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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344화 (344/712)

344화. 얼굴을 가린 여인

저채미는 부름을 받고 즉시 궁에서 나와 말을 타고 시위를 따라 영보관에 이르렀다. 그녀는 화원을 지나치고, 인종 조사전(祖師殿)을 통과하여 도교 사원 깊숙한 곳의 소원(小院)에 도착했다.

“채미 소저, 오십시오.”

망포를 두른 늙은 태감이 마당 입구에 선 채 미소를 지으며 ‘청하는’ 손짓을 했다.

저채미는 ‘응’ 하고 가뿐한 걸음을 내디뎌 소원을 지나쳐서 정실로 들어갔다. 치맛자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 * *

정실 안, 원경제와 낙옥형이 찻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찻상에는 도문 고서 한 권과 향로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향로에서는 섬세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채미는 탁자를 힐끗 훑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맛있는 떡이 없는 걸 보자 실망하여 눈빛을 거두고 공수하며 예를 갖췄다.

“폐하와 국사 어르신을 뵙습니다.”

원경제는 사천감의 저채미를 살펴보았다. 둥근 눈은 크고 밝았으며 동글반반한 얼굴에는 달콤함이 숨겨져 있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매력을 지닌 명랑한 소녀였다.

“감정이 너더러 짐을 만나러 가라고 했다던데 무슨 일인가?”

“삼사형 양천환이 어제 무술을 연마하다가 부주의하여 그 바람에 사도에 빠졌습니다. 이사형은 경성에 있지 않고, 송 사형과 저는 전투에 능하지 않아서…….”

그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원경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끊고 나지막이 말했다.

“뭐라고? 양천환이 무술을 연마하다가 사도에 빠졌다고?”

늙은 황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에 분노했다.

낙옥형은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맑은 눈으로 저채미를 주시했다. 이는 결코 감정답지 않은 태도였다.

저채미는 느긋하게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감정 선생께서 저를 보내 폐하께 사람을 한 명 빌리라 하셨습니다. 사천감을 대신하여 서역의 중과 두법할 자를요.”

‘사람을 빌린다고?!’

꾀가 많은 원경제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예상 인물을 굳히지 않고 그때서야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감정이 누구를 원하는가?”

“야경꾼, 은라 허칠안입니다.”

저채미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정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늙은 황제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는 어조로 사실 확인을 했다.

“허칠안, 은라 허칠안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건 해결에 뛰어나고 운주에서 돌아와 한 번 죽었던 허칠안입니다.”

저채미가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제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당연히 짐도 그를 안다. 짐의 말뜻은 왜 허칠안이냐는 것이다.”

감정의 이 제자는 생각이 너무 단순해서 그녀에게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명명백백하게 말해야만 알아듣는다.

저채미는 고개를 저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모르지요.”

……원경제는 한숨을 내뱉더니 손을 휘저었다.

“짐이 알겠다. 너는 먼저 가거라.”

“알겠습니다.”

저채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그녀는 회경공주의 덕형원에 가서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면서 겸사겸사 보고 들은 이야기를 공유할 계획이었다.

저채미가 떠나자 원경제는 찻잔을 쥐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국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칠안 이자는 타고난 자질이 좋지만 일개 무사로서 불문과 두법하기에는 조금도 승산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낙옥형의 이목구비는 정교하고 단정하여 무표정일 때는 마치 옥으로 조각한 선녀 같았다.

“허나 천기반은 감정이 몸에 지니고 있는 법기이니 결단코 외부로 빌려주지 않을 겁니다. 아마 그속에 다른 연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원경제는 탄식하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를 상관하지 않겠소. 그 노인네는 의뭉스러워서 짐은 늘 꿰뚫어 보지 못하겠더군요. 짐은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경제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감정이다. 대봉 전체에서 원경제는 문무백관을 내려다본다. 설령 인종 도수 낙옥형일지라도 그와는 도교의 신자로서 서로 걸맞게 동등한 자격으로 대한다.

