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문회에 가다 (1)
허신년은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은 뒤 이상한 표정을 하고 큰형을 쳐다보았다.
‘표정이 이상하면서도 초조하지 않은 걸 보니 급한 일은 아니군…….’
허 형사는 판단을 내리고 아무런 걱정 없이 원탁에 앉아 물을 따랐다. 그는 화학조미료를 많이 먹어서 유발된 갈증을 해소한 뒤 편안한 어조로 웃으며 말했다.
“신년아, 남자는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 할 말 있으면 바로 얘기해.”
허신년은 책상 옆으로 걸어가 초대장을 하나 들었다. 이윽고 ‘철썩’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초대장이 허칠안 앞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허칠안은 초대장을 펼쳐 훑어보고 난 후 허신년의 표정이 왜 이상했는지 깨달았다.
허신년에게 문회에 참가하라고 초청하는 내용의 초대장인데 위에 재미있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여동생을 데리고 오세요.>
초대하는 사람은 당조 재상 왕정문이었다.
“너는 춘시 회원이니 문회에 초대하는 건 아주 합리적이야.”
허칠안이 분석하며 말했다.
허신년에게는 여동생 둘뿐인데, 문회 같은 장소에는 당연히 어린아이를 초대하지 않는 법이다. 버젓한 왕씨 가문이 이런 규칙도 모른다고?
여인이 문회를 참석하는 일에 관해 얘기해 보자. 비록 대봉이 여전히 삼종사덕(*三從四德: 여인이 평생 지켜야 할 세 가지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을 고수하고 있지만, 수련 체계의 존재로 여인 중에도 특출난 인재가 있다.
그렇기에 지위가 남자보다 낮긴 하지만, 그렇게 낮다고 할 수도 없다. 여인은 전족을 쌀 필요 없고, 외출할 때 면사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나가서 놀고 싶으면 나가서 놀아도 된다.
예를 들어 숙모와 영월만 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수행원을 데리고 나가서 돌아다니며 장신구 점포를 구경하곤 한다.
문회에 안식구가 참가하는 건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어리석습니다!”
허신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리 사회는 전쟁터와도 같습니다. 우매한 얼간이들이 슬그머니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지도 모르지만, 조정의 제공들은 이 유형에 속하지 않지요. 왕 재상은 더욱이 제공 중에서도 특출 난 존재입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그의 표정 하나가 모두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음미할 가치가 있지요. 그러지 않고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라요.
형님은 위연의 사람이고, 왕정문과 위연은 조당의 맹호 두 마리니 완전히 상극이지 않습니까. 그가 저를 저택에서 열리는 문회에 참가하라고 초청한 일은 분명히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허신년은 방안을 서성거렸다.
“나 허신년은 어엿한 회원으로 앞날이 창창하다. 왕 재상이 나를 두려워하여 내가 성장하기 전에 나를 억누르고 싶은 거다……. 아니야. 설령 내가 회시에 급제해서 영예롭게 1등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왕 재상이 나를 상대하는 정도는 손쉬운 일인데. 나와 그의 지위는 그 차이가 현격하니 그가 나를 상대하고자 한다면 음흉한 계략을 꾸밀 필요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가 정말 보통 문회에 나를 초대한 것뿐이라고? 그렇다면 상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뜻인데, 왕정문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말인데…….”
허신년이 고민하다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님, 말 좀 해보세요.”
‘내 생각에는 네 사상이 점점 deep해지는 것 같은데…….’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렇게 하자. 공사(貢士)에 급제한 다른 동창에게 초대장을 받았는지 물어 보면? 만약 받았다면 이건 단지 단순한 문회일 뿐이란 뜻이지. 만약 받지 않았고 오로지 운록서원의 서생중에 너만 초대했다면 확실히 수상하고.”
“그건 저도 당연히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어요.”
허신년은 다소 초조해하며 초대장을 가리켰다.
“형님 시간을 보세요. 문회는 내일 오전이라고요. 사실을 확인하러 갈 시간이 전혀 없어요……. 저 알았어요.”
“뭘 알아?”
허칠안이 물었다.
“왕 재상은 제가 반응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어요. 만약 가지 않으면, 그는 제가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는 안하무인이라고 소문을 퍼뜨려 제 명성을 더럽히겠죠. 만약 제가 간다면 문회에서 틀림없이 무슨 음흉한 계략이 저를 기다릴 테고요.”
허신년은 질겁하여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역시 짬밥은 무시할 수가 없어요.”
그가 이렇게 얘기하자 허칠안 역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우리 허씨 집안에서 어렵사리 지식인 종자를 배출했는데 왕정문이 이렇게 사람 구실을 못하다니’라고 중얼거렸다.
뒤이어 그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도 방금 얘기했듯이 왕 재상이 너를 상대하고자 해도 음흉한 계략을 꾸밀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이야. 설령 네가 진사에 급제했다 해도 너는 그저 쪼렙일 뿐이고 그자는 거의 만렙이잖니.”
허신년은 망연히 말했다.
“뭐가 쪼렙이고, 뭐가 만렙이에요?”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네가 오만하다는 명성이 퍼져 나갈 테고, 만약 간다면 아마 음흉한 계략이 있을지도 모른다라……. 신년, 네 스스로 결정하거라.”
허칠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형님 언제부터 영음처럼 멍청해진 거예요?”
허신년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얘기했는데 아직도 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 말은 형님이 저와 함께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뜻이잖아요.”
“아니, 나는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너는 내 형제지만 관리 사회에서 너와 나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란다. 신년, 너는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해야 해.”
허칠안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고,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네 길이 있고, 너만의 방향이 있는 거야. 나와는 어떠한 관계도 있어서는 안 돼.”
