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무릎을 꿇지 않다 (1)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기척이 사라지고 넘실대는 운무도 흩어져 사라졌다. 이에 맞춰 도액 나한 몸의 불광도 걷혔다.
그는 눈을 떴다. 두 눈에서 지혜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걷혔다.
도액 나한은 불문의 제자들을 보면서 여전히 읊조렸다. 불문에서는 절묘한 경지에 빠지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는다.
물론 이는 도액 대사의 깨달음과는 큰 차이가 난다.
도액 나한은 제자들의 깨달음을 방해하지 않고 양손을 합장한 뒤 우렁차게 말했다.
“성인(聖人) 가라사대, 배움에는 서열이 없고 통달한 자가 선인이고 이로써 이치에 이른다. 허 시주께서는 비록 우리 불문 사람이 아니지만 대불근을 갖고 있어 빈승을 깨우치게 하고 생각을 트이게 하셨소이다. 이는 바로 모든 사람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말을 검증한 것이고, 자아를 비추어 보면 사람은 누구나 불(佛)이 될 수 있다는 이치입니다. 빈승이 대승불법을 분명히 깨닫도록 이끌어 주심에 허 시주께 감사드립니다. 허 시주께서는 제 스승이 되셨습니다. 세 번째 관문은 시주께서 이기셨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현묘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불법 이론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액 나한의 말 속에서 핵심 의미를 추려 냈다.
<허 시주는 개쩔고, 허 시주는 내 선생님이고, 허 시주는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방금 불문에서 온 고승이 ‘허 시주께서는 제 스승이 되셨습니다’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앞자리에 있는 한 지식인 차림의 남자가 더듬더듬 말했다.
‘스승?’
강호 인사는 무사로서 흥분했다.
무사는 지금까지 줄곧 각 체계에게 경멸당하는 존재였다. 무사는 힘으로 법도를 어기고, 저속한 무사는 폭력으로 파괴하고 사람을 죽일 뿐이라고 말이다.
무사는 전쟁을 치를 때 유용할 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구주 사회의 불안정한 요소였다.
허나 지금 버젓한 불문 고승, 2품 나한이 뜻밖에도 무사를 ‘제 스승으로 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위의 강호 인사들은 이 말을 듣고 그야말로 기를 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큰소리로 부르짖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대봉 강호 전체가 허칠안 이 이름을 기억해야겠군. 그는 진정한 무사야.”
“무사 체계에 드디어 재능 있는 사람이 나타났군. 이 늙은이가 강호를 여러 해 누볐지만, 여태껏 다른 체계의 전봉 강자에게 스승으로 존경받는 무사는 없었네.”
“내가 고향에 돌아가거든 이 일을 널리 알려야겠군. 이번에 경성에 온 보람이 있어. 견문이 많이 넓어졌네.”
“그건 그래.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 3박 3일 동안 이 얘기를 할 수 있겠어……. 갑자기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구먼.”
어느 구석에서 변함없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부인이 허칠안으로부터 아쉬움 가득 담은 눈빛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자랑스러운 제자 소혼수 용용을 쳐다봤다.
“용용, 내가 알아봤는데 이 허 대인이…… 음, 교방사의 단골손님이라고 하더구나.”
용용이 짙은 화장을 했지만 속되지 않아 보이는 모습으로 입술을 깨물며 부인을 바라보았다.
“스승님,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우리 강호의 아들딸은 명분을 중시하지 않지.”
아름다운 부인이 느긋하게 말했다.
“용용, 네 품격으로는 허 대인의 아내가 되는 게 내키지 않겠지만, 신분이 맞지 않는구나. 첩은 문제없겠다만.”
“저는…….”
용용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 남자는 실로 눈부셨다. 너무 눈부셔 그녀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기대는 여인의 동요하는 마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 * *
허칠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가는 길에 더는 관문을 만나지 않았고, 계단 끝까지 계속해서 걸어가 산 정상에 있는 사찰 밖의 작은 광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독립된 사찰이었다. 일자형 용마루에 날개 돋친 처마, 편청과 곁채가 없이 주전(主殿)만 있을 뿐이었다.
