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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61화 (361/712)

361화. 두 차례의 담화

“국사, 국사?”

면사포를 쓴 여인은 몇 차례 소리쳤다. 낙옥형은 멍한 얼굴에 초점 없는 눈빛을 했다. 마치 옥미인(玉美人)처럼 아름답기는 하나 생기가 없었다.

면사포의 여인이 손을 뻗어 밀었지만 공기벽에 가로막혔다.

* * *

외성, 어느 소원(小院)에 보통 사람은 포착할 수 없는 은은한 빛이 마당에 내려와 검은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연화관을 쓴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했다.

그녀의 살구눈과 복사꽃 같은 볼, 더없이 아름다운 이목구비, 새까맣고 고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낙옥형이 문을 밀어젖히고 들어가니 점잖은 외모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도사가 침상 위에 누운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여 감응해보더니 헐렁한 도포에서 희고 매끈한 손을 내밀어 갑자기 움켜쥐었다.

몇 초 뒤,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먼 곳에서 돌아왔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빨아들였고, 도포가 휘날리더니 도사의 육신으로 들어갔다.

금련 도사는 눈을 뜨고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이미 급히 돌아오는 길이었네만.”

금련 도사는 낙옥형의 행색을 살펴보며 말했다.

“사매가 양신(陽神)조차 이탈했구먼. 이렇게 급박하다니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 게지?”

낙옥형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늘 두법 보셨습니까?”

금련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가의 조각칼이 나타났습니다.”

금련 도사는 다소 주저하더니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쭙겠습니다. 허칠안은 도대체 어떤 자입니까?”

낙옥형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보통 사람이네.”

금련 도사는 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보통 사람이 유가의 조각칼을 사용할 수 있다고요?”

낙옥형이 냉소를 지었다.

금련 도사는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처음에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대복연(大福緣)이 있는 자임을 알아차렸기에 지서 파편을 그에게 주고 그의 복연을 빌려 자련(紫蓮)의 추적을 피한 것이네. 추후 내가 그의 신분을 조사해보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묘진이든 초원진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 내가 지서 파편을 그들에게 줄 때는 대부분 이미 기세가 오른 상태였어. 유독 허칠안만 연정경이고, 더욱이 가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왜 복연이 올까? 허, 복연이 선행하고 덕을 쌓던가 선조가 보살피는 걸 텐데 그는 두 개 모두 해당되지 않았네.”

낙옥형은 참을성 있게 들으며 말을 끊지 않았다.

“나중에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지……. 한 번은 이 자식이 매일같이 은자를 줍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고 싶다고 말하며 지서 파편에 자폭했네.”

낙옥형은 여기까지 듣자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건 복연이 아닌데요.”

금련 도사는 깊고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기운일세. 엄청난 기운.”

물론 어느 정도는 짐작했지만 금련 도사가 확인 사살하니 낙옥형의 눈동자가 갑자기 수축했다.

* * *

허칠안은 가냘프게 깨어났다. 온몸 구석구석이 아팠고, 특히 목덜미가 타는 듯이 뜨거워 통증이 일었다.

그는 눈을 굴려 주변 상태를 훑어보았다. 흰색 침상 휘장, 연잎이 수놓인 비단 이불, 단순하면서도 운치 있는 장식품……. 바깥 대청의 둥그런 탁자 옆에는 유삼을 입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유삼 노인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산발한 채 늘어뜨렸고, 유삼은 헐렁했다. 희끗희끗한 수염은 오랫동안 다듬지 않아 사람 전체에 ‘실의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이 대유는 누구지?’

허칠안의 마음속에 궁금증이 스쳤다.

“자네 일어났구먼.”

대유 노인은 일어서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나는 운록서원의 원장 조위네.”

‘운록서원의 원장이라……. 신년이 말한 적 있다. 서원의 원장은 유가 3품 입명경!’

허칠안은 즉시 몸을 일으켜 공수하고 말했다.

“알고 보니 원장님이셨군요. 원장님 품격이 남다르십니다. 기품이 넘치고 함축미가 있으신 게 정말이지 덕성과 명망이 높은 어르신이시군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때서야 물었다.

“원장님께서 왜 제 방에 계신 겁니까?”

원장 조위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그의 오른손에 두었다. 허칠안은 그때서야 자신이 시종일관 조각칼을 쥐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처음에 그는 어리둥절하다가 즉시 추측해 냈다.

‘이 조각칼이 운록서원 것인가? 그것도 그래. 운록서원을 외에 어느 체계에서 호연정기로 휩쓸 수 있겠어?’

“이 조각칼은 우리 서원의 지보(至寶)네. 자네가 줄곧 손에 쥐고 있어 아무도 가져가지 못했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자네가 깨어나길 기다렸네. 겸사겸사 자네에게 물을 말도 있고 말이야.”

조위는 말을 마치고 다시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조각칼을 쳐다봤다. 그 눈빛은 마치 ‘아직도 쥐고 있어? 총각이 철이 없구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허칠안은 두 손으로 조각칼을 바쳤다.

조위는 받지 않고 탁자를 쳐다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린 허칠안은 콰당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칼을 탁자 위에 내던졌다.

조위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황급히 읍했다. 조각칼을 향해 삼배하고 그때서야 소매에서 나무 상자를 하나 꺼내 조각칼을 담았다.

“허 대인은 조각칼이 무슨 내력을 갖고 있는지 아는가?”

조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칠안은 마음이 다소 동요하여 대담하게 추측했다.

“아성의 조각칼입니까?”

조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성인(聖人)의 조각칼이네.”