허신년은 똑똑한 자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응’하고 대답했다.
큰형은 지금 그에게 위연과 절대 엮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언젠가 위연이 실각한다면 큰형에게 불똥이 튀는 일을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연이 실각하든 말든 허신년과는 관계가 없다. 그의 신분은 그저 허칠안의 형제지, 위연의 부하가 아니다.
허신년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역사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호족 중에는 자제들이 한 마음이 아니어서 서로 다른 세력에 속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랬을 때 설령 한쪽 날개가 꺾여도 가문은 치명적인 상처만 입을 뿐, 전멸하지는 않는다.
* * *
이튿날 허칠안은 애지중지하는 암말을 타고 청명한 하늘 아래 ‘다그닥다그닥’ 소리를 내며 야경꾼 관아로 달려갔다.
점호 이후, 송정풍 및 잘 아는 동료 몇몇이 그를 찾아왔다. 모두 함께 앉아 차를 마시고 땅콩을 까먹으며 잠시 허풍을 떨더니 허칠안에게 교방사에 가서 한턱 쏘라고 종용하였다.
“꺼지게, 꺼져…….”
허칠안은 그들에게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매일 교방사에 갈 줄만 알지. 내가 두법하는 걸 보지 않았는가? 보리수 아래의 노승이 뭐라고 했는가? 미색은 스스로를 해치는 칼이나 다름없이 형편없다고 말이야. 매일같이 기녀들과 놀아날 줄만 안다니, 자신의 차복에 떳떳한가? 자네들끼리 놀면 그만이지, 하필 나를 끌어들이려 하는가. 퉤!”
모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았기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했다.
“우리 관아에서 자네보다 기루에 많이 드나드는 자가 있는가?”
허칠안은 그럴듯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기녀들과 놀아난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 허물없는 사이지만, 이렇게 함부로 지껄이면 내가 반드시 위 공을 찾아가서 자네들이 나를 중상모략한다고 고자질하겠네.”
“퉤!”
모두가 그에게 침을 뱉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래도 허칠안에게 탄복했다. 이 자식은 돈을 주고 기녀와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녀가 돈을 써서라도 그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칠안, 송정풍이 하는 말을 들으니 자네가 막 야경꾼에 합류하여 동라일 때 이미 부향 소저와 잘됐다지? 시 한 수 말고도 다른 절학이 있는가?”
한 동라가 겸손하게 가르침을 구했다.
자리에 있는 몇몇 동라, 은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교방사 기녀들의 풍운아가 되고 싶어 한다.
“확실히 비결이 있기는 하네만.”
허칠안은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무슨 비결인가?!”
모든 야경꾼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때 입구에서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직 기간에 모여서 잡담을 나누다니. 자네들 눈에 규율이 있기는 한가?”
모든 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일도당 입구에 한 금라가 칼처럼 날카로운 매의 눈을 내보였다. 눈가의 옅은 주름살이 있는 그는 강율중이었다.
“강 금라…….”
모두 히죽거리던 태도를 거두고, 예의 바르게 해명했다.
“허칠안이 저희에게 어떻게 돈을 쓰지 않고 기녀와 잘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중이었습니다.”
“?”
강율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하나같이 허황된 꿈만 꿀 줄 알지……. 음, 자네들 얘기 나누게. 너무 오래 모여있지 말고.”
말을 마치고 그는 돌아서서 떠났고, 마당을 나와 담벼락에 기대어 4품 무사의 청력을 끌어올렸다.
허칠안은 기침소리를 냈다.
“좀 목마르군.”
송정풍이 그에게 차를 가져다주었다.
허칠안은 한 입 마셔 목을 축인 뒤 당당하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 부향 소저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 한 수에서 시작됐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시 때문이 아니네.”
“뭔가?”
사람들은 황급히 물었다.
“자네 여인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아는가?”
허칠안이 반문했다.
야경꾼들은 연달아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돈이 없는 것’, ‘능력이 없는 것’ 등등이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젓더니 동료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깊은 관계가 아닌데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걸세.”
‘이게 무슨 이치야?’
야경꾼들은 허칠안의 말을 듣더니 생각에 잠겼다.
“이게 부향 소저가 자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주광효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그녀와 처음 알게 됐을 때 문을 닫고 내게 묻더군…….”
허칠안은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진지하고 신중한 표정을 하고 또박또박 입 모양으로 말했다.
‘도대체, 되나요?’
“나중에 내가 해냈기에 그녀는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송정풍이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자네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증거가 없군.”
“정상적이네. 이건 보통 사람이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더욱이 능력이 부족한 남자라면 말일세.”
허칠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비결을 이미 자네들에게 알려주었으니 깨달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음, 개인에게 달렸네.”
‘깊은 관계가 아닌데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도대체 되냐고……?’
강율중은 어떤 생각에 잠겨 떠났다. 이 두 마디는 얼핏 보면 전혀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 뒤에 상상할 수 없는 심오함이 감춰져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위 공께 여쭤야겠다. 위 공의 지혜라면 이런 비결 정도는 순식간에 터득할 수 있을 거야.’
* * *
그가 동료들을 내쫓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하급 관리가 들어와 말했다.
“허 은라, 강 금라께서 제게 여쭤 보라고 하셨습니다. 끓일 약재를 더 준비해야 할까요? 대인의 수련 경지라면 신체 담금질을 시도해 보실 수 있습니다.”
‘강 형이 방금 온 게 이 일을 묻기 위함이라고? 직접 올 필요 없이 하급 관리한테 분부하면 될 것을……. 아마도 금강불패 때문에 왔겠지. 하지만 또 쑥스러우니까…….’
허칠안이 대답했다.
“필요없네.”
“알겠습니다.”
하급 관리는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