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선기(禪機) (3)
승려는 기(機)를 따지고 선(禪)을 논하는 데 가장 능하다. 입으로 꽃을 피울 수 있고, 누구도 말로는 당해 낼 수 없다. 그런데 하필 허칠안의 언사가 서역에서 온 승려의 말문이 막히게 했다.
불문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그들을 격파했다는 느낌이었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허칠안이 단칼을 휘둘렀던 것보다 훨씬 더 상큼하고 통쾌했다.
사기가 크게 진작됐다.
조당의 제공들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입씨름으로는 금강진을 부술 수 없을 테니 일단은 허칠안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지 지켜봤다.
이때 허칠안이 흑금장도를 정사 승려 앞에 내던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대사, 만약 본관이 한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고, 만약 자신이 정말 민생의 고통을 몸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어찌 시도해보지 않습니까?”
정사는 고개를 들어 중얼거렸다.
“몸소 경험하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강불패를 거두고 칼로 팔을 그으면 본관의 고통을 납득할 수 있고, 진정한 불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남의 사정에 어둡거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요.”
“아니, 아니…….”
정진은 고개를 저었다. 마치 시도하면 안 된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듯했다.
“금강불패를 거두면 저는 집니다.”
“출가인은 세상의 모든 현상이 공허하다고 하던데 대사께서는 도리어 이렇게 승패에 집착하시다니 이미 몰락하신 셈입니다.”
허칠안은 차근차근 잘 타일렀다.
“두법에서 한판 지면 대사께서는 더 넓은 하늘을 보고, 진정한 불법을 체득하실 겁니다.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둘지는 대사께서 스스로 헤아리십시오.”
‘출가인은 세상의 모든 현상에 공허하니 승패에 집착하면 안 된다……. 어찌 잘게 썬 고기를 먹지 않냐니, 어찌 잘게 썬 고기를 먹지 않냐니…….’
정사 승려의 표정이 점점 복잡해지더니, 서로 뒤엉켜서는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흑금장도를 쥐었다.
허칠안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랬군.”
초원진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사는 어릴 적부터 불문에서 도를 닦아 불법에는 조예가 깊을지 모르지만, 인간 세상에서 쌓은 경험이 부족한 게 그의 허점이었군요. 허칠안은 역시 기지가 넘칩니다.”
정사는 천부적인 자질이 타고난 명문 집안의 자제로, 어릴 때부터 가족들 사이에서 도를 닦았기에 실력은 있으나 감정이 충분하지 않고 노련함과 경험 축적이 부족했다.
“아미타불.”
항원은 불호를 외었다. 그는 내심 울적했다.
그는 자신이 키웠던 사제 항혜를 떠올렸다. 역시 천부적인 자질이 뛰어난 불가 제자였지만, 인간 세상에서의 경험이 부족하여 속념이 일었고 결국에는 큰 화를 초래하였다.
잘했다! 문관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남몰래 박수갈채를 보냈다.
성을 공격하는 건 하책이고, 마음을 공격하는 건 상책이라고 이 한 수는 병법과도 우연히 일치했고 아주 훌륭했다.
싸우고 죽이는 것보다 금강진을 부수는 허칠안의 이 조작법이 문관들로 하여금 더욱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 생각이 저절로 다시 떠올랐다. <이자가 학문에 힘쓰지 않아 안타깝다!>
본능적으로 다음 생각이 떠올랐다. <허평지는 사람 구실을 못 한다.>
왕 재상은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칠안의 조작법으로 마음이 탁 트이는 듯했다. 이는 그가 전에 생각하지 못한 대응책이었다.
그는 세은 사건 때 허칠안이라는 자를 몰랐다. 그가 진정으로 허칠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상백 사건 이후다. 이자는 앞으로 전도가 유망하다는 점을 문득 깨달았다.
애석하게도 그는 위연의 사람이었다. 앞으로는 적일 뿐, 맹우가 될 수는 없다.
그때 불호를 외는 소리와 함께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정사, 자네 본질에서 벗어났네.”
