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단서철권(丹書鐵券) (1)
허칠안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의 품계가 올라가면서 운도 점점 더 좋아졌다. 얼핏 보면 운이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지만, 이게 어떻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단 말인가?
유일한 설명은 그의 몸속에 있는 기운이 천천히 회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경성 보통 집안의 아이이고, 우리 허씨 집안은 그저 보통 집안이다. 숙부와 생부는 저속한 무사 출신으로 멍청한 군인이다. 내가 허씨 집안의 새끼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는 이 의심은 예전부터 했다. 왜냐하면 황궁에 첨룡(舔龍) 한 마리가…… 아니, 영룡 한 마리가 있는데 그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한다. 금련 도사가 말하길 영룡은 몸에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사람만을 좋아한다고 했다.
허칠안은 그때 속으로 말했다.
‘아이고, 망했다, 망했어. 나는 회경의 미색을 늘 마음에 두었다고. 내가 황실 어느 친왕이 민간에서 낳은 사생아는 아닐 거야. 안 돼!’
하지만 허칠안이 ‘성형’하기 전의 얼굴은 숙부와 아주 닮았다. 유전학 측면에서 분석하자면 두 사람은 혈연관계다.
허칠안은 바로 허씨 집안의 새끼고 허평지 형의 아들이다. 설령 허평지가 밖에서 낳은 사생아일지라도 여전히 허씨 집안의 새끼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온 기운이지?’
원장 조위가 온화하게 말했다.
“이 기운은 현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실재하네. 구주에는 기운과 관련된 자가 셋 있네. 첫째, 유가. 둘째, 술사. 셋째, 인간 세상의 제왕. 제3자는 결코 대봉에 국한되지 않네. 무신교와 서역 불문 역시 그러하지.
남북 오랑캐에 관해 말하자면, 전자는 부락이 흩어져 아직 통일되지 않았네. 후자는 족인의 숫자가 적어 기운이 모일 수 없지.”
‘유가는 아마 나와 상관없을 테지. 그렇지 않고선 원장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내 몸에 기운이 들러붙은 원인은 두 가지뿐이다. 황실과 사천감. 만약 내가 황실의 자제라면 망했다. 임안과 회경이 내 누이거나 사촌 누이가 된다. 하지만 영룡의 태도를 보면 내가 황실의 자제일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민간에서 유랑하는 사생아와 비교했을 때 뿌리가 바른 황자와 황녀를 더 핥아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나는 임안과 회경이 매일 은자를 줍는 걸 보지도 못했다. 나는 지금 임안과의 관계가 점차 좋아지고 있고, 회경과도 잘 지낸다. 또 나는 자작이 되었고, 앞으로 자작을 백작으로까지 끌어올리면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희망이 생긴다. 나는 어찌 되었든 황실과는 어떠한 혈연관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허칠안은 과거 감정의 태도, 표현을 종합하여 봤을 때 이 일이 아마도 사천감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아니, 감정과 관련이 있다.
그가 마치 무언가를 납득한 것처럼 보이자 원장 조위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더 묻고 싶은 점이 있는가?”
‘묻고 싶은 게 있냐고……. 음, 원장님, 허칠안의 총은 영원히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보기에 이 멘트 괜찮나요? 괜찮다면 나한테 한마디 해주시죠.’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궁금증을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의 환관이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네. 그에게 들어오라고 이르게. 폐하께서 자네에게 물을 말씀이 있다고 하시네.”
‘궁의 환관?’
허칠안은 다소 침음하더니 환관이 그를 찾아온 목적을 깨달았다.
두법 기간, 그는 두 차례나 신과 같은 위력을 발휘해 ‘팔고진’과 ‘금강진’을 부쉈다. 이건 모두 그의 실력 한계를 뛰어넘는 폭발이었다.
물론 ‘똑똑한 자’들은 감정이 남몰래 도왔다고 짐작할 테지만, 의례적인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허칠안은 조위를 쳐다보았다. 앞의 두 칼은 그런대로 감정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되지만, 서원의 이 조각칼이 나타나 불경을 깨부순 건 감정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원경제는 장악욕이 아주 강한 황제이므로, 그는 이 사소한 부분을 보고서 못 본 척할 리가 없다……. 만약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성가셔질 수도 있다. 까발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까발린다거나, 예를 들면…… 조각칼이 내 부름을 받았다는 둥 말이다.’
