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351화 (351/712)

351화. 선기(禪機) (2)

“아버지는 어떻게 보세요?”

왕 소저는 미소를 지으며 재상 대인을 바라보았다.

왕 재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많이 보고 적게 얘기하거라. 지금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구나.”

왕 재상은 속으로는 허칠안이 두법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굳게 믿으며 다른 후보를 물색하기 시작했지만, 방금 체면이 깎였기에 더는 함부로 결론을 지을 수 없었다.

버젓한 재상이 한 장소에서 두 번 넘어질 수는 없었다.

“저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

왕 소저는 웃더니 정진 승려를 쳐다보며 소리를 높여 말했다.

“대사님, 팔고진이 불문의 고승이 불심을 연마하는 데 쓰이니 전투력과는 무관하다고 하셨습니다. 설령 고품 무사라도 쉽사리 진을 부수기는 어렵다고요. 맞습니까?”

정진 승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품 무사가 진에 들어가느니 어린아이를 찾는 게 낫지요.”

아름다운 자태의 왕 소저가 대꾸했다.

“방금 도액 대사께서 대봉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왕 소저가 청아하면서 부드러운 얼굴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팔고진은 이미 부서졌습니다. 설령 허칠안이 힘을 다하여 금강진을 넘을 수 없다 해도 조정에서 고품 무사를 파견하여 진을 부수면 산허리에 있는 그 금강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정진 승려는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이 샤라라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앞이 탁 트이는 듯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끓었다.

그들은 감정이 왜 7품 은라를 선택해 두법하게 했는지 이유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어 남몰래 곤혹스러워했다. 왕 소저는 지금 팔고진을 부순 허칠안을 보더니 이익과 손해를 명확하게 밝혔다.

사람들의 사고가 순식간에 트였다.

“알고 보니 허칠안은 앞잡이였군. 이제 나와도 되지 않나? 고품 무사와 교체하여 진을 부수면 되겠어.”

“음, 고품 무사로 말할 것 같으면 경성에 차고 넘치지. 불문의 금신을 깨부술 수 있는 자 말일세.”

“무사를 논하자면 우리 진북왕이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대봉 으뜸이지.”

화제가 점점 진북왕에게로 넘어갔다.

왕 소저는 자신을 한껏 내세웠다. 그녀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야경꾼 소재의 구역을 힐끗 훔쳐보더니, 허신년 역시 자신을 쳐다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기뻐했다.

왕 소저는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기 전에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방금 말을 한 여인이 왕 재상 댁의 안식구인가? 그의 여식인 듯한데…….”

허신년은 불쾌해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왕씨 집안을 좋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왕당과 위당(魏黨)은 정적으로 왕당이 여러 차례 큰형을 박해했기 때문이었다. 허신년은 이 사실들을 모두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그는 진작 왕당을 본인 미래의 가상의 적으로 삼았다.

“진북왕은 대봉 200년 이래 천부적인 자질이 가장 뛰어난 무사라고 칭송받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경성에 있지 않아요. 그러지 않고선 중놈들이 판을 칠 차례가 오지 않았겠죠.”

허신년은 옆에 있는 부인이 매긴 평가를 들었다.

‘이 부인은 꽤 많은 걸 알고 있다. 이 식견은 보통 집안의 부인들과 비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큰형이 어디서 이런 유부녀를 만났는지 모르겠군.’

허신년은 남몰래 중얼거렸다.

“우리 큰 오라버니도 무술 연마에 기재예요.”

허영월이 말했다.

부인은 웃더니 논쟁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영월은 웃음 뒤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논쟁하기 귀찮은 것이다. 마치 손에 진리를 쥔 사람처럼 생떼를 쓰는 사람과 논쟁을 벌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 * *

허칠안은 불산에서 잠시 쉬었다가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위로 향했다. 그는 가는 길에 더는 관문을 맞닥뜨리지 않고 곧바로 정사 승려 앞까지 이르렀다.

이때 정사는 온몸을 황금으로 주조한 듯 옅은 금빛을 한 줄기씩 발산했다.

‘부럽다. 만약 내가 이런 신공을 익힐 수 있다면 온몸이 금빛 찬란할 텐데…….’

허칠안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한 가지가 떠올랐다.

‘거시기가 죽지 않겠군!’

“정사 대사!”

허칠안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쪽 계단에 앉아서 말했다.

“저 잠시 쉬어도 됩니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정사 승려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께서는 마음껏 숨을 돌리시지요.”

허칠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제가 다시 단칼을 휘두를까 겁나지 않습니까?”

정사 승려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시주께서는 지금 경맥이 불처럼 뜨거운데 방금 그 힘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술을 식혀야 할 뿐이지요.”

허칠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신체는 용기와도 같다. 외부의 힘을 견디는 데 과부하가 걸리면 이 순간 현자 타임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이건 단지 한 가지 원인일 뿐이다. 또 다른 원인은 그가 이제 더는 중생의 힘을 동원할 수 없다는 부분1이다.

이건 마치 그가 매일 돈을 딱 한 번 주울 수 있는 것과 같다. 내일까지 기다려야만 이어서 금을 주울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기술을 식혀야 한다고 말했다.

‘사호의 비법으로 중생의 힘을 동원했다……. 비법은 아마 수단일 뿐이겠지. 문제의 핵심은 내 자신에게 있다. 내가 중생의 힘을 동원할 수 있는지다……. 나는 이게 기이한 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아주 분명하게도 신수 승려는 나의 이런 능력을 이미 안다. 그렇다면 감정도 당연히 안다는 뜻이고……. 내가 기억하기로 신수 승려가 그와 나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심지어 그가 내 몸속에서 기생하는 것 역시 이 이유라고 했다……. 자세히 생각할수록 좀 무서운데!’