이 말은 모든 이의 귓가를 울리는 동시에 그림으로도 들어가 정사 승려의 귓가에서 울렸다.
꿈속에 있는 듯한 수려한 외모의 젊은 승려가 감전된 듯 손을 움츠리더니 황급히 두 손을 합장하고 끊임없이 불호를 외웠다.
점점 눈빛이 맑아졌다.
“개 같은 자식!”
왕 재상은 잔을 던지며 일어섰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도액 나한, 불문은 질 수 없나 보군?”
위연 뒤로 9명의 금라가 동시에 일어서서 칼자루를 쥐었다.
정진 승려는 태연하게 말했다.
“감정께서 암암리에 협조하셨는데 불문은 왜 안 됩니까?”
그의 이 말은 허칠안의 방금 그 단칼이 감정의 은밀한 도움이거나 혹은 미리 그의 몸속에 상응하는 수법을 심어 뒀다고 단언하는 격이었다.
왕 재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천하의 이치인데 당신네 불문이 마음대로 정한답니까? 대사께서 감정이 나서서 도와줬다고 말하면 감정이 나서서 도와준 것입니까?”
고관대작들은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으나 대체로 억제했다. 반면 구경하는 백성들과 사납고 고집스러운 강호 인사들은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쓰지 않았고, 욕을 퍼붓더니 심지어는 금군과 충돌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후안무치한 중놈들. 이건 명백한 부정행위야.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금강진은 이미 부서진 거야.”
“위풍당당한 불문이 이렇게 뻔뻔하다니. 오늘 두법에서 만약 불문이 이기면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
도액 대사는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경멸을 들은 체 만 체하고, 정진을 쳐다본 뒤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제자 죄를 인정합니다.”
정진은 고개를 숙였다.
* * *
‘장외의 승려들이 나와 정사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니……. 이럴 수도 있다고? 두법에는 문두가 있고 무두도 있으니 각자의 능력으로 밀어붙이면 될 걸, 장외에서 억지로 참견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허칠안은 속으로 화를 냈다.
그는 즉시 더는 말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토납했다.
일각 후, 허칠안은 눈을 뜨고 흑금장도를 다시 주워 칼집에 도로 넣었다.
칼자루를 쥐고 허칠안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한 번만 칼을 뽑을 겁니다. 이 칼이 지나가면 생사는 스스로 책임지는 겁니다.”
목소리가 그림을 통해 밖으로 전해졌다.
‘한 번만 칼을 뽑는다고?’
문외한이든 전문가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이 말을 들은 후 모두 불가사의하다고 여겼다.
‘홧김에 한 말인가?’
허칠안은 모든 감정을 가라앉히고 모든 기기를 거두어들였고, 몸속의 기운을 안으로 무너뜨리자 단전이 마치 블랙홀처럼 텅 비었다. 이건 천지일도참에 반드시 필요한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었다.
‘너희는 부정행위를 했으니 내가 너무 순조롭게 잘 풀린다고 탓하지나 마라…….’
그는 눈을 감고 정신력을 동시에 무너뜨리면서 수축하여 체내의 방대한 원기력에 결탁했다.
그건 신수 승려의 정혈이었다.
운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허칠안은 이 정혈 한 방울을 흡수하였다. 불사불멸 무사의 정혈 덕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부분적인 힘은 여전히 그의 몸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허칠안은 도액 나한이 정사더러 진에 들어가라고 한 걸 보자, 즉시 자신이 어찌 됐든 이 ‘금강’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게다가 불문 비경(祕境)이 뒷받침하는 금강불패는 허칠안의 역량으로는 어떻게 해도 벨 수 없었다.
당시 그는 사천감 안에 숨어 신수 승려와 소통했다. 사천감은 술사의 근거지라 도액 나한에게 발각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신수 승려가 건넨 제안은 이러했다. 몸속의 정혈을 이동시켜 잔존하여 소화할 수 없는 힘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이 힘은 결코 신수 승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허칠안이 혈액 속의 불멸 정화를 흡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신수 승려는 이미 그 ‘속성’을 갈아 없앴다.