‘성인(聖人)의 조각칼이라……. 그 성인(聖人)이야? 품계를 초월한 성인(聖人)? 그렇다면 조각칼을 좀 더 어루만질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아직 사진 찍어서 모멘트에 올리지 못했는데…….’

허칠안은 실성한 듯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아성이 자취를 감춘 뒤로 이 조각칼은 천년 넘게 소식이 없었네. 후대 사람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해도 각성시킬 수는 없었지. 뜻밖에도 오늘 상자를 부수고 나와 허 대인을 도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조위는 정신을 집중하여 허칠안을 바라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허 대인과 직접 마주보고 일깨워 줄 말들이 좀 있네만.”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그 말이 조금은 예감이 되어 침상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읍을 올렸다.

“원장님 가르쳐 주시지요.”

* * *

“불가능해, 불가능해…….”

낙옥형은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가느다랗고 정교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반박했다.

“저는 그와 여러 번 접촉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몸에 기운을 품고 있었다면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 인종이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한단 말입니까?”

금련 도사가 반문했다.

“만약 천기가 차단됐다면? 지금 자네가 허칠안을 다시 찾아가서 봐도 여전히 그에게서 어떠한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할 걸세.”

“감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낙옥형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미간을 찌푸린 모습 역시 아주 아름다웠다. 미간을 찌푸리니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허칠안을 조사한 적 있으신 거 아닙니까? 그는 일개 은라일 뿐이고, 조상 중에 천하를 다스릴 만한 뛰어난 인물도 없는데 그가 어떻게 몸에 붙는 기운을 감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미안하네. 이 일은 나도 납득하지 못했네.”

금련 도사가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물 두 잔을 따르고 낙옥형에게 앉으라는 의사를 나타냈다.

국사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차를 마실 한가로운 기분이란 말인가.

낙옥형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갑자기 말했다.

“만약 술사가 천기를 차단했다면, 이치대로 도사께서는 그의 복연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감정이 희미한 단서를 남겨 놓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은 영원히 모를 겁니다. 이게 바로 1품 술사이지요.”

“자네가 생각해낼 수 있는 일은 나 역시 당연히 생각했네.”

금련 도사를 차를 마시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 전에 나는 그의 복연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고 특별히 보러 갔네. 감정이 천기를 차단하고 그의 특수성을 감춘 걸 발견했지. 나는 그때 이 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았네. 허칠안 이자는 배후에 거대한 비밀을 감추고 있어. 그날 내가 허부에서 나와 걷다가 관성루 팔괘대에 이르러 감정을 만났네.”

“그가 뭐라고 했나요?”

낙옥형은 아름다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물물이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더군.”

금련 도사는 나지막이 말했다.

낙옥형은 한참을 꼼짝 않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며 화를 냈다.

“황조의 기운이 크게 떨어진 게 역시나 사천감과 무관하지 않군요!”

금련 도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가?”

낙옥형은 마침내 탁자에 앉았다. 그녀는 찻잔을 받치고 요염한 붉은 입술을 잔 가장자리에 대고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몇 년 전, 위연이 영보관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우습게도 제 코를 가리키며 아름다움은 화의 근원이라고 호통쳤더랬죠. 그는 폐하께서 20년 동안 도를 닦으셔서 대봉의 국력이 날로 쇠퇴한다고 말했습니다. 각 주에서 세은, 곡물 창고를 수시로 거두지 못해 백성들은 곤궁하고 탐관오리가 횡행한다면서요. 이 모든 건 제가 자신의 수행을 위해 폐하께 도를 닦으라고 미혹시키고 폐하의 정무 태만을 유발했기 때문이라더군요.”

‘아니라고?’

금련 도사는 마음속으로 한 마디 빈정댔다.

“그때 저는 갑자기 황조의 기운이 유실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무딘 칼로 고기를 베면 알아차리기 어렵지요. 만약 나라를 다스리는 기재인 위연이 민정을 잘 알고, 가장 먼저 제게 따끔하게 경고하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몇 년 더 지난 후에야 단서를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금련 도사는 그 말을 다 듣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기시켰다.

“그렇게 많이 말할 것 없네. 이곳은 감정의 근거지야. 그가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네.”

“그럴 리가요.”

낙옥형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아주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그는 듣지 못합니다.”

‘이건 그가 들을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이 하찮은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지…….’

금련 도사는 넘치는 지혜로 화제를 돌렸다.

“만약, 내 말은 만약일세. 정말로 허칠안에게 기운이 있다면, 자네는 그와 쌍수할 것인가?”

낙옥형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 * *

“자네는 아성의 조각칼이 왜 상자를 부수고 나왔는지 아는가? 아성을 제외한 후대 사람들은 왜 그걸 사용할 수만 있을 뿐, 각성시킬 수는 없을까?”

조위는 연달아 두 가지를 질문했다.

‘저는 그저 저속한 무사입니다, 원장님…….’

허칠안은 고개를 저어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원장은 뜸을 들이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기운이 부족해서네. 이 조각칼은 성인이 쓰는 것으로 성인은 그걸 사용해 《춘추(春秋)》를 새기고, 《예(禮)》, 《낙(樂)》, 《역(易)》등을 새겼지. 속세의 대기운이 응집되지 않은 자는 그걸 사용할 수 없네.”

허칠안은 원장의 이 말 덕분에 드디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의혹을 풀었다. 그의 기이한 운은 사실 기운이었다.

‘매일 은자를 줍는 게 기운의 아들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 매일 1전(錢)을 줍다가 서서히 하루에 3전, 하루에 5전으로 바뀌었지……. 업그레이드되는 기운이구먼. 아니, 차라리 업그레이드라고 하는 것보다 내 몸속에서 천천히 회생하는 거라고 말하는 게 낫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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