지만 허신년의 성격과 기질은 그녀의 입맛에 딱 맞는다.
그는 잘생겼고, 성격이 강하며, 똑똑하고, 주관 있고, 꾀도 있다. 더 중요한 건 그가 가족을 위해 기꺼이 형부상서의 미움을 사려 한다는 점이다.
자고로 재능이 출중하고 원대한 계획을 품고 있는 남자는 세려야 셀 수 없다. 똑똑하고, 음흉하고, 모질다……. 이런 이들은 하나같이 재미없다. 그들 눈에는 그저 자신의 웅대한 패업만이 있을 뿐, 안식구를 첫째로 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꾀가 많은 남매를 교육하고, 재능이 출중한 조카를 양성해낼 수 있는 허씨 집안의 그 주인마님은 틀림없이 대단한 인물일 것이다.
왕 소저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치며 투지가 넘쳐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