그건 현재 본질적으로 단지 무사가 응집해낸 정수(精粹)일 뿐이다.
몸속에 가라앉은 힘이 되살아나 허칠안의 각 부위로 스며들어 순수한 기기로 변했다.
불경에는 바람이 없었지만, 허칠안의 옷자락은 무풍에도 힘을 받았고 그는 깊이 잠들었던 제왕처럼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조금씩 되살아났다.
하늘과 땅이 모두 그의 회생에 부들부들 떨며 전율했다.
“무슨 일이지? 내 눈이 침침한가? 어째서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지?”
“불산이야. 불산이 흔들려. 불산이 흔들린다고…….”
장외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칠안이야. 그가 검을 뽑으려고 해.”
장님은 없었기에 모두가 불산의 흔들림을 야기한 사람이 허칠안임을 보았다.
“아미타불!”
정사는 손으로 법결(法訣)을 빚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경 내부의 운무가 움직이면서 자잘한 금빛이 한 줄기씩 흐트러져 금신에 녹아 들었다.
그러자 금신은 점점 반짝반짝 색채가 짙어졌고,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마치 천천히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 같았다.
상호 대립!
회경은 벌떡 일어나 뛰어올라 차양막을 밟고 고개를 올려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찬란한 금빛을 맞이했고, 그녀는 한사코 주시하며 숨을 죽였다.
더 많은 사람이 일어나서 차양막을 걸어 나왔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눈을 크게 떴고 호흡하는 일조차 잊었다.
그중에는 왕 재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위연은 천천히 일어나서 차양막 밖으로 걸어가 여유롭게 말했다.
“붕새가 어느 날 함께 바람을 일으켜 구만리 위로 곧장 올라가네.”
‘이 역시 당신이 예상한 대로입니까, 위 공?!’
금라들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쨍!
칼을 뽑는 소리가 천둥처럼 천지에 울려 퍼졌다.
세상에 이런 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민의 주목을 받고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칼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결연한 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마치 옥이 되어 부서질지언정 모든 걸 베려는 듯한 칼 말이다.
세상에는 물론 그렇게 빠른 칼도 없을 것이다.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칼 말이다.
하지만 장외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산산이 부서지는 금신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층층이 쌓인 금빛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장면을 보았다. 비할 바 없이 뛰어난 도의(刀意)가 금빛을 몰아냈다.
남성 밖에서 닷새 동안 불패한 금강이, 닷새 동안 성안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금신이 드디어 패했다.
광장 위에는 허칠안이 꿋꿋하게 서 있었다.
정사는 털썩 주저앉았다. 가슴과 배의 칼자국이 뼈를 뚫어 손상된 장기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좌선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자잘한 금빛이 다시 모여 그의 상처로 흘러 들어가 피와 살을 재생했다.
“제가 칼은 한 번만 뽑을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허칠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순간 경성의 모든 사람이 실성했다.
대략 4~5초 정도 적막이 흐른 뒤 갑자기 함성 소리가 밀려왔다.
누군가는 날카롭게 소리치고, 누군가는 환호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며칠 동안의 울분을 말끔히 해소했다.
“우리 대봉이 구주의 정통이고, 정치적, 군사적 공적은 천하제일이오!”
어느 지식인이 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허 시괴의 무도는 천하제일, 최고봉이오.”
이때 모든 사람이 방금 비경에서 전해 나온 말을 떠올렸다. 저는 한 번만 칼을 뽑을 겁니다!
지금에서야 그들은 이 말 속에 담긴 자신감과 호탕한 기백을 이해했다.
* * *
관성루 꼭대기에 서 있는 원경제는 함성 소리를 직면했고, 피가 끓어오르고 민심이 격앙된 백성들도 보았다.
“금강진이 부서졌습니다.”
늙은 황제는 진심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정, 감정께서는 역시 자신이 있었군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허칠안도 훌륭합니다. 조정의 등용을 헛되이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