유일하게 감정만이 그가 진정으로 우러러봐야 하는 대상이라 원경제는 그를 전혀 꿰뚫어 보지 못했다.

손에 막강한 권력을 쥔 황제에게 있어 이는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원경제는 연차(輦車)에 앉아 분부했다.

“허칠안에게 짐을 만나러 입궁하라고 전하거라.”

* * *

“폐하께서 나를 만나길 원한다고?”

허칠안은 소식을 접할 때 마침 관성루 밖에서 눈팅을 했다. 그는 군중 속에서 도액 나한을 필두로 한 승려들을 훑어보았다.

“그렇습니다. 궁 안의 시위가 관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허 대인께서는 빨리 가시죠.”

말을 전하는 동료가 재촉했다.

‘내가 만약 좀 늦게 가면 올해 녹봉이 다 깎이겠지…….’

허칠안은 두말하지 않고 암말에 올라, 치켜올라온 엉덩이를 채찍으로 후려쳐 서둘러 관아로 달려갔다.

허칠안은 관아에서 기다리는 시위와 접선한 뒤 황궁에 들어갔다. 그는 말없이 동문을 지나 어서방에 이르렀다.

굵고 단단한 여섯 개의 붉은 기둥이 높고 둥근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노란 비단이 깔린 큰 책상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허칠안이 적막한 어서방에서 일각을 기다리니 도포를 입고 흑발에 도잠을 꽂은 원경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원경제는 자신만의 용의(龍椅)에 앉지 않고 허칠안의 앞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주시하였다.

‘……꼭 장인어른이 사위를 보는 듯한 눈빛인데. 자세히 살펴보는 눈빛에 당혹스러움도 있고 좀 좋지 않은 것 같군!’

원경제는 그의 앞에 멈춰서 눈을 내리깔고 순종적으로 있는 은라에게 말했다.

“감정과 도액이 두법하는 일을 들었겠지?”

“폐하께 아뢰옵니다. 방금 황방에서 봤습니다.”

허칠안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두법은 통상적으로 문두(文斗)와 무두(武斗)로 나뉘지. 도액과 감정 모두 세간에서 보기 힘든 고수니 직접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는 때때로 제자 사이의 일이 되지.”

‘그건 이해할 수 있어. 우두머리들이 뒤에 앉아서 지시하고, 제자가 돌격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거잖아……. 하지만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그가 마음속으로 궁금해하던 찰나에 원경제가 담담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감정이 방금 짐에게 사람을 빌렸다. 도전을 받을 사람으로 너를 찍었구나!”

“……?”

허칠안은 문득 고개를 들어 경악한 얼굴로 원경제를 쳐다봤다.

원경제는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 있는가?”

‘감정 이 늙은이,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신수가 내 몸속에 있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불문 앞으로 보내는 거구나…….’

허칠안은 즉시 대답했다.

“소직은 실력이 미천하고 재능이 부족하여 감당할 수 없을 듯합니다. 폐하께서는 소직의 거절을 용서해 주십시오.”

원경제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말했다.

“감정이 이미 결정하였다. 당연히 바뀌지 않을 것이야. 짐이 너를 부른 건 이런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짐은 네게 이번 두법은 대봉의 체면과 관련됐으니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겨야 한다고 알려 주려는 것이다.”

‘내가 무슨 근거로 이길 수 있다는 건지 너도 생각해 봐야지 않겠니?’

허칠안은 무표정으로 읍을 올렸다.

“소직,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 * *

원경제가 막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층층이 겹쳐진 번잡한 흰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신구를 꽂고 얼굴을 명주 천으로 가린 여인이 시위대의 보호를 받으며 영보관에 들어왔다.

그녀는 통전할 필요 없이 곧장 도교 사원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정자에 앉았다.

정자 옆에 있는 못에는 외모가 절색인 여자 국사 낙옥형이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명주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돌 한 알을 주워 슬그머니 낙옥형을 내리쳤는데 돌이 그녀의 3척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 어떤 기조(氣罩)에 의해 튕겨 돌아가 얼굴을 가린 여인의 이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그녀는 ‘아이고’하더니 이마를 감싸 안고 주저앉아 화를 냈다.