허칠안은 옷을 입고 담비 모피 모자를 쓰고 원장 조위와 함께 대청으로 향했다.
* * *
“왜? 만약 그렇다면 사매는 업화를 가라앉히고, 1품으로 들어서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걸세.”
금련 도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설마 굉장한 경사가 아니란 말인가?”
‘이러면 나도 멸마(*滅魔: 마귀를 없애다)할 날이 머지않아 실현되겠지…….’
도사는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낙옥형은 담담하게 말했다.
“설령 허칠안의 몸에 기운이 있다 한들 원경제보다 더 강할까요? 미래의 황태자보다 더 강할까요? 제가 그와 쌍수하는 걸 감정이 동의할까요?”
그녀의 질문이 정곡을 찔러 금련 도사는 반박할 수 없었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의 도심(道心)이 맑고 깨끗하여 확실히 자네 부친보다 도문 1품, 육지의 신선이 되기에 더 적합하지.”
낙옥형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금련 도사는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사매는 도려(道侶) 한 명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가?”
국사가 눈을 부라리는 걸 보자 그는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몸에 기운이 있고, 무도를 수련하니 허칠안은 앞으로 업적이 매우 뛰어날 걸세. 만약 자네가 그와 쌍수한다면 하루아침의 일도 아니니 먼저 쌍수를 하고 나중에 감정을 키워도 되네. 인종이 자네 맥까지 전해졌으니 어찌 되었든 자네는 장차 곧 자식을 탄생시킬 것이네. 자네 성격으로 누군가와 쌍수한 뒤 다시 다른 사람과 도려를 이룰 수 있겠는가?”
낙옥형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육지 신선은 수명이 끝이 없는데 어찌 자식이 필요하겠습니까?”
금련 도사는 웃으며 말을 잇지 않았다.
비록 육지 신선은 넘쳐흐르는 수명을 누리며 천지를 자유롭게 거닐지만,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의발(衣鉢)을 물려주는 아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종 사매는 비록 도수지만, 한편으로는 여인이다. 수련하는 것 역시 감정에 움직이지 않는 천종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서 이따금 신경질을 부리곤 한다.
“하루빨리 발을 빼고 물러나게. 역사적으로 어쩌면 자네를 좀 좋게 써 줄지도 몰라.”
금련 도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낙옥형은 비웃으며 말했다.
“자고로 사서에 미인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화근이며,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만 기술하고 문제가 통치하는 남자에게 있다는 점은 완전히 감추지요. 그 줏대 없는 문장력은 감히 군왕의 노염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해 죄를 모두 여인에게 귀결시키니 참으로 우습습니다.
원경제가 도를 닦는 건 장생을 위함입니다. 그는 불로장생하는 인간 세상의 제왕이 되고 싶어 해요. 설령 인종이 없다 해도 그는 여전히 도를 닦을 것인데 저와 무슨 상관이랍니까? 위연 이 개자식은 내가 군왕을 미혹시킨다고 말하더군요. 요 몇 년 간 저는 원경제에게 자주 말했습니다. 단약의 쓰임은 이미 크지 않으나 그는 여전히 한 계절에 대단(大丹) 하나, 열흘에 소단(小丹) 하나 먹고 저의 권고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더군요. 군왕을 미혹시킨다고요? 어디서부터 말할까요?”
“사매의 말에 일리가 있네.”
금련 도사는 우선 낙옥형의 말에 동의한 뒤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했다.
“자네 인종이 제왕의 기운을 빌려 도를 닦고, 업화를 억제하려 하는 게 비록 강요로 인한 마지못한 일이겠지만, 확실히 원경제가 도를 닦는 데 힘을 보태니 화풀이 당하는 일을 피하기는 어렵지.”
‘나한테 대충 얼버무리는 거야? 웃기는군.’
낙옥형은 그를 몇 초간 꼼짝하지 않고 쳐다보더니 일어서서 작별을 고하고 문지방까지 걸어갔을 때 뒤돌아보고 말했다.
“원경 36년 말에 지종 도수의 잔혼이 경성에 가볍게 떨어진 뒤, 도를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고양이에 빙의되어 고양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인종 《연대기(年代記)》에 한 획 추가하겠습니다.”