허칠안은 남몰래 생각했다.

“대사께서는 어려서부터 출가하셨는지요?”

허칠안은 한담을 나눴다.

정사 승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께서 수련하는 건 선(禪)입니까 무(武)입니까?”

“선무(禪武) 쌍수합니다.”

정사는 대답했다.

‘선무 쌍수라는 것도 있어? 이 승려의 천부적인 자질이 좀 놀라운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제가 듣기로 불문은 먼저 세상에 나왔다가 출가하는 걸 중시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사께서 어려서부터 출가한 거라면 집조차 없을 텐데 그게 무슨 출가입니까?”

정사 승려는 허칠안이 자신과 불법을 분별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출가(出家)의 의미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것입니다. 시주께서는 문구에 얽매이실 필요 없습니다. 빈승은 어릴 적부터 불법을 수행하고 서역을 돌아다니며 인간 세상의 괴로움과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을 두루 맛보았습니다.”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을 두루 맛봤다고? 개소리하네. 집 대출금, 차 대출금 그리고 살인적인 비용의 예물조차 겪어 보지 않은 자식이 이 몸 앞에서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을 두루 맛봤다고 말하다니?’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대사께서 여색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스스로를 해치는 칼과 다름없지요!”

정사 승려는 간결하지만 핵심을 짚어 평가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대사께서는 여색을 전혀 겪어보신 적이 없는데 여색이 세상에서 가장 미묘한 것이 아니라는 걸 어찌 아십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구경꾼들의 귓속에 쏙쏙 들어 왔다.

“금강진 아닌가? 어째 불법을 논하기 시작했는가?”

“어디가 불법을 논한다는 건가. 여색 얘기를 하고 있지 않나. 이 대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아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네.”

남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들은 얼굴이 붉어져 은근슬쩍 침을 내뱉었다.

“아이고, 개자식은 어쩜 저런 헛소리만 늘어놓는 걸까.”

임안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머니, 큰 오라버니가 갈수록 단정치 못해요.”

허영월은 발을 동동 굴렀다.

숙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좀 난처했다.

허평지 또한 난처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이 자식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곳에는 고관대작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고, 또 수천수만의 백성들이 둘러싸서 구경하고 있잖니? 고상하지 않은 말은 내뱉지 마라.’

* * *

“빈승이 여색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여색은 호랑이처럼 사납지요. 이건 고승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일입니다. 시주께서는 이치에 맞지 않은 말들로 억지 쓰지 마시지요.”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지요!”

허칠안이 반박했다.

정사는 놀랐다.

“시주님, 무슨 뜻인지요?”

허칠안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라……. 이게 여색과 무슨 관련이 있지요? 혹은 그 안에 수준 높은 이치가 담겼는데 우리만 꿰뚫어 볼 수 없는 겁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스쳤다.

* * *

“본관이 대사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허칠안은 그를 주시하며 비웃었다.

“대사께서는 부모님을 부양한 적이 있습니까? 고생스럽게 한 가정을 꾸려본 적이 있습니까? 호미를 메고 농사를 지어본 적 있습니까? 불문은 출산에 힘쓰지 않고 종일 경전을 읽고 염불하며 먹여 살리는 참배자를 필요로 하죠. 본관이 대사께 묻겠습니다. 대사는 무슨 경전을 읽습니까? 무슨 불호를 욉니까? 방관자의 태도로 인간 세상을 한 바퀴 걷고 중생의 괴로움을 깨달은 셈 치는 겁니까?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 중에 정사 대사께서는 생(生)만 겪어봤을 뿐 나머지는 하나도 겪지 않았습니다. 대사는 단지 가짜 승려일 뿐입니다.”

정사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부처님은 인간 세상의 모든 걸 보시니 세상의 괴로움도 자연스레 알지요.”

“좋습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흑금장도를 꺼내 팔뚝을 그었고 상처에서는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상처를 감싼 채로 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사께서는 제가 아프다고 생각하십니까?”

“몸에 칼날을 들이댔으니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사가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럼 대사께서는 제가 얼마나 아픈지 아십니까?”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정사는 침묵했다. 그는 금강으로 몸을 보호하여 칼날이 해를 입힐 수 없어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셨습니까?”

허칠안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게 바로 대사께서 말씀하신 ‘관(觀)’입니다. 제가 아프다는 건 알지만 제가 얼마나 아픈지는 모르지요. 대사께서는 인간 세상이 괴롭다는 건 알지만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틀림없이 모르실 테죠. 백성의 고통조차 모르는데 어찌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겠습니까? 어찌 웃음거리가 아니겠습니까. 본관이 대사께 말씀해 드리죠.”

정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느 해, 세상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먹을 쌀이 없어서 굶어 죽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부유한 상인 출신인 한 공자가 이 일을 듣고 의아해하며 한 마디 던졌지요. 대사께서는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정사는 캐물었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허칠안은 정사 승려를 주시하며 비아냥대는 웃음을 띠더니 한 글자씩 말했다.

“어, 찌, 잘, 게, 썬, 고, 기, 를, 먹, 지, 않, 습, 니, 까.”

정사 승려는 벼락을 맞은 듯 눈동자가 커졌고, 얼굴이 굳었다.

“말 잘했다!”

“저 승려는 여전히 대답할 말이 없나 보네. 얼른 보게. 승려가 대답할 말이 없나 보오.”

바깥의 군중들이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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