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이목을 끌며 입장하다 (2)
어느새 사시(巳時)가 되었다. 차양막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고요한 마음으로 좌선하던 도액 대사가 눈을 뜨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 수미개자(須彌芥子)를 알 차례네.”
“수작에 불과할 뿐!”
하늘에서 감정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현장에 있는 고관대작이든 밖에 있는 백성들이든 모두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감정이 격하게 끓고 있었다.
본 연극이 시작됐다!
도액 대사가 소매에서 금색 사발을 하나 가볍게 내던지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쾅!”
무게가 천근이 넘는 금색 사발을 내리치자 석판이 갈라지면서 지표면에 깊숙이 박혔다.
순수한 금빛이 사발에서 솟구쳐 올라 고공에 펼쳐지면서 높은 산이 눈길을 끌었다. 꼬불꼬불한 돌계단이 산림의 끝까지 뻗어나갔다.
산꼭대기에는 사찰 하나가 어렴풋이 보였다.
“신선의 수법이야…….”
숙모는 놀라 어리둥절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련 경지가 무사인 자들을 제외하면 이 광경을 본 보통 사람 중에는 자신의 표정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났다.
“의부님, 수미개자가 뭡니까?”
남궁천유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불문의 한 고사네.”
위연은 주변의 사물에 전혀 무관심한 허영음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수미(*須彌: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 중앙에 있는 산)는 개자(*芥子: 겨자)를 감추고 개자는 수미를 받아들이지. 전설 속 부처의 손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수미산이라고 하네. 그건 그의 법굴로, 그가 가는 곳이 바로 법굴이네.”
양연은 20년 전의 산해관전역이 떠올랐고, 불문 고승이 군대를 수송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문득 깨닫고 말했다.
“장중불국(掌中佛國)입니까?”
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빛 사발 속에 산이 한 채 숨겨져 있네.”
“정사, 자네가 산으로 들어가서 두 번째 관문을 지키게.”
도액 대사가 분부했다.
푸른색 납의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승려가 일어서서 두 손으로 합장하여 예를 올린 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금색 사발에 발을 들여놓았다.
다음 순간, 고공에 펼쳐진 그림 속에 산을 오르는 젊은 승려가 추가되었다.
그는 여유롭게 계단을 등반하여 산허리에 이르러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고공에서 사방으로 뿌려지는 금빛이 그의 몸으로 모여들었고, 순식간에 그의 몸은 금빛 찬란한 빛으로 뒤덮여 사람 전체가 마치 황금으로 주조된 듯했다.
* * *
“알고 보니 이 세계에 정말 수미개자가 있었군.”
허칠안은 혀를 내둘렀다.
그를 등지고 있는 양천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미개자는 장중불국이라고도 하지. 허나 이건 아마 주인이 없는 세계일 걸세. 금빛 사발 속에 감춰져 있지. 만약 주인이 있는 ‘불국’이라면 승패는 그 주인의 일념(一念)에 달려있네. 그래도 공평한 셈이지.”
저채미는 떡 한 자루를 그의 품에 쑤셔놓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 가. 산을 오르는 길에 먹어.”
“……고마워요, 근데 배고프지 않아요.”
허칠안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뒤에서 백의 술사 한 무리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가세요, 허 공자님. 비록 감정 스승께서 왜 공자님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승님께서는 반드시 그만의 이치를 갖고 계신답니다.”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셔야 합니다, 허 공자.”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는지는 나중에 얘기하자. 이렇게 좋은 기회에, 전 경성 앞에서 우선은 허세를 장착해야겠어…….’
허칠안은 양천환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양 사형, 오늘 이후에 남들 앞에서 과시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겁니다!”
* * *
장외, 한 주루의 지붕 위에 청삼 검객 초원진과 체구가 큰 대머리 항원이 나란히 서서 금빛 찬란한 정사 승려를 바라보았다. 장원랑이 ‘쯧쯧’대며 말했다.
“금빛으로 주조된 몸이군. 수미 세계가 정사의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강화하였으니 허칠안의 지금 능력으로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네.”
항원은 마음이 좀 복잡했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그는 불문의 제자로 본래는 불문의 편에 서야 한다. 하지만 그는 대봉 인사이기도 하며 출전하는 자는 허 선인(善人)이다.
“참, 어젯밤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러분들이 어째서 제 전서를 받지 못한 거지요?”
초원진이 물었다.
“금련 도사가 차단했습니다.”
항원이 말했다.
오늘 아침 초원진이 그를 찾아와 짝을 이루어 ‘구경’하자고 하면서 겸사겸사 어젯밤 전서의 일을 물었다. 두 사람은 진술을 대조한 후 금련 도사가 사호를 차단한 것으로 생각이 일치되었다.
“금련 도사가 내 전서를 차단했다는 사실은 압니다. 하지만 왜지요?”
초원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허칠안이 사천감을 대표해 두법한다는 걸 장원랑이 말하지 않았으면 해서요?”
“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초원진이 비웃으며 말했다.
“일리 없지요.”
항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줄곧 이 일이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원진은 침음하며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대신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삼양 역참에서 3일 동안 머무르셨는데 수확이 있으셨습니까?”
“금강경은 쉽사리 전수할 수 없습니다. 도액 사숙조가 제게 말씀하시길 만약 금강경을 살피고 싶으면 그를 따라 서역으로 돌아가서 수미산에서 3년 간 도를 닦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항원이 말했다.
“대사가 전체적으로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불문 사람이 되는 날에는 대봉과 더는 관계가 없는 겁니까?”