“사찰 안에 아마 마지막 관문이 있겠지. 내가 기억하기로 도액 나한이 사찰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불문에 귀의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불문의 패라고 했다…….”
순간 허칠안의 머릿속에 교방사 기녀들이 전수한 108가지 자세가 떠올랐다. 그는 이로써 마음을 더럽히고 사람 전체를 황실 전용의 색으로 물들였다.
그는 자신이 호색가가 됐음을 확인한 후에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찰 문을 밀어젖혀 주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도액 나한은 이 광경을 보더니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이 사찰에 들어가면 돌도 교화시켜 불문에 귀의할 수 있소.”
‘이게 무슨 뜻이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고 이내 이번 두법의 주제가 떠올랐다. 불문에 귀의한다.
서역 사절단은 천기반을 얻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두법한 자를 불문으로 귀의하게 만들어 대봉의 체면을 모질게 구기려 했다.
“못된 승려 같으니라고. 본궁이 사찰 안의 상황을 봐야겠어.”
임안은 벌떡 일어났다. 어여쁘고 다정다감한 도화안에 보기 드물게 독기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
“너희 불문이 우리 대봉의 은라를 모해하려 안에 무슨 더러운 술수를 부렸을지 누가 알겠나!”
그녀는 허칠안이 불문에 들어갈 것이라 믿지 않았지만, 불문의 수법은 기이하여 강제로 ‘교화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사찰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자 임안은 도리어 허칠안이 해를 당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그렸다.
그녀는 순간 참지 못했다.
“기왕 두법을 하는 것이니 자연스레 당연히 품격 있고 고상해야 하거늘. 도액 나한, 현재 사찰의 상황을 보여주게.”
회경이 냉랭하게 말했다.
차양막 안의 귀족들은 잇따라 입을 뗐다.
“일리 있군요!”
도액 나한이 합장하고 미소를 지으며 널찍한 소매를 휘두르자 불경 화면이 전환됐다. 사람들은 촛불이 흔들리는 대전을 보았다.
대전 안, 6척 금신이 가부좌를 틀었는데 머리 꼭대기가 전(殿) 꼭대기에 닿을 듯했다.
이 불상은 두터운 양쪽 귀가 늘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금반(金盤)과 같았다. 눈을 반쯤 뜨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는 듯하면서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마음을 파고드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양손을 합장하고 예를 올렸다.
“사찰에는 총 두 개의 법상이 있습니다. 이건 바로 금강법상이지요. 허 시주, 금강경의 심오한 뜻은 바로 금신에 있습니다. 만약 깨달을 수 있다면 불문의 금강불패를 수련해낼 수 있을 겁니다.”
도액 대사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금강경이 법상에 있다…….’
허칠안은 갑자기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그는 줄곧 불문의 금강 신통(神通)을 탐냈다. 만약 신체를 보호하는 신공을 수련해낼 수 있다면 그는 6품 무사경에 무적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이 신공이 생기면 허칠안의 마지막 단점 역시 메울 수 있다. 허칠안은 단칼을 벤 후 기가 허해지면, 힘이 다한 칼을 내던지고 바닥에 누워 적에게 말해야했다.
<올라와 스스로 움직여라.>
‘설마 감정이 굳이 나더러 사천감을 대표해 두법을 하라고 한 이유가……. 감정, 이 모든 것이 예상한 시나리오입니까?’
허칠안은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듯했다. 감정은 너무 무섭다.
밖에서 도액 나한의 말을 듣더니 자리에 있는 무사들의 두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눈알이 빠지도록 불상을 바라보았다. 불상에 달라붙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허칠안은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개를 치켜올리고 금강법상을 주시했다.
도액 나한은 그를 쳐다보았다. 금강 신공은 무승에게만 적합했다. 나한경(羅漢境)에 이르지 못하면 불법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금강 신공을 정통할 수 없었다.
이는 도액 나한이 그에게 그림에 떡을 물려주고 허칠안을 불문에 끌어들이려 밑밥을 깐 것이다.