낙옥형은 말을 마치고 은은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사매, 일이 있으면 제대로 상의하면 되잖나!!’
금련 도사는 방문을 뛰쳐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만류하는 태도를 취했다…….
“정말 쩨쩨하고 앙심을 품은 사람이로군.”
금련 도사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 * *
허칠안이 허부에서 방을 나서 내청을 지나칠 때였다. 그는 그 안에서 유쾌하게 내달리고 있는 허영음과 그녀 뒤를 쫓는 저채미를 보았다.
허영음은 달리면서 트랙터 같은 웃음소리를 냈다.
숙모는 옆에서 그녀의 분재를 만지작거렸고, 허영월은 조용하게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여동생과 노란색 치마의 소녀가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소저가 또 우리 집에 왔네. 딱 봐도 큰 오라버니를 마음에 둔 거야…….’
허영월은 묵묵히 저채미에게 꼬리표를 달아 주었지만, 그녀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이따금 저채미가 볼 때는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허칠안은 우선 원장 조위에게 공수하고, 내청에 발을 들여놓으며 물었다. 그는 겉멋 부리는 태도를 약간 내려놓았다.
“채미 소저, 왜 오셨습니까? 회화나무에게 바람 맞은 제게 이끌려 오셨나요?”
“큰 오라버니, 깼어요?”
허영월은 크게 기뻐했다.
숙모 역시 그녀가 아끼는 분재로부터 고개를 들더니 재수 없는 조카를 살펴보았다.
허칠안은 반나절이나 의식을 잃었다. 그녀들은 진작에 흥분에 겨운 격한 감정을 가라앉혔다. 방금처럼 놀라고 무서워서 흠칫하지 않았다.
“아! 나 스승님을 대신해 말을 전하려고.”
저채미는 쫓는 걸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짓하며 말했다.
“여기로 와 봐.”
허칠안은 노란색 치마의 소녀의 손에 잡혀 구석으로 이끌렸다. 그러자 그녀는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너 폐하께 철권(*鐵券: 공신에게 수여하던 상훈 문서)을 요청할 수 있대.”
‘철권?’
그는 몇 초 간 멍하니 있다가 그때서야 철권이 무슨 물건인지 깨닫고 반응했다.
철권의 정식 명칭은 ‘단서철권’으로 속칭 ‘죽음을 면하는 금패’다.
‘내가 그걸 달라고 해서 뭐 해. 황금 몇 천 냥으로 바꾸고, 승직하고 작위를 높이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허칠안은 속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친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자 허영월은 볼을 부풀리더니 손짓하여 허영음을 불렀다.
“영음, 채미 언니한테 놀아 달라고 하렴.”
허 앞잡이 영음은 짧은 다리를 내디뎌 저채미에게 달려가 그녀에게 머리를 부딪쳤다.
“채미 언니, 우리 계속 놀아요…….”
이 모습을 본 허칠안은 떠날 수밖에 없었기에 조위와 바깥 대청으로 갔다.
“원장님, 감정께서 저더러 폐하께 철권을 요청하라고 하더군요.”
허칠안이 이 일을 조위에게 알린 뒤 그의 반응을 관찰했다.
지혜로운 자만이 지혜로운 자를 상대할 수 있는 법이다.
조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서철권 좋지. 반역을 꾀하는 경우만 제외하고 모든 사형을 면할 수 있네. 또한, 후에 작위를 면하거나 녹봉이 깎이는 걸 면할 수 있지. 원래의 작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고 목숨만을 용서받을 수 있네.”
‘원래의 작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고 목숨만을 용서받을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허칠안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알고 보니 단서철권이 이런 의미였군요.”
‘죽음을 면하는 금패로 바꿔도 좋겠군……. 감정이 특별히 저채미를 보내 나한테 당부한 것이니 이유가 없지 않겠지……. 음, 나는 환관 2세라 정적이 너무 많으니 보험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군.’
허칠안은 사실 원경제가 두렵지 않았다. 지금 수련 경지가 점점 높아지면서 그의 배짱도 점점 두터워졌다. 만약 다시 은라를 칼로 베는 보잘것없는 일을 마주한다면 기껏해야 나중에 강호를 떠돌면 되는 것 아닌가.
유일하게 미련이 남는 건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