초원진이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비웃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항원이 변명했다.
“금강경은 보통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정사가 나서서 도전에 응하는 걸까요?”
초원진은 마음이 동요했다.
“서역 사절단에서 정사만이 금강경을 수련해 냈다는 겁니까?”
항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적으로 불근(佛根)을 갖추고 있어서 그속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거나 수미산에 불법을 들으러 가서 일말의 가능성으로 금강경을 깨달은 걸 수도 있습니다.”
초원진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손뼉을 쳤다. 그는 다소 화가 났다.
“다시 말하자면 설령 허칠안이 두법에서 이겨 금강경을 얻는다고 해도 쓸모없다는 뜻입니까? 왜냐하면 허칠안 같은 호색한 자식은 불근이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항원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던 중 도액 도사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 두법은 등산이오! 산꼭대기에 올라 사찰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불문에 귀의하길 원치 않는다면 우리 불문이 진 셈치겠소. 사천감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있소.”
위연은 이 말을 듣자 웃었다.
“등산이라…….”
양연이 침음하더니 말했다.
“가는 길은 분명 첩첩산중일 겁니다. 하나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바로 실패할 겁니다.”
도액 나한은 말을 마치자 더는 입을 떼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좌선했다.
* * *
장외와 장내에 있는 관중들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사천감에서는 여전히 도전에 응할 사람을 내보내지 않았다. 한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사천감이 어째서 기척이 없는 거지? 두려워하는 건가?”
“감정은? 감정 말씀 좀 해보시오.”
“어떻게 된 일이지? 사천감이 만약 겁을 낸다면 왜 두법에 응한 거지? 대봉이 망신을 더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갑자기 누군가가 깜짝 놀라 외쳤다.
“관성루에서 누군가 나왔다.”
순간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수많은 시선이 관성루 대문을 향했다.
1층 대당에서 두봉을 걸친 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손에 술 단지를 들고 두봉에 달린 모자를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두봉을 쓴, 자칭 망토꾼이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지막하게 읊는 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기기와 함께 사람들의 귓속에 전해졌다.
“소년이 열다섯, 스물 이때 청삼에 검을 쥐고 강호를 떠돌아다녔지.”
망토꾼이 두 번째 걸음을 내딛자 나지막한 소리가 갑자기 드높아졌다.
“붕새가 어느 날 같이 바람을 일으켜 구만리 위로 곧장 올라가네.”
‘이건…….’
차양막 안에서 문관들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그 사람의 모습을 주목했다.
망토꾼이 세 번째 걸음을 내디디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드높은 목소리에서 웅장하고 힘찬 목소리로 변했다.
“바다가 하늘 끝에 닿고, 무도(武道)는 절정에 달하니 내가 최고봉이네!”
무사들이 장내와 장외에서 눈썹을 치켜올리며 기이한 표정을 지었고, 장외의 강호 인사 중 어떤 이는 심지어 소리 내어 대답하며 기기를 불러일으켰다.
망토꾼은 네 번째 걸음을 내디디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홀몸으로 삼천 리를 전전하며 검 하나로 백만의 스승이 되었네.”
위연이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무장들은 벌떡 일어났다.
망토꾼이 다섯 번째 걸음을 내디디며 느긋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가 나 허칠안을 용납하지 않으니 구주 만고에 캄캄한 밤이 내리리라!”
허신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그 평생의 최고 작품으로 실의에 잠겼을 때 창작한 격이다.
큰형은 정말 너무 염치없었다.
그는 분노에 차 주위를 둘러봤고, 흐리멍덩한 얼굴들을 보았다. 그들은 천천히 걸어 입장하는 망토꾼에 아주 집중했다.
‘내가 이 시를 읊을 때는 가족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는데 형님이 이 시를 읊으니 만민이 눈여겨보고 만인이 우러러보는구나…….’
허신년은 분노에 차 생각했다. 형님은 정말 무안무치다.
화를 내던 허신년은 다시 곁에 있는 부인을 쳐다봤다. 망토꾼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약간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임안는 멍하니 망토꾼을 쳐다보았는데 눈에 다른 게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이와 반대로 회경의 두 눈에서는 특별한 광채가 빛났다. 그녀는 이 남자가 이렇게 눈부시고 영광스러운지 처음 전해졌다.
허칠안은 다시는 시를 읊지 않았다. 그는 술 단지를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광장으로 들어와 마침내 금빛 사발 옆에서 멈췄다. 그런 뒤 그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들어 술을 마셨다.
술이 그의 아래턱을 따라 흘러내려 옷섶을 적셨다. 제멋대로면서 호탕했다.
갑자기, 그는 술 단지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더니 ‘콰당탕’하는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천하의 영웅이 내 세대에 나와 강호에 뛰어드니 세월에 꺾였네. 담소를 나누며 원대한 패업을 논하지만, 인생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껏 취하네.”
난폭하면서도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그는 금빛 사발로 뛰어들었다.
이 순간, 광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한참이 지나고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났다. 마치 해조처럼 광장 전체를 휩쓸었다.
“대봉, 반드시 이긴다!”
“대봉, 반드시 이긴다!”
이 그럴싸한 등장과 한 구절 한 구절이 걸작인 시가 세상에 나오자 순간 그 품격으로 불문을 깔아뭉개고 그 기세로 불문을 내려다보았다.
또한, 경성 백성들에게 자신감을 돌려주었다.
문무백관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찬사의 기색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허칠안이 이렇게 그럴싸하게 입장한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
그는 기울어가는 형세를 물리치고 다시 기를 정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