총기를 타고난 불자다. 어찌 됐든 도액 나한은 그를 불문에 들여 불문의 제자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이는 인재를 아껴서일 뿐만 아니라 허칠안이 대승불법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도액 나한은 대승불법의 기초를 닦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보니 대승불법 이념을 더 널리 보급하고 소승을 대승으로 바꾸려면 허칠안의 존재가 매우 중요했다.
허칠안은 대승불법의 이념을 제시한 선구자로 반드시 불문에 합류해야 했다. 이로써 ‘정통’을 드러낼 수 있다.
‘금강경이 불상 안에 있다고? 엉망진창이구먼. 분명히 없는데…….’
허칠안은 불상을 주시하며 일각 동안 관찰했다. 눈을 깜박이지 않아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나는 역시 불근이 없는 저속한 무사야…….’
그는 속으로 자조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 속에서 따뜻한 기류가 솟구쳤다. 기류가 단전에서부터 기세를 타고 중단전을 지나 상단전에 진입했다. 미간이 느닷없이 떨리는 것이 마치 플라스틱 박막이 벌어지는 듯했다.
눈앞의 불상이 변했다…….
불상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부동의 자세를 했지만, 온몸에 불운이 돌고 있었다. 허칠안의 눈앞에 가늠할 수 없는 현묘한 선의(禪意)가 나타났다.
놀라운 건 바로 다음이었다. 그는 선의를 이해했고, 법상에 내포된 불운을 이해했다.
‘나, 나를…… 나를 돕는 거야?’
허칠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앉은 자세를 바꿨다. 양손을 합장하고 눈을 반쯤 가늘게 뜬 모습은 불상과 똑같았다.
이 과정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그의 미간에 금칠한 점이 생겼고 뒤이어 재빠르게 퍼져 나갔다. 마치 무형의 붓이 그의 몸에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허칠안이 숨을 몇 차례 내쉬는 사이 온몸이 금빛 찬란해져 금신법상과도 같이 변했다.
* * *
도액 나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그가 어떻게 금신으로 변했지?!”
“그, 그건…… 정말 불문으로 귀의했나?”
이 광경을 본 시정의 백성들은 하마터면 갈라질 뻔했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얼굴빛은 하나같이 터진 풍선 같았다. 순식간에 이전의 기쁨과 오만함이 사라졌다.
이 대인은 세 차례 관문을 겪으면서 대봉을 한껏 드러내고 경성 백성들의 기를 펴게 하더니 결국, 마지막에는 불문에 의해 ‘도화(度化)’되었다.
뺨 한 대 후려친 듯한 불문의 효과는 정말 독했다.
“금강불패다, 그가 금강불패를 수련해 냈어!”
군중 속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강호 인사 차림의 남자로, 흥분하여 허칠안을 가리키면서 입술을 쉴 새 없이 떨었다.
“뭐가 금강불패인가. 설마 불문에 귀의한 건 아니겠지?”
남자 옆에 있는 백성이 황급히 캐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비단 불문에 귀의한 게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문 신공인 금강불패를 수련해 내지 않았는가.”
강호 떠돌이 차림의 남자가 설명하면서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미친 듯이 웃었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셈이지. 하하, 하하하! 불문이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였구먼. 이 은라는 타고난 재주꾼이야, 타고난 재주꾼.”
“시일이 좀 지나면 꼭 진북왕을 뛰어넘지 못할 거란 법도 없네. 대봉 제일의 무사가 될 걸세.”
떠들썩한 소리가 순식간에 봇물 터진 홍수처럼 용솟음쳤다.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도 안심되어 다시 웃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대봉의 젊은 천재는 불문에 귀의하지 않았다. 그는 불문의 금신을 수련해냈을 뿐이었다.
‘시일이 좀 지나면 꼭 진북왕을 뛰어넘지 못할 거란 법도 없다니…….’
허신년의 곁에서 이 말을 들은 부인이 귓바퀴를 움직이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복잡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주시했다.
‘거짓말쟁이, 대봉의 무도에서 진북왕을 뛰어넘을 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