“2품 고수 대단하네. 2품 고수면 함부로 사람을 괴롭혀도 되나?”

낙옥형은 눈을 뜨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뭐하러 왔어? 별일 없으면 내 수련 방해하지 마.”

얼굴을 가린 여인은 치맛자락을 들고 연못가로 가서 신나게 떠들어댔다.

“불문이 감정과 두법을 할 거라지. 내일 구경거리가 생기겠어.”

“보러 가면 되잖아.”

“당연히 보러 갈 거야. 하지만 원경제가 내가 왕부를 벗어나는 걸 허락하지 않잖아. 그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변장해서 몰래 보러 가야지. 근데 근거리에서 보고 싶단 말이야.”

얼굴을 가린 여인이 흥흥대며 말했다.

“외모를 바꾼 뒤에 다른 사람한테 데리고 들어가달라고 하면 되잖아.”

낙옥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외모를 바꾸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를 데리고 들어가겠어?”

그녀는 마음을 졸이며 말하더니 맥이 빠진 듯 화제를 돌렸다.

“있잖아, 그 허칠안 정말 얄밉더라. 여러 번 그를 마주쳤는데 정말이지 단정치 못한 호색가던데.”

“네 자태로는 인지상정 아니겠어?”

낙옥형이 대답했다.

“봐봐. 너는 항상 진심으로 나와 대화하지 않아. 생각하지 않고 말하잖아……. 내가 어떻게 본모습을 남한테 보일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그 호색가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질 거야. 생김새를 바꾸고 위장한 후의 내 외모는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그 품격과 기품은 아주 절색인 여인이라고…….”

낙옥형은 견디지 못하고 말을 끊었다.

“품격과 기품이 절색이니까 네 앞에서 능글맞게 구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야?”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혀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말 안 할래!”

얼굴을 가린 여인은 화를 내며 돌아섰다.

그녀는 위장한 뒤의 자신이 평범한 외모의 부인일 뿐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허칠안이 뜻밖에도 이런 부인에게 강한 흥미를 보인다니, 이는 이 남자가 그야말로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는 호색가라는 뜻이었다.

불결한 소인배.

“내일 사천감을 대신해서 불문과 두법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

낙옥형이 갑자기 물었다.

얼굴을 가린 여인은 귀를 쫑긋 세웠다.

“허칠안이야.”

낙옥형은 뜸을 들이지 않았다.

“응?”

얼굴을 가린 여인은 순간 돌아서서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자가? 사천감을 대신하다고?”

낙옥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가린 여인은 순간 좀 화가 나서 그곳에 앉아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 막강한 대봉에 설마 그렇게 사람이 없단 말이야? 못난 자식한테 사천감을 대표하여 두법하라니.”

그녀는 화를 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눈을 감고 좌선하는 낙옥형을 보자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그곳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 * *

허칠안은 호기루에서 차를 받쳐 들고 궁중에서 얻은 정보를 위연에게 알렸다. 위연은 남의 일처럼 여기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좋겠군.”

“만약 진다면 저는 틀림없이 폐하께 처벌당할 겁니다.”

허칠안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위연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게. 아마 내일 두법은 자네가 생각한 것만큼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네.”

허칠안의 눈이 반짝였다.

“위 공, 내막을 좀 알고 계십니까?”

위연은 그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자네 머리를 좀 쓰게!”

대환관은 일깨웠다.

“두법의 노름돈이 무엇인가?”

“금강경과 천기반입니다.”

“천기반은 감정이 몸에 지니고 있는 법기이네. 인간 세상에는 극히 드물지. 두법에서 지면 자네는 단지 폐하께 처벌을 당하는 것에 그치겠지만 그는 귀중한 보물을 잃는 셈이네. 자신이 없다면 감정이 폐하께 자네를 빌렸겠는가?”

‘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 자신은 어째서 모르는 거지…….’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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